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대금산의 진달래 군락지로 이어지는 오솔길. 대금산 임도에는 산벚꽃이, 능선으로 오르는 길에는 연분홍 진달래와 흰 자두꽃, 선홍색 동백꽃이 흐드러졌다. 대금산의 진달래는 이번 주말이 절정이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자연의 꽃밭 거제도
대금산~망산 53㎞ 이어지는 근육질 같은 ‘남북지맥’
30년 전 산불로 폐허됐던 곳에 하나씩 자리잡은 야생화
4월 초까지 형형색색 물결처럼 일렁이는 春花군락
‘조선소의 섬’ 명성에 가려졌던 천혜 자연의 명소
율포~산촌리 벚꽃터널, 해안도로 못잖은 드라이브 코스
제철 맞아 통통하게 살오른 멸치, 회무침·튀김 등 일품
거제=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지금 남쪽은 온통 꽃밭이다. 지난주 흐드러지기 시작했으니, 이번 주는 절정이다. 올해 봄꽃은 한꺼번에 불구덩이에 던져넣은 폭죽처럼 터지고 있다. 개화 순서도 지키지 않고, 자리도 가리지 않는다. 산과 들에서, 그늘과 양지에서, 남쪽과 북쪽에서꽃이 일제히 같이 피고 있다. 느닷없이 닥친 봄의 훈기 때문이다. 봄꽃이 한꺼번에 핀다는 건 봄꽃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짧고 압축적이라는 얘기. 올해 꽃구경은 아차 하면 놓친다. 봄꽃을 보겠다면 올해만큼은 부지런해야 한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까짓것 봄꽃쯤 안 봐도 상관없긴 하다. 하지만 지금 맞이하고 있는 봄은, 해마다 오는 그런 봄이 아니다. 마스크를 벗고 향기와 함께 봄꽃을 만나는 게 대체 몇 년 만인가. 거리를 두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꽃을 보는 건 또 얼마 만인가. 봄꽃을 맞이하는 감격이 새삼스럽다.
거제 학동 몽돌해변의 자갈. 파도가 밀려왔다 나갈 때마다 자갈을 굴려 ‘차르르’ 소리가 난다. 이 소리는 봄날에 듣는 게 가장 운치 있다.
# 거제의 봄꽃은 자연스럽다
봄날의 거제는 꽃밭이다. 가는 곳마다 꽃이다. 동백꽃과 벚꽃, 수선화와 자두꽃, 개나리와 진달래가 흐드러졌다. 거제의 봄꽃은 남해나 여수 등 이름난 관광지의 봄꽃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관광객을 겨냥해 작정하고 대단위로 조성해놓거나, 하나의 수종으로 덮어버린 그런 꽃밭에서 만나는 꽃이 아니다. 거제에 피는 봄꽃의 미덕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길게 도열한 벚꽃 가로수길은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지만, 거제의 벚꽃길은 자주 끊긴다. 벚꽃 대신 분홍색 꽃이 듬성한 살구꽃이며 꽃의 윤곽이 선명한 자두꽃이 나타나기도 하고, 이국적 정취의 종려나무가 서 있는가 하면, 발치에 붉은 꽃잎을 낭자하게 떨군 동백이 나타난다. 거제의 해안도로를 달리면 길가의 봄꽃이 두서없다. 이런 자연스러움이 거제 봄나들이의 매력이다. 꽃밭을 좀 더 크게, 혹은 벚나무 가로수 터널 길을 좀 더 길게…. 거제에는 뭐 이런 ‘조성과 정돈의 욕망’이 별로 없다.
이유를 짐작해보면 이렇다.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르지만, 과거 거제는 관광에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조선업 경기가 한창이던 시절, 거제는 흥청거렸다. 조선소가 최대 호황을 누렸던 시절에 조선소의 직영과 하청, 임시직 8만 명에게 지급된 한 달 월급만 4000억 원이 훨씬 넘었다니 왜 안 그랬을까. 좁은 거제 바닥에 연간 풀린 돈이 자그마치 5조 원에 육박했던 시절이었다. 주민도, 지자체도 관광객이 두고 간 ‘푼돈’ 따위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거제에 관광객을 겨냥한 대단위 꽃밭이나 길고 긴 벚꽃 가로수길이 없는 이유다. 이게 10년 전까지의 얘기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거제가 내로라하는 여행지로 꼽혀온 건 순전히 천혜의 자연경관 때문이다. 굳이 잘 보이려 대단위 꽃밭을 가꾸거나 경관을 다듬지 않아도, 거제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특히 장승포에서 구조라, 학동을 거쳐 여차, 홍포로 이어지는 거제 남부의 해안도로는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차창 밖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그 길 위에 지금 봄꽃이 한창이다. 해안도로의 봄꽃을 더 아름답게 하는 건 바다다. 해안도로에서 만나는 벚꽃과 동백 사이에, 자두꽃과 개나리 사이에 쪽빛 바다가 있다.
# 더 넓지 않아 좋은 진달래 군락
거제는 섬이지만, 동서와 남북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뚜렷하다. 이른바 ‘거제지맥(枝脈)’이다. 지맥은 동서와 남북으로 교차한다. 지금 같은 봄날이라면, 단연 거제 섬 북쪽의 대금산에서 남쪽 끝 망산으로 이어지는 53㎞짜리 산줄기인 ‘남북지맥’의 경관이 최고다. 대금산과 망산 사이에는 가라산, 국사봉, 계룡산, 노자산, 북병산 같은 명산의 근육질 같은 산줄기가 맥박처럼 펄떡펄떡 뛴다.
거제에는 ‘시시한 산’이란 없다. 거제 사람들에게는 혹시 모르겠지만, 외지사람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순전히 거제의 산 정상 또는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남해 경관 덕분이다. 기암이 없거나, 숲이 깊지 않다 해도 산정에서 펼쳐지는 바다와 섬의 경관은 거기까지 오른 수고를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다.
거제 남북지맥의 시작지점인 대금산으로 먼저 간다. 대금산은 해발 437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신라 때 쇠를 생산했다고 해서 ‘대금(大金)’이라 불렸다는데, 나중에 ‘비단 같은 산’이란 뜻의 대금(大錦)으로 산 이름을 바꿔 달았단다. 이름을 바꿔 달면 마을에서 큰 인물이 난다는 스님의 예언에 따른 것이란 얘기도 있는데, 이 얘기 뒤에는 거제 장목면이 고향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홍인길·김정길 전 국회의원의 이름이 따라붙는다.
대금산은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 대금산을 찾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진달래’다.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대금산 서쪽 자락은 온통 연분홍 진달래 물결이 일렁인다.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진달래 명산’ 중 한 곳이다.
대금산 진달래 군락의 규모는 입이 딱 벌어질 만큼 크지는 않다. 대금산 진달래꽃 군락을 마주하고 처음 느낀 감정은 사실 ‘가벼운 실망’에 가까웠다. 꽃 색이 좋긴 하다지만 진달래꽃 군락의 규모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다. 길고 거대한 산줄기가 진달래꽃으로 다 뒤덮이는 여수 영취산에는 어림도 없고, 강화의 고려산이나 창원의 천주산과 견준대도 좀 모자라는 듯했다. 그런데 진달래꽃이 터널을 이룬 산길로 들어서자마자 슬며시 생각이 바뀌었다. 꽃밭으로 들어서니 눈 돌리는 곳마다 연분홍 꽃이 가득했다. 이 정도만 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때 든 생각이 이랬다. ‘꽃밭이 이것보다 더 클 필요가 있을까.’
# 복사꽃 대신 진달래꽃 무릉도원
대금산의 진달래는 일부러 조성한 군락이 아니다. 30여 년 전쯤 산불이 나서 폐허가 된 자리에 진달래가 하나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해서 지금의 꽃밭을 이뤘다. 군락지 훼손을 막기 위해 해마다 열던 진달래 축제를 중단하거나 격년으로 개최한 적은 있지만, 진달래 군락지를 넓히기 위해 꽃을 새로 심거나 가꾸거나 한 적은 없다. 한마디로 ‘잘 놓아둔’ 진달래 꽃밭이란 얘기다. 군락지 바로 아래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벚나무며, 온통 붉은 꽃으로 만든 다발 같은 동백나무, 정갈한 흰 꽃을 피운 자두나무를 베어내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꽃밭을 키우고 넓혔으면 감탄사는 더 커졌겠지만, 너른 꽃밭은 그만큼 많은 사람을 불러모아 행락객들로 법석이기 마련이다. 꽃으로 이름난 명소들이 대개 그렇다. 이렇게 명소가 된 관광지에서 혼잡을 막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돈을 받는 것, 다른 하나는 접근 편의성을 떨어뜨리는 것. 대금산 진달래 군락이 더 컸다면 돈을 내지는 않았더라도 멀찌감치 차를 대고 수고스럽게 걸어 올라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눈으로, 혹은 몸으로 누릴 수 있는 진달래꽃은 어차피 한정돼 있다. 그렇다면 진달래 군락은 대금산 정도가 딱 알맞은 듯하다. 아니 이것도 좀 크다 싶다. 대금산은 진달래 군락이 넓거나 크지 않아 접근 편의성이 만점에 가깝다.
대금산에는 임도와 연결된 거미줄 같은 탐방코스가 여럿 있다. 임도 구간을 걸어서 부드러운 능선을 딛고 오르는 서너 시간짜리 트레킹 코스부터,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사이쯤의 몇 개 코스가 있다. 아예 남북지맥의 능선을 이어붙여 행군처럼 길게 걷는 이들도 있고, 진달래 군락지 바로 아래까지 이어진 임도 구간을 차를 타고 가서 바로 꽃밭으로 올라서는 이들도 있다. 대금산에서는 서너 시간을 꼬박 걷는 등산도, 10분 만에 꽃밭으로 들어설 수 있는 행락도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등산코스야 등산객들이 너도나도 정보를 올려놓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가벼운 행락을 위한 정보는 드물다. 대금산 진달래 군락지를 가려면 장목면 외포리의 작은 절집 도해사까지 가서 절집 앞의 외길 임도를 따라 더 이상 차가 갈 수 없는 끝까지 가면 된다. 그곳에서 10분쯤 능선을 오르면 꽃밭으로 들어설 수 있다.
위 사진은 대금산 북동쪽 사면 군락지에 가득 피어난 진달래꽃. 가운데 사진은 동부면 산양리 명화식당에서 내는 사백어 회무침. 사백어는 3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한 달 반쯤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아래 사진은 고현동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의 탱크 전시장.
# 살 오른 거제 멸치에 봄의 맛이 들다
거제의 봄맛은 단연 멸치다. 봄이면 거제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싱싱한 봄 멸치가 난다. 거제에서 멸치로 이름난 곳이 대금산 들머리인 외포항이다. 대금산에 들렀다면 외포의 멸치를 꼭 맛봐야 하는 이유다.
사실 거제 외포는 봄 멸치보다는, 겨울 대구가 더 이름났다. 겨울 외포에는 팔뚝보다 훨씬 큰 대구로 가득 찬다. 추운 겨울날 외포의 식당에서 받는 대구 맑은 탕은 일품이다. 뜨끈한 국물은 시원하기 이를 데 없고, 대구살은 입안에서 보드랍게 무너진다.
대구가 가장 맛이 드는 때는 산란기 직전의 한겨울까지. 1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은 산란기라 포획이 금지되는데 금어기 직전까지가 제맛이란 얘기다. 지금 외포항에 대구는 없다. 회유성 어종인 대구는 산란기가 지나면 거짓말처럼 어장에서 사라진다. 대신 대구의 빈자리를 멸치가 채운다. 먹거리는 다 제철이 있는 법. 김 펄펄 나는 대구탕이 겨울의 맛이라면, 새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에 무쳐낸 멸치회는 봄의 맛이다.
대구 철이 지나고 봄꽃이 필 무렵이면 외포 식당들은 일제히 메뉴판을 바꿔 건다. 봄부터 외포에서는 멸치다. 외포에서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멸치요리는 멸치 회무침이다. 굵은 대멸치를 바삭하게 튀겨낸 튀김과 자작하게 조려낸 멸치찌개는 선택이다. 모든 멸치요리를 다 묶어서 내놓는 ‘멸치코스’ 메뉴도 있다.
보통 멸치잡이 배는 그물질을 한 뒤 멸치가 걸린 그물째 싣고 포구로 돌아와서 그물을 털어낸다. 외포 식당들은 이렇게 털어낸 멸치를 가져다 곧바로 요리해낸다. 멸치잡이 배가 수시로 포구에 들어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외포에는 멸치 가공유통업체가 운영하는 멸치 카페가 있다. 사면이 유리 통창으로 마감된 ‘거제도외포멸치’ 사옥 1층은 생산제품 전시장이고, 2층은 카페다. 멸치가 ‘젊은 세대와 단절돼있는 식품’이란 편견을 깨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카페의 디저트 메뉴에 멸치튀김이 있다. 잔멸치를 튀겨서 허니버터와 버터갈릭, 체다치즈를 뿌려 내는데 웬만한 스낵 메뉴보다 낫다. 더 놀랄 만한 건 카페의 시그니처 음료인 ‘엔초비 모카’다. 차가운 모카커피 위에다 멸치를 넣고 만든 크런치 초콜릿을 올려준다. 멸치와 초콜릿이라니. 행여 비리지 않을까 싶은데, 초콜릿 맛으로 덮여 멸치는 식감만 남고 냄새나 맛은 희미하다.
# 거제 내륙의 봄꽃 드라이브 코스
거제에서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는 해안도로가 최고지만, 섬의 안쪽에도 봄꽃으로 그득한 훌륭한 드라이브 코스가 있다. 동부면 율포리에서 부춘리를 넘어 산촌리까지 가는 율포로다.
율포로가 지나는 동부면 부춘(富春)리에는 벚꽃 터널과 함께 만개한 동백나무 가로수가 그득하다. 부춘은 중국 절강성(浙江省) 동로현(桐盧縣)에 있는 산 이름이기도 하다. 부춘산에서 후한 때 사람 엄자릉(嚴子陵)이 숨어 살았다. 엄자릉은 함께 공부했던 후한의 광무제가 즉위한 뒤 여러 번 불렀는데도 벼슬자리에 나서지 않았는데, 보장된 출세 대신 은거한 곳이 바로 부춘산이었다. 산이나 정자, 혹은 마을에 ‘부춘(富春)’의 이름이 걸려 있다면 누군가 세상을 등지고 은거한 사람이 거기 있었다는 힌트다. 그렇다면 거제 부춘리에는 누가 은거했을까.
오랫동안 거제는 유배지였다. 반세기도 더 전에 연륙교가 놓여 지금은 육지나 다름없지만, 거제는 조선시대 내내 유배지를 정할 때 제주도, 흑산도, 진도에 이어 가장 자주 거론된 지역이었다. 고려 때 정중부의 무신정변으로 유배된 의종을 시작으로 거제에 귀양 온 사람들만 1000명이 넘고, 신원이 확인된 사람만 500명을 헤아린다.
부춘리를 지나 닿는 산촌리에는 명화식당이 있다. 예닐곱 개 테이블을 놓은 자그마하고 허술한 식당인데, 그곳에서 3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한 달 반 동안만 맛볼 수 있는 거제의 별미 ‘사백어(死白魚)’를 낸다. 뱅어처럼 생긴 사백어는 온몸이 반투명한데 죽으면 색깔이 흰색으로 바뀐다고 해서 ‘죽을 사(死)’에 ‘흰 백(白)’ 자를 쓴다. 일본에서도 즐겨 먹는데 일본어로도 ‘시로우오(白魚)’다. 농어목 망둑엇과인 사백어는 바다에서 살다가 봄이면 산란을 하러 물길을 거슬러 올라오는데, 거제 일대에서 연중 그때만 잡힌다.
사백어는 회로도, 전으로도 먹고 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고소한 맛의 전이나 심심하게 끓여낸 국은 큰 거부감이 없지만 사백어 회는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대기 망설여진다. 사백어 회는 산 채로 꿈틀거리는 사백어를 퍼담고 그 위에 채소를 얹은 뒤 초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는다. 꿈틀거리는 사백어를 처음 본 외지인들이라면 좀처럼 젓가락을 대기가 쉽지 않다.
# 망산에서 봄을 바라보다
이제 거제 남북지맥의 남쪽 끝 망산(望山)으로 간다. 망산은 거제 최남단에 솟아 있는 해발 397m의 산이다. 거제 사람들은 이 산을 두고 ‘거제가 가진 풍경의 절정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 산에 올라보면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바랄 망(望)’에 ‘뫼 산(山)’이란 이름이 왜 붙여졌는지를 저절로 알게 된다.
섬이지만 해발 500m가 넘는 산이 드물지 않은 거제에서 망산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하지만 망산 정상에서 보는 바다 경관은 거제의 다른 어떤 산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거제 남부의 쪽빛 바다와 그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대·소병대도며 매물도 등 그림 같은 섬들 덕분이다.
망산은 홍포마을에서 곧바로 치고 오르면 40분쯤이면 어렵지 않게 정상에 닿는다. 망산은 정상 정복을 목표로 오르는 게 아니라 조망과 경관이 목적일 테니 그렇게 오르는 건, 그야말로 바보 같은 일이다. 그렇게 코스를 잡았다가는 능선 위의 암봉에서 바라보는 절경을 다 놓치고 만다.
주로 택하는 코스가 저구마을 삼거리의 남부주유소에서 출발해 내봉산을 넘어 망산 정상에 올랐다가 명사해변으로 내려서는 코스다. 능선에서 방향을 바꿔가며 바다 경관을 보면서 오른다. 산행거리는 5㎞ 정도로 3시간쯤 걸린다.
이것보다 더 나은 코스가 있다. 여차마을에 차를 세워 두고 마을에서 능선을 타고 망산 정상에 올랐다가 홍포마을로 내려오는 코스다. 산행거리는 3.8㎞ 남짓으로 2시간 30분쯤이면 넉넉한데, 하산 후에 출발지점인 여차마을까지 4.5㎞ 남짓을 걸어서 되돌아와야 하니 여기다가 1시간 20분쯤을 더해야 한다. 이 코스를 추천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하산 후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오는 길의 운치 때문이다. 그 길이 거제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치는 해안 절경이 펼쳐지는 홍포∼여차 구간이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교차하는 이 길은 바다를 끼고 산벚꽃잎이 분분히 날리고 연두색 새잎이 돋기 시작하는 숲 사이로 이어져 있다. 문득 걸음을 멈춰 서서 바라보는 수석처럼 떠 있는 섬들과 옥색 비단 같은 바다에 주름을 그리며 미끄러지는 고깃배의 모습이라니…. 바다와 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풍경이 바로 그 길 위에 있다.
■ 공곶이의 수선화
거제에는 봄에 특히 돋보이는 명소가 있다. 파도에 자갈이 구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학동 몽돌해변도, 동백꽃이 낭자하게 떨어지는 지심도도 그런 곳이다. 봄꽃 화려하기로는 일운면 와현리의 공곶이가 손꼽힌다. 바다를 끼고 있는 공곶이에는 봄이면 수선화와 설유화가 가득 피어나는데, 올해는 꽃이 형편없다. 50년이 넘도록 꽃밭을 가꿔왔던 강명식(93) 할아버지가 입원 중이라 그렇다. 꽃을 볼 수 없게 되니 비로소 알게 되는 사실. 봄이면 볼 수 있었던 근사한 꽃밭은 온전히 한 사람의 수고로 만들어졌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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