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家龜鑑
曹溪退隱 述
일러두기
1. 원문에 오자(誤字)와 낙서(落書)는 조선조 목판본 八·九종에 의거 교정하였으며 번역은 1948년 선학원판을 본(本)으로 하고
부휴선사 언해본을 참작하였다.
2. 부휴선수(浮休善修)선사가 교정하신 전라도판 언해본(1610년 간)을 준하여 五三(五祖云……云云) 구(句)를 평(評)에서 대문(大文)으로
올려 편입했고, 또 七八(禪學者……始得) 구(句)와 주해 등을 전후(前後) 관계로 보아 요긴하다고 생각되기에 편입했다.
3. 대문(大文)과 주해(註解)와 평(評) 등을 시각적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구목판본에 준하여 활자의 높이와 크기를 달리 하였다.
4. 격외선(格外禪) 도리에 가까운 말들은 해석하지 않았다. 그것은 또한 무어라고 말할수도 없는 것이다.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이기에.
5. 출처가 있는 말이라든가 어려운 술어, 그리고 종사들의 행적 같은 것은 발심하고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좀 지나치도록
역주(譯註)의 분량을 넓혔다. 어떤 의미에서는 비록 체계적인 것은 아닐지라도「불교 입문」의 역할을 해줄 수도있을 것이다.
역주(譯註)에 [범][파]는 범어(梵語 Sa,sk,ta) 와 파리어(巴利語 Pāli) 임을 나타낸 것이다.
6. 저자(著者)인 서산대사와 그의 수제자(首弟子)인 사명(四溟)대사의 약력을 참고 삼아 간단히 소개하였다.
발 문(跋文)
아래 글은 조계노화상 퇴은 큰스님께서 지으신 것이다. 슬프다! 이백년을 내려오면서 부처님의 전법이 더욱 쇠잔하여, 선과 교의 무리들이 각각 다른 견해를 내세우니 교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직 찌꺼기에만 맛을 붙여 헛되이 바닷가의 모래만 셀 뿐, 다섯 교문 위에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스스로 깨쳐 들어가는 길이 있는 것을 아지 못하고, 선만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의 천진한 성품만을 닦아 증하려 하지않고, 더구나 단박 깨친 뒤에 참으로 발심하여 온갖 행을 닦고 익히는 뜻도 아지 못한다.
그리하여 선과 교가 뒤섞이고 넘쳐 모래와 금을 가리지 못하는 것이다.「원각경」에 이른바「본래 성불하였다」는 말을 듣고 미욱한것도 깨친 것도 본래 없다 하여, 인과를 부정하는 것은 삿된 소견이요, 또한 오랫동안 닦아서 무명을 끊는다는 말을 듣고 참 성품이 망녕을 내는것이라 하여, 참되고 떳떳한 성품을 잃어버리면 삿된 소견을 이르는 것이 이것이다. 아! 위태하여라. 부처님으 도가 전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 이다지 심할까? 겨우 이을락 말락함이 마치 안 오리의 머리카락으로써 천근의 무게를 끌어올리듯 거의 땅에 떨어져 버려둘 수 없더니,
마침 우리 큰 스님께서 서산에 계신지 十년 동안을, 소먹이는 여가에 五十여 권의 경론과 어록을 보시다가 그 가운데 항상 공부하는데 요긴하고 간절한 말이 있으면 곧 기록하여 두시고, 때때로 몇몇 제자들에게 차근차근 가르쳐 주시니, 마치 양을 기르는 법과 같아 지나치는 이는 누르고 뒤떨어진 이는 채찍질하여 크게 깨치는 문안으로 몰아넣으려 하신 노파심으로 애쓰심이 그와 같이 간절하였건만 그러나 모두 미욱하여 도리어 법문이 높고 어려움으로써 병이 되어, 큰 스님께서 그 어둡고 어리석은 이를 가련하게 여겨 다시 각 구절마다 주해를 달아 풀이하고 차례로 엮어 놓으시니 여러 마디가 한 줄에 이어지고 혈맥이 서로 통하여, 팔만 대장경의 요긴한 것과 다섯 종파의 근원이 다 여기에 갖추어지니 말씀마다 이치에 부합되고 구절구절이 종지에 들어맞아, 치우치던 이는 우너만하게 되고 막혔던 이는 통하게 되니, 참으로 선과 교의 거울이요, 깨닫는 데와 닦아 가는 길에 좋은 약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큰 스님께서 항상 이 일을 논하실때에는, 한 말씀 반구절이라도 마치 칼날 위를 밟는 듯 조심조심하여 종이에 오를까 거정하였으니, 어찌 이것으로써 널리 세상에 유통시켜 당신의 재능을 자랑할 생각이 있었을 것인가. 문인 백운선자 보원이 정서하고, 문인 벽천선덕 의천이 교정하니, 문인 대선사 정원과 문인 대선사 태상과 문인 청하도인 법융 같은 이들이 머리를 조아려 절하며 말하기를「아직까지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고 마침내 동지 육 칠 인과 더불어 바랑을 털어 판각하여 널리 유통시켜, 큰 스님의 가르치고 열어 주신 은혜를 갚기로 하였다. 대저 장겨의 깊은 이치는 바다와 같이 아득하니, 여의주를 찾고 산호를 캐려는 사람들이 어디 가서 구해 볼 것인가. 바다에 들어가기를 육지와 같이 하는 수단이 아니면, 다만 물가를 바라보며 탄식함을 면치 못하리로다. 그러므로 요지를 가려낸 공로와 미몽을 깨우쳐 준 은혜는 산같이 높고 바다같이 깊은 지라 설사 만 번 뼈를 부수고 천 번 목숨을 바친들 어찌 털끝만큼이나 갚을 수있으랴. 천리 밖에서 듣고 보아도 눌라거나 의심하지 않고 받들어 읽어 보배로 삼는 단면, 참으로 천 년 후에 한 자운이 될 것이다.
때는 만력 기묘 춘묘(春卯)에 조계종 유손 사명종봉 유정은 구결에 절하고 삼가 발문을 쓰다.
서산대사약력
대사(大師)의 법명(法名)은 휴정(休靜)이요, 자(字)는 형응(玄應)이며, 호(號)는 청허(淸虛)라 한다. 서쪽 묘향산(妙香山)에 오래 계셨으므로 서산(西山)이라고도 한다. 또 금강산 백화암(白華庵)에도 오랫동안 주석(住錫)하여 백화도인(白華道人)이라 자호(自號)하였으며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의 자리를 사임한 후에는 퇴은(退隱)이라 하였다.
속성(俗姓)은 완산 최씨(完山 崔氏)요, 속명(俗名)은 여신(汝信)이라 하였다. 또 아명(兒名)은 운학(雲鶴)이라 하였으니 이는 대사의 세 살 때 사월 초파일 낮에 사(師)의 부친인 <세창(世昌)>이 누중(樓中)에서 잠들어 있노라니 몽중(夢中)에 한 노인이 와서「소사문(小沙門)을 위탁하노라」하며 사(師)의 이마를 만지며「마땅히<운학>이라 이름할진저!」하고 갔다고 하여 소사문 또는 운학이라고 불렀다 한다. 조선 십일대 중종대왕(中宗大王) 십오 년(서기1520) 경진(庚辰)삼월 이십육일에 평안도 안주(安州)에서 태어났다. 부(父)는 기성(箕城) 영전관(影殿官)을 지낸 세창이요, 그 모(母)는 한남 김씨(漢南 金氏)인데 그 부모님네는 동갑으로써 나이 오십에 가까워서 대사를 낳았다.
대사는 어려서부터 착한성품에 영오한 재질을 지녔건마는 불행하게도 구 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십세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백년 생계가 하루아침에 깨어지니 어린 대사는 의지할 데가 없었다. 사(師)는 총명이 뛰어나고 글 재주가 있으므로 그해 겨울 그 고을 사또 이 사증(李思曾)이 대사를 불러 앞에 앉히고 먼 산의 송설(松雪)을 가리키면서 「사(斜)」로 운자(韻字)를 부르니 대사는 곧 향응고각일초사『香凝高閣日初斜(향기는 고각에 엉기고 해는 바야흐로 기울다)』라고 하였다. 또「화(花)」자를 부르자 천리강산 설약화『千里江山雪若花(천리강산에 눈은 꽃과 같다)』라고 응구첩대(應口輒對)하니 사또는 대사의 등을 어루만지면서「우리 아해(兒孩)야!」하면서 기뻐하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었던지 사또가 전직(轉職)되어 가는 길에 대사를 서울로 데리고 가 성균관에 넣어 주었다. 이때의 나이는 십이세 .
어떤 노학사(老學士)의 주선으로 유교의 경전을 대부분 독파(讀破)하고 1차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였다. 비로소 그 내막에 부정이 있음을 알고 과거를 단념하였다. 그후 십오 세에 동배(同輩) 수인(數人)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며 화엄동(華嚴洞), 칠불동(七佛洞), 청학동(靑鶴洞) 등 대소사찰을 순방하면서 반 년을 지냈다. 어느 날 우연히 쌍계사에서 숭인장노(崇仁長老)의 설법을 듣고 다른 여러 벗들은 서울로 돌아가는데 그는 거시에 남아 전등(傳燈), 염송(拈頌), 화엄(華嚴), 원각(圓覺), 능엄(楞嚴), 법화(法華), 유마(維摩), 반야(般若)등 수십 본의 경전을 얻어 정독한 후에 다시 영관대사(靈觀大師)에게서 삼 년간 지도를 받았다. 그 때 그의 나이 열 여덟 살이었다. 그 뒤 삼년 만에 어느날 밤 홀연히 깨친바 있어 읊기를「홀문두우제창외, 만안춘산시고향(忽聞杜宇啼窓外, 滿眼春山是故鄕)」(소쩍새 소리 듣고 창 밖을 내다보니, 봄빛 가득한 저 동산 내고향 이 아닌가)이라고.
또 어느날에는「급수귀래홀회수, 청산무수백운중(汲水歸來忽回首, 靑山無數白雲中)」(물을 길어 돌아오다 고개 문득 돌이키니, 무수한 청산이 흰 구름 속에 솟아있네)라고 읊은 다음에 손에 은도(銀刀)를 쥐고 머리를 스스로 자른 후 다시 일구(一句)하되「영작평생치애한, 불욕작연참아사(寧作平生痴獃漢, 不欲作鉛槧阿師)」(차라리 한 평생을 천치가 될지언정 속빈 문자승은 되고자 한하노라)라 하고 드디어 일선대사(一禪大師)를 수계사(授戒師)로 석희법사(釋熙法師), 육공장노(六空長老), 각원상좌(覺圓上座)를 증계사(證戒師)로 영관대사를 전법사(傳法師)로 숭인장노를 양육사(養育師)로 삼으니 그 때의 나이는 이십일세이었다.
그 후 명산 제찰(名山 諸刹)을 찾아다니면서 수도하여 도솔산 학묵대사(兜率山 學嘿大師)에게서 인가를 받았다. 어는 날 벗을 찾아 봉성「鳳城(南原)」을 지나가다 우연히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쳐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었다.
발백심비백(髮白心非白) 머리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고인증누설(古人曾漏洩) 옛 사람 일찍이 일렀더구나.
금문일계성(今聞一鷄聲) 닭울음 한 소리 이제 듣고 나니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 장부의 할 일을 다 마쳤도다.
홀득자가저(忽得自家底) 문득 자가 것을 깨닫고 나니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 온갖 것이 다만 이뿐이로세.
천만금보장(千萬金寶藏) 팔만대장경도
원시일공지(元是一空紙) 본시는 한 장 빈 종이로세.
그뒤로 관동(關東)의 명산을 두루 편답하니 그 때 나이가 삼십이었다. 서울로 올라와 삼십이 세 때에는 봉은사(奉恩寺)에서 승과(僧科)에 응시하여 중선(中選)에 오르고 대선(大選)으로부터 선교양종판사(禪敎兩判事)에까지 올라 불가에서는 그 명예가 극에 달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그의 본의도 아니므로 얼마 후에 이 직책을 사임하고 주장자에 몸을 맡겨 북으로 묘향산(妙香山) 남으로 두류산(頭流山), 기타 제산을 편루하다가 금강산으로 들어가 그 때 저 유명한 삼몽시(三夢詩)와 향로봉시(香爐峰詩)를 지었다.
삼몽시(三夢詩)
주인몽설객(主人夢說客)주인의 꿈을 객에게 말하고
객몽설주인(客夢說主人)객의 꿈을 주인에게 말하니
금설이몽객(今說二夢客)이제 두 꿈을 말하는 저 나그네
역시몽중인(亦是夢中人)어즈버 그도 또한 꿈 속의 사람이로다.
라 하였고
또 향로봉시(香爐峰詩)에
만국도성여의질(萬國都城如蟻垤)만국의 서울은 개미집이요
천가호걸약혜계(千家豪傑若醯雞)천고의 호걸은 하루살이라.
일창명월청허침(一窓明月淸虛枕)밝은 달을 베개하고 고요히 누웠으니
무한송풍운부제(無限松風韻不齊)끝없이 부는 솔바람 갖은 곡조 아뢰네.라 하였다.
그후 선조(宣祖) 이십이년(서기1589) 기축 10월에 정 여립(鄭汝立)의 옥사에 요승 무업(無業)이 이 글로써 대사(그 때의 나이 칠십)를 무고하였다. 즉 향로봉시는 임금을 모독한 글이요 또한 역적인 정 여립과 음모가 있다하여 그것 때문에 어전(御前)에 까지 잡혀갔었다. 그러나 말이 너무도 분명하고 그의 인격과 성품이 도리어 임금을 감동케 하여 선조는 묵죽(墨竹) 한 푹을 하사(下賜)하고 부시(賦詩)를 명하므로 때사는 곧 다음과 같이 일절(一絶)을 지어 올렸다.
소상일지죽(瀟湘一枝竹)소상강의 이름난 대 한 가지
성주필단생(聖主筆端生)우리님 붓 끝에 났구나.
산승향설처(山僧香爇處)산승이 향을 피우는 그 곳에
엽엽대추성(葉葉帶秋聲)잎사귀마다 가을 소리가 들리듯 하여라.고 하였다.
선조께서도 이 시를 보고 친히 화답(和答)을하였다.
엽자호단출(葉自毫端出)잎은 붓 끝에서 나온 것
근비지면생(根非地面生)뿌리도 땅에서 나온 것 아니다.
월래무견영(月來無見影)달이 와도 그림자를 볼 수 없으니
풍동불문성(風動不聞聲)바람 분들 소리가 들릴건가 라 하였다.
그래서 대사와 선조대왕과는 시로써 깊이 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그 뒤 선조 이십오 년(서기1592) 4월에 임진난이 일어나니 대사의 나이 칠십 삼 세이었다. 국가는 도탄에 빠지고 임금께서는 의주(義州)로 파천(播遷)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 대사는 향산(香山)으로부터 칼을 짚고 의주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러 임금 앞에서「전국의 승려들 가운데 늙고 병들어 나서지 못할 자는 각각 그들이 있는 곳에서 분향하고 불공을 올려 신불(神佛)의ㅐ 도움을 받게 하고 그 나머지는 신(臣)이 통솔하고 전진 속에 뛰어들어 충성을 다하겠읍니다」했다. 그래서 선조는 대사에게 팔도 십육종 도총섭『八道十六宗都總攝 :선교양종(禪敎兩宗)이므로 팔도 십육종이 됨』을 명하니 그 즉시로 행동에 옮겨 전국에 의승병을 불러 일으켰다.
그 제자 송운 사명대사는 관동에서 칠백여 명을 뇌묵 처영대사(雷黙處英大師)는 호남에서 일천여 며을 그밖에 기허 영규대사(騎虛靈圭大師)는 공주에서 중관 해안대사(中觀海眼大師)는 진주에서 일어나는 한편 휴정대사 자신은 문도들과 지원병 일천 오백여 명을 이끌고 모두 오천여 명이 평안 순안 법흥사(順安法興寺)에 모여 일대 승단을 조직하여 국내의 여러 장수들에게 호응하고 혹은 명나라 군인들을 지원하면서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서울을 수복한 뒤에 대사는 용사 일백여명을 이끌고 환도하는 선조대왕을 중로에서 영접하였다. 그리하여 임진난 7년 전쟁이 끝났을 때에는 대사의 나이 칠십 구 세이었다. 명장 이 여송(李如松)은 대사의 그 큰 공을 찬탄하고 한시일수(漢詩一首)를 지어바쳤다. 즉
무의도공리(無意圖功利)공명에 뜻이 없어
전심학도선(專心學道禪)오로지 도를 익히더니
금문왕사급(今聞王事急)이제 왕사가 급함을 뜯고
총섭하산령(總攝下山嶺)총섭이 산에서 내려오셨네.
대사는 임난이 끝난 뒤에 다시 귀산(歸山)할 것을 왕에게 허락을 받아 모든 일은 제자인 사명당 유정(四溟堂惟政)과 뇌묵당 처영(雷黙堂 處英)에게 위임하고 묘향산으로 돌아가니 나라에서는「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 禪敎都總攝 扶綜樹敎 普濟登階尊者)」의 호를 내렸다. 그 뒤로도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등지를 앙래하였는데 항상 따를는 제자가 일천여 명이나 되었고, 그의 법을 이어 출세한 제자가 칠십여 명이나 되었다.
그 중에서도 고명한 제자를 든다면 사명당 송운, 기허당 영규, 뇌묵당 처영, 중관당 해안, 자운당 선의(慈雲堂 宣義), 그밖에 덕수(德守), 수인(守仁), 혜조(慧照), 신열(信悅), 의엄(義嚴) 등이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선조 삼십 칠 년(서기1604년) 갑진(甲辰) 정월 이십삼 일에 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부좌(趺坐)하여 열반에 드시니 세수(世壽)는 팔십 오 세요, 선납(禪臘)은 예순 다섯이었다. 그 날 아침 대사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눈이 쌓인 길을 헤치고 남여(藍輿 :주로 산길에 쓰인는 뚜껑이 없고 의자같이 된 가마)를 타고 여러 암자를 마지막으로 돌아보신 후 원적암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위의를 갖추고 불전에 분향한 단음 스스로 붓을 들고 조실에 들어가서 그의 자화상에 이렇게 적었다. 즉
팔십 년 전 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내러니
팔십 년 후 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팔십 년 뒤 오늘은 내가 너로다. 하고, 다시 임종게(臨終偈)로써
千計萬思量 억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
紅爐一點雪 불에 떨어진 흰눈 한 조각
泥牛水上行 진흙 황소가 물 위로 가고
大地虛空裂 땅과 허공이 꺼져 버렸네. 이렇게 써놓고 고요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그 날에 이향(異香)이 방에 차삼칠일(三七日) 후에야 그치었다 하며 화장하는 날에는 제자 원준(圓峻), 인영(印英) 등이 영골 일편(靈骨一片)과 사리 삼과(舍利三顆)를 얻어 향산 안심사(安心寺)에 또한 유정, 자휴(自休) 등이 정골 일편(頂骨一片)과 신주 수매(神珠數枚)를 얻어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북쪽 언덕에 봉안하고 그의 유물(遺物)은 대개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海南大興寺)에 모셨다. 대사가 남긴 저서는「청허집(淸虛集)」상하 두책(上下二冊)과「선가귀감(禪家龜鑑)」,「삼가귀감(三家龜鑑)」,「선교석(禪敎釋)」,「운수단(雲水壇)」각 한 권이 있다.
사명대사 약력
법명은 유정(惟政), 자는 이환(離幻), 법호는 사명(四溟) 또는 종봉(鐘峰) 혹은 송운(松雲)이라고도 하는데, 一五四四년(중종 三九) 一○월 一三일에 경상도 밀양(密陽)에서 났다. 아버지는 임 수성(任守成)이고, 어머니는 달성 서(徐)씨였다. 그는 어려서 늘 돌이나 흙을 쌓아 부처님이나 탑을 만들고, 꽃이나 모래밥으로써 불공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큰 ㅈ라를 잡아 가는 것을 보고, 삼밤(山栗)을 주어다 주고 바꾸어서 물에 넣어 준 일이 있었다.
열 세 살에<맹자 孟子>를 읽다가 책을 던지고, 그 길로 출가하여 김천(金泉) 황악산(黃岳山) 직지사(直指寺)에 입산하여 신묵(信黙) 화상에게서 득도(得度)하였다. <전등록 傳燈錄>을 보다가 깨친 바가 있었고, 열 여덟살에 선과(禪科)에 급제하였으며, 서른 세 살에 선종 판사로 추대하는 중망을 물리치고, 묘향산에 들어가 청허스님을 모시고 더욱 크게 깨쳐 그의 법을 받았다. 서른 여섯 살부터 마흔 아홉까지 사이에 금강산·팔공산(八空山)·태백산·오대산 같은 곳에서 지내다가 다시 금강산 유점사 명적암(明寂庵)에서 지내는데, 때마침 임진외란이 일어나 강원도는 삼길성(森吉成)의 군사가 덮이게 되었다. 대중은 모두 달아나고 오직 그가 홀로 절을 지키고 있다가, 보배를 내어 놓으라고 호통하는 외자으이 앞에 나아가『우리 절에는 다른 보배가 없고 오직 왜장의 머리가 보배다』라고 대답하여, 그들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그리하여 적군들은 그를「설보 화상(說寶和尙) 또는 보두 화상(寶頭和尙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그는 다시 고성(高城)에 나가서도 왜장들을 설유한 결과 영동 구읍(嶺東九邑)이 병화를 면하게 된 것이다. 그 길로 승병 수백 명을 거니리고, 평안도 순안(順安)에 가서 서산스님의 휘하에서 부총섭(副總攝)으로 활약하여 평양 싸움에 크게 전공을 세우고, 다시 염남에까지 추격하여 의령(宜寧) 싸움에 또한 큰 공을 세웠다. 선조께서 불러 올려, 당상(堂上)을 맡기고 환속(還俗)하기를 권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고, 명나라 장병들과 우리 정부의 간처응로 강화(講和) 문제를 위하여 一五九四년까지 여러 차례 외군의 진영에 왕래하였는데, 복잡한 국제 정세로 말미암아 큰 효과는 없었으나, 그 비범한 수완을 삼국의 군민이 크게 칭송하였다.
한편으로 영남의 군사를 지휘하여 유격전을 하게 하면서, 팔공(八公)·금오(金鰲)·용기(龍起)의 각처와 마지막으로 부산에까지 성을 쌓았을 뿐아니라, 명나라 군사와 우리 군사를 위하여 준비한 것이 군량이 사천여 석이고, 무기와 군복도 만여 벌이 되었다. 이런 일들이 끝난 뒤에 직인(職印)과 전마(戰馬)를 나라에 바치므로, 임금은 그에게「가선동지중추부사(嘉善同知中樞府事)」의 관품을 내렸다.
一六○四년(선조 三七) 一월 서산대사의 부고를 받고 향산으로 가다가, 중도에서 국명(國命)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니 그 때의 직함이 정헌 자헌대부 수병조판서 겸지팔도 승의병도총섭 행강화접반사(正憲 資憲大夫 守兵曹判書 兼知八道 僧義兵都總攝 行講和接伴使)였다. 왜경(倭京)에 다달으자 그 때 장군덕천가강(德川家康)이 신심으로 귀의하여 부처님같이 모셨다고 한다. 그는 일본의 여러 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그들 조야(朝野)의 명사와 고승(高僧)들을 설유하여 크게 참회하게 하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맹세하게 할 뿐아니라, 그들이 훔쳐 간 우리 보배들과 붙잡아 간 우리백성 남녀 기술자 삼천 오백여 명이 있는 곳을 자세히 조사하고, 더구나 우리 본국에서 공장(工匠)이라하여 천대만 받다가, 그들에게서 특별한 대우를 받고 돌아올 생각이 없어 하는 이들을위하여, 조국 생각을 일으키는 노래를 지어 퍼뜨리기도 하였다. 영구한국교가 성립되는 동시에, 보배와 사람을 모조리 찾아 가지고 그 이듬해(一六○五년)봄에 돌아왔다. 이에 나라에서는 그에게 가의대부 행용양위 대호군(嘉義大夫 行龍驤衛 大護軍)을 봉하고 그 조상 삼세를 추증(追贈)하였다.
一六一○년(광해군二) 八월 二六일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에서 대중을 모아 놓고 설법한 되에 가부좌로 앉아서 입적하였다. 그 때 나이 예순 일곱. 그 영골을 모신 부도가 해인사에 있고, 그의 저술이 퍽 많았으나 병화로 대개 없어지고, 남은 것은<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사명집(四溟集)>등 칠권밖에 전하지 못한다. 시호를 자통 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라 하였다.
一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찍이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一物者는 何物고 ○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六祖가 告衆云하사대 吾有一物하니無名無字라 諸人아 還識否아하시니 神會禪師가 卽出曰, 諸佛之本源이요 神會之佛性이니다하니 此所以爲六祖之庶子也라 懷讓禪師가 自嵩山來어늘 六祖問曰, 什麽物이 伊麽來오 師가 罔棤라가 至八年에사 方自肯曰, 說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하니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라
【三敎聖人이 從此句出이니라 誰是擧者오 惜取眉毛어다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오,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 너희들은 알겠는가?」
하시니 신회선사가 곧 나와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까닭이다.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와뵈니 육조스님이 물으시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시니 회양은 어쩔줄을 모르다가 8년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
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된 소이이다.
【삼교의 성인이 모두 이 글귀를 쫓아 나왔느니라. 뉘라서 말할 텐가, 눈섭을 아낄지어다!
二
佛祖出世가 無風起浪이니라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이 마치 바람 없는데 물결을 일으킴이로다.
佛祖者는 世尊迦葉也요 出世者는 大悲爲體하야 度衆生也라 然이나 以一物觀之則人人面目이 本來圓成커니 豈假他人의 添脂着粉也리요 此가 出世之所以起波浪也라 虛空藏經云, 文字도 是魔業이요 名相도 是魔業이라 至於佛語하여도 亦是魔業이라하심이 是此意也라 此는 直擧本分인댄 佛祖도 無功能이라
【乾坤이 失色하고 日月이 無光이로다
부처님과 조사는 즉 석가세존과 가섭존자로, 세상에 나오신 것은 대자대비가 바탕이 되어 미한 중생을 건지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한물건” 으로써 본다면, 사람마다 본래 면목이 저절로 원만히 이루어졌거늘, 어찌 남이 연지 찍고 분 발라주기를 기다리리요. 그러므로 세상에 나오심은 마치 잔잔한물에 파도를 일으키는 격이다. <허공장경>에 이르기를 “문자도 마의 업이요, 이름과 형상도 마의 업이라, 부처님의 말씀까지도 또한 마의 업이라” 고하신 것이 이 뜻이다. 이것은 부분을 바로 들어 보일 때에는 부처님이나 조사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말함이다.
【하늘과 땅이 빛을 잃고, 해와 달도 어둡구나.
三
然이나 法有多義하고 人有多機하니 不妨施設이로다
그러나 법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도 온갖 기질이 있으니, 여러 가지 방편을 벌리지 않을 수 없음이로다.
法者는 一物也라 人者이나 衆生也라 法有不變隨緣之義하고 人有頓悟漸修之機하니 故로 不妨文字語言之施設也라 此所謂官不容針이나 私通車馬者也라 衆生이 雖曰圓成이나 生無慧目하야 甘受輪轉故로 若非出世之金媲면 誰刮無明之厚膜也리요 至於越苦海而登樂岸者가 階由大悲之恩也라 然則恒沙身命으로도 難報萬一也라 此는 廣擧新熏하야 感佛祖深恩이니라.
【王登寶殿하니 野老謳歌로다
법이란 한 물건이요 사람이란 중생이다. 법에는 변하지 않는것과 인연을 따르는 이치가 있고, 사람에게는 단박에 깨치는 이와 오래 닦아야 하는 기질이 있으므로, 문자나 말로 가르치는 방편이 없을 수 없다. 이것이 이른바「공사에는 바늘끝만큼도 용서할 수 없으나, 사적으로는 수레도 오고 간다.」는 것이다. 중생이 비록 본래부터 두렷하게 이루워졌다 하나 천생으로 지혜의 눈이 없어서 윤회을 달게받게 되므로 만약세상에서 뛰어난 금칼이 아니면 누가 무명의 두꺼운 껍질을 벗겨 주리요. 고해를 건너 즐거운 저 언덕에 오르는 것은 다 부처님의 크게 가엾이 여기는 은혜를 입는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량 없는 목숨을 바치더라도 그 은혜의 만분의 일도 갚기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새로 닦는 이치를 널리 들어 부처님과 조사의 깊은 은혜에 감사하여야 할 것을 말한 것이다.
【임금님이 용상에 오르니 시골 노인이 노래하도다.
四
强立種種名字하야 或心或佛或衆生이라하니 不可守名而生解어다 當體便是니 動念卽乖니라
억지로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다 부처다 중생이다 하였으나, 이름에 얽매여 알음알이를 내지 말지어다. 다 그대로 옳은 것이니 한 생각이라도 일으키면 곧 어그러지리라.
一物上에 强立三名字者는 敎之不得已也요 不可守名生解者는 亦禪之不得已也라 一擡一搦하며 旋立旋破는 皆法王法令之自在者也라 此는 結上起下하야 論佛祖事體各別이로다
【九旱에 逢佳雨요 他鄕에 見故人이로다
한 물건에 억지로 세 가지 이름을 붙인 것은 교문의 부득이한 일이요, 「이름에 얽매여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는 것은 선법의 부득이한 일이다. 한번 들어 올리고 한번 눌러 놓으며, 고대 세우고 고대 깨뜨리는 것은 모두 법왕이 내리는 법령의 자유자재인 것이다. 이것은 윗것을 맺고 아랫것을 일으켜 부처님과 조사의 방편이 각각 다른 것을 말한 것이다.
【구 년 가뭄에 단비 내리고 천리 타향에서 친구 만났도다.
五
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說者는 爲敎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敎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三處者는 多子塔前에 分半座가 一也요 靈山會上擧拈花가 二也요 雙樹下에 槨示雙趺가 三也니 所謂迦葉의 別傳禪燈者가 此也라 一代者는 四十九年間所說五敎也니 人天敎가 一也요 小乘敎가 二也요 大乘敎가 三也요 頓敎가 四也요 圓敎가 五也라 所謂阿難의 流通敎海者가 此也라 然則禪敎之源者는 世尊也요 禪敎之派者는 迦葉阿難也니 以無言으로 至於無言者는 禪也요 以有言으로 至於無言者는 敎也라 乃至心是禪法也요 語是敎法也라 則法雖一味나 見解則天地懸隔이니 此는 辨禪敎二途하니라
【不得放過하라 草裡橫身하리라
세 곳이란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이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이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이 셋째이니, 이른바 가섭존자가 선(禪)의 등불을 따로 받았다는 것이 이것이다. 한평생 말씀하신 것이란, 사십 구 년 동안 말씀하신 다섯 가지 교(敎)인데, 첫째는 인천교, 둘째는 소승교, 셋째는 대승교, 넷째는 돈교, 다섯째는 원교이다. 이른바「아난존자가 교의 바다를 널리 흐르게 했다」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선과 교의 근원은 세존이시고, 선과 교의 갈래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이니,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은 선이고, 말로써 말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은 교이다. 또한 마음은 선법이고 말은 교법이다. 법은 비록 한맛이라도 견해는 하늘과 땅만큼 아득히 떨어진 것이니, 이것은 선과 교의 두 길을 가려 놓은 것이다.
【놓아 지내지 마라, 풀 속에 거꾸러지리라.
六
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敎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敎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이 모두 교의 자취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가 되리라.
法은 無名故로 言不及也요 法은 無相故로 心不及也니 擬之於口者는 失本心王也라 失本心王則世尊拈花와 迦葉微笑가 盡落陳言하야 終是死物也라 得之於心者는 非但街談이 善說法要라 至於燕語라도 深談實相也라 是故로 寶積禪師는 聞哭聲하고 踊悅身心하여 寶壽禪師는 見諍拳하고 開豁面目者가 以此也라 此는 明禪敎深淺하니라
【明珠在掌에 弄去弄來로다
법은 이름이 없는 것이므로 말로써 미치지 못하고, 법은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다. 무엇이나 말하여 보려고 한다면 벌써 본심을 잃은것이요, 본심을 잃게 되면 부처님이 꽃을 드신 것이나 가섭존자의 미소가 모두 쓸데없는 이야깃거리만 될 것이다. 마음에서 얻은 사람은 장꾼들의 잡담이라도 훌륭한 설법이 될뿐 아니라, 새소리와 짐승의 울음까지도 진리를 바로 말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보적선사는 통곡하는 소리를 듣고 깨쳐 춤추고 뛰놀았으며, 보수선사는 거리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싸우는 것을 보고 참 면목을 깨친 것이 이 까닭이다. 이는 선과 교의 깊고 옅은 것을 밝힌 것이다.
【밝은 구슬 손에 들고 이리 궁글 저리 궁글
七
吾有一言하니 絶慮忘緣하고 兀然無事坐하니 春來草自靑이로다
내가 한마디 하고자 하노니,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쉬고 단정히 일 없이 앉았으니, 봄이 오매 풀이 절로 푸르구나.
絶慮忘緣者는 得之於心也니 所謂閑道人也라 於戱라 其爲人也가 本來無緣하며 本來無事하야 飢來卽食하고 困來卽眠하며 綠水靑山에 任意逍遙하고 漁村酒肆에 自在安閑하야 年代甲子를 總不知하되 春來依舊草自靑이로다 此는 別歎一念廻光者니라
【將謂無人이러니 賴有一個로다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쉰다는 것은 마음에서 자득함을 가리킴이니, 이른바「일 없는 도인」이다. 아! 그 사람됨이 본래 얽힘 없고 본래 일 없어, 배고프면 밥을 먹고 고단하면 잠을 자며, 녹수 청산에 마음대로 오고 가며, 어촌과 주막에 걸림 없이 지내 가리. 세월이 가나 오나 내 알 바 아니언만, 봄이 오면 예대로 풀이 절로 푸르구나. 이것은 특별히 한 생각을 돌이켜 반조하는 자를 찬탄함이라.
【사람 없을까 했더니 마침 하나 있구나.
八
敎門에는 惟傳一心法하고 禪門에는 惟傳見性法하니라
교문에는 오직 한 마음 법만을 전하고, 선문에는 오직 견성하는 법만을 전하였느니라.
心은 如鏡之體요 性은 如鏡之光이라 性自淸淨하니 卽時豁然하면 還得本心이라 此는 秘重得意一念하니라
【重重山與水여 淸白舊家風이로다
마음은 거울의 바탕과 같고, 성품은 거울의 빛과 같은 것이다. 성품이란 스스로 청정한 것이므로 즉시 깨치면 곧 본 마음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깨친 한 생각을 특별히 중요하게 보인 것이다.
【겹겹으로 두른 산과 흐르는 물이여, 맑고 깨끗한 내 고향 면목일세.
平曰, 心有二種하니 一은 本源心이요 二는 無明取相心也라 性有二種하니 一은 本法性이요 二는 性相相對性也라 故로 禪敎者가 同迷守名生解하야 或以淺爲深하며 或以深爲淺하야 遂爲觀行大病故로 於此辨之하노라
평해 가로되 마음에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본바탕 마음이요, 다른 하나는 무명의 형상만 취하는 마음이다. 성품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근본 법성품이요, 다른 하나는 성품과 모양이 마주 대한 성품이다. 그러므로 선을 닦는 이나 교를 배우는 이들이 다같이 미(迷)하여, 이름에만 국집하고 알음알이를 내게 되어, 혹은 옅은 것도 깊다 하고 혹은 깊은 것도 옅다 하여, 공부하는 데 마침내 큰 병통이 되므로 여기에서 가려 말하노라.
九
然이나 諸佛說經은 先分別諸法하고 後說畢竟空하시되 祖師示句는 迹絶於意地하고 理顯於心源이니라
그러나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은 먼저 모든 법을 가리시고, 뒤에 필경 공한 이치를 말씀하셨으되, 조사가 보이신 구(句)는 자취가 생각에서 끊어지고, 이치가 마음의 근원에서 드러났느니라.
諸佛은 爲萬代依憑故로 理須委示오 祖師는 在卽時度脫故로 意使玄通이라 迹은 祖師言迹也요 意는 學者意地也라
【胡亂指注라도 臂不外曲이니라
부처님은 만대의 스승이 되시므로 어디까지나 이치를 자세히 가르치셨고, 조사들은 상대자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곧 해탈하게 하므로 뜻에 현통케 함이라. 자취란 조사의 말 자취요, 생각이란 공부하는 이의 생각이다.
【함부로 헤대더라도 팔이 밖으로 굽지 않으리.
十
諸佛은 說弓하시고 祖師는 說絃하시니 佛說無碍之法은 方歸一味어니와 拂此一味之迹하야사 方現祖師所示一心이니 故로 云, 庭前栢樹子話는 龍藏所未有底라하시니라
부처님은 활같이 말씀하시고, 조사들은 활줄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걸림 없는 법이란 바로 한맛에 돌아가거니와, 이 한맛의 자취마저 털어 버려야 바야흐로 조사가 보인 한 마음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므로「뜰 앞에 잣나무이니라」고 한 화두는 용궁의 장경에도 없다고 하시니라.
說弓은 曲也요 說絃은 直也며 龍藏은 龍宮之藏經也라 僧이 問趙州하되 如何是祖師西來意닛고 州答云, 庭前栢樹子라하시니 此는 所謂格外禪旨也라
【魚行水濁이요 鳥飛毛落이니라
활같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굽다는 뜻이요, 활줄같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곹다는 뜻이며, 용궁의 장경이란 것은 용궁에 모셔 둔 대장경이다.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께 묻기를「조사가 서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조주스님이 대답하기를 「뜰앞에 잣나무이니라」하시니, 이것이 이른바 격 밖의 선지이다.
【고기가 놀면 물이 흐리고 새가 날면 깃이 떨어지느니라.
十一
故로 學者는 先以如實言敎로 委辨不變隨緣二義가 是自心之性相이며 頓悟漸修兩門이 是自行之始終然後에 放下敎義하고 但將自心現前一念하야 參詳禪旨則必有所得하리니 所謂出身活路니라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먼저 부처님의 실다운 가르침으로써 변하지 않는 것과 인연 따르는 두 가지 뜻이 내 마음의 성품과 형상이며, 단박 깨치고 점점 닦는 두 가지 문은 공부의 시작과 끝임을 자세히 가려 안 뒤에, 교의 뜻을 버리고 오로지 그 마음이 뚜렷이 드러난 한 생각으로써 참선한다면, 반드시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니, 이른바 뛰쳐나오는 살 길이니라.
上根大智는 不在此限이나 中下根者는 不可躐等也니라 敎義者는 不變隨緣과 頓悟漸修가 有先有後요 禪法者는 一念中에 不變隨緣과 性相體用이 元是一時라 離卽離非나 是卽非卽이니 故로 宗師는 據法離言하야 直指一念하야 見性成佛耳라 放下敎義者가 以此라
【明歷歷時에 雲藏深谷하고 深密密處에 日照晴空이로다
상근대지는 더 말할 것 없지마는, 중근기 하근기는 함부로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교의 뜻이란 변하지 않는 것과 인연을 따르는 것, 단박 깨치는 것과 점점 닦는 것이 앞뒤가 있다는 말이요, 선법이란 한 생각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과 인연을 따르는 것과 성품과 형상과 체와 용이 본래 한때이므로, 곧 그것도 아니며 아닌 것까지도 아니나, 곧 그것도 되며 아닌 것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사는 법에 의거하여 말을 여의고 바로 한 생각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하는 것이니, 교의 뜻을 버린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환히 밝은 때에 깊은 골에 구름 끼고, 그윽하게 고요한 곳 맑은 하늘 해가 떴네.
十二
大抵學者는 須叅活句언정 莫叅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를 참구할지언정, 사구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 가게 하는 것이다.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平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叅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叅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는 경절문 활구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十三
凡本叅公案上에 切心做工夫하되 如鷄抱卵하며 如猫捕鼠하며 如飢思食하며 如渴思水하며 如兒憶母하면 必有透徹之期하리라
무릇 본참공안에 대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되 마치 닭이 알을 품듯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 하며, 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사람이 물 생각하듯 하며, 아기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꿰뚫을 때가 있으리라.
祖師公案이 有一千七百則하니 如狗子無佛性과 庭前栢樹子와 麻三斤과 乾屎橛之類也라 鷄之抱卵은 暖氣相續也요 猫之捕鼠는 心眼이 不動也요 至於飢思食渴思水兒憶母가 皆出於眞心이요 非做作底心故로 云, 切也니 參禪에 無此切心하고 能透徹者가 無有是處니라
조사들의 공안이 천 칠백 가지나 있는데, 「개가 불성이 없다」라든지, 「뜰 앞에 잣나무」라든지「삼 서근」「마른 똥막대기」같은 것들이다. 닭이 알을 품을 때에는 더운 기운이 늘 지속되고 있으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에는 마음과 눈이 움직이지 않게 되고, 주릴 때에 밥 생각하는 것 목마를 때에 물 생각하는 것 어린애가 엄마를 생각하는 것은 모두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요, 억지로 지어서 내는 마음이 아니므로 간절하다고 하는 것이니, 참선하는 데 이렇듯 간절한 마음이 없이 깨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十四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신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하시고, 또 이르기를「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十五
日用應緣處에 只擧狗子無佛性話하야 擧來擧去하며 疑來疑去에 覺得沒理路하며 沒義路하며 沒滋味하야 心頭熱悶時가 便是當人의 放身命處며 亦是成佛作祖底基本也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도 오직「어째서 개가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한 화두를 들어, 오나가나 계속 의심하고 의심하여, 이치의 길이 끊어지고 뜻 길이 없어져 아무 자미도 없고 마음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바로 그 사람의 몸과 목숨을 내던질 곳이며, 또한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는 대목이니라.
僧問趙州하되 狗子還有佛性也無잇가 州云, 無라하시니 此一字子는 宗門之一關이며 亦是摧許多惡知惡覺底器仗이며 亦是諸佛面目이며 亦是諸祖骨髓也라 須透得此關然後에사 佛祖를 可期也라 古人頌云,
趙州露刃劒이 寒霜光燄燄이라
擬議問如何하면 分身作兩段하리라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께 묻기를「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읍니까?」하였더니 조주스님은「무(無)」하고 대답했다. 이 한 마디는 우리 종문의 한 관문이며, 온갖 못된 지견과 그릇된 알음알이를 꺾어 버리는 연장이며, 또한 모든 부처님의 면목이요, 조사들의 골수다. 이 관문을 뚫고 난 뒤라야 부처나 조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옛 어른이 송하기를
조주의 무성운 칼 서릿발 번쩍이네
무어라 물을 텐가 몸뚱이가 두 동강 나리.
十六
話頭를 不得擧起處에 承當하며 不得思量卜度하며 又不得將迷待悟하고 就不可思量處하야 思量하면 心無所之에 如老鼠入牛角하야 便見倒斷也하리라 又尋常에 計較安排底도 是識情이며 隨生死遷流底도 是識情이며 怕怖慞惶底도 是識情이어늘 今人이 不知是病하고 只管在裡許하야 頭出頭沒하나니라
화두를 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아맞히려 하지도 말고, 생각으로 헤아리지도 말며, 또한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말지니, 더 생각할 수 없는 곳에까지 나아가 생각하면, 마음이 더 갈 곳이 없어 마치 늙은 쥐가 쇠뿔 속으로 들어가다가 꼭 잡히듯 할 것이다. 또 평소 이런가 저런가 따지고 맞혀 보는 것도 식정이며, 생사를 따라 옮겨 다니는 것도 식정이며, 무서워하고 갈팡질팡하는 것도 식정이거늘, 요즘 사람들은 이 병통을 아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서 빠졌다 솟았다 할 뿐이니라.
話頭에 有十種病하니 曰意根下卜度이요 曰揚眉瞬目處垜根이요 曰語路上作活計요 曰文字中引證이요 曰擧起處承當이요 曰颺在無事匣裡요 曰作有無會요 曰作眞無會요 曰作道理會요 曰將迷待悟也라 離此十種病者는 但擧話時에 略抖擻精神하야 只疑是個甚麽니라
화두를 참구하는데에 열 가지 병이 있으니, 분별로써 헤아리는 것과, 눈썹을 오르내리고 눈을 끔적거리는 곳에 생각을 머무르는 것과, 말 길에서 살림살이를 짓는 것과, 글 가운데에서 끌어다가 증거를 삼으려는 것과, 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아맞히려는 것과, 모든 것을 다 날려 버리고 일없는 곳에 들어앉아 있는 것과, 있다는 것이나 없다는 것으로 아는 것과, 참으로 없다는 것으로 아는 것과, 도리가 그렇거니 하는 알음알이를 짓는 것과, 조급하게 깨치기를 기다리는 것들이다. 이 열 가지 병을 여읜 자는 오직 화두를 들 때에 정신을 차려 다만 의심하되「이 무엇고?」할지니라.
十七
此事는 如蚊子가 上鐵牛하야 更不問如何若何하고 下嘴不得處에 棄命一攢하야 和身透入이니라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들 듯이, 다시 여하약하를 묻지말고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떼어 놓고 한 번 뚫어 보면, 몸뚱이째 들어갈 때가 있으리라.
重結上意하야 使參活句者로 不得退屈이니 古云, 參禪은 須透祖師關이요 妙悟는 要窮心路絶이라하시니라
위에 말한 뜻을 거듭 맺어서 활구를 참구하는 이로 하여금 뒷걸음쳐 물러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니, 옛 어른이 이르기를「참선을 하려면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오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고 하시니라.
十八
工夫는 如調絃之法하야 緊緩을 得其中이니 勤則近執着하고 忘則落無明하리니 惺惺歷歷하고 密密綿綿이니라
공부는 거문고의 줄을 고르듯 하여 팽팽하고 느슨함이 알맞아야 하니, 너무 애쓰면 병 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 성성하고 역력하게 하면서도 미세하게 끊임없이 하여야 하느니라.
彈琴者曰, 緩急이 得中한 然後에야 淸音이 普矣라하니 工夫도 亦如此하야 急則動血囊하고 忘則入鬼窟이니 不徐不疾하야사 妙在其中이니라
거문고를 타는 자가 말하기를「그 줄의 느슨하고 팽팽함이 알맞은 뒤라야 아름다운 소리가 잘 난다」고 한다. 공부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조급히 하면 혈기가 고르지 못한 병이 나고, 잊어버리면 흐리멍덩하여 귀신의 굴로 들어가게 된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되면 오묘함이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十九
工夫가 到行不知行하며 坐不知坐하면 當此之時하야 八萬四千魔軍이 在六根門頭伺候라가 隨心生設하나니 心若不起하면 爭如之何리요
공부가 걸어가면서도 걷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모르게 되면, 이 때를 당해서 팔만 사천 마군의 무리가 육근 문 앞에 지키고 있다가, 마음을 따라 온갖 계책을 꾸며 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
魔者는 樂生死之鬼名也요 八萬四千魔軍者는 乃衆生八萬四千煩惱也라 魔本無種이나 修行失念者가 遂派其源也라 衆生은 順其境故로 順之하고 道人은 逆其境故로 逆之하나니 故로 云, 道高魔盛也라하시니라 禪定中에 或見孝子而斫股하며 或見猪子而把鼻者는 亦自心起見하야 惑此外魔也니라 心若不起則種種伎倆이 翻爲割水吹光也니라 古云, 壁隙風動이요 心隙魔侵이라하시니라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 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 말에「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二十
起心은 是天魔요 不起心은 是陰魔요 或起或不起는 是煩惱魔니 然이나 我正法中엔 本無如是事니라
일어나는 마음은 천마요, 일지 않는 마음은 음마요, 혹 일기도하고 혹 일지 않기도 하는 것은 번뇌마이다. 그러나 우리 정법 중에는 본래 그런 일이 없느니라.
大抵忘機는 是佛道요 分別은 是魔境이라 然이나 魔境은 夢事어니 何勞辨詰이리요
대체로 무심한 것이 불도요, 분별하는 것은 마의 일이다. 그러나 마의 일이란 꿈 가운데 일인데, 어찌 따질 것이 있으리요.
二一
工夫가 若打成一片하면 則縱今生에 透不得이라도 眼光落地之時에 不爲惡業所牽하리라
공부가 만일 한 조각을 이룬다면 비록 금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눈감을 적에 악업에 끌리지 아니하리라.
業者는 無明也요 禪者는 般若也라 明暗不相敵은 理固然也니라
업이란 무명이요, 선은 지혜다.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서로 맞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二二
大抵參禪者는 還知四恩이 深厚麽아 還知四大醜身이 念念衰朽麽아 還知人命이 在呼吸麽아 生來値遇佛祖麽아 及聞無上法하고 生希有心麽아 不離僧堂하고 守節麽아 不與隣單으로 雜話麽아 切忌鼓扇是非麽아 話頭가 十二時中에 明明不昧麽아 對人接話時에 無間斷麽아 見聞覺知時에 打成一片麽아 返觀自己하야 捉敗佛祖麽아 今生에 決定續佛慧命麽아 起坐便宜時에 還思地獄苦麽아 此一報身이 定脫輪廻麽아 當八風境하야 心不動麽아 此是參禪人의 日用中點檢底道理니 古人云, 此身不向今生度하면 更待何生度此身고하시니라
대저 참선하는 이는 네 가지의 은혜가 깊고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네가지요소로 구성된 더러운 이몸이 찰나 찰나 썩어가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숨 한 번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가? 살아오매 부처님이나 조사를 만나 뵈었는가? 위 없는 법문을 듣고 희유한 마음을 냈는가? 승당을 떠나지 않고 수도인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곁에 있는 사람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고 지내지 않는가? 분주하게 시비를 일삼고 있지나 않는가? 화두가 십이시 중 어느때나 또렷또렷 매(昧)하지 않는가? 남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화두가 끊임없이 되는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 때에도 한 조각을 이루고 있는가? 자기의 본래면목을 보아서 불조의 허물을 잡아냈는가? 금생에 결정코 부처님의 혜명을 이을수 있겠는가? 앉고 눕고 편한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육신으로 반드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이것이 참선하는 이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점검해야 할 도리이니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이 몸 이때 못 건지면 다시 언제 건질 것인가!」하시니라.
四恩者는 父母君師施主恩也요 四大醜身者는 父之精一滴과 母之血一滴者니 水大之濕也요 精爲骨이요 血爲皮者는 地大之堅也요 精血一塊不腐不爛者는 火大之暖也요 鼻孔先成하야 通出入息者는 風大之動也라 阿難曰, 欲氣麤濁하야 腥臊交遘라하시니 此所以醜身也라 念念衰朽者는 頭上光陰이 刹那不停하니 面自皺而髮自白이라 如云, 今旣不如昔이요 後當不如今이니 此無常之體也라 然이나 無常之鬼가 以殺爲戱햐니 實念念可畏也라 呼者는 出息之火也요 吸者는 入息之風也라 人命寄托이 只在出入息也라 八風者는 順逆二境也요 地獄苦者는 人間六十劫이 泥犁一晝夜니 鑊湯爐炭과 劒樹刀山之苦를 口不可形言也라 人身難得이 甚於海中之鍼故로 於此에 愍而警之하노라
네가지 은혜란 부모 임금 스승 시주의 은혜요, 네가지로 된 더러운 몸이란 아버지의 정수 한 방울과 어머니의 피 한 방울이니, 물의 젖은 기운이요, 정수는 뼈가 되고 피가 가죽이 된 것은 땅의 단단한 기운이며, 정기와 피의 한 덩이가 썩지 않고 녹아 버리지도 않는 것은 불의 더운 기운이요, 콧구멍이 먼저 뚫려 숨이 통하는 것은 바람의 움직임이다. 아난존자가 말하기를「정욕이 거칠고 흐려서 더럽고 비린 것이 어울려 뭉쳐진다」하시니 더러운 몸이라 부른 것이다. 생각 생각 썩어 간다는 것은 세월이 잠시도 쉬지 않아 얼굴은 저절로 주름살이 잡히고 머리털도 저절로 희어가니 옛말에「지금 이미 옛 모습 아니네, 뒷날에 어찌 지금 같을까」한 바와 같이 과연 덧없는 몸이 아닌가! 덧없는 귀신이란 죽이는 것으로 놀이를 삼으므로, 참으로 생각 생각이 무서울 뿐이다. 날숨은 불 기운이요 들숨은 바람 기운이라, 사람의 목숨은 오로지 들이쉬고 내쉬는 한숨에 달린 것이다. 여덟 가지 바람이란 대체로 마음에 맞는 것과 거슬리는 두 가지 경계요, 지옥의 고통이란 인간의 육십겁이 지옥의 하루가 되는데, 쇳물이 끓고 숯불이 튀고 칼산과 창숲에 끌려 다니는 고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란 마치 바다에 떨어진 바늘을 찾기보다도 어렵기 때문에, 여기에서 불쌍히 여기어 일깨우노라.
平曰, 上來法語는 如人飮水에 冷暖自知라 聰明이 不能敵業이요 乾慧가 未免苦輪이니 各須察念하야 勿以自謾이어다
평해 가로되 위에 말한 법문은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매 차고 더운 것은 제 스스로 알 뿐이므로, 총명이 능히 업의 힘을 막지 못하고, 마른 지혜가 고(苦)의 윤회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니, 각자 살피고 생각하여 스스로 속지 말지어다.
二三
覺語之輩는 說時似悟나 對境還迷하나니 所謂言行이 相違者也로다
말만 배우는 무리들은 말할 때에는 깨친 듯 하다가도 실지 경계에 당하게 되면 도리어 미혹하게 되나니 이른바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긴 자로다.
此는 結上自謾之意라 言行이 相違하면 虛實을 可辨이니라
이것은 위에서 말한 스스로 속는다는 뜻을 맺는 말이다. 말과 행동이 같지 않으면 허실(虛實)을 가히 판별할 것이니라
二四
若欲敵生死인댄 須得這一念子를 爆地一破하야사 方了得生死하리라
만일 생사를 막아내려면 모름지기 이 한 생각을 탁 깨뜨려야만 비로소 생사를 요달하리라.
爆은 打破漆桶聲이라 打破漆桶然後에사 生死可敵也라 諸佛因地法行者가 只此而已라
「탁!」하는 것은 칠통을 깨는 소리이다. 칠통을 깨뜨린 연후라사 생사를 당적할수 있다. 모든 부처님이 인지에서 닦아 가신 것이 오직 이것 뿐이다.
二五
然이나 一念子를 爆地一破然後에 須訪明師하야 決擇正眼이니라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는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이 바른가를 결택 받아야 하느니라.
此事는 極不容易하니 須生慙愧하야사 始得다 道如大海하야 轉入轉深하니 愼勿得小爲足하라 悟後에 若不見人則醍醐上味가 翻成毒藥하리라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으니 모름지기 부끄러운 생각을 내야 한다. 도(道)란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더욱 더 깊어 가는 것이니,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하지 말라. 깨친 뒤에 만약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제호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二六
古德이 云, 只貴子眼正이언정 不貴汝行履處라하시니라
옛 어른이 말씀하기를「다만 자네의 눈 바른 것만 귀하게 여길지언정, 자네의 행실은 귀히 여기지 않노라」하시니라.
昔에 仰山이 答潙山問云, 涅槃經四十卷이 總是魔說이니다하니 此가 仰山之正眼也라 仰山이 又問行履處한대 潙山이 答曰, 只貴子眼正云云하시니 此所以先開正眼而後에 說行履也라 故로 云, 若欲修行인댄 先須頓悟라하시니라
옛날 앙산이 위산스님의 물음에 답하기를「열반경 사십권이 모두 마군의 말입니다」하니, 이것이 앙산의 바른 눈이다. 앙산이 다시 행실에 대하여 묻자, 위산스님이 대답하기를 「자네의 눈 바른 것만 귀하게 여길 뿐이다. 운운」하시니 이것이 바른 눈을 뜬 뒤에 행실을 말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수행을 하려면 먼저 모름지기 몰록 깨쳐야 한다.」하시니라.
二七
願諸道者는 深信自心하야 不自屈不自高니라
바라건대 공부하는 이들은 깊이 자기의 마음을 믿어,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아야 하느니라.
此心이 平等하야 本無凡聖이라 然이나 約人하야 有迷悟凡聖也라 因師激發하야 忽悟眞我가 與佛無殊者는 頓也니 此는 所以不自屈이라 如云, 本來無一物也라 因悟斷習하야 轉凡成聖者는 漸也라 此는 所以不自高라 如云, 時時勤拂拭也라 屈者는 敎學者病也요 高者는 禪學者病也라 敎學者는 不信禪門에 有悟入之秘訣하고 深滯權敎하야 別執眞妄하야 不修觀行하고 數他珍寶故로 自生退屈也라 禪學者는 不信敎門에 有修斷之正路하고 染習이 雖起나 不生慙愧하고 果級이 雖初나 多有法慢故로 發言이 過高也라 是故로 得意修心者는 不自屈不自高也니라
이 마음이 평등하여 본래 범부와 성인이 따로 없다. 이치는 그러하나 사람에게는 어두운 이와 깨친 이가 있고, 범부와 성인이 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문득 참 나가 부처와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깨치는 것은 이른바 단박 깨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굽히지 말것이니, 저「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깨친 뒤에 익힌 버릇을 끊어 가면서, 범부를 고쳐서 성인이 되는 것은 이른바 점점 닦아 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높이지 말 것이니, 저「부지런히 털고 닦으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굽히는 것은 교를 배우는 이의 병통이요, 높이는 것은 참선하는 이의 병통이다. 교를 배우는 이는 참선 문 안에 깨쳐 들어가는 비밀한 법이 있는 것을 믿지 않고 방편으로 가르치는 데 깊이 걸려, 참과 거짓을 따로 국집하여 가지고 관행을 닦지 않고, 남의 보배만 세게 되므로 스스로 퇴굴심을 내는 것이다. 참선하는 이는 교문에 닦고 끊어 가는 좋은 길이 있는 것을 믿지 않고, 물든 마음과 익힌 버릇이 일어날지라도 부끄러운 줄 모르며, 공부의 정도가 유치하면서도 법에대한 거만한 생각이 많기 때문에 그 말하는 것이 너무 교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옳게 알아 마음을 닦는 이는 굽히지도 않고 높이지도 않느니라.
平曰, 不自屈不自高者는 略擧初心의 因該果海則雖信之一位也나 廣擧菩薩의 果徹因源則五十五位也니라
평해 가로되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라는 것은, 첫 마음 낼 때에 벌써 씨 안에 열매가 다 갖추어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부처의 자리 한 자리뿐인 것을 믿어야 하겠지만, 차별문에 나아가서 보살의 열매가 씨의 근원에 사무친 것을 널리 들어 말하자면 오십 오위가 분명히 있느니라.
二八
迷心修道하면 但助無明이니라
이혹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悟若未徹이면 修豈稱眞哉리요 悟修之義는 如膏明이 相賴하고 目足이 相資니라
철저히 깨치지 못하였다면 어찌 참되게 닦을수 있으랴! 깨침과 닦는 것은 마치 기름과 불이 서로 따르고, 눈과 발이 서로 돕는 것과 같으니라.
二九
修行之要는 但盡凡情이언정 別無聖解니라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病盡藥除하면 還是本人이니라
병이 없어지고 약까지 쓰지 않는다면, 앓기 전 그 사람이니라.
三十
不用捨衆生心이요 但莫染汚自性하라 求正法이 是邪니라
중생의 마음을 버릴 것 없이, 다만 자성을 더럽히지 말라. 바른 법을 구하는 것이 곧 바르지 못한 것이니라.
捨者求者가 皆是染汚也라
버리는 것이나 구하는 것이 다 더럽히는 일이다.
三一
斷煩惱가 名二乘이요 煩惱不生이 名大涅槃이니라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이요, 번뇌가 나지 않는 것이 대열반이니라.
斷者는 能所也요 不生者는 無能所也니라
끊는 것은 주체와 개체가 벌어짐이요, 나지 않는 것은 주체도 객체도 없느니라.
三二
須虛懷自照하야 信一念緣起無生이니라
모름지기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비춰보아, 한 생각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이 남이 없는 줄 믿어야 하느니라.
此는 單明性起라
이것은 단지 성품 일어남을 밝힌 것이다.
三三
諦觀殺盜婬妄이 從一心上起하라 當處便寂이라 何須更斷이리요
죽이고, 도둑질하고, 음란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다 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관하라. 그 일어나는 당처가 곧 비어 없는데 무엇을 다시 끊으리요.
此는 雙明性相이라
이것은 성품과 형상을 함께 밝힌 것이다.
經云, 不起一念이 名爲永斷無明이요 又云, 念起卽覺이라하시니라
경에 이르기를「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곧 무명을 아주 끊는 것이라」하시고, 또 이르기를「생각이 일어나자마자 곧 깨달으라」하시니라.
三四
知幻卽離라 不作方便니요 離幻卽覺이라 亦無漸次니라
환인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느니라.
心爲幻師也요 身爲幻城也라 世界는 幻衣也요 名相은 幻食也니 至於起心動念과 言妄言眞이 無非幻也니라 又無始幻無明이 皆從覺心生이라 幻幻이 如空花하니 幻滅하면 名不動이라 故로 夢瘡求醫者가 寤來에 無方便이라 知幻者도 亦如是니라
마음은 환을 만드는 환사(幻師)요, 몸은 환의 성이라. 세계는 환의 옷이며, 이름과 형상은 환의 밥이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내는 것이나 거짓이라 참이라 하는 것이 다 환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시작도 없는 환상 같은 무명이 다 본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환상은 실체가 없는 허공의 꽃과 같으므로 환상이 없어지면 그 자리가 곧 부동지이다. 마치 꿈에 창병이 나서 의사를 찾던 사람이 잠을 깨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듯, 모든 것이 환인 줄을 알면 또한 이와 같으리라.
三五
衆生이 於無生中에 妄見生死涅槃이 如見空花起滅이니라
중생이 나는 것 없는 가운데서 망녕되게 생사와 열반을 보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 꽃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느니라.
性本無生故로 無生涅也요 空本無花故로 無起滅也라 見生死者는 如見空花起也요 見涅槃者는 如見空花滅也니라 然이나 起本無起요 滅本無滅이라 於此二見에 不用窮詰이니 是故로 思益經云, 諸佛出世가 非爲度衆生이요 只爲度生死涅槃二見耳라하시니라
성품에는 본래 남이 없으므로 생사와 열반이 없고 허공에도 본래 꽃이 없으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생사가 있는 줄로 아는 것은 허공에 꽃이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과 같고, 열반이 있는 줄로 아는 것은 허공에 꽃이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나타나도 나타남이 없고, 사라져도 사라짐이 없는 것이므로 이 두 가지 견해에 대하여서는 더 따질 것이 없다. 그러므로「사익경」에 이르기를「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것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생사와 열반의 두 가지 견해를 건지기 위해서다」라고 하시니라.
三六
菩薩이 度衆生入滅度나 又實無衆生이 得滅度니라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에 들게 했다 하더라도 실은 열반을 얻은 중생이 없느니라.
菩薩은 只以念念으로 爲衆生也니 了念體空者는 度衆生也요 念旣空寂者는 實無衆生得滅度也니라 此上은 論信解니라
보살은 다만 생각 생각으로써 중생을 삼으니 생각의 본체가 빈 이치를 요달한 것이 곧 중생을 건지는 것이요, 생각이 이미 비고 고요하다면 사실 제도할 중생이 따로 없느니라. 이 위는 믿음과 깨침을 말한 것이다.
三七
理雖頓悟나 事非頓除니라
이치는 비록 단박에 깨칠 수 있으나, 사상(事象)은 단박에 다스려지지 않느니라.
文殊는 達天眞하고 普賢은 明緣起하니 解似電光이나 行同窮子라 此下는 論修證하니라
문수보살은 천진을 요달했고, 보현보살은 연기를 밝히니 알기는 번갯불 같아도 행동은 어린애 같은 것이다. 이 아래는 닦는 것과 깨치는 것을 논한 것이다.
三八
帶婬修禪은 如蒸沙作飯이요 帶殺修禪은 如塞耳叫聲이요 帶偸修禪은 如漏巵求滿이요 帶妄修禪은 如刻糞爲香이니 縱有多智라도 皆成魔道니라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으며,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가득 차기를 바라는 것 같고, 거짓말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는 것과 같으니, 비록 많은 지혜가 있더라도 다 마의 길을 이루리라.
此는 明修行軌則이니 三無漏學也라 小乘은 稟法爲戒하야 粗治其末이요 大乘은 攝心爲戒하야 細絶基本이니 然則法戒는 無身犯이요 心戒는 無思犯也라 婬者는 斷淸淨하고 殺者는 斷慈悲하며 盜者는 斷福德하고 妄者는 斷眞實也라 能成智慧하야 縱得六神通이라도 如不斷殺盜婬妄則必落魔道하야 永失菩提正路矣리라 此四戒는 百戒之根故로 別明之하야 使無思犯也라 無憶曰戒요 無念曰定이요 莫妄曰慧라 又戒爲捉賊이요 定爲縛賊이요 慧爲殺賊이라 又戒器完固하야사 定水澄淸하야 慧月方現이니 此三學者는 實爲萬法之源故로 特明之하야 使無諸漏也니라
靈山會上에 豈有無行佛이며 少林門下에 豈有妄語祖리요
이것은 수행하는 법칙으로 세 가지 무루학을 밝힌 것이다. 소승은 법을 받아 지키는 것으로 계율을 삼기 때문에 대략 그 끝을 다스리게 되고, 대승은 마음을 거두는 것으로 계율을 삼기 때문에 자세히 그 뿌리를 끊는 것이니 그러므로 법을 지키는 계율은 몸으로 범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마음으로 지키는 계율은 생각으로 범하는 일까지 없는 것이다. 음란한 것은 깨끗한 성품을 끊고, 살생하는 것은 자비스런 마음을 끊으며, 도둑질하는 것은 복과 덕을 끊고, 거짓맗는 것은 진실한 것을 끊는다. 비록 지혜를 이루어 여섯 가지 신통을 얻었다 하더라도, 만약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과 거짓말하는 일을 끟지 않는다면, 반드시 마의 길에 떨어져 영영 보리의 바른 길을 잃을 것이다. 이 네 가지 계율은 백 가지 계율의 근본이므로, 따로 밝혀서 생각으로도 범함이 없도록 한 것이다. 기억하지 않는 것을 계율이라 하고, 생각이 없는 것을 선정이라 하며, 망녕되지 아니함을 지혜라 한다. 다시 말하면, 계율은 도둑을 잡는 것이요, 선정은 도둑을 묶어 놓는 것이며, 지혜는 도둑을 죽여 버리는 것이다. 또한 계의 그릇이 온전하고 견고해야 선정의 물이 맑게 고이고, 따라서 지혜의 달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삼학은 참으로 만법의 근원이 되는 것이므로, 특별히 밝혀서 모두 새어 빠뜨리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다.
영산회상에 어찌 함부로 지내는 부처가 있었으며, 소림문하에 어찌 거짓말하는 조사가 있으랴.
三九
無德之人은 不依佛戒하며 佛護三業하고 放逸懈怠하며 輕慢他人하며 較量是非로 而爲根本하나니라
덕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의 계율에 의지하지 않으며 삼업을 지키지 않고, 함부로 놀아 게을리 지내며, 남을 업신여기며 따지고 시비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一破心戒함녀 百過俱生이니라
한번 마음의 계율을 파하면 온갖 허물이 함께 일어나느니라.
平曰, 如此魔徒가 末法에 熾盛하야 惱亂正法하리니 學者는 詳之니라
평해 가로되, 이와 같은 마군의 떼들이 말법에 치성하여 정법을 어지럽게 하리니, 배우는 자는 잘 알아 두어야 하느니라.
四十
若不持戒면 尙不得疥癩野干之身이온 況淸淨菩提果를 可冀乎아
만약 계행을 지니지 아니하면 비루먹은 여우의 몸도 받지 못하거든, 하물며 청정한 보리과를 바랄 수 있으리오.
重戒如佛하면 佛常在焉이시니 須草繫鵝珠로 以爲先導니라
계율을 중하게 여기기를 부처님 모시듯 한다면, 부처님이 항상 곁에 계시는 것과 같으니 모름지기 풀에 매여 있던 일과 거위와 구슬의 고사로써 봄보기를 삼아야 하느니라.
四一
欲脫生死인댄 先斷貪欲과 及諸愛渴이니라
생사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탐욕과 애갈을 끊어야 하느니라.
愛爲輪廻之本이요 欲爲受生之緣이라 佛云, 婬心不除하면 塵不可出이라하시고 又云, 恩愛一縛着하면 牽人入罪門이라하시니라 渴者는 情愛之至節也라
애정은 윤회의 근본이 되고, 정욕은 몸을 받는 인연이 된다. 부처님이 이르시기를「음심을 끊지 못하면 티끌 속을 벗어날 수 없다」하시고, 또한「애정에 한번 얽히게 되면 사람을 끌어다가 죄악의 문에 처넣는다」고 하시니라. 애갈이란 애정이 너무 간절하여 목이 타듯 함을 말한 것이다.
四二
無碍淸淨慧가 皆因禪定生이니라
거림 없는 청정한 지혜는 다 선정에서 나오느니라.
超凡入聖하고 坐脫立亡者는 皆禪定之力也니라 故로 云, 欲求聖道인댄 離此無路니라
범부에서 뛰어나 성인의 지위에 들고, 앉아 벗고 서서 가는 것이 모두 선정의 힘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성인의 길을 찾으려면 이 밖에 딴 길이 없다」하시니라.
四三
心이 在定則能知世間生滅諸相하나니라
마음이 정에 들면, 세간의 생멸하는 모든 일을 다 밝게 알 수 있느니라.
虛隙日光에 纖埃擾擾하고 淸潭水底에 影像昭昭로다
문틈으로 비친 햇빛에 가는 티끌 아물거리고, 맑고 고요한 물에 온갖 그림자가 또렷하고나.
四四
見境心不起가 名不生이요 不生이 名無念이요 無念이 名解脫이니라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을 나지 않는다고 이름하고, 나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 하며, 무념을 해탈이라 하느니라.
戒也定也가 擧一具三이요 不是單相이니라
계율이나 선정이나 지혜가, 하나를 들면 셋이 갖추어 있는 것이요 홑으로 된 것이 아니니라.
四五
修道證滅은 是亦非眞也요 心法이 本寂하야사 乃眞滅也라 故로 曰, 諸法從本來로 常自寂滅相이라하시니라
도를 닦아 열반을 증득함은 이것은 또한 진리가 아니요, 심법이 본래 고요하야사 그것이 참 열반인 것이다. 그러므로「모든 법이 본래부터 늘 그대로 열반이라」하시니라.
眼不自見이니 見眼者는 妄也라 故로 妙首는 思量하고 淨名은 杜黙하니라 此下는 散擧細行하니라
자기 눈은 자기가 볼 수 없는 것인데, 자기 눈을 본다면 거짓이다. 그러므로 문수보살은 생각으로 헤아리고, 유마힐은 말이 없었느니라. 이 아래는 세세한 행동을 낱낱이 들리라.
四六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 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四七
有人이 來害어든 當自攝心하야 勿生瞋恨하라 一念瞋心起하면 百萬障門開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해롭게 하거든 마땅히 마음을 거두어 성내거나 원망하지 말지어다. 한 생각 성내는 데에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리니라.
煩惱雖無量이나 瞋慢이 爲甚이니 涅槃云, 塗割에 兩無心하라하시니 瞋如冷雲中에 霹靂起火來니라
번뇌가 비록 한량없으나 성내는 것이 가장 심하니<열반경>에 이르기를「창과 칼로 찌르거나 향수와 약을 발라 주더라도 두 가지에 다 무심하라」하시니, 성내는 것은 찬구름 속에서 벼락치고 번갯불이 번쩍이는 것과 같으니라.
四八
若無忍行하면 萬行不成이니라
만약 참는 행이 없다면 만 가지 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行門이 雖無量이나 慈忍이 爲根源이니라 古德云, 忍心은 如幻夢이요 辱境은 若龜毛라하시니라
수행하는 길이 한량없지만 자비와 인욕이 근본이 되느니라. 고덕이 이르되「참는 마음이 꼭두각시의 꿈이라면, 욕보는 현실은 거북의 털 같으리라」하시니라.
四九
守本眞心이 第一精進이니라
본바탕 천지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첫째가는 정진이니라.
若起精進心하면 是妄이요 非精進이라 故로 云, 莫妄想莫妄想하라하시니라 懈怠者는 常常望後하나니 是自棄人也니라
만약 정진할 마음을 일으키면 이것은 망상이요 정진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르시되「망상을 내지 마라! 망상을 내지 마라!」하신 것이다. 게으른 사람은 항상 뒤만 바라보니, 이것은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이니라.
五十
持呪者는 現業은 易制라 自行可違어니와 宿業은 難除라 必借神力이니라
진언을 외는 것은, 금생에 지은 업은 다스리기 쉬워서 자기 힘으로도 고칠 수 있거니와, 전생에 지은 업은 지워 버리기가 어려우므로 반드시 신비힌 힘을 빌어야 하느니라.
摩登의 得果가 信不誣矣라 故로 不持神呪하고 遠離魔事者는 無有是處니라
마등기가 도과(道果)를 얻은 것은 실로 거짓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언을 외지 않고 마의 장애를 멀리 여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느니라.
五一
禮拜者는 敬也며 伏也니 慕敬眞性하고 屈伏無明이니라
예배라 하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니라.
身口意가 淸淨하면 則佛出世니라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출세하신 것이니라.
五二
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廻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五三
五祖云, 守本眞心이 勝念十方諸佛이라하시고 六祖云, 常念他佛하면 佛免生死라 守我本心이 卽到彼岸이니라 又云, 佛向性中作이요 莫向身外求니라 又云, 迷人은 念佛求生하고 悟人은 自淨其心이라 又云, 大抵衆生이 悟心自度요 佛不能度衆生云云하시니라
오조스님이 이르기를「자기의 참 마음을 지키는 것이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낫다」하시고, 육조스님은「항상 딴 부처님만 생각하면 생사를 면하지 못할 것이요, 나의 본심을 지키면 곧 저 언덕에 이른다」하시고, 또 이르기를「부처는 자기 성품 속에서 지을 것이며, 몸 밖에서 찾지 말라」하시며, 또「어리석은 사람은 염불하여 극락 세계에 나고자 하지만, 깨친 사람은 그 마음을 스스로 깨끗이 할 뿐이다」하시고, 또 이르기를 대저「중생이 마음을 깨쳐 스스로 건지는 것이지, 부처님이 중생을 거져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시니라.
如上諸德이 直指本心하고 別無方便(方將一法便逗諸根)하시니 理實如是나 然이나 迹門에 實有極樂世界에 阿彌陀佛이 有四十八大願하니 凡念十聲者는 承此願力하야 往生蓮胎하야 徑脫輪廻라 三世諸佛이 異口同音하시고 十方菩薩이 同願往生이라 又況古今往生之人이 傳記에 昭昭하니 願諸行者는 愼勿錯認하고 勉之勉之어다
위에 말씀한 어른들은 똑바로 본심을 가리킨 것이요 딴 방편은 없으시니(바야흐로 한 법을 가져 문득 모든 근을 막는다) 이치로는 참 그와 같으나, 적문에서는 진실로 극락세계에 계신 아미타불이 사십 팔 대원을 두시니, 누구나 열번만 염불하는 이는 그 원의 힘으로 연꽃 탯속에 왕생하여 바로 윤회에서 벗어난다 것을,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다 같이 말씀하였고, 시방세계의 보살들도 모두 그 곳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물며 고금에 극락세계에 왕생한 사람들의 행적이 분명하게 전해 오고 있으니, 바라건대 공부하는 이들은 삼가 그릇 알지 말고 힘 쓰고 힘 쓸지어다.
梵語에 阿彌陀는 此云無量壽요 亦云無量光이니 十方三世에 第一佛號也라 因名은 法藏比丘니 對世自在王佛하야 發四十八願云, 我作佛時에 十方無央數世界諸天人民으로 以至蜎飛蝡動之流히 念我名十聲者는 必生我刹中하리니 不得是願하면 終不成佛云云이라하시고 先聖云, 唱佛一聲에 天魔喪膽하고 名除鬼簿하야 蓮出金池라하시고 又懺法에 云, 自力他力이 一遲一速하니 欲越海者가 種樹作船은 遲也니 比自力也요 借船越海는 速也니 比佛力也라 又曰, 世間稚兒가 迫於水火하야 高聲大叫則父母聞之하고 急走救援하리니 如人이 臨命終時에 高聲念佛則佛具神通하야 決定來迎爾라 是故로 大聖慈悲는 勝於父母也요 衆生生死는 甚於水火也라 有人이 云, 自心이 淨土라 淨土에 不可生이요 自性이 彌陀라 彌陀는 不可見이라하니 此言이 似是而非也라 彼佛은 無貪無瞋이어늘 我亦無貪瞋乎아 彼佛은 變地獄作蓮花를 易於反掌이어늘 我則以業力으로 常恐自墮於地獄이온 況變作蓮花乎아 彼佛은 觀無盡世界를 如在目前이어늘 我則隔壁事도 猶不知온 況見十方世界를 如目前乎아 是故로 人人이 性則雖佛이나 而行則衆生이니 論其相用컨대 天地懸隔이라 圭峰이 云, 設實頓悟나 終須漸行이라하시니 誠哉라 是言也여 然則寄語自性彌陀者하노니 豈有天生釋迦와 自然彌陀耶리요 須自忖量하면 人豈不自知리요 臨命終時生死苦際에 定得自在否아 若不如是인댄 莫以一時貢高로 却致永劫沈墮어다 又馬鳴龍樹가 悉是祖師로되 皆明垂言敎하야 深勸往生하니 我何人哉완대 不欲往生고 又佛自云하사대 西方이 去此遠矣라 十萬十惡八千八邪이라하시니 此爲鈍根說相也요 又云하사대 西方이 去此不遠이라 卽心衆生是佛彌陀이라하시니 此爲利根說性也니라 敎有權實하고 語有顯密하니 若解行相應者인댄 遠近俱通也라 故로 祖師門下에도 亦有或喚阿彌佛者慧遠하며 或喚主人公者瑞嚴하니라
범어의 아미타는 우리말로「끝없는 목숨」또는「끝없는 빛」이란 뜻이니, 시방삼세에 첫째가는 부처님의 명호다. 그 수행시의 이름은「법장비구」니 세자재왕 부처님 앞에서 마흔 여덟 가지 원을 세우시고 말씀하기를「내가 성불을 할 때는 시방세계의 무수한 하늘과 인간으로부터 작은 벌레까지라도 나의 이름을 열 번만 부르면, 반드시 나의 세계에 나게 하소서. 이 원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나는 성불하지 않겠읍니다…」
하시고, 옛 성인이 말씀하기를「염불 한 소리에 천마들은 가슴이 서늘해지고, 그 이름이 저승의 장부에서 지워져 연꽃이 금못에서 나온다」하시고, 또「참법」에 이르기를「자기의 힘과 남의 힘이 하나는 더디고 하나는 빠르니,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이 나무를 심어 배를 만들려면 더딜 것이니 그것은 자기 힘에 비유한 것이요, 남의 배를 빌어 바다를 건넌다면 빠를 것이니 부처님의 힘에 비유한 것이다」또 이르되「어린애가 물이나 불의 위험에 쫓기어 큰 소리로 부르짖게되면, 부모들이 그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와 구원하는 것같이, 만일 사람이 임종할때에 큰 소리로 염불하면, 부처님은 신통을 갖추었으므로 반드시 오셔서 맞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자비는 부모보다 더 깊으시고, 중생의 나고 죽는 고통은 물이나 불보다도 더 심하다」고 하시니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자기 마음이 정토인데 다시 정토에 나기를 바랄 것이 없으며, 자기 성품이 아미타불인데 따로 아미타불을 보려고 애 쓸 것이 없다」고 하니 이 말이 옳은 듯 하면서도 근른 것이다. 저 부처님은 탐내거나 성내는 일이 없거늘 나도 그처럼 탐내거나 성내지 않는가? 저 부처님은 지옥을 바꾸어 연꽃 세계로 만들기를 손바닥 뒤집기 보다 쉽게 하시는데, 나는 죄업으로 항상 지옥에 떨어질까 겁만 내거든, 하물며 그것을 바꾸어 연화 세계가 되게 할 것인가? 저 부처님은 한량없는 세계를 눈앞에 보시듯 하는데, 우리는 담 밖의 일도 모르면서 어떻게 시방세계를 눈앞에 볼 것인가? 그러므로 사람마다 성품은 비록 부처이지만 실지 행동은 중생이므로, 그 이치와 현실을 말한다면 하늘과 땅처럼 멀리 떨어진 것이다. 규봉선사가 말씀하기를「가령 단박 깨쳤다 하더라도, 결국은 점차로 닦아 가야 한다」하시니 진실로 옳은 말씀이다. 그러면「자기 성품이 아미타불」이라는 사람에게 말해 보자. 어찌 천생으로 된 석가여래와 자연히 생긴 아미타불이 있을 것인가?
스스로 자신을 헤아려 보라. 어찌 스스로 아지 못하리요. 임종을 당하여 숨 끊어지는 마지막 큰 고통이 일어날 때에 꼭 자유자재하게 될 것인가? 막약 그와 같이 안 된다면 한 때에 배짱을 부리다가 길이 악도에 떨어지지 말아야 할 것다. 또 마명보살이나 용수보살이 다 조사스님이지마는, 분명히 말씀하여 왕생하는 길을 간절히 권했거늘,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왕생의 길을 닦지안을 것인가? 또 부처님께서 친히 말씀하기를「서방정토가 여기에서 멀어, 십만(십악) 팔천(팔사) 국토를 지나가야 한다」고 하신 것은, 둔한 사람을 위하여 현실만을 말씀하신 것이고, 또 말씀하기를「서방정토가 여기에서 멀지 않다. 곧 마음(중생)이 부처(아미타불)다」라고 하신 것은, 총명한 사람을 위하여 성품을 말씀하신 것이니, 교문에는 권교와 실교가 있고, 말씀에는 드러남과 비밀이 있으니, 만약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서로 일치된 이는 머나 가까우나 두루 통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의 문하에도 혜원과 같이 아미타불을 부른 이도 있으며, 서암과 같이 주인공을 부른 이도 있느니라.
五四
聽經은 有經耳之緣과 隨喜之福하니 幻軀는 有盡이나 實行은 不亡이니라
경을 들으면 귀를 거친 인연도 있게 되고, 따라 기뻐하는 복도 짓게 된다.
물거품 같은 이 몸은 다할 날이 있으나, 참다운 행은 없어지지 않느니라.
此는 明智學이니 如食金剛하야 勝施七寶라 壽師云, 聞而不信이라도 尙結佛種之因이요 學而不成이라도 猶盖人天之福이라하시니라
이것은 슬기롭게 배우는 것을 밝힌 것이니, 마치 금강석을 먹는 것과 같아서 칠보를 보시하는 것보다도 나은 것이다. 영명 연수선사가 말씀하기를 「듣고 믿지않더라도 부처가 될 종자가 심어진 것이요, 배워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인간이나 천상의 복을 덮는다」하시니라.
五五
看經을 若不向自己上做工夫하면 雖看盡萬藏이라도 猶無益也니라
경을 보되 자기의 마음속을향하여 공부를 지어 가지 않으면, 비록 만권의 장경을 다 보았다 하더라도 아무런 이익이 없으리라.
此는 明愚學이니 如春禽晝啼와 秋虫夜鳴이라 密師云, 識字看經이 元不證悟요 銷文釋義가 唯熾貪瞋邪見이라하시니라
이것은 어리석게 공부하는 것을 밝힌 것이니, 마치 봄날에 새가 지저귀고 가을 밤에 벌레가 우는 것과 같음이라. 종밀선사 이르시되 「글자나 알고 경을 보는 것만으로는 원래 깨칠 수 없는 것이며, 글자나 새기고 말 뜻이나 풀어 보는 것은 오직 탐욕이나 부리고 성을 내며, 삿된 소견만 더 일으키게 된다」하시니라.
五六
學未至於道하고 衒耀見聞하야 徒以口舌辯利로 相勝者인댄 如厠屋塗舟雘이니라
배워 도를 이루기 전에 남에게 자랑하려고, 한갖 말재주만 부려 서로 이기려고 한다면, 마치 변소에 단청하는 것과 같느니라.
別明末世愚學이라 學本修性이어늘 全習爲人하니 是誠何心哉아
말세에 어리석게 공부하는 것을 특별히 밝히는 말이다. 공부란 본래 제 성품을 닦는 것인데, 오로지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익힌다면 이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五七
出家人이 習外典하면 如以刀割泥하야 泥無所用이요 而刀自傷焉이니라
출가한 사람이 외전을 공부하는 것은 마치 칼로 흙을 베는 것과 같아서 흙은 아무 소용도 없는데 칼만 망가지게 되느니라.
門外長者子가 還入火宅中이로다
문밖에 놀던 장자집 아이가 도로 불붙은 집 안으로 들어가는구나.
五八
出家爲僧이 豈細事乎아 非求安逸也며 非求溫飽也며 非求利名也라 爲生死也며 爲斷煩惱也며 爲續佛慧命也며 爲出三界度衆生也니라
출가하여 중이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몸의 안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고,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 뛰어나서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니라.
可謂衝天大丈夫로다
하늘을 찌를 대장부라 이를 만하다.
五九
佛云, 無常之火가 燒諸世間이라하시고 又云, 衆生苦火가 四面俱焚이라하시며 又云, 諸煩惱賊이 常伺殺人이라하시니 道人은 宜自警悟하야 如救頭燃이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덧없는 불꽃이 온세상을 살라 버린다」하시고, 또「중생들의 고뇌의 불이 사면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하시며, 또「모든 번뇌의 적이 항상 너희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하시니, 수도인은 마땅히 스스로 깨우쳐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할지어다.
身有生老病死하고 界有成住壞空하고 心有生住異滅하니 此無常苦火가 四面俱焚者也라
謹白參玄人하노니 光陰을 莫虛度하라
몸에는 생 노 병 사가 있고, 세계에는 이루어지고 지속되고 파괴되고 없어져 버리는 것이 있으며, 마음에는 일어나고 머물고 변해 가고 사라져 버리는 것이 있으니 이것이 덧없는 고뇌의 불이 사면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는 것이다.
이치를 참구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부디 광음을 아껴 헛되이 보내지 말라.
六十
貧世浮名은 枉功勞形이요 營求世利는 業火加薪이니라
세상의 뜬 이름을 탐하는 것은 쓸데없이 몸만 괴롭게 하는 것이요, 세상 잇속을 쫓아 허대는 것은 업의 불에 섶을 더하는 것이니라.
貧世浮名者는 有人詩에 云, 鴻飛天末迹留沙요 人去黃泉名在家니라 營求世利者는 有人詩에 云, 採得百花成蜜後에 不知辛苦爲誰甛고 枉功勞形者는 鑿氷雕刻이니 不用之功也라 業火加薪者는 麤弊色香이 致火之具也라.
세상의 뜬 이름을 탐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시에,
「기러기는 하늘 멀리 날아갔는데 발자취 모래 위에 남아 있고,
사람은 저승으로 갔는데 그 이름만 집에 남아 있네」라 하였고
또 세상 잇속을 쫓아 허대는 것은 어떤 사람의 시에
「꽃마다 찾으면서 애써 꿀을 모았는데,
가만 앉아 입다신 이 그 뉘던가 몰라라」하였다.
쓸데없이 몸만 괴롭게 한다는 것은, 마치 얼음을 가지고 아름답게 조각하려는 것과 같아 쓸데없는 짓이다. 그리고 업의 불에 섶을 더한다는 것은, 거칠고 더러운 온갖 빛깔이나 향기가 욕십의 불을 일으키는 재료밖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六一
名利衲子는 不如草衣野人이니라
이름과 재물을 따르는 납자는 초의를 걸친 야인만도 못하니라.
唾金輪入雪山은 千世尊의 不易之軌則이어늘 末世羊質虎皮之輩가 不識廉恥하고 望風隨勢하야 陰媚取寵하니 噫라 其懲也夫인저
제왕의 자리도 침 뱉고 설산에 들어간 것은, 부처님이 천분 나실지라도 바뀌지않을 법칙인데, 말세에 양의 바탕에 범의 껍질을 쓴 무리들이 염치도 모르고 바람을 따라 세력에 휩쓸려, 아첨만 하고 잘 보이려고 애쓰니, 아! 그 버릇을 고쳐야 할 것이다.
心染世利者는 阿附權門하야 趨走風塵타가 返取笑於俗人하나니 此衲子를 以羊質로 證此多行하니라 以懲也夫三字로 結之하니 此三字가 文出莊子하니라
마음이 세상 명리에 물든 이는 권문에 아부하여 풍진을 쫓아다니다가, 도리어 세속 사람의 웃음을 살 것이니 이런 납자를 양의 바탕에 비유한 것은 이를 증명할 만한 여러 가지 행동이 있기 때문이다. 징야부(懲也夫) 석자로써 맺으니, 이 석자 글이 장자에 나오니라,
六二
佛이 云하시되 云何賊人이 假我衣服하고 稗販如來하야 造種種業고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어찌하여 도둑들이 나의 옷을 빌어 입고, 부처를 팔아서 가지가지 나쁜 업을 짓느냐?」고 하시니라.
末法比丘가 有多般名字하니 或鳥鼠僧이며 或啞羊僧이며 或禿居士며 或地獄滓며 或被袈裟賊이니 噫라 其所以以此니라
말세의 비구에게 여러 가지의 이름이 있은니 혹「박쥐중」이라고 하며, 혹은「벙어리 염소중」이라고도 하며, 혹은「가사 입은 도둑」이라고도 하니 슬프다! 그 까닭이 이것으로써이니라.
裨販如來者는 撥因果排罪福하고 沸騰身口하야 迭起愛憎하나니 可謂愍也라 避僧避俗曰鳥鼠요 舌不說法曰啞羊이요 僧形俗心曰禿居士요 罪重不遷曰地獄滓요 賣佛營生曰被袈裟賊이니 以被袈裟賊으로 證此多名하니라 以此二字로 結之하니 此二字가 文出老子니라
부처님을 판다는 것은 인과를 부정하고, 죄와 복도 없다 하며, 몸과 입으로 물끓듯 업만 짓고, 사랑가 미움을 번갈아 일으키고 있으니, 참으로 가엾은 일이다. 중도 속인도 아닌 체 하는 것을「박쥐중」이라하고, 입으로 설법하지못하는 것을「벙어리 염소중」이라하며, 중의 탈을 갖추고 속인의 마음을 쓰는것을「머리깎은 거사」라 하고, 지은 죄가 중하되 고치지 아니함을「지옥 찌꺼기」라하며, 부처님을 팔아 생을 이어가는 것을「가사 입은 도둑」이라 하고, 가사 입은 도둑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이차(以此) 두 글자로 맺으니 이 두 자 글이 노자에 나오니라.
六三
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아! 불자여. 그대의 한 벌 옷과 한 그릇 밥이 농부와 직녀의 피와 땀 아닌 것이 없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화하리요!
傳燈에 一道人이 道眼이 未明故로 身爲木菌하야 以還信施하니라
전등록에「옛날 어떤 도 닦는 사람이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나무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고 하니라.
六四
故로 曰, 要識披毛戴角底麽아 卽今에 虛受信施者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하시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하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베푸는 것을 헛되이 받은 자가 이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하시니라.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야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하니 虛受信施가 報應如響이니라
「지도론」에 이르기를「한 수도인이 다섯 낱 좁쌀 때문에 소 몸을 받아,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써 빚을 갚았다」하시니 헛되이 시주 것 받은 응보가 메아리와 같으니라.
六五
故로 曰, 寧以熱鐵로 纏身이언정 不受信心人衣하며 寧以洋銅灌口언정 不受信心人食하며 寧以鐵鑊投身이언정 不受信心人房舍等이라하시니라
그러므로 이르기를「차라리 뜨거운 철판을 몸에 두를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옷을 입지 말며, 쇳물을 마실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음식을 먹지 말며, 차라리 끓는 가마솥에 뛰어들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집에 거처하지 말라」하시니라.
梵網經에 云, 不以破戒之身으로 受信心人의 種種供養과 及種種施物이니 菩薩이 若不發是願則得輕垢罪니라
「범망경」에 이르기를「파계한 몸으로는 신심있는 이가 베푸는 온갖 공양과 물건을 받지 말지니, 보살이 만약 이런 원을 세우지 않으면 경구죄(輕垢罪)를 범하게 된다」하시니라.
六六
故로 曰,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라하시니라
그러므로 이르시되「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 시주의 보시를 받을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할지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의 두려워할 바라」하시니라.
進食을 如進毒者는 畏喪其道眼也요 受施를 如受箭者는 畏失其道果也니라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듯 하라는 말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이고, 보시 받기를 화살을 받듯 하라는 말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함이니라.
六七
故로 曰, 修道之人은 如一塊磨刀之石하야 張三也來磨하고 李四也來磨하야 磨來磨去에 別人刀는 快하되 而自家石은 漸消라 然이나 有人은 更嫌他人이 不來我石上磨하나니 實爲可惜이라하시니라
그러므로 말씀하기를「도를 닦는 사람은 한 개의 숫돌과 같아서, 장서방이 와서 갈고 이생원이 와서 갈아, 갈아오고 갈아가매 남의 칼은 잘 들겠지만 나의 돌은 점점 닳아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도리어 남이 와서 나의 돌에 칼을 갈지 않는 것을 걱정하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하시니라.
如此道人은 平生所向이 只在溫飽로다
이와 같이 도 닦는 사람은 평생의 소원이 오로지 따뜻이 입고 배불리먹는 데에만 있을 것이다.
六八
故로 古語에 亦有之曰, 三途苦가 未是苦라 袈裟下失人身이 始是苦也라하시니라
그러므로 옛말에 또한 이르기를「삼악도의 고통 이것이 고통이 아니라, 가사를 입었다가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이 참말 고통이다」하시니라.
古人이 云, 今生에 未明心하면 滴水도 也難消라하시니 此所以袈裟下失人身也라 佛子佛子야 憤之激之어다 此章은 始起於一於戱하고 終結於一古語하야 中間紬繹許多故曰字하니 亦一段文法也니라.
옛 어른이 이르기를「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 물도 소화시키기 어렵다」고 하시니, 이것이 가사를 입었다가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이다.
불자여! 불자여! 분견하고 분격할지어다. 이 글은 한 오호(於戱)에서 시작하여 한 고어(古語)에서 끝을 맺고 중간에 허다한 고왈(姑曰)을 늘어놓았으니, 또한 일단 문법이라.
六九
咄哉라 此身이여 九孔常流하고 百千癰疽에 一片薄皮라하시고 又云, 革囊盛糞이요 膿血之聚라 臭穢可鄙니 無貪惜之어다 何況百年을 將養한들 一息背恩이리요
애닯다, 이 몸이여!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고, 백천부스럼을 한 조각 엷은 가죽으로 싸 놓았구나. 또 이르시되 가죽 주머니에 똥을 가득 담은 것이요 피 고름 뭉치라,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니 조금도 탐하여 아끼지 말지어다. 하물며 백 년을 잘 기른다 해도 숨 한 번에 은혜를 등지고 마는 것을.
上來諸業이 皆由此身이니 發聲叱咄하야 深有警也니라 此身은 諸愛根本이니 了之虛妄則諸愛自除요 如其耽着則起無量過患이라 故로 於此에 特明之하야 以開修道之眼也니라
위에 말한 모든 업이 다 이 몸 때문에 생긴 것이니, 소리쳐 꾸짖어 깊이 깨우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몸은 온갖 애욕의 근본이니 그것이 허망한 줄 알게 되면, 온갖 애욕도 저절로 사라질 것이요, 만일 그것을 탐착하면 한량없는 허물과 걱정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특별히 밝혀 수도하는 사람의 눈을 열어 주려는 것이니라.
評曰, 四大無主故로 一爲假四冤이요 四大背恩故로 一爲養四蛇라 我不了虛妄故로 爲他人也하야 瞋之慢之하고 他人도 亦不了虛妄故로 爲我也하야 瞋之慢之하나니 若二鬼之爭一屍也라 一屍之爲體也는 一曰泡聚요 一曰夢聚요 一曰苦聚요 一曰糞聚니 非徒速朼라 亦甚鄙陋로다 上七孔은 常流涕唾하고 下二孔은 常流屎尿라 故로 須十二時中에 潔淨身器하야 以叅衆數니라 凡行麤不淨者는 善神이 必背去니라 因果經에 云, 將不淨手하야 執經卷하며 在佛前涕唾者는 必當獲厠蟲報라하시고 文殊經에 云, 大小便時에 狀如木石하야 愼勿語言作聲하며 又勿畵壁書字하며 又勿吐痰入厠中하라 又云, 登厠에 不洗淨者는 不得坐禪床하며 不得登寶殿하라
律云, 初入厠時에 先須彈指三下야 以警在穢之鬼하며 黙誦神呪各七遍하라 初誦入厠呪曰「옴 하로다야 사바하」次誦洗淨呪曰「옴 하나마리제 사바하」右手로 執甁하고 左手用無名指 洗之하되 淨水를 旋旋傾之하야 着實洗淨하라 次誦洗手呪曰「옴 주가라야 사바하」次誦去穢呪曰「옴 시리예 바헤 사바하」次誦淨身呪曰「옴 바아라 놔가닥 사바하」次五神呪는 有大威德하야 諸惡鬼神이 聞必拱手하리라 若不如法誦持則雖用七恒河水하야 洗至金剛際하야도 亦不得身器淸淨이니라 又云, 洗淨에 須用冷水하고 洗手에 須用皂角하며 又木屑灰泥도 亦通이라 若不用灰泥則觸水淋其手背라도 垢穢尙存이라 禮佛誦經에 必得罪云云하시니라 此登厠洗淨之法은 亦是道人의 日用行實故로 略引經語하야 幷附于此하노라
평해 가로되 네 가지 원소로 된 이 몸은 주인이 없는고로, 혹은 네 가지 원수가 모였다고 하고, 네 가지가 은혜를 등지는 것들이므로, 또는 네 마리의 뱀을 기른다고 한다. 내가 허망한 것을 깨닫지 못하므로, 남의 일로 성도 내고 남을 깔보기도 하며, 다른 사람도 또한 허망함을 깨닫지 못한 까닭에, 나로 인해 성도 내고 업신여기는 것이다. 이는 마치 두 귀신이 한 송장을 가지고 싸우는 것과 같다.
송장이란 물거품이 모인 덩어리요, 꿈덩어리며, 고생주머니요, 똥덩어리라고 하는 것이니, 그것은 빨리 썩어 버릴 뿐 아니라, 또한 더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위에 있는 일곱 구멍에서는 항상 눈물과 콧물이 흐르고, 아래 두 구멍에서는 대소변이 늘 흘러나온다. 그러므로 밤낮 그몸을 깨끗이 하고서 대중과 자리를 같이할 것이다. 행동이 거칠고 깨끗하지못한 사람은 착한 신장들이 반드시 등져 버린다는 것이다. 「인과경」에 이르기를「더러운 손으로 경을 만지거나, 부처님 앞에서 침을 뱉는 사람은 반드시 내생에 뒷간 벌레가 된다」하시고, 「문수경」에는「대소변을 볼 때에는 나무와 돌같이 하여 말하거나 소리내지 말고, 벽에다 그림이나 글씨도 쓰지 말 며 입측 중에 침 뱉지도 말라」하시며, 또 이르기를「변소에 다녀와서 깨끗이 씻지 않고는 좌선하는 자리에 앉지 말며, 법당에 오르지도 말라」하시며,
율에 이르기를 『처음 측간에 들어갔을 때 먼저 모름지기 손가락을 세 번 튕김으로써 측간 귀신을 일깨우며, 묵묵히 신주(神呪)를 각각 칠편씩 욀지니라.
처음에 입측주(入厠呪)를 외어 가로되
「옴 하로다야 사바하」
다음에 세정주(洗淨呪)를 외어 가로되
「옴 하나마리제 사바하」
오른손으로 병을 잡고 왼손으로 무명지를 써서 씻되 정수(淨水)를 졸졸부어서 착실히 깨끗이 씻으라.
다음에는 세수주(洗手呪)를 외어 가로되
「옴 주가라야 사바하」
다음에는 거예주(去穢呪)를 외어 가로되
「옴 시리예 바헤 사바하」
다음에는 정신주(淨身呪)를 외어 가로되
「옴 바아라 놔가닥 사바하」
이 다섯 신주는 큰 위덕이 있으니 모든 악한 귀신이 듣고 반드시 공손히 읍하리라. 만약 여법하게 지송하지 아니하면 비록 칠 항하수의 물을 써서 영원토록 씻을지라도, 또한 몸이 깨끗해지지 아니하리라』하시고
또 이르시되『깨끗이 씻음에 모름지기 냉수를 사용하며 손을 씻음에 모름지기 조각을 사용하고 또 나무를 태운 잿물도 무방하니, 만약 잿물을 사용하지 아니하면 물로 손등까지 씻을지라도 더러운 것이 남아 있을새 예불하거나 송경(誦經)하면 반드시 죄를 얻으리라』하시니라……
이 측간에 올라 깨끗이 씻는 법이 수도인의 일용행실인 고로, 간략히 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아울러 여기에 붙이노라.
七十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慙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곧 부끄러워할줄 알면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죄업은 마음을 따랄 없어지느니라.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慙愧者는 慙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七一
道人은 宜應端心하야 以質直爲本이니라 一瓢一衲으로 旅泊無累니라
도를 닦는 사람은 마땅히 마음을 단정히 하여 검박하고 곧은 마음으로써 근본을 삼아야 하느니라. 한 개의 표주박과 한 벌의 누더기 옷이면 어디를 가나 걸릴 것이 없느니라.
佛云, 心如直絃이라하시고 又云, 直心이 是道場이라하시니 若不耽着此身則必旅泊無累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기를「마음이 곧은 거문고 줄 같아야 한다」하시며, 또 말씀하기를「곧은 마음이 곧 도량이라」고 하시니, 만약 이 몸에 대하여 탐착하지 아니하면 어디를 가나 반드시 걸림이 없으리라.
七二
凡夫는 取境하고 道人은 取心이니 心境을 兩忘하야사 乃是眞法이니라
범부는 경계를 따르고 도 닦는 사람은 마음을 붙잡으려 하나니 마음과 경계를 둘 다 잊어야사 이것이 참다운 법이니라.
取境者는 如麤之趁空花也요 取心者는 如猿之捉水月也라 境心이 雖殊나 取病則一也라 此는 合論凡夫二乘하니라
【天地尙空秦日月이요 山河不見漢君臣이로다
경계를 따르는 것은 마치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물인 줄 알고 쫓아가는 것과 같고, 마음을 붙잡으려는 것은 마치 원숭이가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경계와 마음이 비록 다르지만 다 같이 병통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것은 범부와 이승을 합쳐서 말한 것이다.
【천지에는 진나라 해와 달이 없고 산하에는 한나라 군신이 보이지 않네.
七三
聲聞은 宴坐林中호대 被魔王捉하고 菩薩은 遊戱世間호대 外魔不覓이니라
성문은 숲속에 가만히 앉아 있으되 마왕에 붙자히고, 보살은 세간에 노닐어도 외도들과 마군이 보지 못하느니라.
聲聞은 取靜爲行故로 心動이요 心動則鬼見也라 菩薩은 性自空寂故로 無迹이라 無迹則外魔不見이니 此는 合論二乘菩薩하니라
【三月懶遊花下路어늘 一家愁閉雨中門이로다
성문은 고요한 것만 지킴으로써 수행을 삼는 까닭에 마음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면 귀신이 보게 되는 것이다. 보살은 성품이 본래 비고 고요하므로 자취가 없고, 자취가 없으면 외도와 마군들이 보지 못한다. 이것은 이승과 보살을 합쳐서 말한 것이다.
【봄바람 꽃길에서 오락가락 노니는데, 한 집은 빗 속에 문을 닫고 근심하네.
七四
凡人이 臨命終時에 但觀五蘊皆空하고 四大無我니 眞心은 無相하야 不去不來니 生時에도 性亦不生하며 死時에도 性亦不去하며 湛然圓寂하야 心境이 一如니 但能如是直下頓了하면 不爲三世所拘繫니 便是出世自由人也니라 若見諸佛이라도 無心隨去하며 若見地獄이라도 無心怖畏하야 但自無心하면 同於法界니 此卽是要節也라 然則平常은 是因이요 臨終은 是果니 道人은 須着眼看하라
누구든지 임종할 때에는 다만 오온이 다 공하고 네 가지 원소가 나라고 할것이 없음을 관하지니, 참 마음은 모양이 없어 가는 것도 아니며 오는것도 아니니 날 때에도 성품은 또한 난 바가 없고 죽을 때에도 성품은 또한 가는 바가 없어서, 지극히 맑고 고요하여 마음과 경계가 하나인 것이다. 오직 능히 이와 같이 바로 몰록 요달하면 삼세 인과에 이끌리거나 얽매이지 않게 될 것이니, 이가 곧 세상을 뛰어난 자유인이다. 만약 부처님을 뵈어도 따라갈 마음이 없으며, 지옥을 보더라도 두려운 마음이 없어 다만 스스로 무심하면 법계와 같이 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요긴한 곳이다. 그러므로 평상시에 좋은 씨를 심어 가꾸어야 임종할 때에 좋은 열매를 거두리니 도 닦는 사람은 모름지기 이곳에 착안해 볼지어다.
怕死老年에 親釋迦로다
【好向此時明自己어다 百年光影이 轉頭非로다
죽음이 두려운 늙으막에야 부처님을 가까이 함이로다.
【당장 이 때에 마음을 애써 밝히소, 백 년 세월도 순식간에 글러지느니.
七五
凡人이 臨命終時에 若一毫毛라도 凡聖情量이 不盡커나 思慮를 未忘하면 向驢胎馬腹裡하야 托質하며 泥犁鑊湯中에 煮煠하다가 乃至依前再爲螻蟻蚊虻이니라
대저 사람이 임종에 임할 때에 만약 한 털끝만큼이라도 범부라 성인이라 하는 생각을 다 끊지 못하거나 그런 생각을 잊지 못하면, 나귀배와 말의 뱃속을 향하여 몸을 의탁하며 지옥의 끓는 가마 속에 처박히거나, 이전과 같이 다시 개미나 모기 등이 됨에 이르리라.
白雲이 云, 設使一毫毛나 凡聖情念이 淨盡이라도 亦未免入驢胎馬腹中이라하시니 二見이 星飛하면 散入諸趣하리라
【烈火茫茫하고 寶劍이 當門이로다
백운선사가 이르기를「설사 털끝만큼의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생각이 남은 바가없다 하더라도, 또한 나귀나 말의 뱃속에 들어가는 것을 면치 못하리라」고 하시니 두 소견이 번득이면 여러 길에 들어갈 것이다.
【모진 불이 활활 붙고, 보배 칼이 번쩍이도다.
平曰, 此二節은 特開宗師의 無心合道門하야 權遮敎中에 念佛求生門이나 然이나 根器不同하고 志願이 亦異하니 各各如是兩不相妨이니 願諸道者는 平常隨分하야 各自勞力하야 最後刹那에 莫生疑悔어다
평해 가로되, 이 두구절은 특히 종사의 무심하여 도에 합하는 문을 열어서 교중에 염불로 극락세계에 나기를 구하는 문을 한때 방편으로 막아 놓은 것이나 그러나 사람마다 바탕과 그릇이 같지 않고, 뜻과 원이 또한 다르므로 각각이와 같이 두 가지가 서로 방해되지 않는 것이니, 바라건대 도 닦는 사람들은 평소에 분을 따라 각자 노력하여 최후 찰나에 의심하거나 뉘우치지 말지어다.
七六
禪學者가 本地風光을 若未發明則孤峭玄關을 擬從何透리요 往往에 斷滅空으로 以爲禪하며 無記空으로 以爲道하며 一切俱無로 以爲高見하나니 此는 冥然頑空이라 受病幽矣니 今天下之言禪者가 多坐在此病이니라
참선하는 사람이 본래 면목을 만약 밝히지 못한다면, 높고 아득한 진리의 문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 왕왕 어떤 이는 아주 끊어져 없어진 빈 것으로써 참선을 삼기도 하고,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이 빈 것으로써 도를 삼기도 하며, 일체가 다 없는 것으로써 높은 소견을 삼기도 하나니, 이런것들은 컴컴하게 비기만 한 것이라 병든 바가 깊다. 지금 천하에 선을 말하는 사람들이 거의가 이런 병에 걸려 있느니라.
向上一關은 措足無門이라 雲門이 云, 光不透脫도 有兩種病이요 透過法身도 亦有兩種病하니 須一一透得하야사 始得다.
【不行芳草路하면 難至落花村이니라
높이 올라가는 한 관문은 발붙일 곳이 없다. 운문선사가 이르기를「빛을 꿰뚫지못함도 두 가지 병이 있고, 법신을 꿰뚫었을지라도 또한 두 가지 병이 있으니, 모름지기 낱낱이 꿰뚫어야 한다」고 하시니라.
【우거진 풀밭길 걷지 않으면 꽃이 지는 마을에 가긴 어려워.
七七
宗師도 亦有多病하니 病在耳目者는 以瞠眉努目과 側耳點頭로 爲禪하며 病在口舌者는 以顚言倒語와 胡喝亂喝로 爲禪하며 病在手足者는 以進前退後와 指東畫西로 爲禪하며 病在心腹者는 以窮玄究妙와 超情離見으로 爲禪하나니 據實而論컨댄 無非是病이니라
종사도 또한 병이 많으니 병이 귀와 눈에 있는 자는 눈썹을 쳐들고 눈을 부릅뜸과 귀를 기울이고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선을 삼으며, 병이 입과 혀에 있는 자는 횡설수설 되지 않는 말과 함부로「할」하는 것으로써 선을 삼으며, 병이 손발에 있는 자는 나아갔다 물러갔다 함과 이쪽저쪽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선을 삼으며, 병이 마음 가운데 있는 자는 진리를 찾아내고 오묘한 것을 뚫어내며, 인정을 뛰어나고 자기의 소견을 여의는 것으로써 선을 삼으니, 실상대로 말하자면 어느 것이고 병아닌 것이 없느니라.
殺父母者는 佛前懺悔어니와 謗般若者는 懺悔無路니라
【空中撮影이 非爲妙어늘 物外追蹤이 豈俊機리요
부모를 죽인 사람은 부처님 앞에 참회하려니와, 반야를 비방한 사람은 참회할 길이 없느니라.
【공중에서 그림자 붙잡아도 우스운데, 세상밖에 뛰는 것 무어 그리 장할까.
七八
禪學者는 要須識句하야사 始得다
선학자는 모름지기 구를 알아야사 비로소 옳다.
此一句字는 通結一編大義하시니라
【若是良馬인댄 何待鞭影이리오
이 한 구(句) 자(字)는 일편 대의를 통털어 맺으심이니라.
【만약 어진 말일진댄 어찌 채찍 그림자를 기다리리요.
七九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不道不道하라 恐上紙墨이로다
【箭穿江月影하니 須是射鵰人이니라
말하지 마라 말하지 마라, 붓 끝에 오를라!
【화살이 강에 잠긴 달 그림자를 꿰뚫으니 그가 바로 수를 잡는 이구나.
八十
大抵學者는 先須詳辨宗途니 昔에 馬祖一喝也에 百丈은 耳聾하시고 黃檗은 吐舌하시니 這一喝은 便是拈火消息이며 亦是達摩初來底面目이라 吁라 此臨濟宗之淵源이로다
대저 배우는 사람은 먼저 종파의 갈래부터 자세히 가리어 알아야 할지니, 옛날에 마조스님이 한번「할」하시매, 백장스님은 귀가 먹고, 황벽스님은 혀를 토하시니, 이 한「할」이야말로 곧 부처님께서 꽃을 드신 소식이며, 또한 달마대사의 처음 오신 면목이다. 아! 이것이 임제종의 근원이로구나.
識法自懼라 和聲便打니라
【杖子一枝無節牧을 慇懃分付夜行人이로다
법을 아는 이가 두렵다. 소리 따라 곧 쳐 주리라.
【마디 없는 주장자 한 가지를 슬며시 내어 주네 밤길 가는 나그네에게.
昔馬祖一喝也에 百丈은 得大機하시고 黃檗은 得大用하시니 大機者는 圓應으로 爲義하고 大用者는 直截로 爲義하니 事見傳燈錄이니라
예날 마조스님의 한번「할」에 백장스님은 대기를 얻으시고, 황벽스님은 대용을 얻으시니, 대기란 원만하게 두루 응하는 것으로 대의를 삼고, 대용이란 바로 끊는 것으로 대의를 삼는다. 그 사연이「전등록」에 실려 있다.
大凡祖師宗途가 有五하니 曰臨濟宗 曰曹洞宗 曰雲門宗 曰潙仰宗 曰法眼宗이니라
무릇 조사의 종파에 다섯 갈래가 있으니, 즉 임제종·조동종·운문종·위앙종·법안종이다.
臨濟宗
本師釋迦佛로 至三十三世六祖慧能大師下直傳하니 曰南嶽懷讓 曰馬祖道一 曰百丈懷海 曰黃檗希運 曰臨濟義玄 曰興化存獎 曰南院道顒 曰風穴延沼 曰首山省念 曰汾陽善昭 曰慈明楚圓 曰楊岐方會 曰白雲守端 曰五祖法演 曰圜悟克勤 曰徑山宗杲禪師等이니라
임제종 :본사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삼십 삼 세 되는 육조 혜능대사의 밑에서 곧게 전하여 내려가기를, 남악회양·마조도일·백장회해·황벽희운·임제의현·홍화존장·남원도옹·풍혈연소·수산성념·분양선소·자명초원·양기방회·백운수단·오조법연·원오극근·경산종고선사 등이다.
曹洞宗
六祖下傍傳이니 曰靑原行思 曰石頭希遷 曰藥山惟儼 曰雲巖曇晟 曰洞山良价 曰曹山耽章 曰雲居道膺禪師等이니라
조동종 :육조의 아래에서 곁 갈래로 청원행사·석두희천·약산유엄·운암담성·동산양개·조산탐장·운거도응선사등이니라
雲門宗
馬祖傍傳이니 曰天王道悟 曰龍潭崇信 曰德山宣鑑 曰雪峰義存 曰雲門文偃 曰雪竇重顯 曰天衣義懷禪師等이니라
운문종 :마조의 곁갈래로 천왕도오·용담숭신·덕산선감·설봉의존·운문문언·설두중현·천의의회선사 등이다.
潙仰宗
百丈傍傳이니 曰潙山靈祐 曰仰山慧寂 曰香嚴智閑 曰南塔光湧 曰芭蕉慧淸 曰霍山景通 曰無着文喜禪師等이니라
위앙종 :백장의 곁 갈래로 위산영우·앙산혜적·향엄지한·남탑광용·파초혜청·곽산경통·무착문희선사 등이다.
法眼宗
雪峰傍傳이니 曰玄沙師備 曰地藏桂琛 曰法眼文益 曰天台德韶 曰永明延壽 曰龍濟紹修 曰南臺守安禪師等이니라
법안종 :설봉의 곁 갈래로 현사사비·지장계침·법안문익·천태덕소·영명연수·용제소수·남대수안선사 등이다.
臨濟家風
赤手單刀로 殺佛殺祖로다 辨古今於玄要하고 驗龍蛇於主賓이라 操金剛寶劍하야 掃除竹木精靈하며 奮獅子全威하야 震裂狐狸心膽이로다 要識臨濟宗麽아 靑天轟霹靂이요 平地起波濤로다
임제가풍 :맨손에 한 칼 들고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임이로다. 예와 이제를 삼현 삼요로써 판단하고, 용과 뱀을 빈주구로 알아낸다. 금강의 보검으로 도깨비를 쓸어 내고, 사자의 위엄을 떨쳐 여우와 너구리의 넋을 찢네. 임제종을 알려는가? 푸른 하늘에 벼락치고 평지에 파도가 이는도다.
曹洞家風
權開五位하야 善接三根하며 橫抽寶劍하야 斬諸見稠林하며 妙協弘通하야 截萬機穿鑿이로다 威音那畔에 滿目煙光이요 空劫已前에 一壼風月이로다 要識曹洞宗麽아 佛祖未生空劫外에 正偏不落有無機로다
조동가풍 :권도로 오위를 열어 세가지 근기를 잘 다루며, 보검을 빼어 들고 모든 사견의 숲을 베어 내며, 널리 통하는 길 묘하게도 맞추어서 모든 기틀의 천착을 끊음이로다. 위음왕불 나시기전 눈에 가득한 풍경이요, 공겁 이전 별(別) 세계 경치로다. 조동종을 알려는가? 부처님과 조사도 안 나시고 아무 것도 없던 그 전, 졍편(正偏)이 유무(有無) 기틀에 떨어지지 않음이로다.
雲門家風
劒鋒有路하고 鐵壁無門이라 掀翻露布葛藤하고 剪却常情見解하니 迅電은 不及思量이요 烈焰에 寧容湊泊이리요 要識雲門宗麽아 柱杖子 跳上天하고 盞子裡에 諸佛이 說法이로다
운문가풍 :칼날에는 길이 있고 철벽에는 문이 없다. 온 천하의 갈등을 둘러엎고, 못된 소견을 잘라 내 버리니, 번적 하는 번갯불은 사량으로 미칠 수 없거니, 활활 타는 불꽃 속에 어찌 머무를 수 있으리요. 운문종을 알려는가? 주장자가 날아 하늘 높이 오르고, 잔속에서 모든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도다.
潙仰家風
師資唱和하며 父子一家로다 脇下書字하니 頭角이 崢嶸이요 室中驗人에 獅子腰折이로다 離四句絶百非를 一搥粉碎하니 有兩口無一舌이여 九曲珠通이로다 要識潙仰宗麽아 斷碑는 橫古路하고 鐵牛는 眼少室이로다
위앙가풍 :스승과 제자가 부르면 화답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집에 살고 있네. 옆구리에 글자 쓰고 머리 위에 뿔이 뾰족하구나. 방 안에서 사람들을 시험하니 사자 허리 부러지다. 이사구절백비(離四句絶百非)를 한 망치로 부수었네. 입은 둘이 있으나 혀는 하나도 없는 것이 구곡주를 꿰뚫었다. 위앙종을 알려는가? 부러진 비석 옛 길에 쓰러져 있고 무쇠 소는 작은 집에 잠을 자네.
法眼家風
言中有響하고 句裡藏鋒이라 觸髏는 常干世界하고 鼻孔은 磨觸家風이라 風柯月渚는 顯露眞心하고 翠竹黃花는 宣明妙法이로다 要識法眼宗麽아 風送斷雲歸嶺去하고 月和流水過橋來로다
법안가풍 :말 가운데 메아리가 있고 글 속에 칼날이 숨었구나. 해골이 온세상을 지배하고 콧구멍은 어느때나 그 가풍을 불어내네. 바람 부는 나뭇가지와 달 비치는 물가에는 참 마음이 드러나고, 푸른 대와 누른 꽃은 묘한 법을 환히 밝혀 주네. 법안종을 알려는가? 맑은 바람 구름을 산마루로 보내주고, 밝은 달 물에 떠서 다리 지나 흘러오네.
別明臨濟宗旨
大凡一句中에 具三玄하고 一玄中에 具三要하니 一句는 無文綵印이요 三玄三要는 有文綵印이라 權實은 玄이요 照用은 要라
따로 임제종지를 밝힘 :일구(一九)가운데 삼현(三玄)이 갖추어 있고, 일현(一玄)가운데 삼요(三要)가 갖추어 있는데, 일구는 글발이 없는 인(印)이고, 삼현과 삼요는 글발이 있는 인이다. 권도와 실상은 현(玄)이며, 비침과 씀은 요(要)가 된다.
三 句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셋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三 要
一要는 照卽大機요 二要는 照卽大用이요 三要는 照用同時라
삼요 : 첫째 요는 비침이 곧 큰 기틀이요, 둘째 요는 비침이 곧 큰 씀이며, 셋째 요는 비침과 씀이 동시이다.
三 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체 가운데 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四料揀
奪人不奪境은 待下根이요 奪境不奪人은 待中根이요 人境兩俱奪은 待上根이요 人境俱不奪은 待出格人이라
사료간 : 사람을 빼앗고 경계를 빼앗지 않는 것은 하등 근기들을 다루는 법이고, 경계를 빼앗고 사람을 빼앗지 않는 것은 중등 근기들을 다루는 법이며,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것은 상등 근기를 다루는 법이고,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지 않는 것은 격 밖의 사람을 다루는 법이다.
四寶主
賓中賓은 學人이 無鼻孔이니 有問有答이요 賓中主는 學人이 有鼻孔이니 有主有法이요 主中賓은 師家無鼻孔이니 有問在요 主中主는 師家有鼻孔이니 不妨奇特이라
사빈주 :손 가운데 손은 배우는 이가 콧구멍이 없는 것이니, 물음이 있고 대답이 있는 것이고, 손 가운데 주인은 배우는 이가 콧구멍이 있는것이니, 주인도 있고 법도 있는 것이며, 주인 가운데 손은 스승의 콧구멍이 없는 것이니 묻는 것만 있고, 주인 가운데 주인은 스승의 콧구멍이 있는 것이니 기특한 것도 해롭지 않다.
四照用
先照後用은 有人在요 先用後照는 有法在요 照用同時는 驅耕奪食이요 照用不同時는 有問有答이라
사조용 :먼저 비치고 뒤에 씀은 사람이 있는 것이고, 먼저 쓰고 뒤에 비침은 법이 있는 것이며, 비침과 씀이 동시로 되는 것은 밭을 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고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 것이고, 비침과 씀이 동시가 아닌 것은 물음이 있고 대답이 있는 것이다.
四大式
正利는 少林面壁類요 平常은 禾山打鼓類요 本分은 山僧不會類요 貢假는 達摩不識類라
사대식 :정리(正利)는 소림굴에서 면벽하고 있는 따위고, 평상은 화산의 「북을 친다」는 따위며, 본분은「산승은 모르노라」한 따위고, 거짓을 꾸민다는 것은 달마대사가「아지 못하노라」한 따위들이다.
四 喝
金剛王寶劍은 一刀에 揮斷一切情解요 踞地獅子는 發言吐氣에 衆魔腦裂이요 探竿影草는 探其有無師承鼻孔이요 一喝不作一喝用은 具上三玄四賓主等이라
사할 :금강왕 보배 칼의 할이란 것은 한 칼에 온갖 생각과 알음알이를 끊어 버리는 것이고, 땅에 버티고 앉은 사자의 할이란 것은 말을 하거나 입김만 내쏘아도 모든 마군의 머리가 터지는 것이며, 탐지하는 댓가지와 그림자 보이는 풀묶음 할이란 것은 그 상대자의 콧구멍이 있는가 없는가를 탐지하는 것이며, 또 한 가지 할은 한 할로만 쓰이지 않고, 위에 말한 삼현과 사빈주 같은 것들을 다 갖추어 있는 것이다.
八 棒
觸令返玄과 接掃從正과 靠玄傷正과 苦責은 罰棒이요 順宗旨는 賞棒이요 有虛實은 辨棒이요 盲架는 瞎棒이요 掃除凡聖은 正棒이니라 此等法은 非特臨濟宗風이라 上自諸佛로 下至衆生히 皆分上事니 若離此說法하면 改是妄語니라
팔방 :영을 내려서 이치에 돌아가게 하는 것과, 닥치는 대로 쓸어 버려서 바르게 하는 것과, 이치도 내버리고 바른 것까지도 쳐 버리는 것과, 몹시 책망하는 것들은 벌을 주는 방망이고, 종지에 맞는 것은 상을 주는 방망이며, 허와 실이 있는 것은 가리어 보는 방망이고, 함부로 스는 것은 눈먼 방망이며, 범부와 성인을 함께 쓸어 버리는 것은 바른 방망이다. 이와 같은 법들은 하필 임제종의 가풍만이 될 뿐 아니라, 위로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는 중생에게 이르기까지 다 제대로 갖추어 있는 당연한 일이다. 만약 이것을 여의고 설법한다는 것은 모두 망녕된 말이다.
八一
臨濟喝과 德山棒이 皆徹證無生하야 透頂透底하야 大機大用이 自在無方하야 全身出沒하며 全身擔荷하야 退守文殊普賢大人境界나 然이나 據實而論컨대 此二師도 亦不免偸心鬼子니라
임제의「할」과 덕산의「방」이 다 무생의 도리를 철저히 증득, 밑바닥에서 정상까지 꿰뚫어서 큰 기틀과 큰 작용이 자재하고 방소(方所)가 없어 전신으로 출몰하며 전신으로 짊어지시되, 물러나 문수와 보현의 대인 경계를 지킨다 하더라도, 실상대로 말한다면 이 두 분(임제와 덕산)도 또한 도깨비가 됨을 면치 못하시니라.
凜凜吹毛여 不犯鋒鋩이로다
【爍爍寒光珠媚水하고 寥寥雲散月行天이로다
시퍼런 칼날 다치지 말라.
【번쩍 번쩍 서릿발 물에 튀는 구슬인가,
구름 흩어진 고요한 하늘에 흘러가는 저 달이여.
八二
大丈夫는 見佛見祖를 如寃家어다 若着佛求하면 被佛縛이요 若着祖求하면 被祖縛이니 有求皆苦라 不如無事니라
대장부는 부처나 조사 보기를 마치 원수와 같이 할지어다. 만약 부처에게 매달려 구하면 부처에게 얽매인 것이요, 만약 조사에게 매달려 구하면 조사에게 얽매이는 것이 된다. 무엇이든 구하는 것이 있다면 다 고통이 되므로, 아무 일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佛祖如寃者는 結上無風起浪也요 有求皆苦者는 結上當體便是也요 不如無事者는 結上動念卽乖也라 到此하야 坐斷天下人舌頭하고 生死迅輪을 庶幾停息也라 扶危定亂은 如丹霞燒木佛과 雲門喫狗子와 老母不見佛이라 皆是摧邪顯正底手段이나 然이나 畢竟如何오
常憶江南三月裡에 鷓鴣啼處百花香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원수와 같이 보라는 것은 첫머리의「바람도 없이 물결을 일으킨다 」는 말을 맺는 것이요, 구하는 것이 있으면 다 고통이라고 한 것은「당체가 다 그대로 옳다」는 말을 맺는 것이며, 일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것은「한 생각 일으키면 곧 어그러진다」는 말을 맺는 것이다. 이에 이르면 온 천하 사람의 혀 끝을 앉아서 끊고 생사의 빠른 바퀴를 멈추게 함이라. 위란을 바로잡아 나라를 평안하게 하는 것은 단하선사가 목불을 살라 버린 것과 운문선사가 개 밥 주는 것과 노파가 부처를 보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것이니, 모두 요사한 것을 꺾고 바른 것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그러나 필경에 어떠한고?
저 강남 삼월이 언제나 그리워
자고새 우는 곳 온갖 곷이 향기롭구나.
八三
神光이 不昧하야 萬古徽猷로다 入此門來에 莫存知解어다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만고에 밝고나. 이문 안에 들어오매 알음알이를 두지 말지어다.
神光不昧者는 結上昭昭靈靈也요 萬古徽猷者는 結上本不生滅也요 莫存知解者는 結上不可守名生解也라 門者는 有凡聖出入義하니 如荷澤의 所謂知之一字가 衆妙之門也라 吁라 起於名狀不得하야 結於莫存知解하니 一篇葛藤을 一句都破也로다 然이나 始終一解요 中擧萬行하니 如世典之三義也라 知解二字는 佛法之大害故로 特擧而終之하니 荷澤神會禪師가 不得爲曹溪嫡子者는 以此也라 因而頌曰,
如斯擧唱明宗旨인대 笑殺西來碧眼僧하리라 然이나 畢竟如何오 咄, 孤輪이 獨照江山靜하니 自笑一聲에 天地驚이로다
거룩한 빛이 어둡지 않다는 것은 첫머리의「밝고 신령하다」는 것을 맺는 말이요, 만고에 밝다 함은「본래부터 나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것을 맺는 말이며,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하는 것은「이름에 얽매여서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하는 것을 맺는 말이다. 「문」이란 범부와 성인이 드나든다는 뜻이 있으니, 마치 하택신회선사가 이른바 알지(知)자 한 자가 온갖 묘한 이치의 문이라고 한 것과 같다. 아! 「이름 지을 수도 모양 그릴 수도 없다」는 데서 시작하여「알음알이를 두지 말라」는 것으로 끝을 맺으니, 이 한 권에 얽힌 넌출을 한 마디 말로 모두 끊어 버렸다. 그리하여 처음과 끝을 일해(一解)로써 말하고, 중간에는 온갖 행동을 들어 보였으니, 마치 유교 경전의 삼의와 같다. 지해(知解) 두글자는 불법에 큰 해독이 되므로 특별히 들어서 끝을 마치니 하택신회선사가 조계의 적자가 못 됨은 이 때문이다. 인하여 송하기를
이와 같이 종지를 들어 밝힌다면 눈 푸른 달마스님 한바탕 웃으리라.
그러나 필경에 어떠할고? 애닲다!
휘영청 달은 밝고 강산은 고요한데 터지는 웃음소리 천지가 놀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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