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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갈량의 팔진
'삼국지연의'를 보면 육손이 유비를 격파하고 추격해오다가 어복현에서 강가에 쌓아놓은 돌무더기로 만든 팔진에 갇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다. 원래 '팔진법'이라는 방진을 응용 발전시킨 것으로 야전에서 기동성이 있는 기병에 대비하기 위한 진법이었을 뿐 그렇게 신묘한 효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손빈이 발전시켰으며, 후한의 두헌이 연연산에서 흉노를 칠 때 사용했다. 제갈량은 풍구에게 병법진도를 배웠을 때 이 진법을 익혔을 것이다.
2. 여포와 유비 삼형제의 대결
'삼국지연의'에는 관우가 동탁의 도독 화웅을 벤 후 유비·관우·장비가 호뢰관에서 여포와 3:1격투를 벌이는 것으로 나온다. 지금 중국에 가면 호뢰관을 재현해 놓고 관광상품화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호뢰관 싸움은 존재하지 않았다. 화웅을 벤 것과 여포와 동탁을 패주시킨 것은 다 손견이 한 일이었다. 유비 삼형제는 산동의군에 가담조차 하지 않았다.
3. 조조의 여백사 살해
조조는 동탁을 피해 달아나던 도중에 부친의 친구인 여백사의 집에 유숙했다. 조조는 돼지를 잡기 위해 준비하는 소리를 자신을 습격하려는 것으로 오해해 여백사의 가족들을 몰살시켰다.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조조가 증거를 없애기 위해 길에서 만난 여백사마저도 죽여 버렸다고 한다. 조조의 사악함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인 거짓말이다. 조조는 여백사를 죽인 일이 없으며, 이 사건도 수배령이 내려져 극도로 예민한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4. 관우의 오관육참장
'삼국지연의'는 관우가 조조를 떠나 유비에게 돌아가는 과정에서 다섯 개의 관문을 통과하면서 길을 막는 여섯 명의 장수를 목 베었다고 한다. 이른바 ‘오관육참장 설화다.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관우는 조조의 사후적 허락이 있었기에 유비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관우가 조정에 의해 임명된 장수와 지방관들을 마구 죽이고 다녔다면 조조가 이를 내버려 두었을 리가 없다.
5. 장비의 독우 매질
유비가 안희현위가 되었을 때 군에서 독우(감독관)가 내려와 유비를 거만하게 대했다. 술에 취한 장비가 독우를 붙잡아 매질했다. 유비는 하는 수 없이 벼슬을 버리고 떠났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이야기이나 사실과 전혀 다르다. 독우를 붙잡아 매질한 사람은 유비였다. 이처럼 무모한 짓은 유비의 이미지와 전혀 맞지 않았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이야기를 조작한 것이다. 장비로서는 무척 억울한 일이다.
6. 장비의 산적질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가 서주에서 조조에게 패해 원소에게 도망쳤을 때, 장비가 망탕산에 들어가 산적질을 한 것으로 나온다. 관우가 오관육참장을 거쳐 유비를 찾아오던 길에 망탕산에서 장비와 조우하는 장면도 나온다. 무협지같은 이야기들인데 다 후세 사람들이 재미를 위해 지어낸 내용이었다. 망탕산이란 지명 자체도 '수호지'에서 노지심의 산채가 있던 산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7. 원소의 낙양 입성
'삼국지연의'에 의하면 18로의 제후군이 의병을 일으켰고, 이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원소의 지휘 하에 동탁군을 무찌르고 낙양까지 입성했다고 한다. 사실이 아니다. 정사는 이러하다. 즉 10여명의 주목과 자사, 태수들이 의병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나 이들이 모두 원소를 맹주로 삼아 하나의 세력으로 통합된 것은 아니었다. 반군은 황하를 경계로 하북의 원소, 하남의 원술 2개 진영으로 나누어졌다. 이들은 각자 다른 곳에 주둔했으며, 낙양에 입성한 것도 손견군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