軍史관련

방위산업_트랙스타

醉月 2010. 5. 5. 10:11

 

발을 전투화에 맞춥니다. 알았습니까?


지금이야 오래된 이야기지만 이 말을 수십 년 전 군에 입대한 남자들이야 ‘당연’이자 ‘물론’으로 받아들이던 시절이 있었다. 기호는 차치하고, 보급되는 수량에 따라 잘못 얻어 걸리기라도 하면 말 그대로 ‘그 놈의 전투화’ 때문에 군대생활 초기부터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사실 보병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보든 장병이 거의 모든 일상생활을 전투화에 의존하다보니 전투화야말로 군대생활 전체를 좌지우지 하다시피 한 안락함의 대명사가 되었던 것이다. 간부들이야 피복구매의 여유가 있으니 최적의 신발을 구매하던지 하면 될 일이지만 특히 병사들의 경우 꼼짝없이 주는 대로 신을 도리 밖에는 없었다. 그 전투화의 진화는 지금 어디쯤 가 있을까? 아직도 미군들의 전투화를 남대문시장의 으슥한 골목에서 구해 신곤 하던 아득한 선배들의 뇌리에는 딱딱함, 무좀, 봉와직염 따위의 용어가 함께 연상될 수도 있다. 참 배고픈 시절의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편안하고 기능성이 보장된 피복류보다 더 중요한 군수물품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우리는 방위산업을 하드웨어적 기능, 그 중에서도 화력이나 장비 중심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우주복 없는 우주인이 존재할 수 있는가? 우주식이 개발되지 않은 우주여행을 상상할 수 있는가? 군도 마찬가지다. 장병들의 의·식·주야말로 전투력 유지에서 강화에 이르기까지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요소다. 그런 측면에서 신기술을 전투화에 접목시켜 편안하고 기능성이 강화된 전투화를 생산 보급한다는 것은 양질의 실탄을 보급한다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군도 그런 측면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고 노력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어딘지 미진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차제에 보급업체의 다양성을 통해 시장이 열리고 마침내 오랜 연구개발과 그동안 아웃도어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능성 특화 신발 메이커로 성장한 ‘트랙스타’가 그 노하우를 전투화에 접목시켜 우리 군에도 발에 맞춘 기능성 전투화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근심이 많은 사람에게 불편한 신을 줘라


신발의 기원은 길게는 10만 년, 가장 신빙성있는 정설로는 기원전 20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파피루스로 엮은 ‘샌달’ 모양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샌달 모양의 신발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신발의 주류를 이루었고 현재의 구두와 같은 견고성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은 오랜 전란에 시달리던 십자군 운동 때부터다. 결국 견고성을 갖춘 기능성 신발은 전투화의 발달과 함께 발전해 온 셈이다. 신발은 신분을 상징하기도 했고 19세기경 초핑으로 불리던 여성들의 굽 높은 하이힐은 남성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도구로 쓰이기도 했다. 그 뒤 재봉털이 발명된 산업혁명기에 와서는 오늘날과 같은 대량생산체제도 갖추게 되었다. 신발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 하나, 서양농민들은 나막신(Sabot)을 많이 신었는데 일 년 동안 농사를 지어도 소작료로 다 바치고 나면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의 양식밖에는 남질 않아 여기에 반항하여 나막신을 신고 애꿎은 새싹을 밟아 죽였다고 해서 지금도 태업을 ‘사보타지’로 부른다. 이렇듯 신발은 인류의 문명사와 같이 한다. 이봉주 선수가 은퇴회견에서 선수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마라톤화 속에 작은 모래하나와 싸우며 뛰어야 했던 것이라 했다. 그만큼 신발은 중요하다. 오죽하면 옛말에 ‘근심이 많은 사람에게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주라’고 했을까? 신발에 신경 쓰다보면 근심할 틈조차 없어진다는 비유다. 이제 트랙스타에서 근심 하나를 들어 줄 전투화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친다.

 

트랙스타라는 상표는 우리에게 등산화를 비롯한 기능성 레포츠 신발 메이커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재로 그 내면을 보면 ‘안 만들어 본 신발이 없고, 못 만드는 신발이 없는 회사’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리고 가벼움으로 상징되는 기술력에서 최고, 자체공장에서 모든 생산품을 직접 생산·관리 그리고 애프터서비스까지 일관되게 진행한다는 것, 특수화에 특화된 회사라는 자부심이 대단히 강한 회사라는 것이다. 이런 자부심의 바탕이 될 수 있었던 트랙스타의 기술은 크게 6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IST(Independent Suspension Technology) System으로 불규칙한 지면에서도 균형을 맞추어주는 신발제조 기술이며, 두 번째, 세계 최초로 280g의 등산화를 제작한 Light Weight 기술, 세 번째, 얼음 위에서도 미끄러짐이 없는 ICE GRIP, 네 번째, 신속한 탈착화를 도와주는 보아 시스템이 장착된 코브라, 다섯 번째, 한국 최초 고어텍스를 신발에 적용한 기술력,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 신기술은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는 NESTFIT이라 불리는 기술로 ‘네스트’라는 말이 상징하듯 발을 새의 둥지처럼 편안하게 감싼다는 의미로 인체의 발, 특히 한국인의 발을 분석하여 발등에서 발가락의 벌어짐, 발바닥의 접착성까지 감안한 말 그대로 발에 맞는 신발을 제작하는 기술이다.

 

 

한 우물을 판 우직함의 결정


물론, 이런 기술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진 않았다. 1988년 동호실업으로 탄생한 이 회사는 이듬해인 1989년에 500만 불 수출탑을 수상했고 1994년도에 현재의 트랙스타라는 자체 브랜드를 론칭한 이후, 1997년에 5,000만 불, IMF의 광풍이 산업계를 강타한 1999년도에 오히려 7,000만 불 수출탑을 수상한, 국내 신발 메이커 제일의 국제적 인지도를 가진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해 왔다. 현재 수출국가 만도 20개국이 넘는다. 창업자인 권동철 CEO는 이를 바탕으로 3년 이내 세계 3위, 5년 이내 세계 1위를 목표로 달려가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우리도 한때 세계적 스포츠용품 메이커들처럼 88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스포츠산업을 전략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일본의 “A”제품이나 독일의 ”A”제품 등이 동경 올림픽이나 뮌헨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 브랜드로 급성장한 것과 같은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신발산업은 일본 고베지방을 중심으로 번창하던 신발산업이 한국 부산지방을 중심으로 이전되면서 본격화된 것으로 1980년대만 하더라도 거의가 OEM(주문자 상표 부착생산)방식의 제조업에만 매달리던 시절이었다.

 

물론 당시의 세계 OEM시장의 강자는 한국이었다. 그러던 것이 차츰 대만으로 시장이 이전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OEM에 안주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다시 권동철 CEO의 말을 빌린다. “제조업을 신발산업이라 할 수 없지요. 산업은 속된 말로 ‘굽는 것’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개발, 디자인, 생산, 판매, 사후 서비스에 이르는 공정의 문제와 브랜드가 있어야 하며 거기에다 국가브랜드까지 뒷받침이 되어야 비로소 산업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젠 그때가 되었습니다. 충분히 가능하고 승산도 있습니다.” 실제 놀랍게도 일본에서 트랙스타는 더 유명하다. 일본 스포츠화 아웃도어 1위를 달리고 있다.

 

 

트랙스타는 각종 스포츠화나 스포츠웨어만 만드는 곳이 아니다. 벌써 오래 전부터 인도를 비롯하여 일본자위대, 스페인, 심지어 미군의 네이비 씰의 수중화까지 생산, 수출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군에도 납품하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외국군도 신는데 우리가 왜 우리의 노하우를 가지고 우리 장병들의 발을 편하게 못해 주느냐는 생각이었다. 이는 이윤창출의 차원이 아니었다. 기존의 전투화는 실로 꿰매는 무거운 봉합식이 주종이었다. 그때 트랙스타의 생각은 달랐다. 우주선
이나 대형 함선도 접착을 하는데 전투화를 접착하지 못할 이유가 뭐냐는 것이었다. 그런 사고를 바탕으로 2000년도부터 우리에게 적합한 전투화 개발에 나서 8회에 걸친 전투실험 끝에 마침내 가볍고 부드러우며 견고성을 동시에 지닌 ‘2009 트랙스타’ 전투화가 탄생, 초도 납품의 길을 트게 된다.

 

신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전투화는 퀵레이싱으로 불리는 원터치 군화끈 묶기 방식까지 접목되어 지금까지의 전투화 개념을 바꾼 신제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트랙스타가 전투화만이 아니라 아웃도어 제품의 강자가 되는 데는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사후관리가 가장 큰 몫을 했다. 트랙스타의 연구개발실에는 마모, 방수, 내한, 굴곡, 내유, 파열, 항습, 노화 등등 최상의 제품을 보증하기 위한 테스트가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덤으로 사후처리실에서는 10년 전의 등산화를 감쪽같이 새것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 장병들의 접착식 전투화의 성능, 섭씨 100˚의 오븐에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 전투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이제 전투화를 발에 맞춰 신자. 그리고 산행을 하듯 즐겁게 걷자. 행군은 고행이 아니라 올레길을 걷듯, 운동을 하듯 그런 가벼움이 함께해야 된다. 어제도 신었으니 오늘도 똑같은 신발을 신겨도 된다는 생각에 멈춘다면 결코 발전할 수 없다. 7,80년대까지 우리가 그랬듯, 한국산 전투화를 신어 본 외국군의 입소문으로 인해 이제 세계 모든 나라의 뒷골목 시장에서 우리 전투화가 암거래 될 지도 모른다는 즐겁게 음흉한 생각을 해 본다. 미국 뉴욕의 뒷골목에서 ‘Made in KOREA전투화’를 만나자. 이미 우리의 기술과 능력은 충분하다. 전투화 하나만 놓고 본다면 트랙스타는 분명 후발주자다. 그러나 전투화의 진화, 그 현장이 바로 ‘2009 트랙스타’ 제작라인에 있었다. 이유는 이미 아웃도어 신발제작의 최선봉에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