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천제 후손이 천부삼인 못받아 정체성 상실, ‘단군민족주의’에 만취
자미원의 자紫자는 파자破字하면 止+匕+糸가 되는데, 칠성님이 12진을 돌다가 멈춰 서서 칠성의 기운을 실처럼 풀어 내리는 곳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
칠성의 기운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방위를 동북간방東北艮方이라 한다. 오랜 옛날부터 동북간방은 밤에 신들이 활동하는 방위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귀신이 나타난다 하여 표귀방表鬼方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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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원 외곽에 한인천제의 하늘인 태미원이 있고, 또한 한웅천왕이 세운 배달나라의 하늘인 천시원이 있다. 이들 두 하늘은 묘방卯方과 유방酉方에 나뉘어 바라보고 있다. 자미원과는 삼각구도를 이룬다.
자미원의 중심에는 북극오성이 있다. 이 북극오성을 서양천문에서 작은곰 별자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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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곰별자리는 서양인들이 하늘에 기록한 희랍신화이지만 북극오성은 지구에서 최초로 역사를 시작한 동이족의 선조가 하늘에 기록한 인류 최초의 역사천문기록歷史天文記錄이다. 한인, 한웅, 단군왕검, 웅녀가 별이 되어 나란히 북극오성에 기록된 점으로 보아서 조선의 2세 단군인 부루단군 때 네 분 조상의 신명神明이 북극오성에 올렸을 것으로 본다.
옛날부터 걸출한 조상의 시호나 명호를 별에 올리는 일을 종교에서 하였다. 단군왕검이 태자성에 올려졌으므로 단군조선의 국교였던 덕교종단德敎宗團에서 북극오성에 올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리나라 재야 사학자들이 통사적인 시각으로 시조역사始祖歷史를 보는 역사 상한선이 4가지로 갈라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동이족의 시조역사가 마고를 기점으로 시작하는 마고파, 한인을 기점으로 시작하는 한인파, 한웅을 기점으로 시작하는 한웅파, 단군왕검을 기점으로 시작하는 단군왕검파의 넷으로 갈라져 있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재야사학자들이 역사를 보는 시각이 갈라지는 이유가 재야 역사학자들이 천문을 공부하지 않아 천문을 역사로 해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게 된 현상으로 본다. 천문을 역사라는 관점에서 공부하고, 이어서 한자를 우리문자라는 관점에서 공부하고 나면, 천문에 올린 우리 조상의 역사가 명확히 우리 역사로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나와 일본의 역사를 이기려면 이 방법 이외에 다른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천문을 공부하여 우리의 역사상한선을 14000~12000년 전으로 업대이트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왜 천문을 공부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한 가지 들어 보기로 한다.
천문에서 가장 중요한 별이 북극오성에 속한 서자성庶子星이다. 이 별자리가 동이족의 정체성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고시대역사서에서 庶子라는 문자가 한웅천왕이라는 문자 앞에 붙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자는 <천상열차분야지도>에도 나타난다. 그것도 북극오성에 우리 시조 로열패밀리의 중심인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서자는 한웅이 천왕으로 등극하기 전의 관직 이름이다. 그를 한국의 서자부대인庶子部大人이라 하였다. 서자부대인은 지금의 행정안전부장관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서자성의 좌우에는 황후성과 천제성이 있다. 북극오성에 별 이름을 정할 때 한국시대의 관직 명칭으로 별 이름을 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북극오성의 별자리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시조의 명칭을 비교해 보면 서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군신화>에서 웅녀로 불리는 여인이 북극오성에서 황후(지나족은 황후를 후궁으로 폄하하였다)로 올려져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신화와 천문을 어떻게 역사로 해석할 것인가 하는 해석의 문제가 생겨난다.
<천부경>의 수리체계가 어떻게 사유체계로 발전해 가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천부경>의 수리체계에서 신화의 사유체계나 천문의 사유체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수자가 일정한 의미를 가진 언어나 문자의 패턴으로 발전해 간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1은 시작이자 양이므로 한국의 천제로 등극한 한인으로, 2는 시작이자 음이므로 황후로 자리매김한 웅녀로, 또한 웅녀는 마고로, 3은 3번째로 배달나라를 세운 서자 한웅으로, 4는 네 번째로 조선을 세운 태자로 대체할 수 있다. 이리하여 하늘의 중심에 동이족 시조 로열패밀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1은 한인천제로, 2는 황후웅녀, 마고로, 3은 서자한웅천왕으로, 4는 태자 단군왕검으로 확정할 수 있다.
인간이 집단무의식으로 가지고 있는 수리체계數理體系에서 사유체계思惟體系가 나옴으로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단군신화>와 천문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우리의 정체성이란 곧 우리의 사유체계가 만들어 낸 본 모습을 의미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북극오성에서 황후성을 마고로, 서자성을 한웅으로, 천제 성을 한인으로, 태자성을 단군으로 해석하여 우리의 공동조상으로 보았을 때 생긴다. 이들 네 분의 조상에서 어느 한 분이 빠져도 동이족의 정체성은 역사의 단절로 허물어지게 되어 있다. 이러한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을 <단군신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동이족 정체성의 근원이 되는 네 분의 조상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단군신화>에서 마고를 최고 조상으로 하는 시조 로얄패밀리 구성에 놓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정체성을 찾으려면 이 마고 로얄패밀리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단군신화>를 읽을 때는 신화를 역사로 바꾸어 읽는 방법으로 읽어야 상고시대 역사가 눈으로 들어온다.
<단군신화>에서 마고는 마늘과 쑥을 먹고 3.7일 만에 여인으로 환생하는 곰으로 등장한다. 곰은 마고의 변음이다. 마고가 웅족熊族 출신이라는 뜻이다. 하늘에서 웅족은 소웅성小熊星(작은곰별자리)과 대웅성大熊星(큰곰별자리, 북두칠성)으로 나타난다. 소웅성은 북극오성이고, 대웅성은 북두칠성이다.
정체성의 징표로 단군신화에서 제시하는 것이 천부삼인이다. 하늘에서 천부삼인은 해, 달, 북두칠성이다. 이들 별을 돌이나 거울에 새긴 것을 천부삼인이라 하였다.
천부삼인은 우주의 섭리를 나타내는 신표이다. 마고는 황궁에게 천부삼인을 제시함으로써 정체성을 확고히 하였다. 홍익인간이란 이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황궁은 천부삼인을 유인에게 전했고, 유인은 한인에게 전했다. 한인은 한웅에게 전했다. 우주의 섭리를 깨닫는 것이 <홍익인간>할 수 있는 길임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 학자가 <홍익인간>의 연구 논문에서는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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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인은 두 가지 각도에서 해명이 가능하다. 당대적 방증과 후대적 전승에 근거해서 <천부인>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 <천부인>의 당대적 증거물은 다뉴세문경, 세형동검, 팔주령 등을 유추해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연장들이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유물이므로 이러한 증거물로 <천부인>을 말할 수 있다. 위 세 가지 증거물은 실용적 연장이 아니라 명확히 의기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환인은 환웅에게 의기로 <천부인>을 준 것이다. 후대적 민속 전승으로 유사한 방증을 꼽을 수 있으니 무당의 사제전승에서 핵심이 되는 삼명두인 명두, 신칼, 방울 등이 <천부인>의 의기적인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비교신화적관점에서 본 홍익인간의 이념 김헌선)
<단군신화>에서 한인이 한웅에게 천부삼인을 주는데, 한인들이 다스렸던 한국의 시대를 9000년에서 6000년 사이로 본다면, 이 시대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돌과 나무로 만든 것 이외에 다른 소재는 발명이 안 된 상황이었으므로 청동을 천부삼인의 재료로 쓸 수 없었을 것으로 본다.
이때에 천부삼인을 전수했다면 돌에 새겨 전수했다고 볼 수 있다. 천부인은 선대에 돌에 새겼든 후대에 청동에 새겼든 <해와 달과 칠성>을 새긴 물건으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영원한 상징이다. 이 상징이 빠진 주의주장은 설사 그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의미심장하다고 해도 정체성이 빠진 공허한 주의 주장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이 일제에게 패망할 때, 사가들이 정체성이 빠져 있고 출처가 불분명한 <단군민족주의>를 들고 나왔다. 그들이 <단군민족주의>를 제창하면서 근거로 제시한 것이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실린 <단군신화>였다. 그러나 단군신화는 아무리 분석하여도 <단군민족주의>가 나올 수 없는 신화이다.
<단군민족주의>는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널리 부활하여 한민족의 민족의식을 제고하는 과제를 주도하게 된다. 가령 한말에 들어 <단군의 자손>의식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게 된 것과, 단기-단군건국연호가 민족언론을 통하여 사용되기 시작한 것, 단군교-대종교라는 단군을 국조로 숭앙하는 종교단체가 창립된 것, 단군 자손의 역사적 정체성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민족주의 사학-국학자들은 한말-일제기를 통하여 단군민족주의 의식을 체계화 하고 보급시킨 주역이었다. (홍익인간이념의 유래와 현대적 의의 정영훈)
이러한 글을 보면 우리 상고사에 대한 충분한 연구 없이 나라가 패망해 가는 데서 오는 절박한 시대적인 요청에 의하여 허겁지겁 단군을 국조로 모시고 <단군민족주의>를 여러 방면에서 거의 동시적으로 제창하게 되었다고 보게 된다.
단군의 자손으로서 <단군민족>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한인천제의 자손으로서 <한인민족>과 한웅천왕의 자손으로서 <한웅민족>도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단군>에서 나온 <단기(檀紀)>를 쓸 수 있다면, 한인천제에서 나온 <한인기(桓因紀)>와 한웅천왕에서 나온 <한웅기(桓雄紀)>도 쓸 수 있다. 따라서 <한인민족>과 <한웅민족>을 빼버리고 <단군민족>만을 고집하는 <단군민족주의>는 대단히 폭이 좁은 1/3민족주의라는 한계에 부디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에다 마고를 우리의 시조로 본다면 <단군민족주의>는 1/4민족주의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단군민족주의>가 갖는 또 다른 맹점은 한인천제에서 한웅천왕으로 이어지는 정체성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천부삼인>으로 표시되는데, 한인천제를 국조의 지위에서 끌어내리고 단군왕검을 국조의 지위에 올림으로써 한인천제와 한웅천왕 두 조상을 잃어버리게 됨은 물론이고, 한인천제가 한웅천왕에게 전수한 <천부삼인>이 다시 단군왕검에게 전수 될 수 없게 하여 정체성을 상실하게 한 것이다. 또한 신화분석이 미흡하여 곰에서 분석되는 마고에 대하여 전혀 언급이 없다는 점도 지적해야 할 사항이다. 마고해석이 없는 단군신화해석은 머리가 없는 몸통 해석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마고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천부삼인을 받지 못하여 정체성을 상실했고, 1/3민족주의밖에 아니 되는 <단군민족주의>에 취하여 만취상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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