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무기의 세계

醉月 2011. 1. 28. 08:31

 

지난 2005년 개봉된 영화 [스텔스]에는 인공지능을 가진 스텔스 무인전투기 가 등장한다.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 이 스텔스 무인전투기는 단순히 인간의 명령에 따라 수동적으로만 움직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사고하면서 독자적인 공격을 감행하기도 한다. 먼 미래에나 실현될 수 있는 공상과학 영화 속의 얘기 같지만 이런 영화가 현실화할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의 팬텀 레이와 X-47

세계 유수의 항공기 제조업체인 미 보잉사는 2010년 5월10일  미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공장에서 무인 공격기(전투기) ‘팬텀 레이’(Phantom Ray)를 일반에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팬텀레이는 지금까지의 여느 무인기와 달리 본격적인 전투임무를 전제로 설계된 스텔스 무인전투기다. 무인 전투기는 말 그대로 무장을 장착한 무인기로 조종사 없이 공대공 또는 공대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항공기를 의미한다. '팬텀 레이'는 정찰 외에도 적 방공망 제압, 전자전 공격 등에 사용될 수 있다. 길이 10.97m, 너비 15.24m이며 각종 무장을 기체 내부에 탑재,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도록 한다.

 

보잉사의 무인전투기 펜텀레이.

항공모함에 탑재하기 위해 개발 중인 무인전투기 X-47.

 

 

보잉은 이에 앞서 공군 프로그램에 따라 1999년부터 ‘X-45 UCAS’(Unmanned Combat Air System) 무인전투기를 개발해왔으나 2006년 개발이 취소됐다. ‘팬텀 레이’는 X-45와 비슷한 외형을 갖고 있어 X-45 개발경험이 ‘팬텀 레이’ 개발에 큰 도움이 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항공모함에 탑재하기 위한 함재기용 등으로 개발 중인 무인전투기도 있다. 미 노스롭 그루먼사가 미 해군 프로그램(UCAS-N)에 의해 개발 중인 X-47은 스텔스 설계를 중시해 탄소 복합소재를 이용한 다이아몬드 형태로 만들어졌다. 초기에 만들어진 X-47A와 이보다 크고 형태도 달라진 X-47B가 있다. X-47B는 길이 11.6m, 날개폭 18.9m이고 항속거리는 6500km에 달한다.

 

 

유럽, 러시아, 중국 등의 무인전투기

미국뿐 아니라 유럽, 러시아, 중국 등에서도 무인전투기를 개발 중이다. 영국 BAE 시스템즈사는 2010년7월 영국의 첫 무인전투기로 세계에서 가장 큰 무인항공기 중의 하나인 ‘타라니스’(Taranis)를 공개했다. 타라니스는 여러 종류의 정밀유도폭탄을 탑재해 목표물을 정확히 공격할 수 있고 적 항공기의 공격으로부터도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게 설계됐다. 길이 11.35m, 폭 9.94m, 높이 4m이고 중량은 8t이며 대륙간 비행이 가능하다. 영국 국방부는 이 타라니스 프로젝트에 2007년부터 1억2400만 파운드의 예산을 투입했다.

 

프랑스의 경우 ‘뉴론’(Neuron)이라 불리는 무인전투기를 개발 중이다. 다소사를 중심으로 스페인 EADS CASA사, 스웨덴사브사 등이 공동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과의 무인전투기 개발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개발중인 ‘뉴론’은 땅 위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공대지 임무에서 정밀폭격 무기를 싣고 스스로 목표물을 찾아가 공격하는 능력과 유인 전투기의 통제를 받아 공격하는 능력을 시험 중이다.

 

 

 

 

영국의 무인전투기 ‘타라니스’.

중국이 개발 중인 무인전투기 ‘암검’.

 

 

 

독일에선 ‘바라쿠다’(Barracuda)라는 무인 전투기를 개발 중인데 2006년 첫 비행에 성공했다. 미국의 X-47이나 프랑스의 ‘뉴론’처럼 완전한 스텔스 성능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제한적인 스텔스를 목표로 했다. 길이 8.25m, 날개폭 7.22m이고 최대 이륙중량은 3.2t 이다. 이탈리아에선 알레니아사가 ‘SKY-X’라 불리는 무인전투기를 개발 중이다. SKY-X는 2004년12월 첫 비행을 했다. 항공기 동체 아래 부분에 있는 무장창에 500파운드 폭탄 2발을 실을 수 있다.

 

비겐, 그리펜 전투기로 유명한 스웨덴의 사브사도 ‘샤크’(SHARC) 등 축소 기술시범기 등을 시험했다. 러시아도 미국의 X-45, X-47과 유사한 무인전투기를 개발 중이며 중국은 ‘암검(暗劍)’이라 불리는 무인전투기 모형을 2007년 파리 에어쇼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무인전투기의 뿌리는 베트남전에서부터

이같은 무인전투기의 뿌리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전에서 정찰임무에 무인기를 활용했던 미군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적 방공망을 제압하는 무인공격기를 개발하려 했던 것이다. 미 공군은 1970년대에 ‘해브 레몬’(HAVE LEMON) 프로젝트를 통해 ‘파이어비(Firebee)’ 무인기를 개조, 매버릭 공대지 미사일과 TV 유도폭탄을 장착해 지상 방공망을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테스트 결과가 성공적이어서 실전배치형까지 개발됐지만 결국 1979년 취소됐다. 당시만 해도 데이터 링크 등 통신기술이 지금처럼 발달돼 있지 않아 무인전투기를 멀리 떨어져서 통제하는 문제, 표적이 적군인지 아군인지 구분하는 문제 등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취소됐던 것이다.

 

그 뒤 정보통신 기술의 괄목할 만한 발전으로 정찰용 무인기에 이어 무인전투기까지 개발되는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무인전투기는 대당 1억 달러가 넘는 최첨단 고성능 유인 전투기에 비해 가격이 싸고 적이나 사고에 의해 조종사가 희생되는 부담이 없다는 것이 유인 전투기에 비해 강점이다.

 


무인전투기의 전망과 미래

하지만 무인전투기 시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려면 아직도 넘어야 할 산들이 남아 있다. 우선 적군의 전파방해 등 통신장애 환경에서도 데이터 링크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 무인전투기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려면 미리 입력된 비행경로 외에 무인전투기 스스로 상황변화에 대응해 비행경로를 변경하는 자율항법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생존성을 높이기 위해 스텔스화 및 경량화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기술발전 추세를 감안할 때 현재 무인기는 적 방공망을 제압하는 대공제압 임무 등 지상공격 임무 수행 중심으로 개발 중이지만, 2020년대에는 공대공 전투까지 가능한 명실상부한 무인전투기가 본격 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세계적인 추세에 뒤지지 않기 위해 무기개발 총본산인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중심으로 2030년대를 목표로 스텔스 무인전투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무인전투기

무장을 장착한 무인기로 조종사 없이 공대공 또는 공대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항공기이다. 최첨단 고성능 유인 전투기에 비해 가격이 싸고 적이나 사고에 의해 조종사가 희생되는 부담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군인이라고 하면 흔히들 보병을 떠올린다. 아무리 단추 하나를 눌러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해도, 결국 목표지점을 점령해야 전쟁이 끝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지상에서 전투하면서 적군의 도시와 주거지를 점령하는 것은 바로 보병이다.

 

 

보병의 생명, 소총

그렇다면 이렇게 전쟁에서 핵심이 되는 보병에게 생명이자 가장 귀중한 친구는 무엇일까? 물론 소총이다(혹자는 소총이 아니라 삽이야말로 보병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기도 한다). 21세기가 되었지만 역시 보병의 기본화기는 레이저 총이 아니라 탄환을 발사하는 소총이다.

 

소총의 발전과정.

 

 

 

소총의 역사


초기의 보병총기는 머스킷(Musket)이라는 전장식(煎裝式, 총구 앞으로 장전하는 방식) 개인화기였다. 머스킷은 총열에 강선도 없었고, 총구 앞으로 화약과 탄환을 넣고 부싯돌을 마찰시켜 발사하는 방식이었다. 장전하는 데 보통 1분 정도가 걸렸고, 비라도 오는 날에는 발사가 제대로 될지 도박을 걸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오히려 화살보다도 사정거리는 짧고 명중률도 떨어졌다. 장점이라곤 궁수보다 머스킷 사수를 양성하는 것이 쉽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강선과 탄피가 채용된 소총이 등장하면서 드디어 보병화기는 명중률도 좋아지고 사정거리도 늘어나서 본격적인 살상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초기의 소총은 대부분 볼트액션(bolt action) 소총으로 한 발을 발사하고 나면 다음 탄환을 손으로 재장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런 문제는 M1 개런드 같은 반자동소총이 등장하면서 해결되었다. 그러나 더욱 혁명적인 무기는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선보인 StG44(Sturmgewehr 44) 돌격소총이었다. StG44 돌격소총은 기존의 소총탄보다 약하지만 권총탄보다는 강력한 탄환을 채용하여 휴대성을 높이고, 기관단총처럼 연발기능을 유지하고 살상능력을 극대화시켰다.

 

결국 StG44의 설계는 이후 냉전의 양대산맥인 미국과 소련의 주력소총 M16AK-47에 그대로 영향을 주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 M16과 AK-47은 지금까지도 세계시장을 양분하면서 대결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최근 총기에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장비들이 장착된다. 야간에도 사격이 가능하도록 웨폰 라이트(총기장착용 플래쉬라이트), 적외선 조사기에 야간투시경이 장착되기도 한다. 한편 빠른 조준을 돕기 위해 레이저 조준기나 도트사이트(dot sight)도 장비된다. 게다가 세상도 좋아져서 이같은 장비 장착대는 ‘피카티니 레일(Picatinny Rail)’이라는 미군 규격에 맞게 생산되고 있다. 이런 레일시스템을 사용하면, 마치 레고 장난감처럼 필요한 부품을 총기에 끼워 맞출 수 있게 된다.


 

도트사이트, 조준경 안에 가상의 붉은 점이 표시되는 장비이다. 가늠자와 가늠쇠를 조준정렬하지 않고 빨간 점만 보고 쏘면 되어, 사격대응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다.
<출처: (cc) Liftarn at Wikipedia>

 

 

 

그러나 현대적인 소총이라도 실제 전쟁에서 다른 무기에 비하면 적군에게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다.  보통 소총은 3초 내에 탄창 한 개를 비워버릴 수 있지만, 실제로 1분 내에 4개 이상의 탄창을 비워 버린다면 대개 총열이 뜨거워져 작동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게다가 실전에서 보병이 휴대하는 탄환은 대개 탄창 12개 분량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 많은 국가들이 새로운 총기의 개발에 혼신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군의 자랑,  K1A와 K2

 

 


광복 직후 국방경비대 시절, 우리 군은 일제가 남기고 간 38식과 99식 볼트액션식 소총이 주 무기였다. 그러던 것이 건군에 즈음하여 미제 M1 소총을 지급받기 시작하였다. 우리군은 무려 30만 정에 가까운 M1 소총을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았다. 그리고 월남전을 계기로 우리 군에도 M16이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1974년부터는 약 60만 정의 M16A1 한국형(콜트 603K 모델)이 국내에서 면허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요즘 예비군 훈련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한민국제 M16 소총들이다.


M16의 면허생산이 끝나가자 우리 군은 드디어 국산 소총을 개발하여 K1A 기관단총과 K2 소총을 주 무장으로 구축하였다. 특히 1984년부터 생산이 시작된 K2 소총은 M16소총의 가스직동방식(Gas Direct Action) 대신에 AK47에서 채용한 가스피스톤 방식을 채용하여 야전신뢰성을 향상시켰다. 한 마디로 K2 소총은 M16과 AK47의 장점을 조합하여 만든 소총이다.

 

 

 

K1과 K2 소총은 부품간의 호환성 또한 우수하여, K1의 윗총몸과 K2의 아랫총몸은 서로 결합될 수도 있다. 해외에서도 우수한 실전무기로 평가받고 있는 K1/K2 콤보는 현재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피지 등의 국가에서도 채용되고 있다. 한편 부가장비를 장착하는 추세에 맞추어 K1/K2를 개량하려는 시도가 줄을 잇고 있다. 특히 피카티니 레일 부가장비 장착대가 채용되면서 K1 기관단총은 전혀 다른 모양으로 바뀌고 있다. 한편 우리 군이 채용한 K 시리즈의 보병화기로는 K3 5.56mm 기관총, K4 40mm 고속유탄발사기, K5 9mm 자동권총, K6 12.7mm 중기관총, K7 9mm 소음기관단총 등이 있다.

 

 

대한민국 국군의 ‘K 시리즈’ 보명무기체계.

 

 

 

개인화기의 혁명, K11 복합형 소총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소총을 만들기 위해 여러 나라들이 눈물 나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 특히 군사대국 미국이 보여준 노력은 안쓰러울 정도이다. 미국은 무려 40년 이상 채용해온 M16을 대체하기 위하여 20년 넘게 노력해왔다. 1980년대 중반 ACR(Advanced Combat Rifle) 사업에 3억 달러, 90년대 중반 OICW(Objective Individual Combat Weapon) 사업에 1억 달러 가량을 써가면서 상당한 시간과 예산을 소진했지만 결과물은 아직도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정말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 미국도 풀지 못한 OICW 차세대 소총의 해답이 나왔다. 바로 K11 복합형 소총이다. 2000년부터 개발이 시작된 K11은 2006년 10월 시제품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약 16개월의 운용시험평가 끝에 전투용 적합판정을 받고 2008년 6월에 실전배치가 결정되었다. K11은 OICW 등 미래형 소총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모두 달성하였다. 특히 사거리 컴퓨터로 제어되는 공중폭발탄을 운용할 수 있어 적의 밀집병력이나 은폐/엄폐한 병력에 대하여 뛰어난 살상력을 자랑한다.

 

 

 

 

전투기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가? 전투기 선정이 국가적 관심을 끄는 것은 국방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국방에서 갖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투기는 국방의 ‘스타’인 셈이다.

 

전투기는 영어로 'Fighter aircraft'라고 부른다. F-16이니 F-15니 하는 명칭의 'F'는 여기에서 온 것이다. 전투기는 우선 공중에서 다른 항공기를 격추시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여기에 더하여 지상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공중전 전문인 전투기와 폭격 전문인 공격기로 나누어 개발됐다. 하지만 요즘 대세는 공중전뿐만 아니라 폭격도 척척 수행하는 다목적 전투기(Multi-Role Fighter)이다.

 

 

5세대 전투기란 스텔스 전투기!

그렇다면 신문이나 뉴스에서 소리를 높이는 5세대 전투기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5세대가 되기 전에 분명 1세대가 있었을 것이다. 전투기의 세대는 제트기 시절부터 구분하는데, 차분히 정리하면 다음 그림과 같다. 한마디로 5세대 전투기는 스텔스 전투기이다.

 

전투기의 세대 구분. <출처: IntelEdge>

 

 

 

보이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 먼저 보고 먼저 쏜다

 

 

전투기는 공중에서 모든 적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싸움에서 적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주 단순히 말하자면 먼저 보고, 먼저 쏘고 먼저 떨어뜨릴 수 있는 능력(First-look, first-shot, first-kill)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각국의 국방연구자들은 자신은 보이지 않으면서 남을 먼저 볼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스텔스 기술이다.

 

스텔스 기술은 1962년 한 러시아 과학자의 논문에서 시작되었다. 약 10년 후에 이 논문을 접한 미국의 엔지니어가 '보이지 않는 비행기'를 만들겠다고 덤벼들었다. 그리고 또 10년이 지나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였던 F-117 나이트호크이다. 스텔스 기술을 활용하면 적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게 접근하여 어떤 곳이라도 타격할 수 있다. 즉, 스텔스 전투기나 폭격기를 가진 나라는 마음만 먹으면 어느 나라의 국가지휘망이라도 붕괴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스텔스 기술은 발달을 거듭하여 F-22 같은 진정한 스텔스 전투기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F-117 나이트호크는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로서 걸프전과 코소보전 등에서 활동해왔다. 실제로는 공중전 능력이 없어서 공격기에 불과했던 F-117은 ‘진짜 스텔스 전투기’인 F-22의 실전배치가 안정화되자 2008년 4월 22일부로 퇴역하였다. <출처: USAF>

 

 

 

 

5세대 전투기의 선두주자 F-22 랩터

5세대 전투기의 시대를 연 것은 록히드마틴/보잉의 F-22이다. F-22는 전세계의 영공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미 공군이 야심차게 개발한 제공전투기(공중전을 수행하기 위한 전투기)이다. F-22 랩터의 능력은 랩터가 배치된 지 6개월 만에 드러났다. 2006년 6월 '노던엣지' 훈련에서 랩터 12대가 참가했다. 여기서 랩터들은 수 차례의 모의 공중전에서 가상적기를 108대나 격추시켰다. 특히 랩터가 속한 블루포스는 대항군 레드포스에 대하여 '241 대 2'의 승리를 기록했다. 물론 랩터는 단 한 대도 격추되지 않고 말이다.

 

이것은 5세대 전투기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특히 5세대 ‘스텔스’ 전투기들은 스텔스 능력을 특징으로 하여, 레이더에 거의 탐지되지 않는다. F-22 랩터는 레이더 탐지율과 함께 적외선 탐지율도 현저히 낮추어 진정한 스텔스 성능을 발휘한다.

 

 

 

F-22 랩터는 세계 최초의 5세대 전투기로서, 세계최강의 전투력을 갖추고 21세기의 하늘을 지배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모두 187대의 랩터를 구매할 예정이다. <출처: USAF>


게다가 F-22는 더 나아가서는 '초소형 조기경보기'로 활약할 수 있다. F-22는 최첨단 기능을 갖춘 AN/APG-77 AESA 레이더 를 통하여 정밀한 탐색기능을 갖추고 있다. 비록 미사일과 총탄을 다 쓰고 더 이상 싸우지 못해도 조용히 전방에서 비행하면서 AWACS(공중조기경보기)가 탐지하지 못하는 지역까지 훑어주면서 적군의 위치를 다른 아군기에게 알려줄 수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다른 F-22가 발사한 미사일을 더 좋은 위치에서 유도하여 정확히 목표를 공격할 수도 있다. 미군이 자랑하는 '네트워크 중심전' (Network Centric Warfare)을 F-22는 훌륭히 수행할 수 있다.


원래 미 공군은 F-22 랩터를 무려 750대나 도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고 예산이 줄어듦에 따라 미국도 대당 1억5천만 달러(한화 약 1천8백억 원)짜리 전투기를 마음대로 사는 것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구매대수는 648대, 438대, 339대, 279대, 183대 등으로 해가 갈수록 줄어만 갔다. 그러다가 결국 2009년 10월 F-22는 187대의 구매를 끝으로 생산을 종료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버렸다.

 

 

 

 

5세대 전투기의 보급판, F-35


F-22의 생산은 끝났지만 스텔스 전투기는 여전히 만들어진다.  미국은 현재 주력 전술기들을 모두 스텔스 기종으로 바꾸고 있다. 냉전이 끝나자 예산이 줄어든 미군은 각군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한 기종으로 통합한 JSF(Joint Strike Fighter)를 만들기로 했다. 그 결과 F-35 라이트닝II 전투기가 만들어졌다.


일단 F-35가 압도하는 것은 그 대체할 기종들이다. 미국의 공군, 해군, 해병대뿐만 아니라 영국 해군도 같이 참여한 이 사업은 공군의 F-16 전투기, A-10 공격기, 해군과 해병대의 F/A-18 호넷, 해병대의 AV-8B 해리어II 등 미군이 보유한 모든 기종을 교체하는 야심찬 사업이다. 미국이 사들일 F-35는 무려 2,443대로 모두 3824억 달러(한화 약 459조원)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더 이상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은 없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F-35의 교체 대상 기종. <출처: IntelEdge>

 

 

F-22 랩터의 능력이 언론을 통해 너무 과장되는 바람에 F-35는 그보다 한 단계 떨어지는 기종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F-35는 조종계기에 풀 스크린 방식을 채용하여 더욱 조종환경이 편리하다. 여기에 비하면 F-22의 계기판은 21세기다운 품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슈퍼사이드와인더 미사일과 연동되는 통합헬멧장착시연기는 F-22에도 아직 장착되지 않은 최신기술이다. F-35는 A,B,C 3가지 형태로 생산되는데, 기본형인 F-35A는 F-16과 A-10을 대체하는 공군형이다. 한편 해병대의 AV-8B 해리어II를 대체하는 것은 수직이착륙형인 F-35B이다. 해군의 주력인 F/A-18C/D 호넷을 대체하는 것은 함재기형인 F-35C이다.

 

F-35는 현재 개발지연과 비용상승으로 고전 중인데, 특히 대당 가격은 2001년 5천만 달러(한화 6백억 원)에서 2010년 9240만 달러(한화 약 1,100억 원)으로 80% 이상 비싸졌다. 하지만 유일하게 생산되는 스텔스 전투기이기 때문에 F-35는 전세계의 상공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지배에 대항하는 파크파

제5세대 전투기는 미국만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개발이 거의 막바지에 접어든 파크파(PAK-FA, 차세대 일선 전투기)가 바로 그 주역이다. 현재 파크파의 프로토타입 기체는 수호이 T-50 전투기로, 파크파는 개발이 완료되면 MiG-29와 Su-27을 대체하여 러시아 영공을 지킬 것이다. 러시아는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의 미그와 수호이 전투기를 대체할 차세대 전투기를 준비해왔다. 미코얀사의 프로젝트 1.44와 수호이의 Su-47의 두 기종이 경쟁을 펼쳤는데 여기서 선정된 수호이사가 내놓은 것이 바로 T-50이다.

 

 

 

파크파는 2010년 1월 29일 처음으로 시험비행을 실시하였으며, 지난 6월 17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관람 하에 제16회 시험비행을 마쳤다. 비행을 관람한 푸틴 총리는 제5세대 전투기인 T-50은 다른 나라의 동급 전투기보다 2.5배에서 3배까지 싼 가격이라고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여태까지 러시아는 파크파의 기체개발에 약 300억 루블(한화 1조1691억 원 상당)을 투입했다. 앞으로 남은 것은 엔진, 항전장비 및 무장의 개발로, 300억 루블이 추가로 쓰이게 될 것이다.

 

파크파는 아직 5세대 전투기로서 완성되지는 못한 상태이다. 5세대에 걸맞는 항전장비는 아직 장착되지 않고 있는데, 보도에 따르면 인도의 힌두스탄 항공(HAL)에서 항법장비와 미션컴퓨터를 개발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현대화된 스텔스 엔진의 개발과 함께 새로운 무장체계의 도입이라는 기나긴 과정도 남아 있다.


러시아의 5세대 전투기는 바로 수호이 T-50 파크파이다. 현재 한참 시험비행중인 파크파는 2013년부터 초도양산이 시작될 전망이다. <출처: 수호이 OKB>

 

 

 

 

한국의 5세대 전투기는?

우리 공군은 5세대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을까? 물론 아니다. 현재 5세대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는 것은 F-22를 운용하는 미 공군뿐이다. 그러면 4.5세대의 전투기라도 보유하고 있을까? 공군 최강의 전투기인 F-15K 슬램이글은 아쉽게도 4.5세대 전투기는 아니다. 물론 F-15K가 현재 동북아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기이긴 해도 AESA 레이더도 없는데다 스텔스 성능도 그다지 고려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5세대 전투기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은 것은 군사강국인 미국과 러시아뿐이다. 한참 군비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의 경우 J-XX를 개발중이고, 일본은 시험실증기로 ATD-X를 선보였다. 우리나라는 한때 KF-X라는 이름으로 한국형 스텔스를 검토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구형 F-4/F-5를 대체하는 보라매 사업에서 4.5세대 전투기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래저래 명품 무기체계를 만들면서 방위산업에서 주목받는 한국이지만 아직 항공분야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T-50 훈련기를 놓고 시장에서 분투하고 있지만 UAE나 싱가포르에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항공산업의 종주국인 미국도 라이트 형제의 비행 100년 만에 스텔스 전투기를 만들었다. 우리도 비싼 수업료를 물어가면서라도 5세대 전투기의 노하우를 얻기를 기대한다.

 

  AESA 레이더

능동형 전자주사 레이더(Active Electronically Scanned Array). 레이더 빔의 방향을 순간적으로 바꿀 수 있어 다수의 표적을 실시간으로 추적하여, 조종사의 상황 인식 능력을 혁신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스텔스 관점에서도 기존 레이더 대비 매우 유리하다.

개인화기의 미래, K11 복합형 소총. <자료제공: 방위사업청 대표 블로그>

 

 

사실 소총의 가장 큰 적은 벽이나 엄폐호 등과 같은 차폐물이다. 차폐물 뒤에 숨어 있는 적에게는 어떤 소총탄도 소용이 없다. 그러나 K11은 표적의 3~4m 상공에서 폭발하는 20mm 공중폭발탄을 채용하여 소총의 한계를 극복하고 살상력을 증대시켰다. 또한 K11은 2배율의 주야조준경과 사격통제장치 등 첨단장비들을 내장하여, 밤과 낮을 지배하는 강력한 소총으로 자리 잡게 된다. 또한 이중총열구조를 채택하여, 별도의 방아쇠로 운용되는 K201 유탄발사기와는 달리 소총 자체의 방아쇠 하나로 5.56mm 소총탄과 20mm 공중폭발탄을 모두 발사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의 차세대 소총에서 채용했던, 반자동식유탄발사기를 배제하고 볼트액션방식을 채용하여 부피와 중량을 줄이는 방안을 선택했다.


K11은 실전배치가 결정된 이후에 해외 수출까지도 성공했다. 우리 원전을 채택했던 UAE가 K11의 첫 고객이 된 것이다. 물론 이렇게 강력한 K11이 모든 병사에게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분대당 2정씩 배치된 K2/K201 유탄발사기를 교체하여 일선에 투입될 예정으로, 2010년 6월 22일에 초도생산분이 출고되어 방위사업청으로 납품되었다. 당장 아프간에 파병되는 병력에게 지급될 것이라고 하니 앞으로의 활약을 지켜보자.

 

땅 위에서 움직이는 지상무기를 대표하는 무기는 과연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전차를 꼽는 데 큰 이견이 없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때 처음으로 등장한 이래 100년이 다 돼 가지만 ‘지상전의 왕자’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결은 뭘까? 1973년 제4차 중동전 때 이집트군의 AT-3 대전차 미사일, RPG-7 대전차로켓 등의 공격으로 수많은 이스라엘 전차들이 파괴된 뒤 한때 ‘전차 무용론’이 부각됐었지만 결국 전차의 위상에 큰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지상전의 왕자, 전차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끊임없는 변신과 발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초기엔 참호 돌파용으로 만들어져 둔중하기 짝이 없는 ‘깡통’ 같은 무기였지만 점차 강력한 방어능력과 기동성을 함께 갖춘 가공할 무기로 탈바꿈한 것이다. 현대에 들어선 컴퓨터를 활용해 이동중에도 정확한 사격을 하고 네트워크 통신망으로 정보도 교환하는 첨단 무기로 바뀌었다.


전차가 변신해온 세대 구분은 전문가들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보통 1940년대 후반에 등장한 구(舊)소련의 T-54/55, 미국의 M-48, 영국의 센추리온 등을 1세대 전차로 시작해서 1980년대 이후엔 3세대 또는 3.5세대 전차들이 세계 각국의 주력 전차로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3세대 전차로는 미국의 M-1 ‘에이브럼스’, 구(舊)소련의 T-80, 독일의 레오파드 Ⅱ, 영국의 챌린저, 이스라엘의 메르카바, 우리나라의 K-1 전차 등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이후엔 이보다 진보한 3.5세대 전차들이 등장했는데 프랑스의 르클레르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세계의 전차 강국들은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4세대 전차를 차세대 주력전차로 개발중이다.


전차는 지상전의 왕자다. 사진은 대한민국의 차기 전차 ‘흑표’.
<출처: 강원대학교 김상훈 교수>

 

 

 

 

한국군 차기 전차 K-2 흑표

3.5세대 가운데서도 가장 최신 기술을 적용해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 것이 한국군의 차기 전차 K-2 ‘흑표’다. 흑표는 2007년 3월 시제 전차 3대가 처음으로 공개된 뒤 시험평가를 계속해 왔으며, 2011년 실전 배치를 목표로 양산을 앞두고 있다.

 

흑표는 공격력과 방어력, 기동성 등에서 현재 한국군의 최신형 주력전차인 K-1A1과 차원을 달리한다. 우선 미사일 및 레이저 경고장치와 유도교란 통제장치, 복합연막탄 발사장치 등을 갖춰 국내 전차 중 처음으로 날아오는 적 대전차 미사일을 교란해 빗나가게 할 수 있다. 2011년까지는 전차를 향해 날아오는 적 대전차 미사일은 물론 RPG-7 대전차 로켓까지 직접 쏘아 맞혀 파괴하는 ‘능동방호 시스템’도 장착할 예정이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에서 미군 및 다국적군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는 RPG-7은 북한군도 광범위하게 쓰고 있어 우리 전차들에도 위협이 되어 왔다.

 

 

 

120mm 55구경장 주포를 사격하는 흑표. <출처: 강원대학교 김상훈 교수>


주포도 K-1A1 전차의 주포보다 1.3m 가량이나 더 긴 120mm 55구경장 주포를 장착, ‘포스’가 넘치는 강렬한 인상을 준다. 최신형 전차 포탄으로 무장, 북한의 최신형 전차인 ‘천마호’ 전차는 물론 미·일·중·러·유럽의 어떤 전차도 관통할 수 있다. 또 다목적 고폭탄(HEAT-MP)으로 공중에서 전차를 위협하는 공격용 헬기를 직접 쏘아 맞힐 수도 있다. 미국의 최신예 전차인 M-1A2나 프랑스의 르클레르 등은 헬기와 교전할 능력이 없다.

 

또 버슬형 자동 장전장치의 채용으로 탄약도 자동으로 장전돼 전차 승무원이 종전 K-1 계열전차의 4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방어력 측면에서도 신형 모듈형 장갑을 장착, 현존하는 세계의 모든 전차에서 발사된 전차 포탄으로부터도 대부분 전차 승무원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흑표는 강력한 엔진 등의 채용으로 울퉁불퉁한 구릉지에서도 시속 50Km 이상의 고속으로 달릴 수 있다. 포장도로 등 일반 평지에서는 최고 시속 70Km로 달릴 수 있다. 또 4.1m 깊이의 강이나 하천을 건널 수 있어 도하능력도 미국이나 프랑스 신형전차에 비해 뛰어나다. 전차 자세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어 산악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에 적합하다.

 

 

세계 최정상급 전차, 흑표

대당 가격도 당초 83억 원으로 책정됐으나 방위사업청에서 원가를 다시 정밀 산정한 결과 78억 원으로 5억 원가량이 낮아졌다. 이는 100억 원대인 선진국의 차기 전차에 비해 가격 경쟁력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흑표 개발을 주도해온 국방과학연구소(ADD)는 흑표가 미국의 M1A2 SEP, 독일의 레오파드 ⅡA6, 프랑스의 르끌레르, 러시아의 T-90, 영국의 챌린저2, 일본의 90식 전차, 중국의 99식 전차 등 세계 각국의 최신예 전차들과 비슷하거나 우수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 최강’이라고 단정하기는 부담스럽지만 ‘세계 최정상급’이라고 표현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흑표는 구릉지에서도 시속 50km로 달릴 수 있고, 최고 속도는 시속 70km에 달한다.
<출처: 강원대학교 김상훈 교수>

 

 

흑표는 해외 수출 면에서도 청신호가 켜져 있는 상태다. 지난 2007년 6월 방위사업청은 터키의 차기전차 개발에 흑표의 기술이 수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동안 K-1 및 K-1A1 전차의 경우 세계 각국의 러브 콜을 받았지만, 미국의 기술지원을 받아 개발돼 수출이 제한돼 왔다. 하지만 흑표는 90% 이상의 구성품을 국내 독자기술로 만들었기 때문에 수출에 큰 제약이 없어 터키 수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실전 배치를 기다리는 흑표

그러나 흑표가 본격 양산돼 우리 군에 실전 배치되고 수출까지 실현되기 위해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2009년 말 핵심 부품인 엔진 파워팩(엔진 및 변속기, 냉각장치)에 결함이 발견돼 양산 결정 직전 양산이 유보된 상태다. 방위사업청와 엔진개발 업체 등은 엔진 파워팩 결함을 보완해 2011년 8월까지 시험평가를 끝낼 계획이다. 이 시험평가 작업이 성공적으로 종료되면 흑표는 명실상부하게 실전 배치된 한국군 차기전차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전쟁의 일선에 선 소총 분대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상황은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다. 지형은 어떤지 적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총성과 폭발음이 연이어 들리고 주위로는 파편이 튄다. 일단 살고 봐야겠기에 차폐물 뒤로 몸을 숨기지만 다른 분대원에게 등이 떠밀려 어딘지는 몰라도 계속 움직이게 된다. 뭔가 명령이 떨어진 것 같은데 분대장이 뭐라고 소리치는지 잘 들리지도 않는다. 상황이 이러니 소대장이나 중대장이 내린 지시를 소총분대원이 알 리가 만무하다. 자~ 전쟁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최강의 군대는 강한 보병에서

어떤 전쟁이든 최종적으로 적지를 점령하는 것은 보병이다. 보병이 적들의 근거를 모두 점령할 수 없다면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보병이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보병 개개인의 전투력, 즉 정신과 육체능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사람을 바꿀 수도 없다.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2008)를 보면 주인공인 브루스 배너는 초인적 체력을 갖춘 ‘슈퍼 솔저’를 만드는 과정에서 녹색괴물로 변신한다. 영화 [유니버셜 솔져](1992)를 보면 전사자를 부활시켜 초인적인 사이보그로 만들어버린다. 미래에는 이런 괴물 같은 병사들이 존재하게 될까? 물론 아니다.

 

인간은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고도 불린다. 즉 인류는 체력과 정신의 측면에서 도구를 써서 한계를 극복해왔다. 물론 미래라고 해서 보병의 역할이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여전히 소총을 들고 방탄복을 입고 헬멧을 쓰고 적과 싸운다. 그러나 개념은 같아도 장비들은 엄청난 진화를 거듭했다. 국방연구자들은 최근 ‘미래병사’라는 개념을 놓고 갖가지 발상을 현실화시킨 장비를 바탕으로 미래의 병사를 그리고 있다.

 

긴박한 전투 중에 게임기를 하는 듯한 병사가 보인다. 디지털 군장인 랜드워리어 시스템을 실험 중인 광경이다.

 

 

미래의 병사는 네트워크 병사


이런 연구를 통해 그려질 미래의 병사는 초인도 사이보그도 아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패라 했던가? 적과 아군의 위치와 전력을 잘 파악하고 아군이 조금씩 힘을 모아 적에게 승리를 거둔다. 이것이 바로 ‘네트워크 중심전’이란 개념이다. 네트워크 중심전(Network Centric Warfare)이란 ‘전장의 여러 전투 요소를 연결하여 전장 상황을 공유하고 통합적, 효율적 전투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일단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단말이 증가하면 할수록 그 위력이 강해진다는 메트카프의 법칙(Metcalf's Law)이 전쟁에 적용된 개념이다.


미군은 이미 네트워크 중심전을 위해 전투기나 전차 또는 기타 차량을 GIG(Global Information Grid)라는 정보네트워크에 연동하여 운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병사까지도 GIG에 통합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랜드워리어 시스템이다. 랜드워리어는 미래의 보병이 휴대할 ‘디지털 군장’이다. 이런 디지털 군장을 착용함으로써 미래 병사는 네트워크 중심전을 수행하는 데 요소로 포함된다. 이렇게 단말의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면 네트워크는 더욱 강력해지는 것이다.

 

 

전장의 SNS

랜드워리어는 쉽게 말하자면 ‘전장의 SNS(Social Network Service)’이다. 네트워크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서로 보는 것을 같이 보고 아는 것을 같이 안다. 병사와 부대 간에 음성, 문자, 사진 등을 공유한다. 병사와 병사를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최대한의 성과를 내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랜드워리어는 소위 말하는 웨어러블 컴퓨터(wearable computer), 즉 옷처럼 입고 다니는 컴퓨터 군장이다. 컴퓨터라면 일단 당연히 본체와,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등이 있다. 랜드워리어는 여기에 더하여 GPS 장치와 무선통신장치가 결합된다. 이런 ‘입는 컴퓨터’에 새로운 소총과 비디오 조준경 등을 결합하여 미군은 미래의 병사를 구축하려고 했다.

 

하지만 랜드워리어에게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부피가 크고 무게가 7kg이 넘어 아무도 사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려 15년 동안 1천억여 원이 투입됐던 개발사업 자체가 취소됐다. 하지만 미군은 쓸모 있는 장비만을 모아서 랜드워리어를 부활시켰다. 미육군의 정예부대인 스트라이커 여단은 절반 정도 무게를 줄인 3.6kg짜리 군장을 실전배치하여 성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랜드워리어 시스템은 소개 동영상. 초기와 달리 병사들로부터 반응이 좋다.
<출처: US Army>

 

랜드워리어를 사용하면 더 이상 지휘관의 무전명령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필요하면 헬멧 디스플레이를 꺼내 어떤 명령이 올라왔는지 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무전통신망에서 현 위치가 어디냐, 어디로 공격하느냐는 것과 같은 질문은 사라져버린다. 결국 보병들은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된 것이다.


랜드워리어는 2006년부터 실전에 투입되어 눈부시게 활약했다. 랜드워리어를 최초로 채용했던 중대는 겨우 한 달 만에 여단이 설정한 주요목표물의 58%를 잡아들였다. 병사 개개인의 능력이 그만큼 향상된 것이다. 처음에 무게나 사용법을 두고 불평하던 병사들도 랜드워리어 시스템이 없이는 작전을 나가기 꺼려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파워 슈트의 등장


영화 [아이언맨]을 보면, 파워슈트를 입은 민간인이 놀라운 힘을 과시하면서 싸운다. 로봇 태권브이가 따로 없는 이런 파워슈트는 본질을 보면 전투를 위한 병기이다. 랜드워리어를 통해 지각능력이 뛰어난 미래의 병사를 만들었으니, 이제 문제는 체력이다. 결국 차세대 병사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언맨 슈트다.


물론 영화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실제로 세계 각국에서는 아이언맨 슈트가 개발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 록히드마틴([아이언맨]에 등장하는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모델이 된 회사)은 HULC라는 로봇을 판촉하기 시작했다. HULC(Human Universal Load Carrier)의 준말인 HULC(‘헐크’)는 동력형 외골격장치이다. 쉽게 말해서 착용형 로봇(Wearable Robot)이다. 랜드워리어로 ‘입는 컴퓨터’가 등장했으니 ‘입는 로봇’이 등장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병사의 다리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동력형 외골격 장치이다. 이 장치를 착용하면 무거운 군장을 짊어지고도 가볍게 이동할 수 있다.
<출처: Lockheed Martin>

 

 

HULC는 일단 하체 기능만이 구현된 착용형 로봇이다. 사실 보병은 엄청난 무게의 군장을 짊어지고 먼거리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HULC는 보병의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만족시켜준다. HULC를 착용하면 병사는 어떤 종류의 지형에서라도 90kg의 군장을 별다른 무리 없이 착용할 수 있다. 또한 HULC는 리튬이온 배터리 4개를 채용하여 무려 48시간 동안 작동이 가능하고, 전력이 모두 소모된 후에도 하중을 지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도 HULC 자체 무게가 배터리를 포함해도 24kg에 불과하다는 점도 매력 포인트이다. 임무에 투입될 때 미군병사가 휴대하는 완전군장이 60kg에 이른다고 하니 그 채용여부를 기대해볼 만하다.

 

 

우리도 미래병사를 준비한다


우리나라도 차기보병의 준비에 여념이 없다. ADD는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연구소 및 삼성탈레스와 공동으로 미래병사체계를 개발하고 있다. ADD의 미래병사체계는 미국의 랜드워리어에 해당한다. 한편 로봇도 거의 완성단계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민군실용로봇사업단을 발족하고 최근 착용식 군사용 로봇인 하이퍼를 개발했다. 유압식 액추에이터가 핵심인 하이퍼는 120kg의 짐을 짊어지고 걸을 수 있다고 한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템포로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있는 우리나라이니만큼 머지않아 ‘로보캅’이나 ‘터미네이터’도 울고 갈

만한 강력한 미래병사체계를 선보일 것을 기대해본다.

 

2010년 7월 태평양 연안의 여러 나라 해군들이 참여한 가운데 실시된 ‘2010 환태평양(RIMPAC) 훈련’에 참가한 우리 해군의 이지스함 세종대왕함이 함포사격 훈련에서 최고 성적을 거둬 ‘탑 건(Top Gun)’함에 선정됐다. 세종대왕함은 7월 12일 하와이 인근 해상에서 실시된 해상화력지원 훈련에서 다국적 해군 함정 19척 가운데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고 해군은 밝혔다. 해상화력지원 훈련은 7.2km 떨어진 표적에 대해 각국의 함정이 5인치 함포를 5발씩 쏘아 표적으로부터의 오차거리의 합이 제일 작은 함정이 우승하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세종대왕함은 참가함정 중 유일하게 오차 합계가 100m 이내인 75m를 기록, 우리 해군의 우수한 사격 능력을 입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림팩(RIMPAC) 훈련에서의 성과로 다시 한번 언론의 주목을 받은 세종대왕함은 우리나라 최초의 이지스함 으로 유명하다.  이지스함은 강력한 레이더로 적 항공기나 미사일을 수백㎞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견하고 최대 1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요격할 수 있어 현대전의 총아이자 ‘꿈의 함정’으로 불린다. 세종대왕함은 지난 2007년 5월 진수돼 2008년 12월 실전배치됐다. 본격적인 해외에서의 작전은 2010년 림팩훈련 참가가 처음이었다.


그러면 세종대왕함이 도대체 어떤 능력을 갖고 있고 함정에 어떤 무기가 실려 있길래 이렇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일까?  세종대왕함은 우리 해군이 보유한 전투함 중 가장 큰 배다. 길이 166m, 폭 21m에 기준 배수량은 7600t이다. 만재 배수량은 1만t에 육박한다. 승무원은 300여 명이며 가격은 1조1000억원에 달한다. 세종대왕함 보유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5번째 이지스함 보유국이 됐다. 특히 우리나라와 비슷한 크기의 이지스함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 일본 정도다.  스페인과 노르웨이도 이지스함을 보유하고 있지만 우리보다 작은 5000t급이다.


미국 항공모함(좌)과 함께 훈련 중인 세종대왕함(우).
한국 최초의 이지스함이다.

 

 

세종대왕함은 미국과 일본의 최신형 이지스함에 견주어봐도 뒤지지 않는다.  앞으로 국산 함대지 크루즈(순항) 미사일이 탑재되면 일본 이지스함에 비해 강력한 타격능력을 갖게 된다. 세종대왕함에는 항공기는 물론 함정, 잠수함을 공격할 수 있는 최신형 국산 및 외국제 미사일 등 각종 미사일이 총 128기의 수직발사기(VLS, Vertical Launching System)에 실리게 된다. 이는 미국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이나 일본 아타고급 이지스 구축함이 96기의 수직발사기(미사일 96발)를 갖고 있는 데 비해 32기나 많은 것이다. 32발의 미사일을 더 실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지스 레이더에 의한 강력한 방공망

세종대왕함의 가장 큰 강점은 강력한 이지스 레이더 SPY-1D(V5)와 각종 미사일 및 기관포로 3중 방공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선체 4면에 고정돼 항상 360도를 커버하는 SPY-1D 레이더가 최대 1000㎞ 떨어져 있는 항공기 등 표적 약 1000개를 동시에 찾아내고 추적할 수 있다. 또 이중 20개의 목표물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

 

 

미국 이지스함에 탑재된 MK41 수직발사기. 세종대왕함에도 탑재되어 있다.


특히 SPY-1D 레이더는 우리 해군 레이더 가운데 처음으로 탄도미사일 추적 및 요격 능력도 갖추고 있다. 2009년 4월 북 대포동2호 발사 때 그 궤적으로 정확히 추적해 그 능력을 입증한 바 있다.


이 레이더가 찾아낸 목표물은 먼저 SM-2 블록Ⅲ 함대공 미사일로 최대 170㎞ 밖에서 요격한다. SM-2 미사일은 80기의 미국제 Mk 41 수직발사기에 탑재된다.

 

1단계 SM-2 방어망을 무사히 통과한 적 항공기나 순항 미사일은 2단계로 램(RAM) 미사일이 맡는다. 발사기 1문에 들어있는 21발의 미사일은 최대 9.6㎞ 떨어진 곳에서 적 항공기 등을 격추시킨다.  2단계 램 미사일 방어망을 통과한 목표물은 마지막으로 30㎜ 기관포인 ‘골키퍼’가 맡는다. 분당 4200발의 기관포탄을 퍼부어 목표물을 파괴한다.

 

 

앞으로 더 강력해질 세종대왕함

세종대왕함에는 다른 나라 이지스함에 없는 ‘비장의 무기’들도 앞으로(2010년 8월 현재 기준) 탑재될 예정이다. 국내에서 개발한 한국형 수직발사기(KVLS) 48기에 탑재되는 함대지 크루즈 미사일 ‘천룡’과 장거리 대잠수함 미사일 ‘홍상어’가 그것이다. 함대지 크루즈 미사일 ‘천룡’은 이미 실전배치돼 있는 사정거리 500km의 지대지 크루즈 미사일 ‘현무-3A’를 함대지로 개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상에서 땅 위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미사일에서, 함정에서 땅 위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미사일로 개조된 것이다.  2001년 개정된 한미 미사일 지침에 따라 탄도미사일의 사정거리는 300km 이내로 제한되지만 크루즈 미사일은 사실상 사정거리의 제한을 받지 않아 우리 군당국은 크루즈 미사일 개발에 주력해왔다.

 

지대지 크루즈 미사일은 사정거리 1000km 미사일이 이미 실전 배치돼 있고, 1500km 미사일은 최근 개발이 끝나 실전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룡’ 미사일은 함대지 외에 잠수함에 탑재되는 잠대지 형까지 개발, 통일 이후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전략무기로 활약하게 될 전망이다. 세종대왕함에는 ‘천룡’ 32발이 탑재된다.

 

잠수함을 잡는 ‘홍상어’는 19km 이상 떨어져 있는 적 잠수함을 공격할 수 있으며 16발이 탑재될 예정이다. 국산 함대함 미사일인 ‘해성’ 16발도 수직발사기와는 별개의 원통형 4연장 발사관 4기에 들어 있다. ‘해성’은 150km 이상 떨어져 있는 적 함정을 공격하는 크루즈 미사일이다. 세종대왕함에는 이밖에 KMk45 5인치 함포와 국산 경어뢰 ‘청상어’를 탑재한 KMk32 어뢰발사관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해군은 세종대왕함에 이어 이지스함 2번함인 율곡이이함을 2008년 11월 진수했으며, 2012년까지 총 3척의 이지스함을 보유할 계획이다. 해군은 예산부족 등으로 세종대왕급 이지스함보다 작은 5600t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2019년부터 2026년까지 건조하는 사업도 추진중이다.

 

 

각국의 이지스함 보유 현황

한편 ‘원조’ 이지스함 국가인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지스함을 보유하고 있다.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22척)과 이보다 약간 작은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50척 이상) 두 종류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도 미국 ‘알레이 버크’급, 우리나라 세종대왕급과 비슷한 크기의 ‘콩고’급 4척, 신형 ‘아타고’급 2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2척을 추가 건조할 계획이다.

 

 

이지스함의 원조격인 미국의 ‘타이콘데로가’급 이지스 순양함.

 

일본이 자랑하는 최신예 이지스함 ‘아타고’는 지난 2008년 2월 어선과 충돌해 총리가 사과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아무리 최첨단 이지스함이라도 결국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며 헛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스페인은 이보다 작은 ‘바잔’급(5800t급) 4척을 보유중이고 2척을 추가 건조할 예정이며,  노르웨이는 스페인 것보다 약간 더 작은 ‘난센’급( 5100t급) 4척을 보유중이고 1척을 추가건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도 미국과 같은 이지스 시스템은 아니지만 위상배열 레이더를 장착, ‘중국판 이지스함’으로 불리는 ‘란저우’급(7000t급) 구축함을 실전 배치하고 있다.

 

아파치

“마법의 카펫이나 천마를 타고 하늘을 나는 예로부터의 꿈을 가장 가깝게 실현시킨 수단이 바로 헬리콥터이다.”


시코르스키 항공의 창립자이자 헬리콥터의 아버지인 이고리 시코르스키(lgor lvan Sikorsky, 1889 ~ 1972)의 말이다. 사실 이 헬리콥터라는 말은 프랑스어인 “hélicoptère”에서 유래하는데, 이 말은 그리스어인 helix(회전하는)와 pteron(날개)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인류는 고정익 비행기를 이용해서 수십 세기를 머릿속에 상상만 해오던 비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날개가 돌아가는 회전익 비행기인 헬리콥터를 개발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나 1942년 시코르스키가 최초로 R-4라는 헬리콥터를 대량생산(그래 봐야 131대에 불과했다)하면서부터 인류는 회전익 비행기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시고르스키 R-4, 대량 생산된 최초의 헬리콥터 <출처: USAF>

 

 

전쟁터에서 진가를 인정받다


하지만 얄궂게도 헬기가 그 진가를 발휘한 것은 전쟁터였다. 고정익 비행기처럼 넓은 활주로를 필요로 하지도 않으면서 산맥이든 사막이든 정글이든 종횡무진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은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기에 헬리콥터는 곧바로 전쟁의 기계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2차 대전부터 제한적으로 쓰이던 헬리콥터는 한국전쟁에서는 관측 및 연락, 환자후송, 그리고 탐색구난 등의 임무에서 본격적인 활약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이 되자 드디어 헬기에 병력을 실어 전선으로 수송하기 시작했다. 바로 공중강습이란 작전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헬기의 더욱 중요한 용도가 새롭게 부각되었다. 바로 헬기에 무장을 시켜 적을 공격한다는 생각이었다.


이에 따라 그저 병력이나 물자를 실어 나르던 수송수단인 헬리콥터는 기관총과 로켓포드를 장착한 무기체계인 무장헬기로 재탄생했다. 무장헬기는 예상 이상으로 뛰어난 존재였다. 빠른 속도를 지상을 스쳐 지나가는 전투기나 공격기와는 달리, 헬리콥터는 적절한 속도로 보병과 연계하면서 지상의 적군을 정확히 공격했다. 그래서 마음이 급해진 미 육군은 UH-1 ‘휴이’나 OH-6A ‘카유즈’ 헬리콥터에 7.62mm 기관총이나 2.75인치 로켓탄을 대충 장착해서 실전에 투입했다. 무장 헬기가 얼마나 뛰어난 근접항공지원 수단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등장한 것이 바로 공격용 헬리콥터(Attack Helicopter; 이하 공격헬기)이다.

 

 

공격헬기등장

 

 

그래서 1967년 최초의 공격헬기인 AH-1G 코브라 헬리콥터가 등장했다. 코브라는 당시로선 헬기기술의 결정체였다. 하지만 코브라에도 단점은 있었다. 우선은 엔진의 출력이 부족해서 무장이나 탄약을 마음껏 싣고 다닐 수 없었다. 게다가 대공화기에 무척 취약했다. 특히나 당시 소련이 현대적인 대공무기들을 유럽전선에 배치하자, 취약한 방어력은 그야말로 코브라 공격헬기에게는 아킬레스의 건이 되었다.

 

미군은 당장 1960년대 중반부터 코브라를 대체할 본격적인 공격헬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개발된 모델은 록히드사의 AH-56A ‘샤이엔’이라는 모델이었다. 샤이엔은 시속 407km의 빠른 속도로 지상의 목표물을 스쳐 지나면서 공격하는 기존의 코브라 전술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다. 하지만 SA-7 등 휴대용 견착식 대공미사일이 실전 배치되자 미국은 이런 전술을 버리기로 했다. 샤이엔처럼 덩치 좋은 헬기로는 SA-7 미사일 공격을 피하여 지상으로 숨어다닐 수 없었다. 결국 샤이엔 개발계획도 같이 버려졌다.


최초의 공격헬기 AH-1G 코브라.

 

코브라를 대신할 공격헬기는 어떻게 만들어서 어떻게 운용할까? 미군은 상당기간 고심을 거듭했다. 그 답은 역시 ‘원거리 타격의 탱크킬러’였다. 이런 무기체계를 사용하면 지상의 대공무기로부터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바르샤바 조약군의 막강한 기갑전력을 격파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래서 전술도 바뀌었다. 헬기는 최대한 포복비행으로 낮게 대기하고 있다가 살짝 고개를 들고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하면 그만이었다.


이런 새로운 교리를 바탕으로 미군은 신형공격헬기사업(Advanced Attack Helicopter program)을 1972년부터 시작했다. 특히 신형공격헬기(AAH)는 고기동성에 강력한 방탄성능에다가 특수센서들과 뛰어난 항법장치가 핵심이었다. 결국 2개 기종이 선정되어 휴즈 항공(이후 맥도널 더글라스, 지금의 보잉)의 YAH-64와 벨의 YAH-63이 AAH의 자리를 놓고 대격돌을 벌였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 끝에 살아남은 기종은 바로 휴즈의 YAH-64였다.

 

AH-64 아파치의 등장

 

 

현존 최고의 공격헬기 AH-64 아파치.


바르샤바 조약군의 기갑군단을 막을 수문장인 AH-64A 아파치는 그 품격부터가 달랐다. 레이저 조준으로 최대 8km의 거리에서 적의 전차나 벙커를 격파할 수 있는 헬파이어 미사일을 무려 16발이나 장착했다. 더욱 무서운 것은 두꺼운 장갑도 격파할 수 있는 30mm 체인건이다. 이 체인건은 전방좌석에 탑승하는 화기관제사의 헬멧과 연동되어, 고개를 돌려 목표물을 지정하고 발사하면 되므로 편리하고 정확하게 목표를 타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전차 미사일 대신에 70mm 히드라 로켓포나 스팅어, 사이드와인더 공대공미사일을 장착할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하여 TADS/PNVS(Target Acquisition and Designation System, Pilot Night Vision System)이라는 정교한 센서가 장착되어 밤에도 낮처럼 적군을 환하게 볼 수 있다.

 

이렇게 등장부터가 화려했던 아파치였지만 처음에는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가장 큰 이슈가 바로 가격이었다. 워낙 최첨단장비와 무장을 끼워 넣다보니 보통 헬기에 비하여 3배나 비싼 가격에 팔렸던 것이다. 그래서 원래 536대를 사려던 것이 436대까지 줄어들었다.

 

하지만 실전에 데뷔한 아파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아파치로 구성된 특수부대는 적진을 뚫고 들어가 이라크군의 방공센터를 파괴하면서 본격적인 항공전을 개막하였다. 특히 이라크군의 기갑차량과 전차들은 아파치의 먹이가 되어 어떤 교전에서는 불과 1시간 만에 32대의 전차와 100여대의 차량을 파괴했다. 이렇게 뛰어난 활약을 벌이자 영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네덜란드 등의 국가에서 이 무시무시한 공격헬기를 구매하겠다고 덤벼들었다. 미군도 결국 아파치 전력을 증강시키기로 결정하여 1996년까지 모두 821대의 AH-64A를 사들였다.

 

 

21세기의 최강자 롱보우 아파치


최강이라고 불리는 아파치는 더욱 더 발전했다. 바로 롱보우 레이더가 장착된 AH-64D 롱보우 아파치가 등장한 것이다. 롱보우 레이더는 아파치의 로터 위에 버섯처럼 달려있는 전자장비로 사격을 통제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안개나 연무 또는 비를 통과할 수 있는 밀리미터 대역의 전파를 사용하는 롱보우 레이더는 ① 1천 개 이상의 지상목표물을 적인지 아군인지 나누어 탐지할 수 있고, ② 그 중에서 128개의 목표의 움직임을 추적가능하며, ③ 다시 그 중에서 16개의 우선목표를 지정할 수 있는데,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겨우 30초이다. 이런 뛰어난 탐색능력은 마치 축소판 AWACS에 해당한다.


여기에 더하여 헬파이어II 미사일이 장착되면서 아파치는 더욱 더 무서운 무기체계로 바뀌었다. 기존의 헬파이어 미사일은 레이저 유도방식으로 OH-58D 카이오와 정찰헬기나 무인기가 조준을 해주어야 정확한 사격이 가능했다. 그러나 헬파이어 II 미사일은 롱보우 레이더가 지정한 목표로 알아서 날아가므로 아파치는 적군의 대공화기에 노출됨이 없이 조용히 적군을 제거할 수 있어 진정한 스텔스 전술을 구사하게 된다.

 

AH-64D 롱보우 아파치, 로터 위의 롱보우 레이더가 보인다.

 

 

AH-64D형부터는 눈도 밝아졌다. 2세대 FLIR(forward looking infrared, 전방적외선감지장치)에 해당하는 M-TADS가 장착되면서 야간전투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이다. M-TADS에서는 해상도가 뚜렷해지면서 탐지거리는 150%가 증가하였고, 또한 이전과는 달리 여러 개의 표적을 추적하는 능력이 부여되었다.


한편 무인기와의 연계능력은 21세기를 맞이하는 공격헬기에게는 필수조건이다. 특히 미육군이 기대를 걸었던 RAH-66 코만치 헬기사업이 취소됨에 따라 아파치는 명실공히 차기전투체계의 주력 공격헬기로 자리잡았다. 그리하여 아파치는 무인기로부터 데이터를 공유받아 전투에 활용하는 능력까지 부여받았다.

 

 

아파치를 잡아라

 

 

이렇게 뛰어난 능력의 아파치라고 하지만 하늘 아래 완벽한 무기체계는 없다. 무적무패의 신화를 자랑하던 아파치였지만 제2차 걸프전쟁의 초기에는 엄청난 실패를 기록했다. 2003년 3월 24일 이라크군의 공화국수비대소속 기갑사단에 대한 대전차작전에서 무려 31대의 아파치가 손상을 입었고 1대는 추락했다. 그리하여 2009년까지 이라크 전선에서 무려 12대의 아파치가 적군의 공격을 받고 격추되었다.


그러나 현존하는 공격헬기 가운데 아파치처럼 다재다능한 능력을 보여주는 기종도 드물다. 그래서 주요한 군사강국들이 아파치를 선택해왔다. 영국은 WAH-64D라는 이름으로 웨스트랜드사에서 보잉의 라이센스 하에 67대의 아파치 헬기를 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중이다. 특히 영국제 아파치는 더욱 강력한 롤스로이스 엔진을 채용하고, 해군 상륙함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하여 접이식 로터를 채용한 것이 큰 특징이다.

 

이외에도 네덜란드 공군 AH-64D 30대, 사우디아라비아 공군 12대, UAE 30대, 쿠웨이트 16대, 그리스 32대, 싱가포르 20대 등 다양한 국가가 아파치를 보유하고 있다.


이라크 전에서 격추된 아파치 공격헬기.

 

특히 기존의 A형을 구매했던 국가들도 D형 사양으로 재생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일본도 AH-64D를 50대 발주하였는데, 후지중공업에서 라이센스 생산을 하고 있으며 2006년 초에 초도기가 일본 육상자위대에 납품된 바 있다. 일본제 아파치 D형은 AH-64DJP로 불린다.

 

우리는 여러 차례 아파치 도입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매번 취소되고 있다. 심지어는 2008년, 미 육군이 중고 아파치의 판매까지 제안한 바 있었지만 독자모델의 개발로 방향을 전환했다. 단순히 성공적인 해외무기체계를 도입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미국의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진지한 고민 속에서 우수한 한국형 공격헬기가 탄생할 것을 기대해 본다.

 

니미츠급 항공모함

1910년 11월 14일 목재로 만든 임시 활주대가 설치된 순양함 버밍햄함에서 유진 엘리는 항공기를 힘차게 발진시켰고 4㎞ 떨어진 지상으로 안착했다. 세계 최초의 항공기 발함이 성공한 순간이었다. 2개월 뒤인 1911년 1월엔 활주대와 착함 장치가 설치된 순양함 펜실베니아로부터 항공기 이착륙에 성공했다. 사상 처음으로 항공기가 활주로가 있는 함정에서 뜨고 내리는 항공모함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배에서 항공기가 뜨다

그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항공모함은 해상전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미드웨이 해전 등을 통해 거포를 장착한 전함의 시대에서 항공모함의 시대로 바뀌었음을 과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간에 냉전 군비경쟁이 시작돼 두 초강대국이 팽팽히 맞섰지만 항공모함 분야에선 미국의 압도적 우위가 계속됐다. 구 소련은 미 항공모함과 이를 호위하는 순양함, 구축함 등 미 항모 전단을 무력화하기 위해 원자력 추진 잠수함·대형 수상함·초음속 폭격기 등으로부터 발사되는 대함 크루즈(순항) 미사일을 발전시키는 데 주력했다. 

 

세계최초의 항공기 발함의 순간(1910년). <출처: US Navy>

작전 중인 항공모함 전투단.

 

 

 

미 원자력 항모의 주력 니미츠급

냉전 종식 이후에도 미국은 11~12척의 대형 항공모함 체제를 유지하며 경쟁상대가 없는 세계 최강의 항모 강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미국이 운용 중인 항공모함은 모두 원자력 엔진으로 움직이는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이다. 흔히 핵항모 또는 핵추진 항모로 불린다. 미 원자력 항모의 주력은 니미츠급으로 불린다. 1번함 니미츠는 태평양 전쟁 때 유명한 해군제독인 니미츠 제독의 이름을 딴 것으로 만재 배수량이 9만t이 넘는다. 2010년 7월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동해상에서 벌인 대규모 한미 연합 훈련에 참가한 미 7함대 소속 항모 조지 워싱턴호도 니미츠급으로 6번함이다.

 

같은 니미츠급이라도 뒤에 건조된 신형함으로 갈수록 크기가 조금씩 커졌다. 만재 배수량이 1번함 니미츠는 9만1400t이었지만 4번함 루즈벨트는 9만6400t으로 커졌고, 5번함 에이브러햄 링컨에 이르러선 10만t에 육박하게 됐다. 니미츠급 항모를 자세히 뜯어보면 왜 항모를 ‘움직이는 바다 위의 도시’, ‘바다 위의 비행기지’라 부르는지 알 수 있다. 보통 길이 332m, 폭 76m, 높이 62~72m로 20~24층 건물 높이와 맞먹는다. 비행갑판의 넓이는 축구장 3배 크기다. 닻 하나의 무게가 27t, 닻을 매단 쇠사슬 한 마디의 무게는 160kg에 이른다. 건조에 들어간 강철재의 무게만 5만4000t에 달한다고 한다.

 

 

니미츠급 1번함 니미츠.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바다 위의 도시’이다.

 

 

 

건조 비용도 엄청나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보통 45억 달러가 들었지만 가장 최신형인 조지 부시(CVN-77)의 경우 62억 달러(7조4000억원)에 달한다. 연간 운영유지비는 어느 범주까지 포함시키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3000억원 이상 들어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항모 1척에 타고 있는 장병들의 숫자도 여느 군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함정 승무원과 조종사 등을 합쳐 5600~6300여 명에 달한다. 많은 병력이 장기간 생활하다 보니 일상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시설을 갖추고 있다. 여러 개의 식당은 물론 함내 방송국, 우체국, 병원, 교회 등도 갖고 있다.

 

함내 군의관은 11명으로 치과의사 5명, 기타 6명으로 구성돼 있다. 병상은 53개 정도다. 우체국에선 매년 45만kg의 우편물을 처리한다. 이발소도 마련돼 있는데 매주 1500명이 이발을 한다. 승무원들이 먹고 마실 식량은 6000명이 70일간 식사를 할 수 있는 정도를 탑재한다. 항모에 타고 있는 장병들이 하루 동안 소비하는 양은 계란이 2160개, 물이 1500t, 세탁량은 2500kg, 야채는 360kg에 이른다. 함내에 TV는 3000대 이상이, 전화기는 2500대 이상이 설치돼 있다.

 

 

1척에 웬만한 소국에 필적하는 공군력 탑재


니미츠급 항모 1척에 탑재되는 항공기 전력도 웬만한 소국의 공군력과 맞먹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통 80여 대의 각종 항공기가 탑재되는데 여기엔 FA-18 C/D ‘호넷’, FA-18 E/F ‘슈퍼 호넷’, EA-6B 전자전기, E-2C ‘호크 아이’ 조기경보통제기, C-2 수송기, SH-60 헬기 등이 포함돼 있다. 미국은 니미츠급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개량한 CVN-78 제럴드 포드를 건조중이다. 제럴드 포드는 신형 위상배열 레이더 SPY-3 레이더와 전자기식 캐터펄트(사출기) 등을 갖출 예정이다.

 

 

 

니미츠급 항모 1척의 공군력은 웬만한 작은 나라 수준이다.

 

 

 

미국 외에도 러시아가 애드미럴 쿠즈네초프급을, 영국이 인빈서블급을, 프랑스가 샤를 드골(원자력 추진)을, 이탈리아가 주세페 가리발디·카보르 등을, 인도가 비라트·비크라마디차·비크란트(건조중) 등을, 브라질이 상 파울로를, 스페인이 프린시페 드 아스투리아스를, 태국이 차크리 나루에벳 등의 항모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도 과거 우크라이나로부터 도입한 바르야그를 개조한 것 등의 항모를 머지 않은 장래에 진수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K-9 자주포

“대포는 저속한 싸움에 존엄을 가져다 준다” - 프레드릭 대제 (프러시아 황제, 1740년 ~ 1786년 통치)

 

2차 대전에서 포병의 적 사살률은 60%이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노련한 병사에게 전장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십중팔구 포격이라고 답한다. 이런 간단한 수치나 질의만 보아도 21세기의 스마트 전쟁에서도 왜 대포가 중요한지 드러난다. 미군도 아프간과 이라크 전에서 포병의 미비한 배치를 아파치 공격헬기와 같은 항공지원으로 보충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결과는 암울했다.

 

 

자주포란 스스로 움직이는 대포

 

자주포란 차량에 탑재되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대포를 말한다. 최초의 자주포는 제1차 세계대전에 등장했던 Mk I 야포차량이다. 세계 최초의 전차인 Mk I의 차대를 활용한 Mk I 야포차량은 포를 이동시키는데 말을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이동가능하다는 점에서 커다란 혁신이었다.

 

과거에는 구축전차나 돌격포 같은 직사화기도 자주포로 분류되었다. 특히 구축전차 등은 전차와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부족한 기갑전력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현대에 들어 자주포는 포병전력의 주축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특히 대포병 능력이 강조되면서 자주포의 중요성은 증가하였다.


견인포의 경우 포병이 한번 이동하고 진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병력이 포를 차량과 결합하고 다시 진지를 구축하고 포를 배치하는 데만 해도 몇 십 분이 걸린다. 그 사이 적은 아군의 포병에 대한 대포병 작전을 실시하여 포대를 초토화시킬 수도 있다.


최초의 자주포인 영국의 Mk I

 

 

하지만 자주포가 등장하고 나서 실전에서 운용은 매우 간단해졌다. 자주포 자체가 이동하는 포대진지이기에 부대 전개와 이동에 필요한 부수적인 시간이 절감되었다. 그리하여 포격 이후에 약 1~2분 만에 장소를 이동하여 공격하는 '사격 후 신속한 진지변환 (SHOOT AND SCOOT)'이 가능해졌다.

 

 

세계의 자주포

하이테크 기술을 자랑하는 21세기 스마트 전장에서도 현대적 육군은 포병전력을 중시한다. 디지털 컴퓨터 사격장치, GPS 및 관성항법장치 등이 도입되면서, 자주포는 더 이상 계산하고 좌표를 찾느라 시간을 소모할 필요 없이 즉각 포격이 가능해졌다. 견인포에 비해 고가의 무기체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들이 자주포의 개발 및 배치에 인색하지 않다. 이는 자주포가 뛰어난 기동성 및 생존성을 보유하여 지상군의 전력상 우위를 보장하는 유효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자주포 M106A6 팔라딘 <출처: US Army>

 

 

 

야포는 서구권과 동구권에서 각각 105mm, 122mm가 주력이던 것이 현재는 155mm, 152mm가 표준이 되고 있다. 현재 주력이 되고 있는 자주포들로는 M106A6 팔라딘(미국), AS90(영국), G6(남아공), PzH2000(독일), CAESAR(프랑스), 2S19 MSTA-S(러시아), 83식(중국), 99식(일본) 등이 있다.

 

포병의 공격거리도 점차 증대되어 2차 대전 당시 10km 권이던 사정거리가 70년대 말부터는 30km로 증가했으며, 요즘에 이르러서는 40km 대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에 더하여 로켓추진식의 스마트포탄 등이 개발되면서 사거리는 더더욱 증가되고 있다. 특히 현대의 자주포들은 포탄장전 및 포신구동이 자동화되어 빨리 쏘고 빨리 장전할 수 있다. 또한 무인정찰기, 영상탄환, 인공위성 등의 도움으로 적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정확한 공격을 할 수 있다.

 

 

국산 명품 무기체계 1호, K-9 자주포

 

 

대한민국 명품 무기체계 1호로 데뷔한 K-9 자주포 <사진: 양욱>


우리나라는 이미 고려 말에 최무선이 흑색화약을 개발하는 등 화포 개발의 선진국이었다. 우리 육군도 포병전력의 국산화에 노력을 기울여 70년대 초부터 105mm와 155mm 견인포를 국내 생산하였다. 미군으로부터 M107 자주포를 도입하여 자주포를 운용해오던 우리나라는 1985년부터는 K-55 자주포를 생산하여 약 1천여 대를 배치하고 있다.

 

이런 국산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80년대 당시 우리의 화포 전력은 북한에 비하여 열위에 있었다. 북한군의 포병전력은 수적으로 우위에 있었을 뿐 아니라 보유한 화포의 절반가량이 자주화 및 차량탑재용이어서 기동성이 뛰어난 포병전력을 보유했다.


우리 육군은 이런 양적 열세를 질적 우위로 극복하고자 했다. 특히 사정거리가 증가된 야포를 배치하여 군단 종심작전에 대한 화력지원이나 화력전 수행능력을 향상시켜야만 했다. 이에 따라 KH179와 K-55의 개발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육군은 K-55를 이어갈 차세대 자주포의 개발에 착수했다.

 

차세대 자주포 K-9은 1989년부터 체계개념연구가 시작되어 약 10년간의 집중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1999년부터 전력화되었다. 국방과학연구소의 주도로 개발된 차세대 자주포는 삼성테크윈, WIA, 풍산, 한화, LG정밀 등 백여 개의 업체가 개발에 참가했다. 그래서 K-9은 1990년대 국방과학기술의 총화와도 같은 존재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신 있게 내놓은 제1호 국산 명품 무기체계가 되었다.

 

 

K-9 자주포의 세계 정상급 성능

K-9은 52구경장(약 8m)의 155mm 포신을 채용하여 사정거리가 40km 이상으로 늘어났다. K-9은 최대 3분간은 분당 6발의 사격이 가능하므로 기존의 K-55보다 3배 이상의 화력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K-9은 자동장전시스템과 자동포신이동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즉 K-9의 사격통제용 컴퓨터에 표적위치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사격제원을 산출하여 포구를 목표방향으로 지향시키고 탄약을 자동으로 이송, 장전한다. 결과적으로 K-9 자주포는 서 있는 상태에서라면 30초 이내에 초탄을 발사할 수 있다.

 

 

게다가 K-9은 혼자서 사격제원을 바꾸면서 사격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단독 TOT(Time on Target, 다른 위치에서 다른 시간에 쏜 포탄이 같은 위치에 동시에 떨어지도록 하는 사격)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단독 TOT 능력을 갖추게 되면 한 대의 자주포가 여러 대가 동시에 쏜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예컨대 K-9 한 대가 3발을 쏘면, K-55 3대가 한 발씩 쏜 것과 똑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K-9 한대가 K-55 3대에 맞먹는 능력을 갖는다는 말이다.


K-9은 1,000 마력의 디젤엔진을 탑재하여 최대 67km까지 달릴 수 있어 K1 시리즈 전차와 동등한 기동능력을 자랑한다. 위치확인장치, 자동 사격통제장치, 포/포탑 구동장치 및 통신장치 탑재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계산한 사격제원 또는 사격지휘소로부터 접수된 사격제원에 따라 포를 자동으로 발사할 수 있다.


세계 정상급의 성능을 보유한 K-9의 기동 모습 <사진: 양욱>

 

방호력의 측면에서는 전차만큼은 단단하지 않지만 고강도 장갑판을 채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적 포병화력의 파편이나 중기관총, 대인지뢰 등에 대한 방호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화생방전 대응능력을 갖추고 있어 생존성이 향상되었다.

 

K-9은 미국이 보유한 M109A6 팔라딘이나 영국의 AS90에 비해 현저히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며, 세계 최강이라고 불리는 독일의 PzH2000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성능이다. 어떤 제원을 살펴보아도 세계 정상급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다. 바로 이런 K-9의 성능에 주목한 터키는 K-9의 기술을 도입하여 자국에서 생산한 T155 FIRTINA 자주포를 운용하고 있다.

 

K-9은 대당 가격이 40억 원에 이르는 고가의 무기체계이다. 약 10억 원이었던 K-55 자주포에 비하면 매우 높은 가격이다. 하지만 K-55보다 한 차원 높은 성능인 데다가 동급의 최첨단 자주포인 PzH2000의 가격이 약 100억 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가격대 성능 면에 있어서도 K-9은 우수한 첨단무기체계라고 하겠다. 최근에 K-9의 결함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잘 보완하여 더욱 완벽한 무기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해군 장보고급 잠수함

미국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776년 9월 6일 뉴욕항 앞바다에 머물고 있던 영국 해군 전투함을 향해 계란처럼 생긴 독특한 철제 함정이 물속으로 소리 없이 접근해 갔다. 데이빗 부시넬이라는 의사가 만든 잠수정 ‘터틀’이었다. 터틀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잠수정으로 부르기 힘들 만큼 볼품없는 배였지만 잠수 및 부상을 위한 밸러스트 탱크, 수평 및 수직 추진기, 잠망경까지 갖추고 있었다. 터틀은 영국 전투함 옆쪽에 폭약상자가 연결된 드릴 송곳을 받아 폭파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영국 함정의 하부 선체가 동판으로 보강돼 있어 드릴이 동판을 뚫을 수 없었고 결국 작전은 실패했다.

 

 

미국 독립전쟁에서부터 시작된 전투 잠수함의 역사

그로부터 약 90년이 지난 1864년 드디어 실전에서 전과를 올린 사상 최초의 잠수함이 탄생했다. 남북전쟁 당시 남군에 소속돼 북군의 대형 함정을 격침시킨 헌리호가 그것이다. 1864년 2월 17일 남군의 헌리호는 찰스턴항을 봉쇄 중이던 북군의 1200t급 호사토닉함을 함수 앞쪽에 장착된 40kg의 폭약으로 침몰시키는 데 성공했다.

 

 

독일 잠수함 U보트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해온 잠수함은 어릴 때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봤을 줄 베르느의 소설 [해저 2만리]를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든 무기다. 각종 첨단무기가 발달한 현대에 있어서도 잠수함은 가장 발견하기 힘든 무기로 꼽힐 정도로 은밀성이 가장 큰 강점이다. 초기의 잠수함이 가졌던 단점들은 과학기술의 발달, 제1·2차 세계대전 등을 거치면서 개선돼 잠수함은 전세에 큰 영향을 끼친 가공할 무기로 변신했다. 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무기가 독일 잠수함 U보트다. U보트는 그동안 많은 영화와 책의 소재가 돼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무기 중 하나다.

 

터틀의 실물크기 모형.
<출처: (cc) Geni at Wikipedia>

제1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독일군 U-9.

 

 

1914년 9월 5일 독일 해군의 U-21 잠수함은 영국 해군의 패스파인더 순양함을 격침시켜 영국군 승무원 296명 중 259명이 사망했다. 이어 9월 22일엔 독일 잠수함 U-9이 1시간여 만에 영국 순양함 3척을 격침시켜 승무원 2200여 명 중 1459명이나 전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 해군이 스페인 무적함대에 대패한 이후 300여 년 만에 최대의 참패로 기록된 사건이었다. 독일군의 U보트는 1915년부터 1918년 사이에 2500여 차례에 걸쳐 총 1218만t의 선박을 격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격침된 영국 선박의 90%가 잠수함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독일군 U보트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독일군 스스로 침몰시키거나 승전국에 의해 압류됐기 때문이다. 독일 잠수함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연합국은 종전 후 독일 해군의 잠수함 보유를 금지시켰지만 독일은 유령회사를 만드는 방법 등을 써서 잠수함 건조기술을 유지했으며 비밀리에 잠수함을 실제로 건조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독일 U보트는 다시 한번 전쟁의 주역으로 떠오른다. 그 서막은 1939년 10월 독일 잠수함 U-47이 각종 장애물과 난관을 뚫고 영국 스카파플로 해군기지에 침투, 영국 전함 로얄 오크를 어뢰로 격침시키는 것으로 열렸다. U보트들은 칼 되니츠 제독의 ‘이리떼(Wolf Pack)’ 작전에 따라 영국으로 각종 장비와 물자, 병력을 수송하던 연합국 수송선들을 무차별 격침해 영국의 숨통을 바짝 조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잠수함대를 이끈 칼 되니츠(Karl Dönitz, 1891~1980) 제독과 U보트.

 

 

 

이리떼 작전은 독일군 잠수함들을 대서양 주요지역에 분산시켜 초계를 하다 잠수함 한 척이 연합국 수송선단을 발견하면 독일 잠수함사령부에 보고, 주변의 잠수함들을 불러모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독일군은 이 작전에 따라 한번에 수십 척의 수송선을 격침시키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U보트들은 연합국 함정 148척을 비롯, 상선 2759척을 격침해 무려 1400여만t의 물자와 장비를 수장시켰고, 약 20만 명의 사상자를 초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을 승전으로 이끈 명수상 윈스턴 처칠이 회고록에서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나를 가장 두렵게 한 것은 U보트였다”고 쓸 정도로 U보트는 위협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U보트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타입-7(Type-Ⅶ)’형이다. 총 700여 척이나 건조된 이 함정은 당시로선 최고의 잠수함이었다. 길이 64~67m, 배수량 620~860t으로 직경 533mm 어뢰발사관 5문과 어뢰 11~14발, 88mm 함포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패전함에 따라 U보트는 다시 한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독일은 이내 209급 잠수함 등을 통해 재래식 잠수함 강국의 위상을 되찾는다. 현재 세계 각국이 보유한 재래식 잠수함의 상당수는 독일제다.

 

 

한국 해군의 잠수함

한국 해군의 주력 잠수함도 모두 독일에서 설계한 잠수함을 도입한 것이다. 현재 우리 해군은 구형인 209급(1200t, 장보고급) 잠수함 9척과 최신형 214급 잠수함(1800t, 손원일급) 3척을 보유하고 있다. 이중 대부분은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한 것이지만 우리 업체들이 독자적으로 건조한 것이 아니라 독일의 기술지원으로 만든 것이다.

 

 

해군 214급 잠수함 손원일함.

해군 209급(장보고급) 잠수함.

 

 

 

해군의 209급 잠수함은 환태평양 각국 해군이 참가한 가운데 실시된 ‘림팩 훈련’에서 여러차례 미 항공모함과 이지스함 등 가상 적군의 함정들을 ‘가상 격침’하는 데 성공해 훈련 참가국들을 놀라게 했다. 디젤-전지로 추진되는 재래식 잠수함은 충전 등을 위해 하루에 한번 정도는 수면 가까이 부상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다. 하지만 214급 잠수함은 ‘AIP(공기불요) 시스템 ’을 장착, 최대 2주 가량 물 위로 떠오르지 않고도 바닷속에 작전할 수 있는 강점을 갖고 있다.
 
해군은 당초 3척의 214급 잠수함을 도입할 계획이었으나 6척을 추가 도입키로 해 총 9척을 보유할 계획이다. 또 3000t급 ‘장보고-3’급 중잠수함도 우리 기술로 건조, 총 18척의 잠수함으로 구성되는 잠수함 부대를 갖추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북아 잠수함 전력

지난 2009년 4월 23일 중국 해군은 창설 60주년을 맞아 산둥성 칭다오에서 대규모 국제관함식을 개최했다. 이 관함식엔 중국 해군의 최신예 함정들이 대거 참가해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았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이 원자력 추진 잠수함(핵잠수함)이었다.

 


수적 우위에 원자력 잠수함도 보유한 중국

당시 퍼레이드에 등장했던 것은 전략 탄도미사일 탑재 원자력 추진 잠수함인 창정 6호와 공격용 원자력 추진 잠수함인 창정 3호 등 2척이었다. 창정 6호는 일명 ‘시아급’(092형)으로 불리는 잠수함으로 1988년 취역해 20여 년간 작전에 투입돼왔다. 원래 사정거리 2000~3000km에 불과한 JL-1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12발을 탑재하고 있었지만 1998년 사정거리가 8000km로 늘어난 신형 JL-2를 탑재하는 개량이 이뤄져 전략 타격능력이 강화됐다.

 

중국 시아급 탄도미사일 핵잠수함.

중국 신형(093형 추정) 공격용 핵잠수함.

 

 

물 속에서의 배수량은 6500t급으로 길이 120m, 폭 10m, 최고속력 22노트이며 승무원은 140명 가량이다. 중국은 시아급 잠수함 1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개량한 신형 탄도미사일 탑재 원자력추진 잠수함 ‘진급’(094형)도 건조해 실전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급은 수중 배수량 1만2000t급으로 시아급보다 크고 미사일보다 JL-2 16발을 탑재, 타격능력도 강화됐다고 한다.

 

국제관함식 때 함께 등장한 공격용 원자력추진 잠수함은 ‘한급’(091형)으로 불리는 함정으로, 총 5척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974~1990년 취역해 구형 함정으로 분류된다. 길이 98~106m, 수중 배수량 5500t급으로 직경 533mm 어뢰발사관 6문으로 무장하고 있다. 중국은 이를 개량한 신형 ‘상급’(093형) 공격용 원자력추진 잠수함을 2005년 이후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중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총 10여 척인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디젤전지로 추진되는 재래식 잠수함 전력도 크게 강화하고 있다. ‘원급’으로 불리는 잠수함이 가장 최신형이다. 수중 배수량 2600t급으로 어뢰, 대함 크루즈(순항)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다. 기존 잠수함에 비해 조용하고 다양한 무장을 싣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은 러시아의 대표적 재래식 잠수함인 ‘킬로급’(도 총 12척이나 도입할 계획이다. 중국의 재래식 잠수함은 총 60여 척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규모를 자랑한다.

 

 

핵잠수함은 없으나 성능이 우수한 일본의 잠수함

중국의 군비증강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온 일본도 비록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없고 재래식 잠수함의 숫자도 적지만 세계 정상급의 우수한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 재래식 잠수함 가운데 가장 큰 4200t급 SS-16 ‘소류급’ 디젤 잠수함 2척을 보유하고 있다. 소류급은 길이 84m, 폭 9m로 신형 어뢰와 대함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다.

 

보통 재래식 잠수함이 전지 충전을 위해 하루에 한차례 정도 수면 가까이 부상해야 하지만 소류급은 ‘스털링엔진' 방식의 AIP(공기불요시스템)를 장착해 수중에서 지속적으로 2주 이상 작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소류급이 소형 원자로를 탑재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으로 비교적 쉽게 개조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일본 소류급 잠수함.

일본 오야시오급 잠수.

 

 

일본은 이밖에 ‘오야시오급’(3000t급) 11척, ‘하루시오급’(2750t급) 5척 등을 보유, 총 18척의 잠수함을 갖고 있다. 이런 일본 잠수함의 강점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젊다’는 것이다. 일본 잠수함의 평균 운용기간은 16년이다. 여느 국가들의 경우 보통 25~30년 안팎이다. 그만큼 일본 잠수함들이 신형으로 첨단장비를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다른 나라 같으면 한창 최일선에서 쓰고 있을 잠수함을 퇴역시켜 재고로 보관하다가 유사시 즉각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 ‘타이푼’으로 대표되는 러시아 잠수함

중국, 일본과 함께 한반도를 감싸고 있는 러시아는 냉전 시절 미국과 맞설 때보다는 약해졌지만 아직도 강력한 잠수함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전략 탄도미사일 원자력추진 잠수함 15척, 각종 전술 잠수함 50여척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략 탄도미사일 원자력추진 잠수함 가운데엔 ‘보레이’급이 가장 최신형이다. 길이 170m, 수중 배수량 2만4000t의 대형 함정으로 SS-N-23/28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12발을 탑재한다. 하지만 러시아 원자력 추진 잠수함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타이푼급’이다. 수중 배수량이 2만6500t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괴물’ 잠수함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명한 소설가 톰 클랜시의 [붉은 10월호] 등 여러 소설,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널리 알려져 있다.

 

러시아 타이푼급 탄도미사일 핵잠수함.

러시아 보레이급 탄도미사일 핵잠수함.

 

 

북극의 두꺼운 얼음을 깨고 부상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도록 선체를 내압선체와 외부선체로 나눠 2중으로 튼튼하게 건조한 것이 특징이다. 길이 171.5m, 폭 24.6m로 SS-N-20 미사일 20발을 탑재하고 있다. 1981년부터 89년까지 6척이 건조됐으나 예산문제 등으로 상당수가 퇴역하거나 해체됐고 일부만 운용 중이다. 러시아는 이밖에 ‘델타-Ⅲ·Ⅳ급’ 탄도미사일 탑재 원자력추진 잠수함 등도 갖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의 막강한 항공모함 전단에 대응하기 위해 SSGN이라 불리는 순항(크루즈)미사일 탑재 원자력추진 잠수함도 운용하고 있다. 2000년8월 침몰해 100여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해 큰 파문을 일으켰던 쿠르스크호와 같은 ‘오스카-Ⅱ’급이 대표적이다. 공격용 원자력추진 잠수함으로는 ‘야센’급이 가장 최신형으로 어뢰, SS-N-27 순항미사일 24발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수중배수량 8600t, 전장 111m로 기존 러시아 잠수함에 비해 소음이 작아 탐지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살상무기

싸우지 않고 승리한다는 것은 모든 전사들의 희망이다. 전쟁이 없는 것이 가장 이상이겠지만 일단 전쟁을 시작한 이후에는 인명의 피해가 전혀 없이 승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인간 개개인의 가치와 존엄이 강조되는 오늘날, 단 한 명의 생명이 희생되는 것도 인류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도 커다란 문제가 된다.

 

 

비살상무기 - 생명을 앗지 않는 무기

그래서 무기 중에도 이런 목적에 맞는 것이 있다. 바로 비살상무기이다. 비살상무기란 재래식 무기에 비하여 사람을 살상할 가능성이 낮거나 없는 무기를 말한다. 비살상무기가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바로 경찰, 그 중에서도 시위진압의 영역이다. 특히 이 경우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제압하거나 해산시키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전기충격침을 발사하는 테이저

비살상무기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테이저 다. 테이저는 상대방을 감전시키는 전기충격기이다. 다만 테이저가 일반의 전기충격기와는 다른 것은 바늘이 달린 전극침을 발사하여 조금 떨어진 거리(통상 6m)의 상대방도 제압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 테이저는 발전을 거듭하여, 최근에는 탄환 형태로 산탄총에서 발사되는 제품도 사용된다. 그러나 테이저는 사람에게 극심한 전류를 흘려보냄으로써 마약중독자 등에게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사례가 종종 목격되고 있어 각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테이저는 전극침을 발사하여 전류로 상대를 제압하는 무기다. 근거리용(좌), 원거리용(우) <출처: 테이저 인터네셔널>

 

 

페퍼스프레이 및 가스총

또 다른 대표적인 비살상무기는 바로 페퍼스프레이이다. 페퍼스프레이는 사람의 호흡기에 접촉하면 강한 자극으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무기이다. 이런 페퍼스프레이에서 발전한 것이 가스분사기, 즉 가스총이다. 가스총은 보통 센 바람이 불면 방향이 틀어지거나 사정거리가 2-3m 내에 불과한 것이 단점인데, 최근에는 강력한 제트가스를 분사하는 제품도 등장했다.

 

 

고무탄, 바톤라운드, 페인트볼

한편 21세기의 무기 답지는 않지만 효율적인 비살상무기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고무탄이다. 고무탄은 산탄총 등에서 발사하는 형태도 있고 혹은 수류탄처럼 던져넣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고무탄은 다수의 시위자를 제압하기 위해 만들어졌기에 정확히 제어되지 않은 산탄들을 흩뿌리는 형식이어서, 사람의 눈 등에 맞을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적당한 에너지를 정확히 대상에 맞추는 에너지 무기가 등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바톤 라운드이다. 바톤 라운드는 말 그대로 경찰봉처럼 사람에게 충격을 가하는 탄환이라는 뜻이다. 바톤 라운드는 통상 산탄총이나 유탄발사기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편 페인트볼 총기도 비살상무기로 사용된다. 터지는 페인트탄환과 비슷한데, 페인트 대신에 최류액을 넣은 탄환(일명 ‘페퍼볼’)이나 또는 악취가 풍기는 탄환 등을 넣어 사용한다.

 

고무탄환. 좌측은 일반적 탄환 형태이고 우측은 산탄형태이다. <출처: 미국방부 / Fluzwup at wikipedia>

 

 

광역 제압용 비살상무기


21세기에 들면서 다른 양상의 비살상무기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 공군에서 개발한 ADS이다. ADS는 Active Denial System의 준말로, 능동방어시스템으로 보통 번역된다. ADS는 밀리미터파의 전파를 인체에 발사하여 뜨거움을 느낀 대상을 해당 장소로부터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 마치 전자레인지가 음식물을 데우듯이, ADS는 사람의 피부를 뜨겁게 자극한다. 그러나 수분을 빼앗으며 음식을 구워내는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 파장과는 달리, ADS의 밀리미터 파장은 세포 단위만을 자극하여 인체에 심각한 피해는 없다고 한다.


ADS 말고도 또 다른 광역제압장비가 있다. 바로 LRAD(Long Range Acoustic Device)이다. LRAD는 소리로 군중을 해산시키는 장비로,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음향대포'라고 부른다. 원래 이 장비는 해군 함선에 장착하여 이동 중인 선박에 대한 명령을 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약 100미터 이내의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들으면 고통으로 인해 벗어날 수밖에 없게 된다. 

 

넒은 지역을 제압하는 비살상무기인 ADS(좌)와 LRAD(우) <출처: 미국방부 / (cc) FlyingCoyote at Wikipedia>

 

 

 

비살상무기의 미래


비살상무기는 사람을 죽이지는 않지만 죽도록 아프게 만든다. 인간을 죽이지 않는 무기라는 점에서 놀랍게 인도적인 무기지만, 여전히 인간의 고통을 사용한다는 점이 역시 비살상무기의 한계이다. 그래서 비살상무기라는 말 대신 해외에서는 통증가해무기, 복종무기 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제는 21세기이다. 진정한 비살상무기라면 상대방이 전혀 아프지 않으면서도 무력화되는 ‘인권보장’ 형태의 비살상무기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런 과학의 발전을 기대해보자.

저격수

“신은 많은 병력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수의 편에 선다.” - 볼테르

우수한 사수를 보통 군대에서는 특등사수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런 특등사수들 가운데 더욱 고도로 훈련된 사격의 달인들이 있으니, 바로 저격수이다. 저격수를 영어권에서는 스나이퍼(Sniper)라고 부르는데, 이는 매우 동작이 빠른 도요새(snipe)를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총을 잘 쏘는 사람을 부르던 말이다. 그래서 우수한 저격수가 되기 위해서는 사격을 잘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표적을 잘 찾아내서는 적중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래서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저격수들은 상당수가 어린 시절부터 총을 잡고 사냥으로 끼니를 해결해온 ‘생계형 총잡이’들이었다.

 

 

저격수의 역사


저격수가 정식으로 부대에 편제되기 시작한 것은 영국의 로뱃 정찰대로, 이들은 길리 슈트(ghillie suit)라는 저격수 위장복을 처음으로 입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은 특등사수들에게 망원조준경이 달린 소총을 지급하면서 가장 적극적으로 저격수를 활용했다. 이들 저격수는 참호 위로 고개를 드는 적군을 남김없이 사살해버리면서 악명을 떨쳤다.

 

최초로 군에 정식편제된 저격수는 영국군의 로뱃 정찰대였다.

독일군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저격수를 본격적으로 운용해왔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더욱 위협적인 전과를 올렸다.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자 저격수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한 명의 저격수가 적군 1개 소대나 중대의 발을 묶는 경우도 빈번했다. 특히 독일 저격수들은 원거리에서 또는 적군이 진입한 한가운데서 정확한 사격을 가하면서, 안전한 곳따위는 없다는 공포심을 적군에게 안겨주는 심리전의 중핵이기도 했다. 베트남전에서는 저격수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졌다. 미군은 병사 1인당 20만 발을 쏴야 적군 한 명을 사살하는 정도였지만, 저격수들이 적 한 명을 사살하기 위해 소비한 탄환은 평균 1.3발이었다.

 

 

저격수의 기록들

저격수라고 하면 얼마나 많은 사살기록을 가지고 있느냐가 보통 관심사이다. 세계 최고의 사살기록을 가진 저격수는 미·소·독의 3국이 아니라 핀란드의 저격수이다. 핀란드 방위군의 저격수인 시모 하이하(Simo Häyhä 1925-2002)는 소련과 핀란드의 분쟁인 겨울전쟁에서 무려 542명의 사살기록을 세웠다. 특히 하이아는 자신의 총기에 망원조준경을 사용하지 않고 맨눈으로 소련군을 사살하는 진기록까지 세웠다.

 

가장 많은 사살기록을 가진 저격수 핀란드의
시모 하이하. <사진: 핀란드 군>

처음으로 2km의 벽을 넘어 저격에 성공한 저격수의
신화 카를로스 해스콕. <사진: 미 국방부>

현재 최장거리 저격기록의 보유자,
영국 육군의 크레이크 해리슨. <사진: 영국 국방성>

 

 

[에너미 앳 더 게이트]란 영화로 유명한 바실리 자이체프(소련)와 에르빈 코니그(독일)은 각각 400명을 사살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미육군의 티모시 켈너 하사가 이라크자유작전(OIF)에서 78명의 확인사살기록을 세운 바 있다. 한편 가장 먼 거리를 저격한 기록으로는 베트남전에서 카를로스 해스콕(Carlos Hathcock 1942 –1999)이 세운 2,286m의 기록이 35년 동안 깨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2002년 아프간전쟁에서 캐나다군의 롭 펄롱이 2,430m에서 적군을 저격함으로써 기록이 갱신되었다. 그리고 2009년 11월에는 영국 육군의 크레이그 해리슨이 아프간에서 2,475m의 저격에 성공하면서 대기록이 경신되기도 했다.

 

 

저격수의 위장

저격수에게 있어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위장이다. 이들은 배경과 섞이기 위하여 길리수트라는 독특한 위장복을 입는다. 길리수트는 원래 스코틀랜드에서 사냥터 관리인이 사용하던 휴대용 위장텐트에서 유래하는데, 제2차 보어전쟁에서 영국 육군의 로뱃 정찰대가 사용하면서 최초로 군용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사냥꾼들도 길리수트를 즐겨 입는다.

 

길리수트를 입고 일어난 모습

저격을 준비하는 모습

 

저격총

언론보도나 일상에서 우리는 정확한 총이라면 모두 ‘저격총’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도대체 저격총이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해석하자면 일정한 대상만을 노려서 쏘는 총기를 말한다. 아니 그럼 대상을 노려서 쏘지 않는 총기도 있는가라는 질문을 할 법도 하다. 그래서 저격총의 정확한 정의는 다른 소총에 비하여 더욱 먼 거리에서 특정한 목표에 대하여 정확한 탄착이 가능한 총기라고 하겠다.

 

 

더 정확히, 더 멀리

그럼 정확하지 않은 총도 있느냐 라는 질문도 할 법하다. 그렇다. 정확하지 않은 총은 없지만 보통은 어느 정도까지 정확한가가 문제이다. 보통 소총은 보통 3~6 MOA(Minute Of Arc)의 정확성을 갖도록 만들어진다. 반면 저격소총은 1MOA이하의 정확성을 요구하게 된다. 여기서 1MOA라고 하면 보통 100야드에서 1인치 내에 탄환이 맞는 것을 의미한다. 센티로 환산하면 100m에서 2.9cm에 해당한다.


하지만 총 자체가 정확하다고 표적을 잘 맞추는 것은 아니다. 시력이 3.0을 넘는 몽골인 수준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인간은 5~600m의 표적을 정확히 구분하여 사격할 수 없다. 그래서 먼 거리를 사격하는 저격총에는 망원조준경이 달린다. 예를 들어 2차대전 당시의 저격총들은 2배율이나 3배율의 고정배율 망원조준경을 부착했지만, 요즘은 보통 3~10배율의 가변배율 망원조준경이 많이 사용된다.


저격총은 통상 1MOA 이하의 정확도를 갖추고 10배율 급의 망원조준경과
사격경기용 정밀탄환을 사용한다. <사진: 미 해병대>

 

물론 얼마나 쏠 수 있는지 사거리 자체도 중요하다. 저격총이라면 일반소총보다도 먼 거리를 쏘아야 한다. 그래서 대게 저격총은 자동소총이 많이 쓰는 5.56x45mm NATO 탄환(유효사거리 5~600m)이란 것보다는 7.62x51mm NATO 탄환(유효사거리 800m)을 많이 사용한다. 물론 7.62mm 탄환이라고 해도 M60 기관총에 쓰는 M80 볼(Ball) 탄환은 M24 저격총이 사용하는 M118LR(Long Range) 탄환과는 다르다. 저격총에는 값비싼 Match Grade, 즉 사격 경기용 탄환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7.62mm 탄환도 부족해서 유효사거리가 1km가 넘는 .300 윈체스터 매그넘(Winchester Magnum)이나 .338 라푸아 매그넘(Lapua Magnum) 탄환이 속속 채용되고 있다. 영국의 크레이그 해리슨이 세운 세계 최장거리 저격기록(2,450m)도 이 .338 라푸아 탄환에서 나왔다. 아프간이나 이라크의 대테러전쟁에서처럼 비교적 먼 교전거리를 겪다보니 더욱 먼 사거리에 대한 요구가 절실해진 것이다. 그래서 과거 장갑이 없는 군용차량이나 주기된 전투기 등을 저격하기 위해서 채용된 50구경 저격소총이 전장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저격총은 볼트액션이다?

보통 저격소총으로는 손으로 노리쇠를 장전하는 볼트액션 방식이 많이 쓰인다. 흔들림이나 유격이 적을수록 총기의 정확성은 올라가기에, 단순한 구조로 총열을 최대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볼트액션 방식이 비교적 정확하고 저격수들 사이에서 사랑받고 있다.

 

 

저격총의 주류는 노리쇠를 손으로 장전하는 볼트액션소총이었다.
사진은 M40A5 저격총을 장전하는 미 해병대 저격수의 모습. <사진: 미 해병대>

 

 

가장 대표적인 볼트액션 저격소총은 사냥총으로 유명한 레밍턴 모델700에 바탕한 총기들이다. 미 육군이 채용한 M24 저격소총이나 미 해병대가 채용한 M40 저격소총은 모두 이 모델을 군용으로 만든 것들이다. 올해부터 미 육군은 M24 시리즈를 현대에 맞게 개량한 M24E1 소총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우리 군에서도 사용하고 있어 유명한 SSG69, 유럽에서 인기높은 AW(Arctic Warfare) 시리즈, 그리고 2.4km의 기적을 이룬 AWSM(Arctic Warfare Super Magnum/.338 라푸아 매그넘)과 TAC-50(50구경)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볼트액션 저격총의 대명사 레밍턴 모델 700 / 사진 (cc) M855GT at wikipedia.org"(위)
M24 볼트액션 저격소총의 최신개량형인 M24E1 <사진: 미 국방부> (가운데),
세계 각국에서 애용중인 Accuracy International의 AW 저격소총 <사진: Accuracy International> (아래)

 

 

반자동 저격소총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저격총이 볼트액션은 아니다. 기존의 소총을 그대로 가져다가 저격총으로 개수한 반자동 저격소총도 있다. 볼트액션은 발사 후 재장전이 번거롭고 그 때문에 다음 표적에 대한 신속한 사격이 편리하지 않다. 산악지형이나 야지에서 1km에 가까운 충분한 거리를 두고 저격할 때는 볼트액션으로 충분하지만, 표적과의 절대거리가 확보되지 않는 시가지전투에서는 그만큼 불리하다는 게 저격교관의 증언이다. 일단 소총의 정확성 자체가 1MOA인 이상 반자동 저격총도 상황과 필요에 따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미군은 2008년부터 M110 반자동저격소총체계를 채용했다.

 

 

반자동저격총도 최근에 많이 채용되는 추세이다.
사진은 미육군이 2008년 채용한 M110 저격소총이다. <사진: 미 육군>

 

 

물론 대표적인 반자동저격소총은 구소련과 동구권에서 채용된 SVD(Snayperskaya Vintovka Dragunova; 드라그노프 저격소총)이다. 7.62x54mm 탄환을 사용하는 SVD는 고도로 정밀한 저격보다는 소대단위에 배치된 특등사수를 위한 총기였다. 이런 개념은 최근 미군에서도 채용되어 지정사수(Designated Marksman) 제도로 나타나, M16 소총에 기반한 SDM-R(Squad Designated Marksman Rifle)이나 SAM-R(Squad Advanced Marksman Rifle) 등이 채용되고 있다.


반자동저격소총 가운데서 또다른 유명인사는 과거 독일연방군의 제식소총이었던 G3 계열의 저격총이다. 대테러용으로 유명한 PSG-1이나 군용인 MSG-90, 연발사격 기능이 유지된 G3/SG-1 등이 한 시대를 장식했으나 현재는 일선에서 많이 물러나 있다. 한편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미군이 60년대까지 사용하던 제식소총인 M14도 M21 저격소총이란 이름으로 간간히 사용되어 오다가, 최근에 M14 EBR, M14 DMR, M39 EMR 등으로 다시 군에서 부활하고 있다. 그리고 50구경 탄환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바렛 M82/M107 장거리저격소총도 반자동저격소총이다.

 

반자동저격총의 대명사는 구소련이 애용하던 SVD 저격소총으로, 소대급에서 운용되는 특등사수용 소총이다. <사진 : Public domain> (위),
M2 중기관총에 사용하는 50구경 탄환을 사용하는 M107 / M82 바렛 저격소총도 대표적인 반자동저격총이다. <사진 : Barret®> (아래)

 

대함미사일

제3차 중동전 중이던 1967년 10월 21일 이집트의 포트사이드항 인근에서 무력시위 중이던 이스라엘 구축함 에일라트(1730t급)를 향해 네발의 미사일이 날아왔다. 1960년대 중반에 이집트 해군이 구 소련으로부터 도입한 코마급 미사일 고속정에서 발사된 스틱스 함대함 미사일(SSN-2)이었다.

 


대함미사일,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다윗의 병기


미사일 공격을 받은 에일라트는 승무원 190명 중 47명 전사, 41명 부상이라는 큰 인명피해를 입고 침몰했다. 100t도 안되는 소형 미사일정이 2000t에 육박하는 함정을 격침,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순간이었다. 스틱스 미사일은 4년 뒤인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인도 해군이 발사한 13발의 스틱스 미사일 가운데 12발이 파키스탄 함정에 명중된 것이다. 이로써 스틱스는 함정을 잡는 세계 최초의 실용 대함미사일로 한동안 대함미사일의 대명사가 됐다.

 

코마급 고속정에서 발사되는 스틱스 미사일.

스틱스 미사일의 발사장면.

 

 

대함미사일의 원조급 무기들


물론 스틱스 이전에도 대함 미사일의 원조로 불리는 무기들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개발한 Hs-293가 그것이다. 독일이 1943년부터 사용했던 Hs-293는 길이 3.6m로 로켓모터를 장착해 시속 900km의 속도로 목표물을 공격했다. 자체 추진기관이 없어 엄밀하게 미사일로는 보기 힘들지만 미사일처럼 연합국 선박을 공격했던 ‘프리츠-X(Fritz X)’도 대함미사일의 원조로 꼽힌다. 무선 리모콘으로 조종됐던 프리츠-X는 1943년 4만5000t급 이탈리아 전함을 2발의 명중탄으로 격침시켜 위력을 과시했다.

 

Hs 293, 로켓엔진을 장착한 글라이더형 미사일. 후기형은 무선 유도가 가능.

프리츠-X, 투하 후 무선 유도로 낙하지점을 조정할 수 있다.

 

 

대표적인 대함미사일- 하푼, 선번, 엑소세

스틱스의 놀라운 전과 이후 세계 각국은 대함 미사일을 앞다퉈 개발해 다양한 대함 미사일이 등장했고 계속 신형 미사일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미국의 하푼, 러시아의 3M80 선번, 프랑스의 엑조세 등을 들 수 있다. 미국의 하푼은 프랑스 엑조세와 함께 서방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돼온 대함 미사일이다. 신형인 하푼 블럭Ⅱ는 사정거리가 150km로, 2003년 실전배치됐다. 길이 4.6m, 직경 34cm로 최대속도는 마하 0.9다. 수상 목표물은 물론 육상 표적도 공격할 수 있고 정확도가 향상돼 50km 밖에서 10m의 정확도를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도 10m는 목표물을 중심으로 100발의 미사일을 쐈을 때 50발은 목표물 반경 10m 이내에, 나머지 50발은 반경 10m 밖에 떨어진 얘기다. 

 

선번 대함미사일.

엑조세 대함미사일.

 

 

러시아의 3M80 선번은 초음속으로 공격해 요격이 힘들고 강력한 파괴력을 가져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미사일이다. 러시아가 막강한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했다. 수면 위 7m의 낮은 고도에서 마하 2.5의 초음속으로 비행하고 공격 직전에 적 함정의 단거리 대공미사일 공격을 회피하기 위한 급격한 기동을 한다. 5000t급의 대형 함정도 단 한 발로 무력화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사정거리는 90~160km이고 러시아, 중국 등이 보유하고 있다. 길이 9.4m, 직경 76cm의 대형 미사일이다. 러시아는 선번보다 작아 잠수함보다 다양한 함정에 탑재할 수 있도록 정확도가 향상된 신형 초음속 대함 크루즈미사일 3M54E 클럽도 개발했다.

 

프랑스 엑조세 미사일은 포클랜드 전쟁 때 아르헨티나군이 사용, 영국의 최신형 구축함을 격침시켜 유명해졌다. 원래 사정거리는 70km이지만 180km로 늘린 신형 블럭Ⅲ형이 개발되고 있다. 길이 5.9m, 직경 35cm다.

 

 

동북아 각국의 대함미사일

1990년에 90식 대함미사일을 개발했던 일본도 XASM-3라는 신형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개발 중인데 항공기에서 발사되는 공대함 미사일이다. 중국은 러시아에서 도입한 소브레메니급 구축함에 선번 초음속 미사일을 탑재해 미 항모 전단을 견제하고 있으며, 역시 미 항공모함을 겨냥한 HY-3A라는 대형 미사일도 개발했다. 대만도 슁펭-Ⅲ라 불리는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개발했는데 마하 2의 속도로 비행하고 사정거리도 300km에 달한다.

 

일본 XASM-3 대함 미사일.

 

 

국산 대함미사일 해성

한국 해군의 경우 미국제 하푼과 프랑스제 엑조세 미사일을 도입해 구축함, 호위함, 고속함 등에 탑재해 사용해왔으며 2003년 이후 국산 대함미사일 해성을 배치하고 있다. 해성은 1996년 이후 8년간 개발됐다. 2003년 8월 해군 초계함에서 발사된 해성 미사일이 70km 떨어진 목표물을 정확히 명중시켜 성능을 입증했다. 해성은 우리 해군의 첫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을 비롯, 한국형 구축함 등에 속속 배치되고 있다.

 

국산 해성 대함 미사일.

 

 

 

미국의 하푼과 대등한 성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해성은 사정거리 150km, 순항속도는 마하 0.8로 수면 가까이 낮게 비행해 요격하기 힘들다. 국산무기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는 해성을 발전시킨 국산 초음속 대함미사일도 2000년 이후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대만 등 주변국이나 인접국이 모두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개발했거나 개발 중이기 때문에 개발이 더욱 필요해졌다는 입장이다.

 

장갑차

1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의 마크I 전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 전장의 강철괴물은 무려 8명의 승무원을 탑승시키며 전투할 수 있는 장갑차이자 전차였다. 어떤 의미에서 세계 최초의 전차는 세계 최초의 장갑차이기도 했다. 물론 1차대전 종전시에 등장한 마크IX(Mark IX)이 세계 최초의 장갑차이지만 말이다.

 


전차와 함께 전쟁의 판도를 바꾼 장갑차

세월이 흘러 2차 세계대전 때의 장갑차는 전차와 함께 전쟁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빠른 속도로 유럽을 유린한 독일군의 전격전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전차뿐만 아니라 장갑차의 힘도 컸다. 빠른 속력과 적절한 방호능력으로 보병을 운송할 수 있는 장갑차가 있었기에, 전차도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Sd.kfz 251 “하노마그” 중형장갑 보병수송차였다.

 

Mark IX. 최초의 장갑차, 30명까지 탑승이 가능했다.

Sd.kfz251 독일의 장갑 보병수송차 <출처: (cc) Deutsches Bundesarchiv>

 

 

냉전시절에는 미국의 M113이 “전장의 택시”로 이름을 날렸다. 우리 육군에서도 운용한 바 있는 M113은 전 세계적으로 8만대 이상 생산되면서 명실 공히 자유세계의 병력수송장갑차(Armoured Personnel Carrier; APC)로 위치를 굳혔다. 특히 엄청난 숫자를 자랑하는 소련의 기갑전력에 대항하여, M113은 TOW 대전차 미사일 등의 무장을 장착하면서 전투장갑차로 활용되기도 했다. 또한 전차가 부족했던 베트남전에서는 ACAV키트를 장착한 M113들이 정글지역에서 전차 없이 단독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수송에서 전투로, 병력수송장갑차에서 보병전투장갑차로

장갑차의 기본적인 역할은 병사를 적의 포화로부터 안전하게 전장으로 실어나르는 것이다. 전차만 앞장서면 모든 전선이 무너질 것 같지만 실제 전쟁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전차가 목표를 탈취하더라도 보병의 협동작전 없이는 목표의 계속적인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초기의 장갑차는 보병수송용이었고, 보병은 하차한 상태에서만 전투가 가능했다. 그러나 독일의 전격전의 경험을 토대로 전차와 동반하는 보병이 적을 제압하려면 탑승한 상태에서 전투해야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탑승전투라는 전술개념에 따라 보병전투장갑차(Infantry Fighting Vehicle; IFV, 보병전투차)가 등장했다. 

 

BMP-1 구소련 보병전투장갑차

미국 브래들리 보병전투장갑차

 

 

그러나, 본격적인 보병전투장갑차를 최초로 등장시킨 것은 소련이었다.  1967년 소련은 BMP-1를 등장시켜 서방을 경악시켰다. 특히 BMP-1은 겨우 13톤의 무게에 2m도 되지 않는 높이의 작고 낮은 형상에다가 약한 장갑을 갖추었지만 화력만큼은 엄청났다. 주무장으로 73mm 활강포와 AT-3 새거 대전차미사일을 보유하여 전차와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이다. 이런 “BMP충격” 이후 전 세계의 장갑차들은 병력수송 장갑차의 개념에서 보병전투장갑차로 진화하게 되었다. 미국의 브래들리, 독일의 마더/퓨마, 영국의 워리어, 스웨덴의 CV90 등 성공적인 개발사례들이 전 세계적으로 목격되었다.

 

이제 보병전투차는 대다수의 적 장갑차량이나 심지어는 전차와도 교전하면서 전차의 역할까지 수행하기도 한다. 제1차 걸프전에서 미군의 브래들리 장갑차는 에이브람스 전차보다도 더 많은 적 장갑차량을 파괴했던 것이다.

 


우리 육군의 장갑차 역사

우리 군은 6.25 전쟁 발발 당시만 해도 전차는 없었지만,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와 M2/M3 반궤도 장갑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37mm 기관포가 탑재된 M8 장갑차는 도저히 적수가 될 수 없는 북한의 막강한 T34 전차에 맞서 지연전을 벌이는 등 맹활약을 했다.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

M113 장갑차

 

 

이후 우리 군은 미국의 대외군사원조로 M113을 400여대 가량 인수하여 운용한 바 있다. 이밖에도 우리 군은 도심 및 기지방어작전을 위하여 KM900 장갑차를 운용해왔다. 그러나 율곡사업에 의해 대우중공업(현 두산 DST)에서 개발한 국산장갑차 K200이 등장하면서 M113은 퇴역을 맞았다.

 

K200은 보병전투장갑차라는 전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개발된 “한국군에 의한, 한국군을 위한, 독자무기체계”였다. K200은 80년대 후반부터 실전 배치되기 시작하여, 이제는 전군에 보급되어 있다.


K200은 말레이시아에 111대를 수출을 하는 등 자국개발의 대형무기체계로는 최초로 대규모의 해외수출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K200은 ‘한국형 보병전투차(Korea Infantry Fighting Vehicle)’라고 불리긴 해도, 포탑 등 무장체계가 약한 편이어서 오히려 병력수송 장갑차(APC)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제한된 예산으로 충분한 대수를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강력한 포탑을 장착하면, 그만큼 배치할 수 있는 대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당시 국방당국자들로서는 절대다수의 적 기갑전력에 대응하기 위하여 수량 확보에 초점을 두었다는 말이다.


K200 한국형 보병전투차. 국산 장갑차 시대를 열었으나,
전투장갑차라고 불리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사진: 두산 DST>

 

 

21세기 한국군의 보병전투장갑차

최근에 들어 우리 군은 자주국방과 선진국방을 위한 노력으로 무기체계의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혁신은 장갑차 분야에서도 등장했다. 바로 K21 차기보병전투장갑차(Next Infantry Fighting Vehicle)이다. K-21은 2009년 6월 29일 국방과학연구소의 종합시험장에서 지축을 흔들면서 등장했다. K21은 전투중량 25톤급에 탑승인원은 12명으로, 승무원 3명과 보병분대원 9명을 탑승시킬 수 있다. K21은 여러 면에서 K2 흑표 전차에 비하여 손색없는 차세대 명품무기로 주목받았다. 기존의 K200 KIFV와 비교하면 기동성, 화력, 방호능력이 삼위일체로 진화한 셈이다.

 

K21이 눈에 띄는 것은 웬만한 동급 장갑차들도 주눅이 들 만한 화력이다. K21은 분당 300발의 발사되는 40mm 자동포와 ‘사격 후 망각’ 방식의 제3세대 대전차유도무기를 갖추게 된다. 이로써 적 장갑차와 전차는 물론이고 근접신관을 갖춘 복합기능탄을 사용하면 적의 헬기까지 파괴할 수 있는 화력을 보유한 셈이다. K21은 최대 70km의 거침없는 기동력으로 전차와 동등한 주행능력과 지형극복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수상부양장치를 장착하여 급속도하작전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K21은 수상부양이 가능하게 설계되었다. <사진: 국방부>

K21 한국군 차기보병전투장갑차. <사진: 두산 DST>

 

 

이외에도 K-21은 주야간 정밀조준장치, 위협자동탐지적외선 센서, 피아탐지장치 등을 장착하여 적을 먼저 보고 먼저 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또한 IT화 되고 있는 전장의 현실을 반영하여 차량간 정보체계, C4I 연동의 디지털통신체계를 갖추는 등 네트워크전(Network Centric Warfare)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K21은 전차에 맞먹는 성능을 가진 만큼, 가격도 전차에 맞먹는다. 그러나 K21은 무기체계 도입의 초기인 만큼 여러 가지 트러블이 존재하고 있다. 도하사고를 비롯하여 최근에는 설계결함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수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시점에서 문제점들이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되기를 기대해본다.

 

한편 해외파병이 잦아지면서 우리 군에서는 차륜형장갑차에 대한 소요도 증가하고 있다. 이미 우리 군은 바라쿠다 장갑차를 도입했지만, 해외파병과 동시에 후방 부대의 기동성 강화를 위해서도 차륜형 장갑차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이에 따라 로템, 두산DST, 삼성테크윈 등에서는 새로운 차륜형 장갑차를 제시하면서 우리 군 기갑전력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F-15K 슬램이글

2010년9월8일 오전 대구 공군 제11전투비행단 활주로에 F-15K 전투기 3대가 차례로 내려 앉았다.  꼬리날개에 ‘041’, ‘042’, ‘043‘ 숫자가 선명했던 이들 전투기는 우리 군이 차기 전투기(F-X) 2차 사업으로 도입한 F-15K 최초 도입분 3대였다. 지난 2005~2008년 F-X 1차 사업으로 F-15K 40대가 도입된 뒤여서 41번부터 일련번호가 붙은 것이었다.

 

 

대한민국 공군 투혼의 상징, F-15K 슬램이글


첫 도입분 3대가 도착함에 따라 본격화한 F-X 2차 사업이 오는 2012년 끝나면 우리 공군은 모두 60대의 F-15K를 보유하게 된다. 공군 보유 전투기중 가장 최신형이면서 강력한 F-15K는 지난 2002년 기종선정 때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선정됐다. 

 

 

대한민국 공군 F-15 슬램이글, 동북아 최강의 전투기로 평가된다.

 

 

원래 F-15는 공대공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제공형인 A/B, C/D형과, 우수한 대지공격 능력을 갖춘 전폭기인 E형이 있는데 우리 F-15K는 F-15E를 토대로 개량한 것이다. F-15A는 1972년7월 첫 비행을 했지만, F-15E는 1986년12월 첫 비행을 했다. F-15E는 ’스트라이크 이글(Strike Eagle)‘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1991년 걸프전 때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된 뒤 99년 코소보전, 2001년 아프가니스탄전, 2003년 이라크전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이라크전 초기에 F-15E는 이라크 방어의 핵심인 공화국 수비대 전력의 60%를 파괴하는 전과를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F-15E를 업그레이드한 F-15K는 ’슬램이글(Slam Eagle)‘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지난 2005년 국민 공모를 통해 결정된 이 별칭은 ’슬램‘이 ’타격을 가하다‘ 는 등의 의미를 갖고 있는 점에 착안, 적을 보면 반드시 격추시키는 조종사의 투혼을 상징하는 의미로 명명됐다.

 

 

F-15E를 업그레이드한 뛰어난 눈과 강력한 펀치의 F-15K

F-15K는 몇 가지 점에서 종전 F-15 전투기들에 비해 뛰어난 강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거리 공대지 크루즈(순항) 미사일인 SLAM-ER을 비롯한 각종 미사일 및 정밀유도폭탄, 적외선 탐색 및 추적장비(IRST), 최신 야간 저고도 항법 및 조준장비인 타이거 아이(Tiger Eyes), 조종사가 쓰고 있는 헬멧에 각종 표적 정보가 나타나고 조종사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무기를 쏠 수 있도록 해주는 헬멧장착 시현장치(JHMCS), 10개의 목표물을 동시에 추적할 수 있는 AN/APG-63(V1) 레이더, 강화된 엔진 등이 그것이다.

 
SLAM-ER 미사일은 하푼 대함미사일을 공대지 미사일로 개조한 것으로 최대 278km 떨어진 목표물을 3m의 정확도로 족집게처럼 정확히 공격할 수 있다. 서울 상공에서 발사해 평양 시내에 있는 건물 유리창의 창문틀 안으로 날아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을 제외하곤 이 미사일을 도입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처음이었다.

 

F-15K의 무기, SLAM-ER 공대지 크루즈 미사일

F-15K의 무기, JDAM GBU-31

 

 

이밖에 사이드와인더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모델 중 최신형인 AIM-9X 미사일, 사정거리 64km의 AIM-120C 암람(AMRAAM)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함정은 물론 땅 위의 목표물도 공격할 수 있는 최신형 하푼 블록Ⅱ 미사일,  GPS로 유도되는 JDAM(합동직격탄) 등도 F-15K의 주무장이다.  F-15K가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이나 폭탄 등 각종 무장은 구형 전투기의 2배 이상인 11t에 달한다. JDAM의 경우 2000파운드급(900kg) GBU-31은 7발, 500파운드급(225kg) GBU-38은 15발을 장착할 수 있다.  IRST는 전투기 레이더를 켜지 않거나 전자방해를 받는 상황에서도 열영상을 통해 적기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첨단 장비다.

 

 

독도는 물론 한반도 전역을 커버하는 전투행동반경

F-15K는 기존 한국 공군 주력전투기(KF-16 등)에 비해 이처럼 뛰어난 ’눈‘과 강력한 ’펀치‘를 갖고 있으면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도 넓다.  주요 무기를 탑재한 상태에서 비행할 수 있는 전투행동반경은 1800km로 독도는 물론 한반도 전역을 커버할 수 있다.  종전 KF-16 전투기는 유사시 독도에서 공중전이 벌어졌을 경우 5분이면 연료가 떨어져 복귀해야 했지만 F-15K는 30분 이상 독도 상공에 떠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또 중국·일본 등 주변 강국과 군사적 충돌이 생겼을 경우 이들 국가의 상당수 전략 목표물도 공격할 수 있다.

 
F-15K는 길이 19.43m, 높이 5.6m, 날개 폭 13.05m로 최고속도는 음속의 2.5배인 마하 2.5다. 조종사는 2명이며 엔진도 2개인 쌍발 엔진기다. 대당 가격은 1000억 원 수준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도입한 전투기 중 가장 비싸다. 40대를 도입한 F-X 1차 사업의 총규모는 5조 4000여억 원에 달한다. 첫도입 직후인 지난 2006년6월 동해 상에서 F-15K 전투기 1대가 야간 요격훈련 중 추락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군 당국은 조사 결과 기체결함이 아니라 급격한 전투기 기동에 따라 생기는 높은 중력가속도에 의해 조종사가 순간적으로 의식을 상실해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F-15K는 2명의 조종사가 탑승하는 쌍발 엔진의 대형 전투기. 전투행동반경 1800Km를 자랑한다.

 

 

현존 동북아 최강의 전투기. 미래는?


전문가들은 아직까지는 F-15K가 동북아 국가들에 실전배치된 전투기 중 최강이라고 말한다. 일본 항공자위대에도 F-15CJ/DJ 전투기가 있지만 이는 1980년대 초 도입된 제공 전투기 F-15C/D의 일본형 모델이다. F-15K보다 구형인데다 땅 위의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대지 공격능력도 크게 떨어진다. 일본은  F-15CJ/DJ에 최신형 레이더를 다는 등 업그레이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독자개발한 전투기 J-10, 러시아에서 도입한 SU-27과 그 면허생산형인 J-11, 역시 러시아에서 도입한 SU-30MKK2 등이 F-15K와 비교 대상으로 꼽힌다. 그러나 J-10은 F-15보다 한 체급 낮은 F-16과 비교될 수 있는 전투기이고 SU-27, SU-30MKK2, J-11 등도 레이더 성능과 각종 무장탑재 능력 등을 고려할 때 F-15K에 다소 뒤진다는 평가가 많다.

 

일본의 F-15J

중국의 SU-30MKK

 

 

우리나라에 이어 싱가포르가 F-15 업그레이드형의 도입을 결정했고 이는 F-15SG라 불린다. F-15SG는 F-15K보다 강력한 첨단 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장착해 F-15K보다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F-15 제조업체인 미 보잉사는 F-15의 스텔스 성능을 강화한 F-15SE ’사일런트 이글(Silent Eagle)‘의 개발을 추진하면서 우리 공군의 F-X 3차 사업에도 참여하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F-X 3차 사업은 F-35 같은 본격적인 스텔스기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어 논란과 진통이 예상된다.

방탄조끼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병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큰 공포는 빗발치는 총알에 맞아 죽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실제 최근의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의 결과, 전쟁사망자 가운데 총상이 사망원인이었던 것은 12~13%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총에 맞는 데에 대한 공포는 전투력을 충분히 감소시키고도 남는다. 물론 여기에는 해결책이 있다. 바로 방탄 조끼이다.

 

 

세계 최초로 실전 배치된 방탄 조끼는 조선에서 발명

방탄조끼는 그야말로 갑옷의 현대판이다. 막는 대상이 적의 화살이나 창검 대신에 적군 소총의 탄환이나 폭탄의 파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물론 쇠나 구리로 만든 미늘 대신에 방탄재질의 섬유나 플라스틱, 또는 세라믹 등이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세계 최초의 실전 방탄 조끼는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바로 면제배갑이다. 조선말기 병인양요에서 서양 총기의 위력에 경악한 흥선대원군은 총탄을 방어할 수 있는 갑옷의 개발을 명하게 된다. 개발과정에서 면갑(면 재질의 갑옷)과 철갑(철 재질의 갑옷) 등 다양한 실험이 행해졌는데, 특히 면갑에서 면포 12겹까지는 총알이 뚫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면제배갑은 조선군에게 보급되기 시작하여 신미양요 때는 실전에 적용되었는데, 이것은 세계 최초로 방탄조끼가 실전에서 사용된 전투이기도 했다. 비록 면제배갑은 전투력에 도움은 안 되었던 것으로 평가되나, 신무기를 개발하려는 노력과 의지 측면에서는 의미가 크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개발된 면제배
<사진: 국방일보>

1920년대의 방탄 조끼 실험 장면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방탄조끼들이 개발되었지만 이들은 강철이나 면 소재에 바탕한 것으로 엄청난 무게와 약한 방호력으로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은 강화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조각을 나일론 소재와 결합한 M1951 조끼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것 역시 총알을 직접 막는 방탄조끼라기보다는 도비탄(목표물에 맞고 튕긴 탄환)이나 폭탄의 파편을 막는 수준에 불과했다.

 

 

케블라, 다이니마 등의 신소재 혁명

그러나 1970년대부터 매우 질기고 탄성이 뛰어난 첨단섬유 소재들이 개발되면서 방탄조끼는 혁명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케블라(Kevlar)’와 ‘다이니마(Dyneema)’이다. 1972년 듀폰이 선보인 케블라는 아라미드 섬유의 일종으로 강도와 탄성률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케블라는 강철과 같은 굵기의 섬유로 만들었을 때 강철보다 5배나 강도가 높아 방탄소재로는 적격이었다.


한편 다이니마는 1979년 네덜란드의 DSM사가 개발한 폴리에틸렌 계열의 섬유로 세상에서 가장 강하면서도 가벼운 섬유로 인정받고 있는데, 1990년대가 되어서야 양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현재까지 아라미드 섬유 계열의 방탄소재로는 케블라(듀폰), 트와론(테이진), 헤라크론(코롱) 등이,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 섬유계열로는 다이니마(DSM/토요보), 스펙트라(하니웰) 등이 사용되고 있다.

 

방탄조끼는 방탄 섬유를 수십 겹 겹쳐서 만들어진다. 방탄 조끼의 단면(좌)과 멈춰진 탄환(우) <사진 : Inteledge Inc.>

 

 

방탄 조끼의 기준


이렇게 신소재의 채용으로 더욱 가벼워진 방탄조끼는 1970년대 말이 되어서는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경찰관들에게 방탄조끼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모델들이 출시되게 되었다. 특히 세컨드챈스라는 방탄 조끼 회사는 사장이 직접 방탄 조끼를 입고 자기 가슴에 총을 쏘는 시연을 벌이면서 많은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워낙 잡다한 회사들과 제품이 난립하자 미국 법무부에서는 방탄 조끼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게 된다.

 

방탄 조끼에 기준이 필요한 이유는 당연하다. 권총탄을 막을 수 있는 방탄 조끼가 소총탄도 막을 수 있는지 보장이 없고, 한 발을 막을 수 있는 조끼도 여러 발을 맞으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조 직후에는 성능이 좋으나 시간이 지나면 소재가 변하면서 방어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생명에 직결되는 물건이니 만큼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제정된 것이 바로 법무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Justice)의 NIJ 방탄기준이다. NIJ 기준에서는 최소한 6발에 대한 방탄능력을 요구하며, 방탄성능이 최소한 6년간 유지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 기준은 여러 레벨로 나눠지는데, 대략적인 기준을 단순히 요약하면 아래 표와 같다.

 

NIJ 방탄 레벨의 요약표

 

 

방탄 조끼의 구조

이제 겨우 사람이 입을 만해진 방탄조끼가 나왔는데, 위에서 보는 것처럼 그 구분이 매우 복잡하다. 보통 경찰관의 경우 제복 속에 입는 은닉형 방탄조끼의 경우 레벨 IIA나 레벨II를 입는다. 레벨IIIA부터는 보통 외부에 껴입는 형태이다. 보통 군용 방탄조끼는 레벨IIIA 정도가 된다.

 

레벨IIIA까지는 보통 부드러운 방탄섬유를 사용하지만 레벨III부터는 단단한 판 형태를 띄게 된다. 방탄판의 경우에는 보통 폴리에틸렌 계열을 사용하거나 세라믹 복합소재를 사용하며, 전신이 아니라 심장을 중심으로 한 주요부분만을 가리는 형태가 된다. 그래서 보통 레벨III 이상의 방탄조끼의 구성은 외피, 소프트패널(방탄 섬유), 하드플레이트(방탄판) 등으로 구성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소프트패널 없이 하드 플레이트만을 입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사막 등 기후가 매우 높은 지역에서는 최대한 간편하게 방탄조끼를 입고 다니게 되는데, 그래서 실제 전장에 투입되는 특수부대원들은 플레이트 캐리어(방탄 조끼의 일종)에 하드 플레이트만을 넣어 다니는 경우가 꽤 많다.

 

한편 최근에 주목할 만한 방탄조끼로는 피나클 아머에서 만든 ‘드래곤 스킨‘이라는 제품이 있다. 드래곤 스킨은 하드플레이트를 2인치 직경의 디스크로 만들어서 전신을 보호하도록 만든 제품이다. 드래곤 스킨은 획기적인 제품으로 언론의 각광을 받았지만, NIJ 레벨III의 6년 유효기간 인증을 마치지 못하여 현재 인증제품목록에서 제외된 상태이다.

 

 

미군의 신형 방탄조끼(IOTV). 7.62mm 소총탄을 막을 수 있는 하드플레이트가 전후방에 장착된다. (좌)
화제의 방탄 조끼, 드래곤 스킨의 X레이 사진(우)

 

 

발전을 거듭하는 방탄조끼들

한편 방탄조끼는 단순히 그 방탄 소재 뿐만 아니라 외피에서도 커다란 발전이 일어났다. 방탄조끼는 요즘 탄창이나 수통 등 다양한 군장을 수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 덕분에 무게가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단점이 생겼다. 특히 문제는 착용자가 물속에 빠지거나 전복된 차량 내부에 갇혔을 때 방탄조끼를 벗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런 사실에 주목하여 최근에는 줄만 한번 당기면 방탄조끼가 조각조각 분해(?)되어 저절로 벗겨지는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때 이런 제품은 특수부대만을 위한 고가의 제품으로 생산되다가, IOTV(Improved Outer Tactical Vest) 같은 제품은 이제 미 육군 전체에 지급되고 있다.

 

 

미군의 IOTV 방탄 조끼는 단번에 분해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교육 받는 병사의 모습.

 

판옥선과 세키부네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임진왜란이라는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맹활약한 이들이 바로 조선 수군이었다. 그 조선 수군을 이끌었던 인물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이순신 장군은 뛰어난 전술적 능력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 탁월했던 군인이었지만, 아무리 뛰어난 영웅이라할지라도 맨손으로 싸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그 같은 이순신의 탁월한 능력을 물질적으로 뒷받침했던 존재 중에 하나가 바로 판옥선(板屋船)이었다.


 
조선의 대표 군함 판옥선

판옥선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주력 군함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을 가장 많이 보유했을 때도 그 척수는 7척 내외에 불과했지만, 판옥선은 임진왜란 2년차인 1593년에 보유량이 약 200여 척에 육박했을 정도로 대량 운용한 군함이었다. 거북선의 독특한 겉모습 때문에 판옥선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가려진 면이 있지만, 전체 조선 수군 전력에서 판옥선이 차지하는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판옥선은 조선 전기의 주력 군함이었던 맹선에 갑판 한 층을 더 만들어 3층으로 만든 배다. 우리나라 전통 배인 한선(韓船)의 1층 주갑판(Main Deck)을 포판이라고 하는데, 포판 위에 ‘상장’이라 부르는 2층 갑판(O1 Deck)을 둔 배가 바로 판옥선이다. 포판 아래에도 병사들이 휴식할 수 있는 선실이 있으므로, 선실까지 포함한 전체 높이는 3층이 된다.


이처럼 갑판이 2중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요원인 격군(格軍)은 1층 갑판에서 안전하게 노를 저을 수 있고, 전투요원들은 2층 갑판에서 적을 내려다보면서 유리하게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소장 조선후기 [해진도]속의 판옥선 그림

 

 

화력전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판옥선

선체 길이가 20~30m 정도였던 판옥선은 임란 해전에 참전한 한ㆍ중ㆍ일 군함 중 크기가 가장 큰 편에 속한데다가 선체도 높은 덕택에 일본군이 그들의 장기인 승선전투전술(Boarding Tactics)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 효과도 거뒀다. 이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 도승지였던 이항복은 "판옥선은 마치 성곽과 같다"고 그 성능을 격찬했다.


전근대 해전에서는 상대방 군함으로 건너가 마치 지상에서처럼 칼과 창으로 싸우는 경우가 흔했다. 조선군은 기본적으로 활과 화약무기 같은 원거리 무기를 능숙하게 사용했지만, 칼과 창 같은 단병무기를 운용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서툴렀다. 이 같은 약점을 극복하고 조선군이 해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승선전투전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조선의 장기인 활과 대구경 화약무기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군함이 필요했다. 판옥선은 그 같은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군함이었고, 그 같은 성능이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능력과 결합했을 때의 결과가 바로 임란 해전의 승리였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전시 중인 판옥선 모형

상장갑판 부분 확대

 

 

판옥선의 저력은 소나무에서

판옥선은 한국 전통 선박이 가지는 고유의 특성도 고스란히 물려 받았다. 판옥선을 비롯한 한국의 전통 배는 기본적으로 주재료로 소나무를 사용한다. 배 앞부분의 이물비우 등 높은 강도가 필요한 부분은 상수리나무나 졸참나무 같은 참나무 계통의 나무를 사용했지만 배 밑바닥의 저판, 좌우 측면의 삼판, 주갑판인 포판 등 선체의 대부분은 소나무를 사용했다.


한국의 소나무는 평균적으로 옹이가 많고 굽어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불규칙적인 목질의 특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배를 만들 때 판재를 두껍게 가공해야만 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한국 전통 배들은 두께 12~18cm의 두꺼운 판자를 사용했고 최종 가공도 다소 투박한 약점이 있었다. 그러나 소나무 중 선박 제조에 많이 사용한 적송의 굴곡강도는 526~977kg/㎠에 달하고,  브리넬 경도도 2.20~5.80에 달해 일본 전통선박에 주로 사용하는 삼나무나 전나무에 비해 기본적으로 강도와 내구성이 우수했다. 이러한 선박용 목재의 특성 차이는 함포전과 우발적 충돌에서 조선의 판옥선이 일본 군함에 비해 우위를 누릴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한국 환경에 특화된 군함, 판옥선


판옥선을 비롯한 한선은 함수 모양이 평면이었다. 이 때문에 선체 저항이 커서 속도가 느린 편이었다. 또한 판옥선은 배 밑바닥이 평평한 평저선(平底船)인 탓에 흘수가 작아 배가 직진할 수 있는 능력(Directional Stability)이 떨어진다.

 

이런 단점 때문에 평저선은 연안이나 내륙 하천에서 주로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에서 이 같은 평저선 구조는 큰 장점을 발휘할 수 있었다. 배 밑바닥이 뾰족한 첨저선은 썰물 때 갯벌 위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지만, 평저선은 안전하게 바닥에 내려 앉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배 바닥이 뾰족한 첨저선에 비해 평저선은 원시적인 배로 간주된다. 하지만, 평저선은 우리나라의 해양환경에 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한 구조였기 때문에 그 같은 특성은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됐다.

 


일본의 대표군함 세키부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군함에는 아타케부네(安宅船, 아다케), 세키부네(関船), 고바야(小早) 등 세 종류가 있었다. 이 중에서 제일 큰 군함은 아타케부네였지만 임란 초반만 해도 비중이 크지 않았고, 고바야는 30여 명 정도의 인원만 탑승하는 소형 선박이었다. 때문에 임진왜란 초반에 집중적으로 벌어진 해전에 주로 활약한 일본 군함은 세키부네였다.  세키부네는 일본에서 흔히 야마토형 군선(大和型 軍船)의 대표적 존재로 간주할 만큼 일본인의 자부심이 서려 있는 배다.

 

일본 도쿄의 배과학관(船の科學館)에 전시된 세키부네 모형

 

 

세키부네를 비롯한 일본 전통 선박은 소나무에 비해 가공하기 쉬운 삼나무나 전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그 덕에 세키부네는 매우 얇은 판재를 사용해 정밀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강도 면에서 삼나무나 전나무는 소나무에 비해 약했다. 가공하기 쉬운 덕에 얇은 판재를 쓴 일본 배는 약해지고, 가공하기 힘든 탓에 두꺼운 판재를 쓴 판옥선은 강해지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것이다.

 

또한 세키부네의 배 밑바닥은 평저선과 첨저선의 중간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형태의 배 밑바닥은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한반도 서해와 남해에서 작전할 때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다. 세키부네에도 부분적인 2층 갑판이 있긴 했지만 선체 전체 높이가 판옥선에 비해 낮고 선체 크기도 작아 기본적으로 인원ㆍ무기 탑재 능력이 판옥선에 두드러지게 열세였다.

 

 

임란 40여 년 전 판옥선을 개발한 뜻

임진왜란 당시 판옥선이 최소 120명 이상의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탑승시킬 수 있었고, 임란 이후 조선 후가의 판옥선은 200여명에 가까운 사람이 탑승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노가 40개 정도인 세키부네에는 비전투요원인 수부(水夫) 40명과, 조총병 20명을 포함해 70~80명이 탑승했다. 또한 판옥선이 대포에 해당하는 지자ㆍ현자ㆍ별황자총통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던데 비해, 기껏해야 1~2문의 대포만 탑재하고 주로 조총으로 전투를 수행하는 세키부네는 화력 면에서도 판옥선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역사학자들은 흔히 조선왕조가 임진왜란 전 200여 년 동안 전쟁을 잊고 살았다고 말한다. 그 말이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전쟁에 대한 대비를 전혀 안한 것은 아니다.


외침을 걱정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았고, 그렇게 국가의 운명을 예측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이  부족하나마 국방의 주춧돌을 놓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벌어지기 불과 40여 년 전 무렵인 1555년을 전후해 판옥선이 개발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임란 해전 승리는 이미 전쟁 시작 40여 년 전 부터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對화력전

대화력전이란 적의 화력지원수단과 이를 지휘통제하는 모든 요소를 무력화시킴으로써 적의 화력지원 능력과 전투지속 능력 및 전의를 약화시키는 화력전투를 말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아군에게 위협을 가하는 적의 포병을 아군의 포병이 화력을 통해 제압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적의 포병과 아군의 포병 간에 숨 막히는 진검승부이다.

 

대화력전이란 포병 간의 숨막히는 진검승부이다. / 사진 : 록히드마틴

 

 

대응적 대화력전과 공세적대화력전

그렇다면 이런 진검승부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간접화력체계의 대표적인 무기체계로는 야포와 박격포 그리고 지대지 미사일등이 있는데, 이런 무기체계로 싸우는 것이 바로 화력전이다. 그리고 이런 화력전에 대응하는 것이 대화력전이 된다. 대화력전은 크게 대응적 대화력전과 공세적인 대화력전으로 구분된다.


쉽게 말하면 적군이 쏜 이후에 대응하는 것이 대응적 대화력전이고, 적군이 쏘기 전에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공격하는 것이 공세적인 대화력전이다. 하나씩 자세히 설명하자면 우선 대응적 대화력전이란 적의 사격 이후에 대포병레이더로 탐지하고, 지상 및 공중관측, 탄흔분석, 또는 특수부대의 관측 하에 적 포병을 공격하는 작전을 말한다. 반면 공세적 대화력전에서는 적의 포병이 공격을 하거나 전투에 영향을 미치기 이전에 적의 포병 및 관련 화력체계를 탐지하여 공격하게 된다. 따라서 공세적 대화력전은 전면전 발발시 적의 공격 개시를 사전에 차단하는 작전이 된다.

 

19-002,19-003 : 대화력전에서 적 포병을 탐지하는 대표적인 센서장비는 대포병레이더이다.
사진은 우리 군도 보유하고 있는 AN/TPQ-37(좌측)과 TPQ-36(우측) 대포병레이더이다. <사진 : 미 육군>

 

 

대화력전에 필요한 장비 - 센서(Sensor)와 슈터(Shooter)

대화력전의 장비는 센서(Sensor)와 슈터(Shooter)로 구성된다. 우선 목표를 탐지하는 눈과 귀가 되는 센서로는 대포병 레이더와 무인정찰기(UAV)가 있다. 그리고 목표물을 공격하는 주먹,  슈터로는 야포가 동원된다. 우리 군에서는 센서로는 대포병 레이더인 TPQ-36/37 레이더가 사용되며 무인정찰기인 UAV로는 ‘써처’와 군단급 무인기인 RQ-101이 있다. 한편 슈터로는 긴 사정거리와 방호성 및 기동성을 자랑하는 K-9 155mm 자주포와 짧은 시간 내에 강력한 화력을 원거리의 적에게 투사할 수 있는 대구경 다연장로켓인 MLRS가 있다.

 

대화력전에서 슈터의 역할은 자주포와 다연장로켓이 수행한다. 우리 군은 최신예 K-9을 필두로 K-55와 M110 자주포 등을 운용하고 있으며(좌측 사진: 김대영),
M270 MLRS 다연장로켓발사기(우측 사진: 미 육군)도 보유하고 있다

 

 

대화력전은 어떻게 수행되나? – 쏘고 빠지는 것이 핵심!

그렇다면 대화력전은 어떻게 수행되는가? 우선 가상의 상황을 그려보자. 적이 야포를 발사하면 날아가는 적의 포탄을 아군의 대포병 레이더가 탐지하여 정보를 지휘소에 제공한다. 그러면 지휘소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야포에 사격명령을 내린다. 사격명령을 받은 야포는 적의 야포가 위치한 곳에 사격을 개시한다. 상공에서 대기 중인 무인정찰기는 지휘소에 실시간으로 아군의 포탄이 낙하된 지역의 영상을 전송하여 사격결과를 판정하게 한다. 이후 사격이 유효하지 않다면 지휘부의 판단 아래 재차 사격을 개시한다.


사실 이렇게 본다면 대화력전은 단순한 군사작전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대화력전은 아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적군 또한 아군의 야포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대화력전을 실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인 때문에 슈터 역할을 하는 야포의 경우 'Shoot and Scoot' 즉 사격 후 신속한 진지변환이 포병의 생사여부를 결정짓는다.

 

 

대화력전에서는 공군의 역할도 중요

앞서 살펴보았듯이 대화력전이라면 야포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대화력전에 있어 야포와 함께 공군의 역할도 상당히 중요하다. 특히 육군의 장사정 간접화력무기인 155mm 자주포나 MLRS의 사거리는 40Km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 거리 이상의 목표물에 대해서는 공군의 근접항공지원(CAS) 없이는 처리하기 힘들다.

 

대화력전에서 공군의 역할도 중요하다. F-15E 스트라이크 이글(좌측 사진: 미 공군)
같은 대형 전투기에서 투하하는 유도폭탄이나 유도미사일은 지상의 강화진지를 초토화시킬 수 있다. (우측 사진: 미 해군)

 

 

과거의 근접항공지원은 지상항공통제관(G-FAC)이 항공기를 통제하여 표적에 유도하고 1,000 피트 이하의 저고도에서 대부분 무장을 투하하였다. 그러나 휴대용 방공무기의 사거리가 늘어나고 정확도가 높아짐에 따라 낮은 고도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은 이제는 자살행위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휴대용 방공무기들이 발전하는 동안 폭격기술도 현저히 발달했다. 항공기에서 투하하는 무장도 정밀유도화되어 이제는 중고도에서 무장을 투하하게 되고 이전 보다 높은 명중률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지상의 적군을 탐지/추적하는 목표지시포드도 발전되어 주야간에 상관없이 30,000 피트 상공에서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대화력전에는 공군 역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다연장로켓포

다수의 적을 소수로 제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아군보다 많은 적을 보고도 후퇴하지 않는 용기가 우선이겠지만, 용기 하나만으로 한 명이 수백 명을, 혹은 수천 명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다. 중과부적의 상황에서도 적군을 한 순간에 휩쓸어 버릴 수 있는 첨단 무기체계가 요구된다.

 

 

최초의 다연장 로켓 무기는 신기전

 

우리 선조들은 이미 1448년 이런 무기체계를 현실화시켰다. 바로 신기전(神機箭)이 그것이다. 신기전은 조선시대의 로켓추진화살로, 이미 고려시절 최무선에 의해 발명된 로켓병기인 주화(走火)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신기전은 크기와 형태에 따라 대신기전(大神機箭), 중신기전(中神機箭), 소신기전(小神機箭), 산화신기전(散火神機箭)으로 구분될 정도로 다양한 무기체계로 구성되었다. 신기전이야말로 세계 최초로 발명된 다연장 로켓 무기체계였다.

  

 

최초의 다연장 로켓 무기인 조선의 신기전의 복원 모습

 

 

북한의 방사포 = 소련계 다연장 로켓포

 

신기전과 같은 다연장 로켓 무기체계는 5백여 년 후인 제2차세계대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소련은 BM-13 카츄샤(Katyusha) 다연장 로켓을 1939년부터 실전 배치하여 독일군을 공포에 떨게 했다. 트럭에 로켓발사기를 14개에서 48개까지 장착하는 카츄사는 무려 12,000평의 면적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카츄사는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며, T-34 전차와 IL-2 슈트르모빅 대전차 공격기와 동시에 소련을 구한 3대 무기체계로 평가되었다. 이후 소련의 영향으로 수많은 동구권 국가들이 다연장 로켓을 화력지원의 핵심요소로 삼으면서 북한도 다양한 다연장 로켓 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이를 방사포라고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소련의 다연장 로켓 무기

북한의 방사포. 다연장 로켓 무기이다.

 

 

창에는 창으로, 다연장 로켓포에는 다연장 로켓포로

 

우리나라도 한국군 최초의 다연장 로켓무기인 ‘구룡’을 개발하였다. 130mm 로켓탄을 발사하는 K-136 구룡 다연장로켓포는 당시 북한이 다량 보유한 122mm 방사포에 대항하기 위해 국방과학연구소 주관으로 독자 개발되어 1981년부터 실전배치를 시작했다. 구룡의 성능은 전반적으로 북한의 122mm 방사포와 유사하며, 36발의 로켓을 장전하여 개량형 로켓탄을 사용하면 최대 36km까지 발사할 수 있다.

 

한편 북한은 122mm보다 사정거리가 증가된 대구경 240mm 방사포를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즉 240mm M-1985/M-1991 방사포를 3백여 문 이상 보유하면서 43km(M-1985)와 65km(M-1991)에 이르는 장거리 타격능력을 확보해왔다. 특히 1990년대 초반에 서부전선에 이들 방사포를 전진 배치하면서 “서울 불바다”와 같은 노골적인 협박을 하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카드를 꺼내든 북한에 대하여 우리 군의 대응은 시급한 일이었다. 북한의 240mm 방사포, 170mm 자주포 등을 사거리가 길다고 하여 ‘장사정포’라고 하는데, 이들 장사정포를 무력화하기 위한 대화력전 전력 가운데 가장 유효한 것이 주한미군이 일부 보유하던 M270 MLRS였다. 이에 따라 우리 군도 1998년부터 MLRS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개발된 구룡 다연장로켓포(K-136)

 

 

‘강철 비’를 뿌리는 미군의 다연장 로켓포, MLRS


MLRS의 가장 큰 장점은 넓은 지역을 순식간에 초토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대지 로켓 12발을 장전하는 MLRS의 화력은 155mm 이상 급의 곡사포 18발을 동시에 발사한 결과와 동등하다. MLRS에서 발사된 M26 로켓탄두는 644개의 M77 DPICM(이중목적고폭탄) 자탄을 포함하는데, 이것이 약 200x100m의 면적에서 분산하여 표적이 된 지역을 제압한다. 직감적으로 표현하자면 MLRS의 공격 한 번으로 축구장 3배의 면적이 초토화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미군에서는 MLRS를 일컬어 "사령관이 애용하는 산탄총(the commander's personal shotgun)"이라고 부르며, 영국군에서는 "격자지형 지우개(Grid Square Removal System)" 이라고 부른다.

 

MLRS의 또 다른 장점은 빠른 재장전 능력이다. 한 발 한 발 손으로 장전해야하는 구세대의 다연장 로켓과는 달리 MLRS는 3분 안에 재장전이 가능하다. 거기에 궤도식 차량 형태로 우수한 야지기동성을 확보하였을 뿐만 아니라, 최고시속 또한 64km에 달해 상당히 빠르다. 즉 MLRS는 일격에 넓은 지역에서 밀려드는 적을 섬멸하고 '빠른 발'을 바탕으로 일순간에 사격위치를 이동할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우수한 대포병능력을 갖춘 적이라도 '치고 빠지기'에 능한 MLRS를 요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미국의 대표적 다연장 로켓무기인 M270 MLRS

 

 

MLRS는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국이 230대, 영국이 16대를 파병하여, 최초로 실전에서 배치•운용되었다. MLRS는 당시 이라크군의 SA-2/3 지대공 미사일 발사기지 30곳 이상을 초토화 시켰으며 약 200대의 장갑차량을 파괴시켰다. MLRS의 이중목적고폭탄 공격을 받았던 이라크군은 이를 ‘강철비(Steel Rain)’라고 부르며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MLRS는 초기형인 M270과 개량형인 M270A1이 있는데, M270A1은 사격통제 시스템과 발사장치 매커니즘이 개량되어, 재장전 시간이 45% 줄어들고 발사까지의 시간은 16초(현재는 93초) 이내로 대폭 단축되었다. 또한 M270A1에서는 신형 M30/M31 GMLRS(Guided-Multiple Launch Rocket System) 로켓탄이 사용될 수 있다. GMLRS는 GPS 유도방식으로 매우 정확한 타격이 가능하여 ‘70km 저격탄환’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특히 200파운드(90kg)의 고폭약탄두를 장착한 M31 단일고폭탄은 강화진지에 대해 유용한 공격을 할 수 있어서 미군은 2019년까지 3만3천 발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제일 강한 화력은 에이테킴스 

 

여기에 더하여 MLRS에게는 또 다른 숨겨둔 펀치가 있다. 바로 ATACMS(Army Tactical Missile System 육군전술미사일체계, 에이타킴스, 에이테킴스)라는 미사일이다. ATACMS는 원래 증원되는 소련군 기갑부대를 원거리에서 제압하기 위해 전술핵미사일로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1991년 전술핵 전면폐기조치에 따라 재래식 중거리 유도무기로 다시 태어난 미사일이다. 원래 목표가 전술핵 미사일이었던 만큼 ATACMS는 대형 표적 및 종심 표적을 타격하는 시스템으로 완성되었다.

 

우리 군이 사용하는 ATACMS는 MGM-140 블록1과 블록1A의 2가지 종류이다. MGM-140A ATACMS 블록1 미사일은 내부에 텅스텐 합금재질의 M74 자탄을 약 950개 수납하고, 최대 165km까지 공격할 수 있다. 블록1은 1천 개에 가까운 자탄을 비산시켜 축구장 4개 크기의 면적에 걸쳐 적 병력과 경장갑 표적을 제압하는 가공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편 MGM-140B 블록1A는 자탄의 수를 300여 개로 줄인 대신 사거리를 300km로 연장시킨 개량형 미사일로, GPS 및 관성항법장치의 개량으로 정밀사격이 가능하다. 유사한 모델로는 MGM-168 ATACMS 블록4A가 있다. 블록4A는 M74 자탄 대신에 500파운드(227kg)의 WDB-18/B 단일고폭탄을 장착하여 사거리는 블록1A와 유사한 300km이다.


MLRS에서 발사되는 ATACMS 미사일

 

 

한국형 MLRS를 기다리며


MLRS는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귀중한 전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런 무기체계가 국산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MLRS의 대당가격이 57억 원 가량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게다가 북한의 240mm 방사포에 대항할 전력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래서, 2013년까지 230mm급 차기 다연장 로켓포를 국내 개발하게 되었다. 차기 다연장 로켓은 군단급 부대에 배치된다. 북한의 야포 발사를 탐지하는 대(對)포병레이더와 연동되어 대포병레이더가 제공한 적의 위치에 대하여 즉각적이고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다. 차기 다연장 로켓 사업은 한창 진행 중이다. 우리 육군이 드디어 21세기형 신기전을 보유하게 될 날을 다시 한 번 기대해본다.

스마트폭탄

바보가 한 순간에 천재가 된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지금부터 소개할 스마트폭탄의 세계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일반적인 범용폭탄에 몇 가지 유도키트만 달아주면 폭탄은 그야 말로 바보에서 천재가 되어 정확하게 목표를 타격한다. 이전까지의 범용폭탄은 중력과 바람에 따라 떨어질 곳이 정해졌다. 결국 정확도가 떨어져서 무차별적으로 투하될 수밖에 없었고, 목표물에 명중되기까지 여러 번의 공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현대전에 쓰이는 정확한 스마트폭탄은 목표물을 한번에 정확하게 제거한다.

 

놀라운 정확도로 명중하는 스마트 폭탄

 

 

스마트폭탄 전장을 변화시키다

스마트폭탄은 지난 1991년 걸프전에서 전쟁 상황이 실시간으로 TV 방송을 통해 보도되면서 그 위력을 대중에 유감없이 선보였다. 특히 걸프전에서는 새로운 작전 개념으로 동시에 대규모 목표를 타격하는 방식을 적용하여 150여 개의 표적을 24시간 이내에 공격하였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때에 B-17과 B-24 같은 대형 폭격기로 유럽을 1942년과 1943년에 공격하기로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은 표적을 단 하루 만에 공격한 것이다. 하지만 걸프전에서 사용된 스마트폭탄은 전체 폭탄의 8%에 불과했다. 반면 2003년의 이라크전에서 사용된 스마트폭탄은 전체 폭탄의 68%로 대폭 늘어났다. 스마트폭탄의 사용량에 비례하듯 이라크의 정규작전은 '충격과 공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불과 1달여 만에 끝나고 말았다.

 


스마트폭탄의 원조는 독일

걸프전과 이라크전을 통해 스마트폭탄이 미군에 의해 대량 사용되면서 스마트폭탄이 미국에 의해 개발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스마트폭탄의 원조는 독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개발한 중장갑 목표 타격용 프리츠-X(Fritz-X)가 역사상 최초의 스마트폭탄이었다.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공군 루프트바페는 이동 중인 함정에 대한 폭격이 일반적인 범용폭탄으로는 힘들자 스마트폭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프리츠-X는 길이 3.3m 무게 1.4톤의 초강력 폭탄에 폭 1.4m의 날개, 조절판, 꼬리날개, 유도 장치와 점광 신호기 등으로 구성된다. 폭탄의 유도과정은 폭격기에 탑승한 승무원이 점광 신호기로 폭탄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라디오 원격 조정으로 낙하 궤도를 수정해 목표물에 폭탄을 명중시킨다. 1938년부터 개발이 시작된 프리츠-X는 1943년 7월 21일에 실전 배치 되었다. 프리츠-X를 이용한 폭격은 8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이탈리아 시실리 항구와 메디나 해협의 연합군 목표물에 대한 폭격이 감행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9월 9일 단 세 발의 프리츠-X가 이탈리아 해군의 만재 배수량 4만 5천 톤의 최신형 전함 비토리오 베네토급 3척 중 1척을 침몰시키고 다른 1척을 항행 불능에 빠뜨리면서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 스마트폭탄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다.

 

스마트폭탄의 원조인 프리츠-X

스마트 폭탄의 가치가 입증된 것은 베트남전이다.

 

 

레이저 유도 폭탄, 페이브웨이의 등장

스마트 폭탄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지만 실전에서 스마트 폭탄의 가치를 입증한 전쟁은 베트남전이다. 베트남전 당시 1965년부터 4년 동안 연 600대의 전투기와 폭격기가 범용폭탄으로 폭격하고도 파괴시키지 못한 중요 목표를 단 한 차례의 폭탄으로 파괴시킨 사건이 발생한다. 그 목표는 북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90Km 떨어진 탄호아 철교이며, 이때 사용된 폭탄이 바로 스마트 폭탄, 레이저유도폭탄이었다. 레이저유도폭탄에 대한 개발은 1964년 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사가 시작했다.

 

레이저유도폭탄들은 1968년부터 베트남전에서 운용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6년 동안 레이저유도폭탄은 TV유도폭탄과 함께 2만 5000여 발이 사용되어 1만 8000여 개의 목표물을 파괴하였다. 레이저유도폭탄은 범용폭탄에 레이저유도키트를 장착해 완성하게 된다. 장착되는 레이저유도키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미국 레이시언사와 록히드 마틴사가 생산한 페이브웨이 키트이다. 페이브웨이(Paveway)라는 명칭은 레이저유도폭탄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명에서 유래된다.

 

레이저유도폭탄이 목표물에 유도되는 원리는 이렇다. 전투기나 지상군이 목표물에 레이저빔을 비추면 전투기 조종사가 목표 근처 상공에서 레이저유도폭탄을 투하하고, 낙하 중인 폭탄이 목표물에 반사된 레이저 빔을 감지하여 목표를 따라가 명중하는 것이다. 1960년대에 처음 실전에 투입된 페이브웨이 시리즈는 페이브웨이Ⅰ이다. 이후 1973년부터 미 공군에 실전 배치된 레이저유도폭탄은 페이브웨이Ⅱ 시리즈이다. 페이브웨이Ⅱ는 항공기 탑재를 용이하게 개량되었고 전개식 핀이 장착되어 사정거리가 증대되었다. 1986년부터 배치된 페이브웨이Ⅲ 시리즈는 최종 단계인 레이저 유도 이전 중간 단계에 디지털 자동조종장치를 사용하는 2단계 유도방식과 대형 핀을 사용해 보다 저고도에서 원거리 투하가 가능하도록 키트가 개발되었다. 

 

대표적인 레이저 유도 스마트폭탄, 페이브웨이III

페이브웨이 Ⅲ의 레이저 탐색기

 

 

GPS 유도폭탄 제이담의 등장

앞서 살펴본 레이저유도폭탄은 목표의 2~3m 이내에 명중할 정도로 정확했지만 레이저를 비춰야 되므로 시각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했다. 또한 악천후 상황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할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지난 1999년 나토의 유고연방 공습작전인 연합군 작전 때의 경우 산악 지형의 특성으로 인해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종종 목표물 상공에 심하게 안개가 끼거나 낮게 구름이 깔리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때 공중에서 투하된 레이저유도폭탄은 반사된 레이저빔을 찾지 못해 폭탄 투하가 불가능하거나 혹은 목표물이 아닌 다른 곳에 유도되어 오폭사고가 발생하였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 이후 레이저유도폭탄의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의 스마트폭탄을 찾게 되는데 GPS유도폭탄이 그것이었다.

 

최초의 GPS유도폭탄은 1992년부터 미국의 노스럽 그루먼사에 의해 생산된 GPS지원폭탄 갬(GAM, GPS-Aided Munition)이었다. 갬도 키트형식으로 개발되었으며, B-2 폭격기용으로 특별히 제작된 것이다. GBU-36/B와 GBU-37/B로 분류되는데 극히 소량만이 생산되어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에서 전량 사용되었다. 이후 본격적인 GPS유도폭탄이 선보이게 되는데 바로 JDAM(제이담)이다.  합동직격탄(Joint Direct Attack Munition)의 약자인 제이담은 1996년부터 미국의 보잉사에 의해 생산되었다. 앞서 살펴본 페이브웨이와 같은 키트형식으로 GPS와 INS(관성항법장치)가 내장되어 있으며, 날개 부분에 방향조정용 플랩이 붙어 있다. 키트는 범용폭탄 후미에 장착되어 폭탄을 정밀유도한다. 제이담의 사거리는 28㎞로, 고도 14,000m에서 제이담을 투하했을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제이담은 GPS 위성의 정보를 받아 목표물까지 정확하게 폭탄을 유도한다. 만일 적의 전파방해로 인해 GPS 위성의 정보를 받을 수 없으면 INS를 사용하여 유도한다. 그러나 GPS 유도 시 13m였던 오차가 30m로 커지게 되는 단점이 있다.

 

제이담은 키트형식으로 일반 폭탄에 부착된다.

제이담의 가장 큰 장점은 기후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개발 중인 한국형 스마트폭탄 KGGB


국내에서는 미래에 변화하는 전장에 대비하고자 공군을 중심으로 한국형 GPS유도폭탄 즉 KGGB가 개발 중에 있다. KGGB는 앞서 설명한 페이브웨이나 제이담과 같은 키트 형식으로 GPS유도방식을 사용한다. 같은 GPS유도방식을 사용하는 제이담과 달리 KGGB는 활공형 유도키트로 글라이더 날개가 달려 있어, 제이담의 28Km의 사정거리에 비해 장착되는 폭탄의 종류와 투하 고도에 따라 74Km~111Km까지 사정거리를 늘릴 수 있다. KGGB를 장착한 폭탄은 투하 후 유도키트에 입력된 표적으로 비행하게 되지만 경우에 따라 비행도중 목표물의 변경도 가능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점은 KGGB는 기존의 스마트폭탄과 달리 구형 전투기인 F-4와 F-5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기존의 GPS유도폭탄인 제이담의 경우 운용을 하려면 F-16과 같은 비교적 신형의 전투기라도 성능개량을 통해 항공전자체계와 인터페이스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운용이 불가능하다. 이에 비해 KGGB는 조종사가 휴대하는 자료입력단말기를 통해 공격에 필요한 각종 자료를 입력 받는다. 조종사가 폭탄유도에 필요한 목표물의 좌표 선회지점 등을 무릎 위의 자료입력단말기에 입력하면 무선으로 직접 유도키트에 전달되어 투하 준비가 완료된다. KGGB와 유사한 체계로는 미국 록히드 마틴사의 롱샷키트가 있으며 지난 1989년부터 개발해 운용 중에 있다. KGGB는 현재 한참 개발이 진행 중에 있으며 2013~2014년에 실전배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KGGB는 2013~2014년에 실전배치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사진: 국방일보>

 

따발총과 M1개런드

대당 1000억 원이 넘는 고성능 전투기가 수백 킬로미터를 단숨에 날아가 발당 수 억이 넘는 미사일로 표적을 정확히 파괴시킬 수 있는 21세기에도 수십만 원짜리 소총으로 무장한 보병은 여전히 전쟁에서 꼭 필요한 존재로 대접 받는다. 표적을 파괴하는 것은 첨단무기만으로도 가능하지만, 목표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는 일은 여전히 보병의 영역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도 그 어떤 전쟁보다 보병의 비중이 컸던 전쟁 중 하나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고 산이 많은 한반도의 지형적 특성은 그만큼 보병이 활약할만한 공간을 많이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따발총? 다발총?  PPSh-41!


6.25 전쟁에 참전했던 국군 노병들의 회고담에서부터 30여 년 전 수많은 시청자들을 흑백 브라운관 TV 앞에 불러 모았던 드라마 ‘전우’에 이르기까지 북한군 보병의 휴대 무기를 묘사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총이 속칭 ‘따발총’이다.

 

구 소련의 PPSh-41 기관단총. 6·25 당시 북한군 보병사단은 흔히 ‘따발총’이라 불리는 이 기관단총을 2,100여 정 정도씩 보유했다.
현재 국내의 각종 안보 기념관에 20정 이상이 남아있다.

 

 

‘따발총’의 정체는 다름 아닌 PPSh-41라는 구 소련제 기관단총(Submachine Gun)이다. PPSh-41은 다른 소련 무기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간단한 구조로 대량생산에 용이해 제2차 세계대전 중 수백 만 정이 생산됐을 만큼 소련군의 베스트셀러 기관단총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북한군 보병의 주력 무기처럼 흔하게 등장하지만 실제로 북한군 보병의 주력 총기는 아니었다. 6.25 개전 초반을 기준으로 약 1만여 명 내외로 구성된 북한군 보병사단에서 권총만 휴대한 장교들이 1300여 명, 보병소총은 5900여 명, 기병소총은 2150여 명, ‘따발총’은 2100여 명의 병력이 휴대했다. 이처럼 ‘따발총’의 보유 비율이 높지 않았음에도 주력 소총보다 더 널리 알려진 이유는 그만큼 무척이나 인상적인 무기였기 때문이다.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도 PPSh-41처럼 탄창에 무려 71발의 총알이 들어가는 소총이나 기관단총은 흔하지 않다. 71발이라면 짧은 교전에서는 탄창 교환 없이도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수량이다.

 

또한 북한군에는 사단 자동총중대 등 장교를 제외한 중대 전투원 전원이 PPSh-41로 무장한 별도의 부대가 존재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연대 정찰 소대 등 일선에서 작전하는 부대일수록 PPSh-41의 무장 비율이 높았던 점도 국군 노병들의 머릿속에 PPSh-41의 기억이 강하게 남은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전쟁 당시 국군 공식 문서에는 여러 발을 연속해서 쏠 수 있다는 의미로 ‘다발총(多發銃)’이라고 표기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따발총’의 ‘따발’은 ‘다발’(多發)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PPSh-41 기관단총에서 총알이 들어있는 원형의 드럼 탄창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머리에 짐을 얹을 때 사용하는 ‘또아리’의 함경도 사투리가 ‘따발’인데, 둥글게 생긴 드럼 탄창이 ‘따발’처럼 보여서 ‘따발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것이다.
 


북한군의 주력 소총 M1891/30 모신-나강


너무도 유명한 ‘따발총’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실제 6.25 당시 북한군의 주력 소총은 M1891/30 모신-나강이었다. 6.25 당시 북한군 흑백 사진 속에 총검을 달면 사람 어깨 높이만큼이나 길어 보이는 소총이 바로 M1891/30이다. 제식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M1891은 제정 러시아 시절인 1891년에 처음으로 개발된 소총이다. 러시아군 장교였던 세르게이 모신이 개발한 소총에 벨기에의 총기 설계자였던 나강이 제안한 장전 방식을 결합한 이 소총은 간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잔고장이 없고 신뢰성이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제정 러시아 시절인 1891년에 처음 개발된 M1891 모신-나강 소총은 제1·2차 세계대전까지 소련군의 주력 소총이었고,
6·25 당시에도 북한군의 주력 소총이었다.

 

 

러시아를 계승한 소련은 1930년 M1891 보병총의 총열 길이를 80.2cm에서 73cm로 줄이고, 조준기를 신형으로 교체했다. 이 개량형이 바로 M1891/30이다. M1891은 이밖에도 여러 가지 개량형 모델이 많지만 작동방식이 볼트액션식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볼트액션식 소총이란 사격을 한 후 손으로 장전손잡이를 당겨 노리쇠를 움직여 탄피를 배출해야만 다음 탄환을 쏠 수 있는 구조의 총을 의미한다. 북한군이나 2차대전 당시 소련군이 PPSh-41 같은 기관단총을 대량으로 운용한 이유도 바로 주력 소총인 M1891이 연속 반자동 사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국군의 주력소총 M1 개런드

“처음 지급받은 M1 소총을 받아 보니 너무 무거웠어요. 이걸 가지고 다니면서 어떻게 싸우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같은 M1 개런드 소총의 무거운 무게에 대한 불만은 6.25 전쟁에 참전했던 국군 노병들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레퍼토리 중의 하나다. 하지만 M1개런드 소총의 무게 4.3kg은 당시 다른 나라의 주력 소총에 비해 특별히 더 심하게 무거웠던 것은 아니다. 4kg가 넘는 소총이 흔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M1개런드 소총은 미국 스프링필드 병기창의 민간인 기술 책임자인 존 켄티우스 개런드에 의해 1936년 개발됐다. M1 개런드 소총은 군에서 주력으로 사용한 제식 소총 중 최초의 반자동 소총이라는 점에서 소총 역사에서 특기할만한 존재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기준으로 다른 나라에도 반자동 소총은 있었지만 M1개런드처럼 제식 소총으로 대량 보급된 사례는 거의 없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주력 제식 소총이자, 6·25 당시 국군의 주력 소총이었던 M1 개런드 소총. 흔히 ‘M1 소총’이라고 부른다.
소총 밑에 탄환 8발이 묶인 클립 3개가 보인다. <출처: (cc) Curiosandrelics at Wikipedia.org>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99식 소총, 소련의 M1891 모신-나강 소총 등은 모두 볼트 액션 방식이었다. 이 방식의 소총은 탄환 1발을 사격한 후 노리쇠를 수동으로 후퇴시켜 탄피를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M1 같은 반자동식 소총은 사격 후 자동으로 탄피가 배출되어 방아쇠만 당기면 다음 탄환을 사격할 수 있다. 6.25 당시 북한군의 주력 소총도 볼트액션식의 M1891/30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자동식이었던 M1개런드는 나름 그 시기에는 고성능의 소총이었던 셈이다. 1949년 7월 당시 우리 군이 보유한 M1 개런드 소총의 총량은 4만2636정이었다. 6·25전쟁 중 한국군의 병력 규모가 꾸준히 늘어났지만 미군이 47만여 정을 추가로 제공, 전쟁 내내 국군 주력 소총의 자리를 지켰다.

 


가벼움의 미학, 카빈 소총


카빈 소총은 1930년대 후반 전투부대 요원이 아닌 전투 지원·전투 근무 지원 부대용으로 주로 지급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카빈의 무게는 2.49kg이고 길이도 90.37cm로 M1개런드 소총보다 20cm 정도 짧다. 이런 짧은 길이와 무게 덕에 휴대성이 좋아 큰 인기를 끌었다. 카빈소총의 카빈(carbine)은 원래 특정 소총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기병용 소총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는 소총을 보병총과 기병총(카빈)으로 구별, 제작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애당초 보병총과 기병총을 별도로 제작하기도 했고 혹은 발사 장치는 동일한 구조를 가진 소총을 길이만 다르게 제작해 구분하는 경우도 흔했다. 20세기 이후부터 전장에서 말을 타는 기병이 점차 사라졌지만 일반 소총보다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총은 여전히 기병총이라고 부른다. 굳이 분류하자면 M1개런드 소총은 보병총, 카빈은 기병총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카빈소총’이라고 부르는, 미군 카빈(=기병용) 소총의 대표적 모델인 M1 반자동식 소총

 

 

흔히 ‘카빈소총’으로만 부르지만 원래 미국의 카빈소총은 M1·M1A1·M2·M3 등 네 종류가 있다. ‘M1카빈’이 표준형으로 반자동식이다. M1A1은 개머리판이 접혀지는 접철식인 점이 다르고, M2는 연발 사격이 가능한 자동식 소총이다. 카빈과 M1개런드 소총은 구경(7.62mm)은 동일하지만 화력 차이는 컸다. M1 개런드 소총용 탄환의 탄피 길이는 63mm이지만 카빈 소총용은 33mm에 불과하다. 총구 에너지도 뚜렷하게 차이가 나서 카빈용 탄환이 1074줄(J)로 M1개런드 소총탄 3663줄의 3분의 1에 불과해 전형적인 소총보다는 기관단총에 가까운 특성을 지녔다. 카빈은 ‘가벼움의 미학’을 가진 총이었지만 탄환 자체의 에너지가 M1 개런드 소총의 3분의 1에 불과하므로 사거리도 짧고 관통력도 떨어지는 것이 약점이었다.

 

SR-71과 U-2

‘역사상 가장 빠른 제트기’, ‘ 총탄보다 빠른 마하 3의 정찰기’ 미국의 전략 정찰기 SR-71 앞에 항상 따라 붙는 수식어다.  기체가 온통 검은색이어서 ‘블랙 버드(Black Bird)’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SR-71은 1950년대 개발됐고 이제는 퇴역한 항공기이지만 주로 1970년대 세운 신기록들이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어 전설로 남아 있다. 1974년 9월 SR-71A는 런던에서 로스엔젤레스까지 1시간 54분만에 비행, 평균 시속 1,435마일이라는 비행기록을 세웠고 1976년 7월에는 8만 5000 피트(약 25.9km)의 순항고도 기록을 세웠다.

 


역사상 가장 빠르고 높게 나는 제트기, SR-71


8만 5천 피트(약 25.9km)의 고공에서 음속의 3.3배에 달하는 마하 3.3의 순항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제트기는 지금까지 SR-71이 유일하다. SR-71보다 빠른 항공기로는 실험기인 X-15(시속 4000마일 기록)가 있지만 이는 로켓엔진에 의해 비행했기 때문에 제트 엔진인 SR-71과 다르다. 구소련의 전투기 MIG-25가 마하 3의 전투기로 유명했지만 불과 몇 분 동안만 마하 3의 초고속으로 비행할 수 있었다.
 
SR-71은 50여 년 전인 1950년대 중반 개발이 시작돼 1960년대 중반 실전배치됐다.  왜, 그리고 어떻게 약 50년 전에 이렇게 놀라운 항공기가 만들어졌을까. 1950년대 중반 미 공군과 CIA는 U-2 정찰기를 대체, 적 방공망을 피해 더 높이 그리고 더 빨리 비행할 수 있는 항공기를 원했다. 1955년에 등장한 U-2정찰기는 구 소련의 요격기들이 상승할 수 있는 고도보다 높이 비행해 소련 영공을 드나들며 정찰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구 소련의 대공미사일이 급속히 발전, 1950년대 후반이면 U-2를 격추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가장 빠르고 높이 나는 제트기, SR-71

 

 

신형 항공기 개발은 ‘OXCART 프로젝트’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 프로젝트는 U-2 개발로 유명한 미 록히드사의 전설적인 극비 프로젝트팀 ‘스컹크 웤스(Skunk Works)’팀이 맡았다. 1960년5월 U-2기가 구 소련의 대공미사일에 격추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신형 정찰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OXCART 프로젝트’를 통해 등장한 SR-71의 요구성능은 순항속도 마하 3.29에 운용고도 9만 피트라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마하 3 이상의 고속비행에서는 대기와의 마찰열 때문에 기체 표면온도가 260도 이상으로 상승하고 엔진 배기부는 1000도 이상까지 올라간다.  일반 항공기 소재는 이러한 온도에서 견딜 수 없기 때문에 SR-71은 기체의 대부분이 타이타늄으로 제작됐다.  기체 표면에는 적 레이더 전파를 흡수하고 표면 마찰온도를 낮추기 위해 특수 검정 페인트가 칠해졌다.

 

마하 3의 초고속에서 작동할 수 있는 특수 신형엔진의 개발도 추진돼 기존 터보제트 엔진 구조를 활용, 추력을 극대화시킨 프랫 & 휘트니의 J-58 터보램제트 엔진이 쌍발로 탑재됐다.  SR-71은 빠른 속도만큼 놀라운 정찰능력을 자랑했다. 8만 피트(약 24km) 고공에서 시간당 10만 평방 마일의 지구 표면을 정찰할 수 있었다. 탑재된 카메라를 통해 8만 피트 상공에서 골프장의 골프공을 촬영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광학 정찰장비외에 전자정보 수집장비(ELINT), 적외선 정찰장비 등을 탑재해 임무에 맞게 사용했다. 


SR-71은 총 31대가 생산됐으며 미 공군ㆍ해군 및 나사에서 운용됐으나 사고로 인해 총 12대를 잃었다.  1990년 높은 유지비용과 정찰위성의 발달로 26년간의 정찰임무를 마치고 퇴역했다가 95년부터 97년까지 일시적으로 2대가 작전에 복귀했지만 결국 SR-71 프로그램은 1998년 완전 폐기됐다. SR-71은 1960~80년대 한반도 긴장사태 발생시에도 수시로 출동해 정찰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1년8월 북한은 서해상을 비행중이던 SR-71을 향해 SA-2 대공미사일을 발사했으나 SR-71의 빠른 속도와 높은 고도 때문에 명중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도 최일선에서 활약하는 정찰기 U-2


SR-71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정찰기는 U-2다.  SR-71에 앞서 개발됐지만 5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최일선에서 활약하는 장수 항공기다.  2010년 11월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대북 정보감시태세 ‘워치콘’이 격상됨에 따라 더욱 바빠진 항공기가 주한미군의 U-2 정찰기다. 오산기지에서 출동하는 U-2 정찰기는 매일 한차례 비무장지대(DMZ) 인근 상공을 비행하면서 북한군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 U-2기는 원래 고도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개발된 전략 정찰기다.  적군 병력이나 장비의 배치, 이동상황 등을 정찰하는 전술정찰보다는 적국의 전략무기 배치상황, 군수산업 능력 등을 파악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이 때문에 U-2가 개발자금을 댄 것도 미 공군이 아니라 미 CIA였다.  SR-71처럼 미 록히드사의 ‘스컹크 웤스’팀이 개발에 참여했다.

 

U-2기는 1955년 8월 첫 비행을 한 뒤 이듬해부터 동유럽과 구 소련 영공 내에서 정찰비행을 시작했다. 보통 7만 피트(21km) 이상의 고공을 비행했으며 당시 요격전투기나 지대공 미사일이 도달할 수 없는 고도여서 적대국 상공에 직접 날아들어가 정찰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U-2기 천하’는 오래가지 못했다. 1960년 5월 1일 프란시스 게리 파워즈가 조종한 U-2가 소련의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면서 큰 파문이 일었던 것이다.

 

50년 이상 최일선에서 활약하는 U-2 정찰기

U-2의 조종사는 우주복과 비슷한 비행복을 착용한다.

 

그뒤 소련 상공 비행은 전면 중단됐지만 쿠바ㆍ중국ㆍ베트남ㆍ북한ㆍ중동 국가 등을 상대로 한 정찰비행은 계속됐다.  중국 본토 정찰은 대만 공군 조종사에 의해 실시됐는데 일부 U-2기가 중국 대공미사일에 의해 격추됐고 그 잔해들이 지금도 중국에서 전시되고 있다. U-2는 1962년 10월 쿠바 위기 사태 때 소련 중거리 탄도 미사일의 쿠바 배치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 사진을 촬영해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 공군은 현재 운용 중인 U-2기를 2012년까지 퇴역시키고 장거리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 호크’로 대체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럴 경우 U-2기는 마지막 유인 전략정찰기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전망이다.

 

 

전략 정찰기 RC-135

전략 정찰기 RC-135

 

 

U-2기와 함께 한반도 안보상황과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미국 전략 정찰기는 RC-135다.  RC-135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RC-135S ‘코브라 볼’은 북한 대포동2호 발사 등 북한 미사일 시험이 있을 때마다 동해상에 출동해 북 미사일의 궤적 등을 추적한다. RC-135V/W ‘리벳 조인트’는 북한군 교신 등 신호 및 통신정보를 주로 수집한다.

B-52 폭격기

전장에서 가장 위협적인 무기는 바로 폭탄이다. 이런 폭탄을 적에게 보내기 위해, 사람들은 포탄을 개발하였고, 아니면 폭탄을 짊어지고 적진에 설치한 후에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폭탄을 짊어지고 적진으로 돌격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포탄이 날아가는 거리도 한정되어 있었다. 누군가 날아가서 머리 위에서 폭탄을 떨어뜨린다면 가장 훌륭한 공격의 수단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비행기가 등장하자 군에서 해야 할 일은 명백했다. 적의 머리 위로 날아가서는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폭격기가 등장했다.

 

 

폭격기 - 적의 머리 위에서 폭탄을 떨어뜨린다

폭격기란 지상과 해상의 목표물에 대하여 폭탄이나 미사일을 투하하는 군용항공기를 말한다. 폭격기는 전투기의 등장과 함께 1차 대전 당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발전이라고 하지만 기구에서 비행기로 바뀌었을 뿐, 수류탄이나 박격포탄과 같은 조그만 폭탄을 항공기로부터 직접 손으로 던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2차 세계대전이 다가오면서 폭격이 중요한 전투형태로 부각되었으며, 전략폭격을 위한 다양한 폭격기들이 등장했다. 일례로 영국 폭격기편대는 2차 대전이 벌어지는 6년간 약 20만회를 출격하여 95만톤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다. 그리고 심지어 폭격기는 전쟁을 종결시키기도 했다. 당시 미군 최강의 전략폭격기였던 B-29는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함으로써 ‘2차 대전의 종결자’가 되었다.

 

B-52는 미 공군이 보유한 가장 강력하고도 효율적인 장거리 폭격기이다.

 

 

B-52, 덩치 큰 못난이 뚱보

이런 폭격기의 역사에 가장 큰 방점을 찍은 것이 바로 미 공군의 B-52이다. B-52 스트래토포트리스(Strato Fortress)는 미군에서 가장 오래 운용해온 기종이다. 1952년 초도비행을 한 이후에 거의 60년 가량 비행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된 대수만 해도 744대에 이른다. 그런 이유로 B-52는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아들이 대를 이어 타는 폭격기로 유명해졌다. B-52는 최대 27톤 이상의 폭탄을 싣고 6,400km 이상을 날아가서는 폭격하고 돌아올 수 있다. 무려 8개의 엔진이 달린 83톤짜리 대형 폭격기인 B-52는 출력, 항속거리, 이륙중량이라는 3가지 측면에서 당대 최고를 기록한 역사의 산물이다. 무려 1,000km에 이르는 속력으로 B-52는 개발 당시에는 전투기들조차 쫓아오기 힘들었고, 공중급유장치가 장착되면서 거의 무한정으로 계속 비행할 수 있었다. 이런 단순함으로 인하여 B-52 폭격기는 ‘스트래토포트리스’라는 정식명칭보다 ‘BUFF(버프)’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BUFF는 ‘덩치 큰 못난이 뚱보친구 (Big Ugly Fat Fellow)’라는 의미이다.

 

1952년의 초도 비행을 한 YB-52 프로토타입 기체

B-52는 냉전 초기 핵폭탄을 탑재하고 북극 상공을 비행하던 비밀무기였다.

 

 

시대에 따라 임무도 각각

B-52는 미 전략공군사령부(Strategic Air Command)에 소속되어 핵공격임무를 수행했다. 이런 B-52들은 24시간 북극의 상공을 비행하면서 소련이 핵공격을 가할 때에 보복타격이 가능하도록 언제나 초계비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베트남에 미군이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핵폭격을 전담하던 B-52는 재래식 폭격임무까지 수행하게 되었다. B-52D형의 경우 기체개수작업을 통하여 무려 108발의 폭탄을 탑재하게 되면서 융단폭격이 가능해졌다. 특히 B-52 폭격기 편대는 라인베커II 작전(미군이  1972년 12월 북베트남에서 수행한 대규모 공습 작전)에서 729회를 비행하면서 무려 1만5천 톤 이상의 폭탄을 쏟아 부었다. 심지어는 이 작전에서 B-52 폭격기들은 방어용인 후방의 50구경 4연장 기관총으로 2대의 MiG-21 전투기를 격추시키면서 공대공 격추기록까지 세우기도 했다.

 

B-52는 베트남전에서 재래식 폭탄을 투하하며 융단폭격의 대명사로 자리잡는다.

B-52는 걸프전부터는 순항미사일 등 정밀유도무기체계의 플랫폼으로도 사용된다.

 

 

베트남전 이후에 B-52는 다시 핵폭탄을 투하하는 핵전쟁의 주역으로 활약하다가 수난을 맞이한다. 전략무기감축협정에 따라 무려 365대의 B-52 폭격기가 해체되어야만 했다. 한편 걸프전 당시에도 B-52는 두드러진 활약을 했다. ‘사막의 폭풍’ 작전 기간 동안 미 공군에 남아있던 B-52 80여대가 동원되어 1,600여 회의 비행하며, 2만5천 톤의 폭탄을 투하했는데, 이것은 다국적군이 투하한 폭탄 가운데 약 40%에 해당한다. 또한 B-52G 7대가 미국 본토로부터 무려 35시간을 비행하여 AGM-86C 순항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당시 최장의 전투비행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B-52는 이라크군의 공항과 도로를 폭격하면서 300피트까지 고도를 낮추면서 폭격을 하기도 했다.

 

 

2040년까지 현역


21세기에 들어서는 현역에서 물러날 듯 했던 B-52는 다시 일선의 부름을 받았다.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미군이 아프간으로 파견된 것이다. 특히 B-52 폭격기는 적의 지하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2000파운드(약 1톤) 폭탄을 최대 24발까지 탑재할 수 있었고,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F/A-18들과는 달리 오랜 시간 체공하면서 지상의 특수부대가 지정한 목표에 대하여 정밀타격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B-52는 21세기 전쟁에서도 줄기차게 활약하고 있다.

 

 

대테러전쟁을 맞이하여 B-52는 근접항공지원을 위해 초계비행이 가능한 ‘하늘 위의 정밀포병’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아프간 전쟁초기에 투하된 전체 폭탄 가운데 72%가 겨우 18대의 항공기(B-52 10대와 B-1 8대)에서 투하되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B-52가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이 충분히 입증될 것이다. 미군은 여전히 B-52를 애용하고 있고 최소한 2040년까지는 사용하고 싶어한다. B-52와 B-1을 대체할 차세대 폭격기는 아직도 실전배치까지는 요원한 현실이다. 게다가 B-52만큼 효율적이면서 운용비용이 저렴한 기체도 드물기 때문이다.

스커드미사일

스커드(Scud)는 냉전시절 구소련에 의해 개발되어 제3세계 많은 국가에 판매된 탄도 미사일이다. 걸프전 당시 텔레비전을 통해 스커드 탄도 미사일에 의한 피해가 전 세계에 생중계되면서 맞수였던 패트리어트와 함께 스커드는 걸프전의 스타로 등장하게 된다. 이후 미국에서는 서방에서 개발하지 않은 모든 탄도 미사일을 스커드로 부르기도 한다.

 

 

‘스커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미사일

사실 스커드란 이름은 스커드를 개발한 구소련이 명명한 이름은 아니다. 스커드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에서 명명한 일종의 코드네임이다. 구소련이 개발한 R-11 탄도 미사일을 NATO에서 'SS-1B 스커드A'(사정거리 180Km)라고 부르면서 처음 스커드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R-11 탄도 미사일은 마카예브 설계국(Makeyev OKE)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1957년에 구소련군에 실전 배치되었다. R-11 탄도 미사일의 가장 발전된 부분은 로켓 엔진이다. R-11 탄도 미사일의 로켓 엔진은 V-2 탄도 미사일의 다중실(Multi-Chamber)구조보다 훨씬 단순하며, 진동방지장치를 채용하여 이후 구소련 우주 로켓엔진 발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스커드란 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 명명한 코드네임이고, 스커드 초기형의 원래 이름은 R-11이다.
<출처: 미국방성>

스커드(R-11) 탄도 미사일의 로켓 엔진은 구소련 우주 로켓엔진 발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출처: (cc) Radomil at Wikipedia.com>

 

 

1961년 개량형인 SS-1C 스커드B 탄도 미사일(사정거리 300Km)을 시작으로 1965년 SS-1D 스커드C 탄도 미사일(사정거리 550Km)이 등장한다. 스커드B와 스커드C 탄도 미사일은 일반적인 고폭탄 탄두와 80Kt 핵탄두 그리고 화학탄두를 사용할 수 있다. 1980년에 개발된 스커드D 탄도 미사일(사정거리 300Km)은 기화폭탄 탄두와 자탄형식의 탄두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형식의 스커드 탄도 미사일은 액체 추진 방식의 단발 로켓 엔진을 사용한다. 스커드B 탄도 미사일의 경우 1970년대부터 총 7000여 발이 생산되어 생산국인 구소련을 포함하여 32개국이 운용하게 된다. 이밖에 스커드 계열 탄도 미사일을 바탕으로 제3세계 국가들을 중심으로 스커드를 복제(?)한 탄도 미사일, 사정거리를 연장한 탄도 미사일도 등장한다. 이런 변종 스커드 탄도 미사일에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라크의 알 후세인 탄도 미사일과 북한의 화성5/6호(스커드 Mod B/C), 노동 탄도 미사일이 있다. 1990년대 이후 세계시장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스커드 탄도 미사일인 북한산 화성6호 탄도 미사일의 경우 사정거리는 500Km에 달하고 가격은 400만 달러 전후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변종 스커드 탄도 미사일에는 화성5/6호(스커드 Mod B/C), 노동 탄도 미사일이 있다. <출처: 국방부>

 

 

전쟁이 있는 곳 그곳에 스커드가 있다

탄도 미사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V-2 탄도 미사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세계 최초로 실전에 그 위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V-2 탄도 미사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마지막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반면, V-2 탄도 미사일의 자손 중 하나인 스커드 탄도 미사일은 실전배치와 함께 지금까지도 전쟁이 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커드 탄도 미사일은 크게는 이란-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전, 걸프전에서 쓰였고, 작게는 예멘내전 그리고 러시아의 체첸내전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어, 그야말로 크고 작은 전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탄도 미사일이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 이란-이라크 전쟁은 스커드의 전쟁으로 불려도 좋을 만큼 많은 수의 스커드 탄도 미사일이 사용되었으며, 이란과 이라크 양측이 모두 사용했다는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스커드의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1980년 9월 22일 이라크의 이란 침공으로 이란-이라크 전쟁은 시작되었다. 이라크는 1982년 10월 27일 최초로 이란을 향해 스커드B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이란의 데즈풀이라는 곳에 미사일이 떨어져 21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다쳤다. 이라크는 100여 발의 스커드B 탄도 미사일을 1985년까지 이란으로 발사했다. 1985년 무기금수조치를 당하던 이란은 리비아로부터 소수의 스커드B 탄도 미사일을 입수하게 되고 같은 해 3월 12일 이란은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와 키르쿠크에 스커드B 탄도 미사일을 발사해 피해를 입힌다. 반면 이라크가 보유한 스커드B 탄도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짧아 내륙에 위치한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공격할 수 없었다.

 

이라크는 구소련에게 사정거리가 900Km에 달하는 SS-12 스케일보드(Scaleboard)의 판매를 요구하지만 구소련은 거부한다. 결국 이라크는 기존 스커드B 탄도미사일의 사정거리를 연장하는 방법을 강구하게 되고 사정거리가 1000Km에 달하는 알 후세인을 서방측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개발하게 된다. 이와 함께 구소련에서 300여 발의 스커드B 탄도 미사일을 수입하게 되고 이에 질세라 이란도 북한으로부터 화성5호 탄도 미사일 100여 발을 수입하게 된다. 1988년 이란과 이라크의 스커드 발사경쟁은 정점에 달하게 된다.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가 사용한 스커드 변종 미사일인 알 후세인 탄도 미사일

 

‘The War of The Cities’로 알려진 상대방 수도에 대한 스커드 탄도 미사일 공격이 시작된다. 1988년 2월 29일 이라크는 총 189발의 알 후세인 탄도 미사일을 테헤란과 이란의 주요 도시에 발사했고 2000여 명의 이란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6000여 명을 다치게 했다. 이에 맞서 이란도 북한으로부터 수입한 화성5호 탄도 미사일 77발을 바그다드로 발사한다. 양측의 공격은 같은 해 4월 20일까지 계속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이라크의 승리로 이란은 이라크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스커드 탄도 미사일의 장단점

스커드 계열 탄도 미사일 가운데 스커드B 탄도 미사일 체계는 1990년대 이후 개발된 탄도 미사일들의 롤모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발사 후 신속히 위치를 변경하는 (Shoot and Scoot) 능력은 스커드B 탄도 미사일 체계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점은 현존하는 많은 탄도 미사일 체계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특히 스커드B 탄도 미사일체계는 기존의 스커드A 탄도 미사일 체계가 궤도식 발사대였던 반면 차륜식 발사대를 적용하였다. 또한 미사일 발사대와 발사차량이 일체화된 발사체계로 뛰어난 기동성을 가지고 있다.

 

발사 후 신속히 위치를 변경하는 능력은 스커드B 탄도 미사일 체계의 가장 큰 장점이다.

 

 

스커드B 탄도 미사일 체계의 이러한 장점은 걸프전 당시 다국적군을 곤욕에 빠뜨리게 했다. 발사 준비하는데 로켓연료주입과 기상관측으로 인해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미사일 발사 후 5분 이내에 장비를 정리하고 이동할 수 있다. 10분이 지나면 발사위치에서 8Km 거리의 임의지역으로 이동이 가능했다. 결국 걸프전 기간 동안 다국적군은 스커드 헌팅(Scud Hunting)이라는 이름 하에 공군과 특수전 전력 상당수를 스커드 잡기에 동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스커드 탄도 미사일체계는 기동성은 좋은 반면 명중률 자체는 높은 편이 아니다. 스커드B 탄도 미사일의 원형공산오차(CEP: Circular Error Probability)는 450m로 알려져 있다. 목표물 반경 450m 이내에 탄두가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구소련에서 제작한 스커드B 탄도 미사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 얘기이다. 예를 들어 이란-이라크전과 걸프전 당시 이라크가 사용한 알 후세인 탄도 미사일의 경우 원형공산오차가 1Km에 달했다. 이러한 원형공산오차로는 일반적으로 제일 많이 사용되는 고폭탄두로는 목표물에 피해를 주기가 힘들다. 더 많은 피해를 주기 위해선 핵탄두나 화학탄두를 사용할 수 밖에 없고 군사시설에 사용한다 하여도 시설 주변 민간인의 피해가 더 클 수 밖에 없다.

HMMWV 험비

미군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바로 험상궂게 생긴 커다란 자동차, 험비일 것이다. 1991년 걸프전이 CNN을 통해 생중계되면서 험비는 미군의 아이콘처럼 되어 버렸다. 미군은 모두 16만 2천여 대의 험비를 운용하고 있다. 우선 험비(Humvee)는 정식명칭이 아니다. HMMWV, 즉 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고기동 다목적 차량)이 원래 이름인데, 유사한 발음을 따서 험비라고 부른다.

 

걸프전 이후로 미군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고기동다목적차량 험비(HMMWV)

 

 

잡다한 차량들, 험비로 다 통일해버려!

험비가 도입된 1985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군이 실전에서 활용하던 차량은 다양하다 못해 잡다할 정도였다. 당시 주력이던 M151 ‘지프’ ¼톤 트럭이나 M715 카이저 1¼톤 트럭은 이미 수명이 다하고 있었다. 새롭게 개발한 고기동차량인 M561 감마고트(Gamma Goat)는 실망스러운 성능으로 보급되지 못했고, 결국 CUCV(Commercial Uility Cargo Vehicle; 상용 다용도 수송트럭)라는 명칭 아래 상용트럭까지 구매하는 형국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차량들을 통합하기 위해서 새로운 전술차량이 요구되었는데, 그 시험모델은 놀랍게도 유명한 스포츠카 메이커 ‘람보르기니(Lamborghini)’에서 만들어졌다.

 

바로 람보르기니의 컨셉트 차량인 ‘치타’인데, 결국 미군이 채용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선정할 차량에 대한 방향이 여기에서 드러나게 된다. 람보르기니는 이 ‘치타’모델을 결국 상용으로 만들어 ‘LM002'라는 모델을 선보였는데, 이는 현재 300대만이 남아 있는 전설의 SUV로 남아 있다. 결국 1979년이 되어서야 새로운 전술차량에 필요한 성능이 확정되고 1981년부터 선정사업이 시작되었다. 새롭게 만들어야 할 전술차량에는 그야말로 군용차량에서 기대할 수 있는 미사여구는 다 동원되었다. 산악이나 비포장도로 등 전 세계 어떤 지형도 통과할 수 있는 험로주행능력, 하천을 건널 수 있는 도하능력, 어떤 악조건도 이겨낼 수 있는 차체 강성, 그리고 손쉬운 정비성능 등이 새로운 차량의 요구조건이었다. 이에 따라 크라이슬러나 포드 등 미국 굴지의 업체들이 신형전술차량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사업자로는 AM제너럴(AM General)이 선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군 소형전술차량의 변천 과정 <출처: Inteledge Inc.>

 

 

험비의 능력과 한계

험비는 당시 군용차량의 상식을 뛰어넘는 ‘고기동’ 차량이었다. 경사각 60도를 등판할 수 있고, 46cm 높이의 수직장애물이나 76cm 깊이의 참호도 거침없이 통과할 수 있는 전천후 주행능력을 자랑했다. 그야말로 길이든 길이 아니든 종횡무진 달릴 수 있는 군용차량이었다. 많은 이들이 험비를 놓고 ‘스테로이드(근육강화주사)를 맞은 지프’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험비는 놀라운 기동성, 뛰어난 범용성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차량 같은 것은 없다. 험비에도 많은 단점이 있는데, 우선 내부 공간이 문제이다. 육중한 차축으로 기어박스 부분이 실내의 1/3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실제로 승차좌석이 비좁고 불편하다. 다음으로 주행신뢰성도 문제로 지적되는데,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차축이 빠지거나 차량이 전복되는 일도 허다하다. 또 다른 문제는 차량의 넓이다. 험비는 차량 폭이 너무 넓어서 CH-47 헬리콥터에 탑재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군 특수부대나 해병대 등은 험비 대신 FAV(Fast Attack Vehicle; 고속강습차량)나 M151계열의 차량을 운용하고 있다. 특히 험비는 약한 장갑을 채용하여 모가디슈 전투에서는 미군 측에 많은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이후 방탄성능이 강화된 험비들이 나왔지만 최근 대테러 전쟁에서는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 급조폭발물)  공격으로 엄청난 사상자를 기록하고야 말았다. 결국 미군은 험비를 대신하여 MRAP(Mine-Resistant, Ambush Protected; 지뢰방호 장갑차)을 대량으로 구입하고 있다.

 

험비는 IED(급조폭발물)를 이용한 게릴라식 공격에 취약하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험비의 시대는 가고 있다

험비는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개량이 이뤄졌다. 우선 최초에 등장한 기본형(A0 시리즈)은 6.2리터 디젤엔진, 3단 자동기어에 총중량이 3.5톤이었다. 1991년 등장한 A1 시리즈에서는 동력계통과 서스펜션이 강화되었는데, 차량 총중량까지 4.5톤으로 늘어나 버렸다. 한편 1994년부터는 A2시리즈가 생산되었는데, 엔진이 6.5리터로 바뀌고 4단 전자제어식 변속기어가 채용되었다. 출력이 늘어나면서 차량 탑재중량도 최대 2톤까지 늘어난 것이 최대 특징이다.

 

한편 1993년 모가디슈 전투를 거치면서 험비의 성능개수사업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바로 ECV(Enhanced Capacity Vehicle)인데, 기존의 험비에 방탄키트를 부착하여 생존성을 높인 차량이다. ‘장갑강화형(Up Armored) 험비’라고도 불리는 ECV는 4.6톤으로 늘어난 중량에도 기동성을 잃지 않도록 6.5리터 엔진과 강화 서스펜션을 채용했다. ECV에 해당하는 험비로는 M1114/M1151 무장탑재차량, M1113/M1152 하드탑차량, M1165 병력/화물수송차량, M1167 TOW차량 등이 배치되어 있다.

 

험비의 종류와 변천사 <출처: Inteledge Inc.>

 

 

한편 험비의 차량재생사업(HMMWV Recapitalization)도 한창이다. 현재 험비의 대다수가 80년대 초중반에 공장에서 출고되었는데, 원래 험비는 15년 운용을 예상하고 만들었으니 대부분의 차량이 열악한 상태이다. 이에 따라 차량재생사업을 거친 험비들은 15년을 더 사용하게 된다. 그리하여 미국이 험비를 구매하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험비의 뒤를 이을 새로운 차량으로 현재 JLTV(Joint Light Tactical Vehicle; 합동 경량 전술차량) 사업이 진행 중이다.

 

 

험비의 민수형과 카피판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차량이니만큼 험비의 인기는 세계적으로 높다. 특히 이런 인기에 부합하여 험비는 민수용 차량까지 등장하였다. 바로 허머 H1, H2, H3가 그 주인공들이다. 허머(Hummer)는 M998 험비를 민수용으로 내놓으면서 AM 제너럴이 만든 브랜드였다. 그리하여 허머 H1이 1992년부터 등장했는데, 걸프전의 이미지를 등에 업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아놀드 슈와르체네거의 애마로 알려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험비는 그 인기에 힘입어 ‘허머’라는 이름의 민수형 자동차로 판매되었다. 초기에 인기를 끌었으나,
시장 변화에 고전하다가 2010년을 마지막으로 생산이 종료되었다.

 

 

AM 제너럴은 1998년 허머 브랜드를 제너럴모터스에 판매했는데, 이후에 허머 H2와 H3가 등장했다. 사실 두 모델은 겉모습만 허머와 비슷할 뿐 플랫폼은 GM에서 생산하는 SUV에 기반하고 있다. H1만이 진정한 험비이고 H2와 H3는 전혀 다른 차량인 셈이다. 그러나 허머 H1도 2007년 미국에서 배기가스 규제법이 발효됨에 따라 2006년부터 생산이 중단되어 버렸고, 허머 브랜드의 중국 판매가 무산되자 제너럴모터스는 2010년을 마지막으로 H2와 H3의 생산을 끝냈다. 한편 허머의 등장과 함께 여러 나라에서 군용 고기동 차량에 대한 개발을 시작했다.

 

현재 스페인의 VAMTAC, 러시아의 GAZ-2975, 일본 육상자위대의 고기동차 HMV, 프랑스의 르노 셰르파2, 이탈리아 이베코의 LMV 등 다양한 차량이 실전에 배치되어 있다. 한편 최근에는 허머 브랜드의 중국 구매 시도, 중국의 카피판 험비 등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형 험비의 개발을 마치고 획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때마침 들이닥친 IMF 금융위기로 사업이 좌초된 이후, 한국형 험비 사업은 오랜 기간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다. 기왕에 늦게 진행되는 사업이라면 미군이 지난 30년간 배운 험비의 노하우와 JLTV의 개발노력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 급조폭발물) 폭약과 금속파편 등 간단한 폭발장치를 이용하여 현장에서 임의로 만든 사제 폭발물을 가리킨다. 첨단기술로 만들어진 군용 폭발물에 성능은 떨어지나, 대단히 쉽고 저렴하게 만들 수 있어 비정규 전투 집단에게 효과적인 공격 무기가 되고 있다. 최근 미군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집중적인 IED 공격을 받았으며, IED로 인한 사상자는 전사자의 60%에 육박할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