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러일전쟁 100년, 그 현장을 가다

醉月 2010. 9. 13. 08:36

러일전쟁 100년, 그 현장을 가다
러-일 해군력 누가 더 셀까 일,첨단 구축함 32척 ‘막강 전력’ … 러, 핵잠수함 보유 ‘한 방에서 우위’

각종 대형무기로 무장한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주력함인 우달로이급 구축함.

지중해는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터키) 대륙으로 둘러싸인 바다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다. 말 그대로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이라는 땅(地) 가운데(中)에 있는 바다(海)라는 뜻이다(유럽지중해).

하지만 지중해를 ‘육지로 둘러싸인 바다’란 뜻의 보통명사로 이해한다면, 지중해는 세계 도처에서 발견된다. 아시아 대륙 한복판에 있는 카스피해와 아랄해는 그야말로 지중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소아시아반도(터키) 사이에 있는 흑해, 스칸디나비아반도와 유럽대륙 사이의 발틱해,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반도 사이의 홍해도 지중해가 될 수 있다.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동·서·남해와 동중국해로 연결된 바다도 아시아대륙과 일본 열도로 둘러싸인 지중해가 될 수 있다(동북아지중해).

지중해는 여러 나라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활발한 교류가 일어난다. 이로 인해 해상교역권을 차지하기 위한 갈등이 잦고 때로는 전쟁으로 비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동북아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했던 해상왕이 장보고였고, 유럽지중해에서 상권은 물론이고 제해권까지 장악한 ‘왕중왕’이 로마였다.

현재 유럽지중해에는 고만고만한 중량급(中量級) 국가들이 포진해 있지만, 동북아지중해에는 일본·중국·러시아라는 중량급(重量級) 국가가 버티고 있다. 때문에 동북아지중해는 유럽지중해보다 갈등의 정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3대 강국이 솥발처럼 버티고 선 동북아지중해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해군력을 증강시키는 나라는 ‘강국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한국이다. 1999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1800t급 함정으로 순방에 나섰으나 지금은 3600t급(양만춘급)을 이용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4500t급(KDX-Ⅱ), 2010년 이후엔 7500t급 이상(이지스 구축함인 KDX-Ⅲ나 대형 상륙함인 LPX 등)을 몰고 순방에 나설 것이므로, 한국은 가장 빠르게 해군력을 증강시키는 나라로 꼽히고 있다.

동·서·남해는 아시아 대륙과 일본 열도로 둘러싸인 동북아지중해다.

일본, 경제적 이점 살려 해군력 증강 박차 … 지정학 면에서도 유리

그러나 3대 강국은 한국의 발전을 애써 막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한국 해군의 구호인 ‘바다로 세계로’를 외쳐주며 한국을 격려하고 있다. 왜 그럴까. 성장 속도가 빠르긴 하지만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한국이 동북아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라이벌이 될 수 없는 나라라면 격려해줌으로써 친구로 만들어놓는 것이 그들에겐 훨씬 더 큰 이익이 될 수 있다.

동북아지중해의 해양 패권 국가는 누가 뭐래도 일본이다. 한국이 갖고 있는 ‘세계적인 항구’는 부산항 하나뿐이지만, 일본은 고베·오사카·나고야·요코하마·도쿄라고 하는 다섯 개의 항구를 갖고 있다. 일본은 2010년 한국이 이루고자 하는 해군력의 네 배가 넘는 전력을 현 시점에서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5대 항구를 통해 동북아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하고, 미국의 핵우산 아래 거대한 해군력을 구축해 이 지역의 패권을 굳히고 있다.

4500t급인 한국의 KDX-Ⅱ급 구축함(왼쪽)과 중국이 도입한 8000t급의 소브레멘니급 구축함. 일본의 1만3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아래).

 

일본 해상자위대는 현재 묘고급 이지스 구축함(7500t급) 1척에 4000∼5000t급의 일반 구축함 7척 등 모두 8척의 구축함(일본식 표현은 호위함)으로 구성된 호위대군(護衛隊群)을 무려 네 개나 갖고 있다. 일본이 일본 열도에서 1000해리(1852km) 떨어진 바다에서부터 일본을 지키겠다고 하는 ‘1000해리 전수방위’를 주장하는 것은 바로 네 개 호위대군이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호위대군의 전력은 조만간 배가된다. 내년부터 일본은 4대의 헬기(초계 헬기 3대, 기동헬기 1대)를 탑재하고 스텔스 성능을 대폭 강화한 1만3000t급의 헬기 탑재 구축함 건조에 착수한다. 1만3000t급 함정은 미국의 이지스 순양함보다도 덩치가 큰 것인데, 일본은 이 함정을 네 척 건조해 4개 호위대군에 한 척씩 배치하고 대신 구식 일반 구축함을 퇴역시킬 계획이다.

2008년부터는 이지스 구축함을 순차적으로 도입해 4개 호위대군에 배치할 예정이다. 때문에 2010년 이후 일본은 1만3000t급 헬기 탑재 구축함 1척에 이지스 구축함 2척, 그리고 4000∼5000t급의 일반 구축함 5척 등 8척으로 편성된 호위대군을 네 개 갖게 된다. 이러한 호위대군 한 개의 전력은 지금의 미 7함대 항모전투단에서 항공모함을 뺀 순양-구축함 전단과 전력이 엇비슷하다.

그러니까 2010년 이후 일본은 항모를 호위할 수 있는 전단을 ‘무려’ 네 개나 갖게 되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조선국(造船國)이다. 또 일본에서는 개헌론이 큰 힘을 얻고 있는데 군대를 보유하는 쪽으로 헌법이 개정된다면,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이미 항공모함을 건조했던 일본은 순식간에 4개의 항공모함 전투단을 만들 수 있다.

 

미국, 발빼지 않는 한 해양 쟁탈전 사실상 불가능

일본은 라이벌인 러시아의 대양 진출을 막을 수 있는 지정학적 이점도 갖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나온 러시아 함정이 태평양으로 나가려면 사할린과 홋카이도(北海道) 섬 사이의 소야해협, 홋카이도와 혼슈(本州) 사이의 쓰가루해협,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대한해협이나 쓰시마해협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해협은 모두 일본(또는 미국)의 영향권 안에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이점까지 고려한다면 일본 해양 패권은 상당히 오래갈 수가 있다.

일본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나라가 동북아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경쟁해온 러시아다. 한때 러시아는 일본을 넘어서 미국과 해양 패권을 다투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이 10만t급의 항모 12척을 보유하고 있는 데 반해, 러시아는 6만7500t급 항모 한 척만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 항모를 유럽 쪽인 발틱함대에 배치해놓고 있어 태평양함대는 항모가 없다.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주력 세력은 8400t급의 우달로이급 구축함이다. ‘잘나가던 시절’ 러시아는 우달로이급 구축함을 해외 영토가 없는 인도양에 배치해 ‘세계해군’으로서의 위용을 과시했다. 그러나 지금은 불러들여 러시아의 4대 함대인 태평양·흑해·발틱해·백해 함대의 주력 함정으로 사용하고 있다. 태평양함대는 우달로이급 구축함을 중심으로 20척의 전투함을 갖고 있는데 이는 32척(8척×4개 호위대군)으로 편성된 일본의 호위함대보다 규모가 작다.

그러나 태평양함대는 미국의 토마호크와 유사한 러시아제 크루즈 미사일을 탑재한 8척의 핵잠수함을 갖고 있다. 핵잠수함 중 일부는 크루즈미사일 대신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하고 있다. 이러한 핵전력을 고려하면 러시아는 순식간에 일본을 앞서게 된다. 미국의 핵우산을 고려하면 일본이 앞서고, 이를 제외하면 러시아가 앞서는 것이 동북아지중해에서의 구도인 것이다.

재래식 전력만으로 따질 때 3강 중 가장 처지는 나라는 중국이다. 질적인 면에서만 따지면 중국 해군은 한국 해군보다 ‘낫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한참 처져 있다. 그러나 중국은 올해 6월 러시아로부터 우달로이급보다 성능이 앞선 소브레멘니급 구축함(8000t급) 2척을 도입한 데 이어 추가로 2척을 더 도입할 계획이다. 또 2010년쯤에는 4만t급 항모를 도입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 해군처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전략핵잠수함도 갖고 있어 절대 무시할 수가 없다.

동북아지중해에서는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이 빠르게 전력을 성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주춤하고 있는 러시아와 도약을 시작하는 중국은 핵을 갖고 있어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막강한 나라가 모여 있는 동북아지중해가 평화로운 것은 ‘세계 최강’인 미국 해군이 깊이 개입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발을 빼지 않는 한 동북아지중해에서는 해양 패권쟁탈전이 일어나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과 압도적인 경제력, 그리고 지정학적 이점을 이용해 이 지역에서의 해양 패권을 더욱 강화해나가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미국은 일본에 ‘이 지역의 경찰 임무’를 맡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불운한 이순신 행운아 도고 러시아와의 해전서 승리 이끈 日 연합함대 지휘관 …86살까지 장수하고 ‘전쟁영웅’ 추앙

러일전쟁 때의 일본 연합함대 모습.

지금부터 꼭 100년 전인 1904년 일본과 러시아는 동북아의 패권을 놓고 일대 혈전을 벌인 바 있다(러일전쟁). 전력상 일본은 도저히 승리할 수 없었으나 국가가 총력전으로 대응해 ‘2등 국가(일본)’가 ‘1등 국가(러시아)’를 이기는 기적을 창출했다.

이 기적의 한복판에 우뚝 선 인물이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司令長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중장이다. 당시 일본 해군은 1·2 함대(일본식 이름은 戰隊)를 갖고 있었는데, 이를 합쳐 ‘연합함대’를 편성했다. 2개 함대의 최고 지휘관을 ‘사령관’이라 했으니, 연합함대의 최고 지휘관은 ‘사령장관’으로 불렀다(행정부처의 장관과는 이름만 같을 뿐이다).

도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과 대비된다. 그러나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도고는 이순신보다 훨씬 더 높은 지명도를 누리고 있다. 이순신이 세계 최초로 철갑선을 만들고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상승 제독’이라는 점을 아는 해전사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도고란 이름을 내밀면 “유틀랜드해전, 미드웨이해전과 함께 세계 3대 해전으로 꼽히는 쓰시마(對馬)해전에서 승리한 영웅”이라는 찬사가 따라붙는다.

 

쓰시마해전 이겨 러일전쟁 승리 발판… 한반도 침탈 계기

유틀랜드해전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독일의 세르 제독이 99척의 군함으로 편성된 대양함대(High Sea Fleet)를 이끌고 영국 동해안을 공격해오자, 사전 정보수집으로 이를 안 영국이 젤리코 제독으로 하여금 150척으로 구성된 대함대(Grand Fleet)를 끌고 나가 결전을 벌인 해전이다. 이 전투에서 독일 함대는 약간의 우세를 점했으나 영국 공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퇴각했다.

미드웨이해전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2년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대장이 이끄는 일본의 연합함대가 니미츠 대장이 지휘하는 미국의 태평양함대와 맞붙은 사상 최대의 해전이다. 일본의 연합함대는 미드웨이 섬을 점령하기 위해 항모 4척을 포함한 수십 척의 함정을 동원했고, 암호 분석을 통해 일본 해군의 공격 사실을 안 미국 태평양함대도 항모 3척을 포함한 수십 척의 군함으로 응전했다. 이 해전에서 미국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나 미드웨이를 지켜냈고, 일본의 항공모함 4척을 모두 침몰시킴으로써 이후 전세를 역전시키는 발판을 마련했다.

쓰시마해전은 3대 해전 중에서 가장 먼저인 1905년 5월 일본의 연합함대가 쓰시마 동북쪽 동해상에서 로제스트벤스키 중장이 이끄는 러시아의 발틱함대와 정면으로 맞붙어 대승을 거둔 것을 말한다. 해전에서 패한 사령관이나 함장은 대개 배와 함께 ‘수장(水葬)’되는 것을 택하기 때문에 생포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일본은 울릉도 남서쪽 70km의 동해상에서 나포한 러시아 구축함에서, 중상을 입은 채 숨어 있던 로제스트벤스키 중장을 생포하는 쾌거를 올렸다.

유틀랜드와 미드웨이 해전에서 공격자 측은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퇴각했으나 전과 면에서 보면 방어자 측과 호각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쓰시마 해전에서는 방어자 측인 일본 해군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丁’자 모양으로 마주친 양쪽은 곧 대형 함정 12척씩을 나란히 달리게 하며 함포를 쏘는 대혈투를 벌였는데 러시아는 9척이 격침되고, 일본은 단 3척만 침몰했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데 이어 적장까지 생포했으니 일본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미카사함.

러일전쟁 10년 전에 발발한 청일전쟁(1894~95)은 한반도가 중국에서 벗어나 일본의 영향권으로 들어가는 일대 사건이었다. 중국은 당나라 시절인 668년 신라의 내응을 얻어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무려 1200년간 한반도에 영향권을 행사해왔는데, 청일전쟁에 패함으로써 이를 일본에 넘겨주게 되었다. 그런데 경제가 고속 성장을 거듭한 지금 중국은 ‘한반도를 청일전쟁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겠다’며 동북공정(東北工程) 카드를 내밀고 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를 넘어 만주까지 장악하려다 러시아와 독일, 프랑스로부터 방해를 받아 ‘삼켰던’ 요동반도를 토해놓게 되었다(3국간섭). 일본이 빠져나간 틈을 재빨리 치고 들어온 것은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상당수의 육군과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동양함대(태평양함대의 전신)의 주력을 뤼순(旅順)항으로 옮겼다. 그러자 그동안 일본의 위세에 눌려 있던 조선이 급속히 러시아 쪽으로 기울어졌다.

 

임진왜란이 낳은 영웅 이순신의 삶과 대비

일본으로서는 청일전쟁으로 얻은 성과를 날려버리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일본은 정교한 계획을 세웠다. 러시아와 일전을 벌인다면 이는 해전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훗날 ‘일본 해군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은 야마모토 콘노효에(山本權兵衛) 해군대신을 중심으로 ‘해군확장 10년 계획’을 작성한 것. 그리고 한 해 정부 예산보다 많은 돈을 써가며 영국 등지에서 대형 전함을 수입하고, ‘언제나 운(運) 좋은 사람이었다’란 도고 헤이하치로를 연합함대 사령장관에 임명했다.

 

미카사함의 주포와 수병들이 자던 해먹(hammock,왼쪽부터).

1904년 2월8일 일본은 도고의 연합함대로 하여금 뤼순항의 동양함대를 기습 공격케 함으로써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뤼순항을 포위한 연합함대는 항 외곽에 기뢰를 설치해 동양함대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봉쇄했다. 졸지에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 동양함대는 여러 차례 돌파를 시도하는데, 이 과정에서 동양함대 사령관인 마가로프 중장이 탄 배가 기뢰에 부딪혀 침몰해 마가로프 사령관이 사망했다.

그해 8월 견디다 못한 동양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 항을 향한 뤼순항 대탈출을 시도해 일부는 기뢰와 충돌하고 상당수는 서해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연합함대는 끝까지 추적해 대부분의 동양함대를 궤멸시켰다(황해해전). 연합함대가 동양함대를 격멸하자 노기 마레스케(乃木) 중장이 이끄는 일본 육군도 뤼순 지역의 러시아 육군을 공략해 항복을 받아냈다.

황해해전에서 승리한 연합함대는 곧바로 조선의 진해만에 들어가 아프리카를 돌아 달려오는 발틱함대와의 일전을 위한 강도 높은 훈련을 거듭하다 이듬해 5월 쓰시마해전에서 대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순신은 두 번이나 백의종군하며 힘겹게 운명을 개척했으나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유탄에 맞아 서거했다. 그러나 도고는 쓰시마해전에서 살아남아 대장을 거쳐 원수로 진급해 86살까지 천수를 누려, 다시 한번 ‘운 좋은 사람’임을 보여주었다. 이순신의 불운과 도고의 행운은 그 후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알려주는 전조였을까.

  

도고 헤이하치로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콘노효에 일본 해군 대신,로제스트벤스키 러시아 발틱함대 사령관, 이순신 조선 삼도수군통제사(왼쪽부터).

목하 일본에서는 ‘운 좋은’ 도고를 재평가하고 러일전쟁 전승 100주년을 자축하려는 준비가 한창이었다. 러일전쟁 때 도고 중장이 탔던 기함 미카사(三笠)함이 있는 요코스카에서는 도처에 러일전쟁 100주년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러일전쟁 100주년을 거론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러일전쟁 후 조선은 돌이킬 수 없는 일본의 영향권으로 빨려 들어갔다.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케 한다는 계책을 품고 있었던 이완용은 그후 친러 노선을 접고 한일합방에 조인하는 친일노선을 선택했는데, 그의 변절은 이후 한반도에 수많은 친일파가 탄생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러일전쟁 100주년인 지금 한국에서는 친일파를 단죄하려는 과거사 청산 작업이 한창이다. 그러나 친일파를 색출하기에 앞서 우리의 운명을 가른 러일전쟁의 배경부터 분석해야 하지 않을까. 러시아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2000달러밖에 되지 않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러시아의 역사학자들은 세계를 경영한 대국의 학자답게 러일전쟁의 패전을 객관적으로 설명해내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한 한국인은 “3국간섭으로 후퇴한 일본이 객관적으로 국제정세를 분석한 후 절치부심하며 국력을 키워 러시아를 이겼듯이, 지금의 한국도 냉철하게 주변정세를 분석해 통일과 번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한국은 한가롭게 과거사 청산을 할 시간이 없다”고 충고했다.

 

동해 VS 일본해 … 우리는 이기고 있나 日 해상자위대, 동해 폭넓게 활용 ‘내공 쌓고 주인 행세’ … 러시아인들도 이제는 ‘일본해’로 불러

블라디보스토그 항에서 지중해식 계류를 한 각국 함정들. 오른쪽부터 한국의 원산함(560), 프랑스의 방드미에르함, 러시아의 우달로이급 구축함(572).

기자는 9월22일부터 10월3일까지 ‘동해냐 일본해냐’란 화두를 들고, 해사 59기 생도를 태우고 99일간 태평양 일대 연안국을 돌며 원양실습에 나선 순항훈련함대(사령관 오성규 준장)에 탑승해 러시아와 일본 해군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기자는 3척으로 편성된 함대에서 기함(旗艦, 사령관이 승함한 배)인 한국형 구축함(KDX-Ⅰ, 3600t) 양만춘함에 탑승했다.

진해를 출항해 첫 번째 기항지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던 9월23일 오전 7시쯤, 기자는 장교들과 함께 사관실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위치상으로는 남·북한과 일본으로부터 거의 등거리에 해당하는 독도 북동쪽 북위 38도선 부근의 공해상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사관실의 대형 TV에서는 스카이 위성방송의 YTN 채널이 아침 뉴스를 쏟아내고 있었다.

가벼운 대화와 함께 식사를 하던 장교들은 YTN의 앵커가 일본 요미우리신문 보도를 인용해, “일본 해상자위대는 북한이 노동미사일을 발사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황급히 동해로 이지스함을 파견했다고 밝혔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일제히 고개를 TV로 돌렸다.

 

원산함·대청함·양만춘함 순으로 블라디보스토크 만에 들어서는 한국 순항훈련함대.

“11월2일로 예정된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 같다는 ‘10월충격설’이 떠돌고 있는데 북한이 동해를 향해 노동미사일을 발사한다고? 그렇다면 우리 함대는 계획을 바꿔 진해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바로 작전에 투입돼야 하는 것 아닌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누구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식사를 끝내고 갑판으로 나온 기자는 무심코 수병들이 모여 있는 좌현 쪽 바다를 바라보다가 한 척의 군함을 발견했다. 아무리 봐도 우리 함대의 배는 아니었다. 곁에 있던 부사관을 붙잡고 “어디 배냐?”고 묻자, 그는 대수롭지 않게 “일본의 이지스 구축함인 묘고(妙高)함입니다”라고 대답했다.

 

P-3C기 보유 한·일 ‘8대 100’으로 절대 열세

맙소사. YTN의 보도는 사실이었다. 일본은 4척의 이지스함을 갖고 있는데 주변국(남·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개 태평양 쪽에 배치해놓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동해 한복판으로 집어넣었으니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심각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사진기를 들고 나와 묘고함을 촬영한 기자는 이지스함 출현 경위에 대한 추적에 나섰다. 양만춘함은 이미 200km 바깥에서 이지스함의 출현을 알고 있었다. ‘맹장’이란 느낌을 주는 일본 해자대 막료장 후루쇼 해장(왼쪽)과 ‘덕장’ 인상의 러시아 태평양 함대 사령관 표드로프 상장.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평면이지만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수평선 너머는 볼 수 없다. 1.5m 높이에서는 4.7km, 100m 높이라면 38.5km까지 볼 수가 있다. 양만춘함 레이더는 수면에서 20m쯤 높이에 있는데 어찌 200km 밖의 이지스함을 탐지했을까.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양만춘함과 묘고함이 기동에 들어가면 레이더 파를 쏘는데, 이 레이더 파는 하늘에서 교차한다.

양만춘함은 전자전 장비를 이용해 허공에서 접촉한 레이더 파를 잡아, 각도 등을 분석해 200km쯤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양만춘함은 일본 이지스함 레이더 파의 특징을 알고 있으므로 순식간에 200km 밖에 일본의 이지스함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망원경으로 탐지 가능한 거리로 들어오자 이 함정에 쓰인 ‘175’라는 숫자를 보고 ‘제3번 이지스함인 묘고함’으로 판단했다. 비슷한 시기 묘고함도 ‘973’이란 숫자를 보고 상대가 한국의 양만춘함이란 것을 확인했을 것이다.

양만춘함과 묘고함은 22노트(시속 약 40km)라는 매우 빠른 속도로 900야드(약 820m) 거리를 두고 열십(十)자 모양으로 교차했다. 해상에서 900야드는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 두 배는 전혀 감속을 하지 않고 쏜살같이 지나친 것이다. ‘양보는 네가 하라’는 두 함장(艦長)의 빳빳한 자존심 대결. 양쪽 함장은 기자 이상으로 ‘동해냐 일본해냐’란 화두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전 10시쯤 기자는 다시 비행갑판으로 나왔다가 양만춘함의 100m 상공을 두 차례 선회하다 날아가는 P-3C기를 발견했다. 옆에 일장기가 찍혀 있으니 두말할 것도 없는 일본 해상자위대(이하 해자대)의 P-3C기였다. 오후 2시쯤 또다시 일본의 P-3C기가 나타나 두 차례 선회한 뒤 멀어져갔다.

이날 일본은 양만춘함에서 일본 쪽으로 180여km 떨어진 동해에 4대의 P-3C기를 띄워놓고 있었다.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미사일이 떨어질 바다에 함정이나 잠수함을 배치해 탄착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일본의 P-3C기는 묘고함을 지원함과 동시에 일본 쪽 동해로 접근해온 북한 잠수함이 있는지 여부를 추적 중인 것 같았다. 그러다 한국의 순항훈련함대가 지나가자 날아와 항공 촬영을 하고 간 것으로 추정되었다.

 

활력 없는 블라디보스토크 항 … 거대한 구축함은 볼거리

일본은 100여기의 P-3C를 갖고 있으나 한국은 단 8대뿐이다. 이러니 동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작전하는 것은 일본 해자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00대 8’이라는 도식이 100대 100으로 바뀌지 않는 한 세계는 동해를 일본해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음날 아침 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입항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블라디(정벌)’와 ‘보스토크(동쪽)’를 더한 것이니, 우리말로 ‘정동진(征東津)’ 정도로 의역할 수 있을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 항은 블라디보스토크 만을 한참 거슬러 올라간 후 다시 그 안에 있는 작은 만인 ‘졸로토이(황금이라는 뜻) 만’에 위치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만은 한겨울에도 얼지 않으나 졸로토이 만은 ‘꽝꽝’ 언다. 때문에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 얼지 않게 함으로써 졸로토이 만을 ‘부동항(不凍港)’으로 유지하고 있다.

9월27일 블라디보스토크를 출항한 한국 함대는 러시아 함대와 구조 탐색훈련을 벌었다. 러시아의 그리샤 5급 호위함과 한국의 대청함 (오른쪽 배).

블라디보스토크 일대의 산수와 자연은 북한 해안 지역과 비슷했다. 과거 고구려와 발해의 무대였던 이곳을 1860년 러시아는 그들의 영토로 확정지었다. 냉전 시대 이곳은 외국인과 외지인의 출입이 금지된 군사지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당 부분의 항만이 민간에 불하되었고 출입도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연해주 일대에 이렇다 할 산업이 없다보니 블라디보스토크 항은 활력이 없어 보였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배의 옆구리를 부두에 붙이는 방법으로 배를 계류한다. 그러나 지중해 연안국들은 배꼬리를 부두에 붙이며 계류한다. 러시아는 지중해 연안국이 아닌데도 지중해식 계류를 하는 독특한 나라다.

함대는 원산함-양만춘함-대청함 순으로 계류에 들어갔다. 부두에는 8400t급인 러시아의 우달로이급 구축함 3척과 마침 그곳을 방문한 프랑스 태평양함대의 호위함인 방드미에르함이 계류하고 있었다. 원산함은 기뢰를 부설하는 함정으로 한국 함정 중에서는 상당히 큰 편(3300t)에 속한다. 그러나 방드미에르함 옆에 계류하자 믿기 어려운 현상이 목격됐다. 방드미에르함보다는 커보였지만 우달로이급 구축함에 비하면 반도 안 될 정도로 작아보인 것이다. 한마디로 ‘족탈불급(足脫不及)’.

다음날 우달로이급 구축함인 ‘애드미럴 비노그라도프함’을 방문하자 함장인 아흐메로트 대좌(대령)는 함수부에 있는 대공미사일용 수직발사대의 뚜껑을 개폐하는 시범을 보이며 상세히 안내했다. 이 함정은 덩치가 큰 만큼 대형 무기가 많이 탑재돼 있었는데, 대형 무기를 옮기기 좋도록 갑판에 레일을 깔아놓고 있었다. 불행히도 지금은 ‘스러지는 세력’이지만 러시아 해군은 여전히 큰 주먹을 갖고 있었다.

 

일 해상자위대 장교들 해양 패권국가 자신만만

러시아의 배포는 태평양함대 사령관인 표드로프 상장(중장)이 함대 지휘부를 초청해 열린 만찬에서 또 한번 드러났다. 표드로프 상장은 정규 해사 출신이 아닌데도 성실과 노력으로 3성 제독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한다. 덕장(德將)형 인상의 표드로프 상장은 오성규 사령관과 ‘러브샷’을 하기 전 보드카 잔을 높이 들고 한국어로 ‘바다로 세계로’를 외쳐 한국 장교들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

배포 큰 러시아의 환대를 뒤로 한 함대는 9월27일 블라디보스토크를 출항해 일본의 혼슈(本州)와 홋카이도(北海道) 사이의 쓰가루해협을 통과해 도쿄까지 가는 4일간의 긴 항해에 들어갔다. 도착 첫날(9월30일) 함대 지휘부는 방위청 건물 안에 있는 해상막료감부(해군본부)를 방문해 해상막료장(해군총장)인 후루쇼 코이치(古庄辛一) 해장(海將, 대장)을 만나는 것으로 일본 해군 탐방을 시작했다.

첫날부터 일본은 녹록지 않다는 느낌을 주었다. 후루쇼 해장은 옛 일본 연합함대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해자대의 기동부대인 호위함대 사령관을 지낸 인물인데, 눈빛이 대단히 강렬했다. 배석한 참모들의 안광도 하나같이 형형했다. 동북아의 해양 패권국가라는 자신감이 없이는 갖기 힘든 눈빛을 일본 해자대 지휘부는 갖고 있었다.

일본의 자부심은 러일전쟁 때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부수고 항복을 받아낸 미카사(三笠)함을 방문했을 때 또 한번 드러났다. 미카사보존회의 사토 타다시(佐藤雅, 예비역 중장) 이사장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미카사함을 많이 찾아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말로 그들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짧게 둘러본 여행이었지만 동해를 가장 넓게 사용하고, 동해를 무대로 무공(武功)을 쌓은 나라는 일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었다. 동해냐 일본해냐. 러일전쟁에 패한 역사가 있는 러시아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러시아인들은 하나같이 동해를 “이폰스키 모례(일본해)로 부른다”고 대답했다.

‘이폰스키 모례’와 ‘시 오브 재팬(Sea of Japan)’ ‘니혼가이(日本海)’를 지우고 누가 봐도 객관적인 동해를 세계 지도에 올려놓으려면,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항훈련함대 무슨 일 하나
해사 생도 실습·기항지 방문 군사외교


10월2일 일본의 해자대가 소해모함인 ‘우라가함’에서 주최한 만찬에 참석한 오성규 사령관(가운데)과 사세보 지방대의 막료장인 아카호시 해장보(소장, 오른쪽).

순항훈련함대는 어떻게 구성돼 있고, 또 무슨 일을 할까. 이 함대는 크게 세 부류로 구성돼 있다. 첫째는 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지휘부, 둘째는 해사 생도, 셋째는 배를 조함(操艦)하는 그룹이다.

지휘부는 기항지에 도착할 때마다 그곳의 최고 사령관을 비롯한 유관기관을 방문해 우의를 쌓는다. 또 군악대와 의장대, 태권도 시범단 등을 대동하고 가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지휘부의 유관기관 방문은 대표적인 군사외교로 꼽힌다.

항해하는 도중 해사 생도들은 공부를 한다. 군함에는 교실이 없기 때문에 식당 등에 모여 자습을 하거나 격납고 등에 모여 동승한 교수·교관 요원들에게서 강의를 받는다. 함교 등에 올라가 배를 모는 실습도 한다. 해사 생도의 순항훈련 실습은 졸업 학점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세 번째인 조함그룹은 원래 이 배의 주인을 말한다. 이들은 기항지에까지 배를 몰고 가는 것뿐 아니라 지휘부와 생도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지휘부와 생도들을 지원한다. 기항지에 도착하면 이들에게는 약간의 상륙비와 함께 상륙이 허가돼 이국 풍경을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부여된다.

 

[특집|자위대]
막강 경제력 장전 공격 준비 완료? 1년 국방비 500억 달러 세계 두 번째 … 굴신의 처세로 파워 축적 ‘작지만 강한 군대’

일본이 미국과 공동개발한 F-2전투기와 대(對) 테러 작전에 나선 육상자위대 요원(아래).출처·일본의 방위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도발했다가 패전했기 때문에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도 군사력을 키우는 데 불리했다. 그런 일본이 운 좋게 패전 5년 후 자위대를 갖는다. 그리고 스스로를 낮추고 감추는 굴신(屈身)의 처세로 파워를 축적해, 마침내 세계 2위 군사조직을 갖춘 국가로 성장했다. 한국군과 비교해가며 자위대 힘의 모든 것을 살펴보기로 한다.

지금의 일본 헌법은 맥아더 원수가 전범(戰犯)국가 일본을 상대로 군정을 펼치던 1946년 만들어졌다. 이 헌법 9조에는 ‘일본은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무력을 행사하는 것을 영원히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이른바 전쟁 포기와 군비·교전권 부인 조항). 그런데 1950년 한반도에서 6·25전쟁이 일어나자 맥아더 사령부는 주일미 육군을 모두 한국으로 보냈다.

 

헌법 9조 ‘국제분쟁 무력 행사 포기’ 사실상 사문화

이로써 소련의 공격으로부터 일본을 방어할 수단이 사라지자 맥아더는 일본인들로 구성된 ‘자위대’라는 군사조직을 만들게 했다. 자기 손으로 만든 헌법에 ‘일본은 영원히 무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집어넣었음에도 스스로 이를 어긴 맥아더의 모순. 이것이 일본 재무장의 길을 열어준 실마리였다.

이때부터 일본의 위정자들은 “헌법에서 말하는 무력은 공격용 무력이다. 따라서 일본을 방위하기 위해 수비용 무력을 갖는 것은 위헌이 아니다”라며, 자위대는 오로지 방어를 위해 존재한다는 ‘전수방위(專守防衛)’ 개념을 창조하였다. 일본은 섬나라다. 따라서 적국의 군대가 상륙해 공격을 개시한 후 방어에 나서면 그 피해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바다에서부터 일본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면서, ‘어느 바다에서부터 일본을 지킬 것인가’가 논쟁거리가 되었다.

여기서 나온 것이 1000해리(1852km) 전수방위 개념이다. 일본 열도에서부터 1000해리 안의 바다에서 누군가가 일본 열도나 일본 배를 공격하면, 일본은 자위대를 동원해 이를 박멸한다는 방위전략을 만든 것이다. 문제는 1000해리가 대단히 긴 거리라는 점이다. 한국군은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1000해리까지 투사할 수단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일본은 1960년대에 1000해리까지 투사할 수 있는 무력을 갖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1970년대 세계 2위의 경제규모로 성장한 일본은 자국 방어의 필요성을 보다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전쟁으로부터 일본을 방어하기 위해 보다 정교한 방위계획을 만들어갔다. 1977년 후쿠다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위정자들이 ‘유사(有事)’라는 단어를 사용해 전시(戰時)에 대비하는 보다 구체적인 방위전략을 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시 대신 ‘유사’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과거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아시아 각국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헌법 9조를 어겼다는 시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유사시에 대비하려는 일본 지도자의 노력은 22년이 지난 1999년 주변사태법안과 자위대법 개정안이 일본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현실화되었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전수방위와 더불어 전방위전략이라는 말이 회자되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시작은 어려워도 한번 시작한 일은 탄력을 받아 비교적 순조롭게 나아갈 수 있다. 유사라는 단어가 보편화되자 일본은 곧 전시에 대비한 무력공격사태대처법과 자위대의 활용 범위를 보다 확대한 자위대법 개정안, 그리고 국가 지도자들의 전시대비를 보다 강화하는 안전보장회의설치법 개정안을 마련하였다. ‘3개 유사법제’로 통칭된 이 법안은 2003년 6월 일본 국회를 통과했다.

이렇게 외적으로부터 본토를 방어하는 법과 제도를 구축함과 동시에 일본은 자위대를 해외로 투사하는 방안을 마련해갔다. 명분은 세계 평화였다. 일본 지도자들은 이를 위해 ‘평화 유지를 위한 무력 파견은 무력의 사용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위헌 시비를 줄이기 위해 유엔을 이용했다. 즉 유엔이 주도하는 평화유지군(PKF)의 일원으로 자위대를 파병한다는 ‘국제평화협력법’을 만들어 합법적인 자위대 파병의 길을 개척한 것이다.   


자위대는 1992년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93년 모잠비크, 94년 자이레, 96년 골란고원, 99년 동티모르에 유엔 평화유지군의 모자를 쓰고 파병됐다. 그러나 해외 파병에 관한 한 한국군은 한 수 위였다. 한국은 일본식 표현으로 ‘보통국가’에 해당하기 때문에 무력(군대)을 보유하고, 교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외국과 합의가 이뤄진다면 자유롭게 파병할 수 있다. 1966년 한국군은 베트남 파병을 시작으로 때로는 다국적군으로, 때로는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해외 파병을 계속해왔다. 일본 소식통들에 따르면 1990년대 말까지 자위대는 이런 한국군을 매우 부러워했다고 한다.

일본은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으며 파병하기 위해 파병 대신 ‘파견’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러한 한·일 간의 격차는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로 인해 확연히 좁아졌다. 그해 11월 일본 국회는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을 만들어 이지스 호위함 등을 인도양에 보내, 아프간 전쟁을 일으킨 미국을 지원하는데, 이것은 유엔 평화유지군이 아닌 다국적군 작전에 자위대가 참여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전쟁구역에 들어가긴 했지만 자위대는 전투가 벌어지는 육지가 아닌 안전한 바다에서만 활동해야 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이다. 미군이 주도한 다국적군이 조기에 승리를 거둬 치안유지 작전에 돌입하자 일본 지도자들은 ‘육상자위대의 공병부대를 보내 이라크 재건을 돕는 것은 무력행사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만들어 육상자위대 파견을 모색했다. 이를 위해 2003년 7월 일본 국회는 ‘이라크 부흥지원 특별조치법’이라는 한시법을 만들었다.

 

‘평화 유지를 위한 무력 파견은 무력이 아니다’

공병부대가 가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투병인 보병이 따라가야 한다. 자위대는 보병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전투력을 희석하기 위해 ‘보통과’로 부르고 있다. 올 3월 일본은 550여명의 공병부대원을 보내는데 이때 보통과 요원들은 대전차 무기를 갖고 나가 이들을 호위할 예정이다.

이제 일본 조야에서는 이라크만을 상대로 하는 특별조치법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 공병대를 파견할 수 있는 일반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법이 만들어진다면 머지않아 ‘부흥지원’뿐만 아니라 평화를 지켜주기 위해 보통과 등 전투부대를 파견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또 “상대의 공격에 대응한 교전은 자위(自衛)이기 때문에 헌법에서 금지한 교전권 금지조항을 어긴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도 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골치 아픈 헌법 9조를 없애기 위한 개헌 작업을 성사시키고 마침내 자위대를 일본군으로 개편하는 법안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것이 일본 지도층들이 노리는 최종 목표가 될 것이다.

일본 위정자들이 법과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자위대 육성의 길을 텄다면, 자위대의 지도자들은 위정자들이 열어준 그 길을 소리 없이 질주해왔다. 자위대의 ‘주먹’을 키우는 이러한 질주는 탄탄한 경제력과 과학기술 덕분에 그 규모가 방대해졌다.

   


섬나라인 일본을 위협하려는 세력은 바다를 건너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1차적으로 일본을 방어하는 임무는 해상자위대가 맡게 되므로 자위대는 해상자위대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이를 위해 해상자위대는 2중의 방어망으로 일본을 방어한다는 대전략을 구축했다. 즉, 1000해리쯤 떨어진 먼 바다로 진입한 적은 ‘자위함대’를 보내 격파하고, 자위함대를 뚫고 들어온 소수의 적은 요코스카 지방대(地方隊)를 비롯한 5개 ‘지방대’로 막는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자위함대와 지방대가 모두 뚫리면 외적이 일본 열도에 상륙하게 되는데, 이때 비로소 육상자위대가 나서서 싸우게 된다. 항공자위대는 해상자위대와 육상자위대를 지원하는 보조전력이다. 보조전력이긴 하지만 항공자위대 또한 육상자위대보다 먼저 일본 열도로 접근하는 적과 싸우므로 해상자위대 다음으로 중요하다. 반도국가인 한국은 외적이 육지를 따라 침입한다고 보고 육군을 주력으로 해·공군은 보조전력으로 삼았는데, 일본은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다.

1000해리 바다에서 외적(외국 해군)과 싸우는 자위함대는 전투함으로 구성된 ‘호위함대’와, 호위함대에 탑재하는 헬기와 호위함대를 지원하는 초계기 등으로 무장한 ‘항공집단’, 그리고 호위함대와 별도로 독자적 작전을 수행하는 ‘잠수함대’로 구성돼 있다. 이중에서도 항공집단의 항공기와 결합한 호위함대가 핵심 전투력이 되는데, 호위함대는 각각 8척의 전투함으로 편성된 4개의 호위대군으로 구성돼 있다.

일본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한 미 7함대가 매우 대단한 것 같아도 평시 7함대가 거느리는 전투함은 항공모함 1척에 순양함 2척, 구축함 4척, 호위함 2척 등 모두 9척이 전부다. 물론 미국의 전투함은 같은 급의 다른 나라 함정보다 덩치가 크다고 하지만, 척 수로만 따지면 해상자위대의 1개 호위대군은 7함대의 평시 규모에 필적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해군은 여러 척의 항모를 갖고 있었으나 패전 후 항모는 공격무기에 해당돼 보유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9조를 삭제하는 개헌이 이뤄진다면 4척의 항모를 만들어 4개의 호위대군에 배치함으로써 미 해군에 필적하는 함대 세력을 갖게 될 것이다. 4개의 호위대군에는 모두 지휘함인 ‘기함’이 있는데, 올해 해상자위대는 2개 호위대군의 기함이 될 1만3500t급의 전투함을 진수한다. 보통 전투함은 순양함-구축함-호위함 순으로 크기가 작아지지만, 해상자위대는 주변국의 경계를 피하기 위해 모든 전투함을 호위함으로 부르고 있다. 신형 기함은 헬기탑재호위함으로 명명됐지만 미국 해군이 보유한 이지스 순양함(9500여t)보다 덩치가 크다.

 

해상자위대가 주 전력 육상·항공자위대는 보조 전력

전통적으로 호위대군은 전투함(호위함) 8척에 헬기 8대로 편성된 8함8기(八艦八機) 체제였으나 이 기함이 들어오면 8함9기 체제로 바뀐다. 해상에서 헬기의 힘은 막강한데, 이 기함은 훨씬 더 큰 헬기를 탑재하므로 호위대군의 전력은 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호위대군 안에 한국과 미국에서는 ‘이지스구축함’으로 부르나, 일본에서는 이지스호위함으로 부르는 이지스함정(7500t급)이 한 척씩 포함돼 있다. 이지스함은 적 항공기와 적 전투함, 적 잠수함은 물론이고 적 지상군까지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종합 전투함이다.

현재 이지스함정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61척)과 일본(4척), 스페인(4척)뿐인데 스페인의 이지스함은 일본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현재 노르웨이가 스페인 것과 비슷한 작은 이지스함 5척을 건조하고 있고, 한국 해군은 2009년쯤 일본 것과 비슷한 이지스함정 한 척을 진수할 예정이다.

해상자위대는 16척의 재래식 잠수함을 갖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잠수함의 수명을 16년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미국 등 대부분 국가는 잠수함의 수명을 30년으로 보고 있으나 해상자위대는 16년을 고집하며, 16년이 되면 어김없이 잠수함을 퇴역시켜 창고에 집어넣는다. 그러다 유사시가 되면 퇴역시킨 잠수함을 꺼내 다시 작전에 투입하므로 일본의 잠수함 전력은 ‘곱하기 2’를 해야 한다.   


요코스카 등 다섯 군데 항구를 모항으로 한 지방대는 대잠작전을 위주로 한다. 자위함대가 1000해리 바깥에 쳐놓은 방어망을 뚫고 일본 열도로 접근하는 적은 사실상 잠수함밖에 없으므로 5개 지방대는 대잠전 능력을 갖춘 함정을 집중 보유한 것이다. 한국 해군은 동·서·남해에 각 1개씩 3개의 함대를 갖고 있으나, 이 함대의 전력은 해상자위대의 지방대보다 떨어진다. 1000해리 바깥에서 싸울 자위함대는 아예 없고, 일본의 지방대보다 못한 함대를 3개 갖고 있는 것이 한국 해군의 현실인 것이다.

해상자위대의 작전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 항공자위대다. 따라서 항공자위대는 해상자위대의 전투함을 공격하기 위해 접근하는 적기나, 일본 열도를 공격하기 위해 날아오는 적기를 요격하는 것을 주임무로 한다. 적기를 요격한다는 것은 적기와 공중전을 벌이는 공대공(空對空) 작전을 펼치는 것이므로 항공자위대는 공대공 전투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공대공 전투기는 지상에 있는 목표물을 공격하는 공대지(空對地) 전투기보다 성능이 우수하다. 지상에 있는 목표물은 고정돼 있으나 적기는 끊임없이 기동하며 공격하므로 적기를 요격하는 공대공 전투기는 공대지 전투기보다 훨씬 더 우수한 기동력과 무장을 갖춘다. 이러한 공대공 전투기의 대명사가 F-15인데, 항공자위대는 1981년부터 F-15를 일본 내에서 면허생산하는 방식으로 도입해 지금은 미국 공군 다음으로 많은 203기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한국 공군은 23년 늦은 올해부터 40기의 F-15를 도입하고 있다.

일본은 F-16과 비슷한 성능을 가진 F-2 전투기를 미국과 공동개발해 2000년부터 실전 배치해 오고 있다. 모두 130대가 생산될 F-2기는 미국과 공동개발했다고 하나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이 주도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일본은 주변국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F-2는 핵심 전력이 아니라 F-15를 지원하는 하는 전력’이라는 뜻으로 ‘지원전투기’라고 이름지었다. 그러나 F-2는 최근 중국이 독자 개발한 섬(殲)-10 전투기보다 성능이 좋고, 한국 공군이 보유한 KF-16과 비슷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국은 이제야 가장 등급이 낮은 F-5 전투기 수준인 T-50 훈련기를 미국과 공동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F-5와 F-16은 대략 20년 정도 기술 차이가 있으므로 한국의 전투기 제작술은 일본보다 20년 정도 처져 있는 것이다. 일본은 전투기와 훈련기는 물론이고 C-1 수송기도 자체 개발해냈다.

 

최첨단 무기 실전배치 주변국에 심각한 위협

그리고 F-15와 F-2의 전투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13기의 E-2C 조기경보기와 4기의 E-767 조기경보기를 미국에서 도입하였다. 이중에서도 E-767은 미국 공군도 보유하지 못한 최고의 조기경보기다. 한국 공군은 조기경보기를 미국에서 도입하기 위해 EX 사업을 계획하고 있으나 예산 부족으로 아직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육상자위대 쪽으로 눈을 돌리면 해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의 전력에 놀란 한국군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북한을 상대하는 한국 육군은 ‘현무’를 비롯한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육상자위대는 해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가 일본 열도 바깥에서 위협세력을 제거해주기 때문에 장거리 공격용 지대지 미사일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적국이 쏘는 장거리 미사일은 속도가 아주 빠르기 때문에(마하 10 이상) 해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의 방어망을 뚫고 일본 열도에 떨어질 수가 있다. 육상자위대는 우선은 북한의 노동 1호 미사일이, 장차는 중국의 동풍(東風) 미사일이 유사시 일본 열도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일본 내에서 면허생산해 실전배치하였다.

지대지 미사일은 지상에 고정돼 있는 목표물을 맞히는 것이다. 그러나 패트리어트는 마하 10 이상의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맞히는 것이라 지대지 미사일보다 훨씬 더 정교하다. 이러한 패트리어트를 면허생산함으로써 일본의 방위산업체들은 정교한 미사일 개발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 축적 덕분에 1990년 일본은 움직이는 적 함정을 공격할 수 있는 90식 대함 미사일을 독자 개발했는데 한국은 지난해에야 비로소 이와 유사한 대함 미사일을 독자 개발해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육상자위대가 가장 신경을 쓰는 곳은 러시아와 가까운 홋카이도(北海道) 지역 방어다. 홋카이도 동북쪽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는 일본 영토였으나 전쟁이 끝나면서 소련이 강제로 점령해버린 시코탄(色丹) 등 4개 섬이 있다. 일본은 러시아에게 이 섬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러시아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따라서 홋카이도에서는 러시아와의 분쟁이 일어날 수 있어 육상자위대는 이곳에 4개 사단을 거느린 북부방면대를 배치해놓고 있다. 11개 사단, 3개 여단으로 구성된 육상자위대가 이곳에 4개 사단을 배치했다는 것은 러시아를 가상적국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북부방면대 소속 부대는 육상자위대 중에서 최정예로 꼽히는데, 올 3월 이라크에 가는 부대는 홋카이도에 주둔한 2사단에서 빼낼 예정이라고 한다.

일본이 사용하는 1년 국방비는 500억 달러인 데 반해 한국은 130억 달러, 중국은 350억 달러 수준이다. 일본은 막강한 경제력 덕분에 GDP(국내총생산)의 1%만 국방비에 투자하는데도, 4000억 달러의 국방비를 쓰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그러나 병력으로 보면 자위대는 25만명으로 227만의 중국군, 110만의 북한군, 69만의 한국군보다 훨씬 적다. 병력은 적은데도 쓰는 돈이 많다는 것은 첨단무기 위주로 구성된 군대라는 뜻이다. ‘작지만 아주 강한 군대’가 자위대인 셈이다.

이 작고 강한 군대가 세계로 뻗어나가려 한다. 그뒤에는 세계 2위의 경제력이 버텨주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영국 이상으로 미국에 보조를 맞추려고 한다. 미국이 싸우는 전쟁에는 ‘무조건’ 협력하며 비위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으로부터 무언의 양해를 얻어 헌법 9조를 삭제하려는 심모원려일 것이다.

일본의 집요한 군사력 팽창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그 곁에 있는 한국은 누구를 친구로 삼고 누구를 경계해야 할 것인가. 4강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분단상황인 한국으로서는 미래의 생존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