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海東華嚴과 海印三昧

醉月 2013. 8. 7. 01:30

海東華嚴과 海印三昧

金知見

 

차 례

1. 화엄경

2. 문제의 제기

3. 海東華嚴의 뿌리

4. 海東華嚴의 흐름-海印三昧

5. 海東華嚴의 흐름-性起의 구현

 

1. 화엄경


"華嚴經" 은 동양문화의 精華라고도 하고 佛敎經典으로서만이 아니라 폭넓게 많은 지역의 여러 방면에서, 특히 문학과 예술분야에까지도 영향이 미치어 있다고 보아진다. 그러면 "화엄경" 이 어떠한 경전인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화엄경" 은 대승불교 경전 가운데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상세히 말하자면 "大方廣佛華嚴經" 이라고 불리우고 산스크리트어로는 Buddha-avatamsaka-nama-mahavaipulya-sūtra(붓다의 壯嚴이라고 말하는 광대한 경전)이라고 한다. 중국에 와서 번역된 漢譯華嚴經은 3本이 있다. 제1은 佛駄跋陀羅(Buddhabhadra:359-429 A.D.)가 번역한 50권본(번역된 뒤에 교정을 다시해서 60권이 된다)과, 제2는 實叉難陀(Śikṣananda:625-710A.D.)가 번역한 80권본이 있다. 전자를 六十華嚴, 晋譯經, 舊譯華嚴經이라 하고 후자는 八十華嚴, 唐經, 新譯華嚴經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제3에 般若(Prajnã)가 번역한 40권본(798 A.D.)이 있다. 이는 四十華嚴, 貞元經, 行願品이라고 불리우고 新舊兩譯의 최후부분인 「入法界品」에 해당하는 내용의 번역이다. 그리고 티베트역에 八十華嚴과 같은 계통의 것이 있다. 산스크리트원전으로 발견된 것은 화엄경 중 「十地品」, 혹은 독립경전으로서 "十地經" (Dasadhūmika-sūtra)과 「入法界品(Gandavyūha-sutra)」이 전해온다.

 

"화엄경" 은 이와 같이 완역된 것으로서 六十卷․八十卷․四十卷 등 방대한 경전이다. 처음부터 완전한 형태를 갖추어 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서기 기원 전후부터 1․2세기에 걸쳐 조금씩 정리되어 종합된 것이"  화엄경" 이 되었다고 한다.

 

"화엄경" 의 내용은 붓다의 大悟하신 경지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리불이나 목건련같이 훌륭한 제자들까지도 벙어리와 귀머거리처럼 붓다의 설법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이 경전의 내용은 복잡하고 茫洋해서 쉽사리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그 내용은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정독하는 동안에 無邊大海와도 같은 붓다의 경지에 우리들의 마음이 다가서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 사상의 근본적인 특징은 事事無碍의 法界緣起사상에 기인한 것이라 한다. 즉 궁극의 진리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일체사상이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성립되었으면서도 서로 걸림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보살도의 실천을 설하고 있다. 보살도의 실천에는 自利와 利他의 二大方向이 있다고 하나 보살도에 있어서는 타인을 구제한다는 것이 自利이기 때문에 自利卽利他인 것이다. "화엄경" 의 舊譯은 七處八會 34品(新譯은 七處九會 39품)으로 성립되어 있다. 七處八會란 설법의 장소와 그 會座의 수인 것이다. 34품이란 34章이란 뜻과 같다. 第1의 「寂滅道場會」와 第2 「普光法堂會」는 지상의 회좌이고 第3 「忉利天宮會」 第4 「夜摩天宮會」, 第5 「忉率天宮會」, 第6 「他化自在天宮會」는 모두 천상이며 설법이 진행됨에 따라서 회좌의 장소도 점차 천상으로 올라간다. 第7은 다시 지상의 「普光法堂會」이며 최후의 第8도 지상의 「逝多林會」 즉 祈園精舍에 있어서의 집회이고 여기서 「입법계품」을 설하게 된다. 이와 같은 "화엄경" 이 한반도에 유전되어 어떻게 수용되었던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2. 문제의 제기


원래 華嚴이란 존재세계의 실상인 華嚴法界에 관한 소식이다."華嚴經" 에 따르면, 존재세계는 현상의 측면에서도 수많은 인연들이 모여서 성립되지만, 실은 그저 그러한 것으로 현현할 뿐이고 거기에는 이것을 발생시킨 것도 없고 만든 자도 없으며 아는 자도 이룬 자도 없이 그저 세계가 성립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실증주의적 세계관에 따르면, 현실적인 것은 오직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지각되는 것만을 의미한다. 존재는 다만 인식주관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며, 이때의 인식은 인과적 파악과 동일하며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은 바로 그것이 무엇에 의하여(wodurch), 어디에서(woher), 어디를 향하여(wonach) 있는가를 아는 것에 한정된다. 이러한 태도를 야스퍼스는 발생적 인식(Genetische Erkenntnis)이라고 부르거니와 앞서 본 바와 같이 존재세계가 발생도 없이 본격적으로 ‘그저 그렇게’ 있다고 함은 곧 존재세계가 시간과 공간의 규정을 통하여 인과적으로 파악될 ‘대항’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한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인식주관에 의하여 대상화되고 인과적 범주에 속하는 시간과 공간으로 규정되기 이전의 그 자체로서의 존재세계를 ‘華嚴’에서는 法界 또는 法性이라고 부른다.

 

雪岺에 따르면 ‘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인식기관이 접하고 있는 삼라만상으로서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인 존재를 말하는 것이고 ‘性’이란 우리의 인식기관이 끊임없이 수용하고 있지만, 대상화하여 분석할 수 없는 本來性이다. 대상화되어 인식되는 것과 그것의 본래성은 원래가 원융한 일체를 이루면서 그 자체로서 현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하나로서의 존재세계의 모습이 현상이 배후로 숨어버린 것은 의식주관의 단초인 一念의 발생순간과 일치한다. 一念이 일어나 그와 나를 구별할 때 取捨가 생기고 취사의 념이 있게 되자, 곧 十法界를 이루어 무차별의 세계 중에서 갑자기 차별적인 현상으로서 존재세계가 성립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존재세계 그 자체는 우리들의 실증주의적 접근에 대하여는 그 본래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雪岺이 華嚴世界는 본래 아무런 개념적 규정도 포함하지 아니하며, 그와 같은 세계의 인격화로서의 비로자나불 또한 침묵하고 있을 뿐이라고 함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는 세존이 七處九會에서 頓機의 인을 위하여 "華嚴經" 을 설한 것조차 벌써 오류를 범한 것이니, 하나로서의 존재세계에 관한 한 그것은 개념화할 수 없는 것으로서 처음부터 언어적인 접근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華嚴이 華嚴을 설한다 함은 일상의 무의미한 동어반복은 아니고 能ø이 지양된 自內證의 세계를 단적으로 표명한 것이라서 규정할 수 없는 최고의 진리를 명제화하고자 하는 한 그것은 自動性(Identitāt)을 표명하는 A=A의 동어반복(Tautologie)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華嚴經" 이 존재세계에 관하여 천명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華嚴은 존재세계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일정한 내포에 의하여 이를 정의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접근이야말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무규정적인 존재세계를 시간․공간 속에서 인과적 범주에 의하여 대상화함으로써 한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華嚴은 우선 소극적으로 시간․공간 규정의 초월을 말함으로써 무제약적인 본래성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다. 이는 결국 시간을 통하여 시간적인 무제약성을, 공간을 통하여 공간적인 무제약성을 표현한 것이지만, 이를 실증적 차원에서의 물음이며 대답으로 이해하는 한, 그것은 자가당착을 범한 것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이상의 상식으로 海東華嚴이 緣起가 아닌 性起의 입장으로 中國華嚴과 日本華嚴과 같은 것 같으나 같지 않은 문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3. 海東華嚴의 뿌리


義相系 華嚴의 특성을 여기서 한마디로 간단히 말할 수 없다. 다만 義相의 경우 華嚴을 緣起的 차원의 사유를 초월한 性起로서 진리를 嚴․淨融會의 실천신앙을 통하여 체험하는 실천철학이었다는 점만을 지적해 두어도 좋을 것이다. 義相이 동문의 法藏(643~712)과 달리 解境의 十佛보다 行境의 十佛, 그 중에서도 특히 無着佛 등 이른바 見佛의 十佛을 중시한 것이라든가, 嚴․淨融會의 신앙고백으로서의  白花道場發願文" 을 저술하고 浮石寺에 阿彌陀如來를 봉안한 것 같은 예는 義相의 이러한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예라고 할 것이다.

 

義相이 西學시절, 그의 스승 智儼은 그에게 義持라는 법호를, 法藏에게 文持의 법호를 각각 준 바 있다고 전한다. 文이 언어적 표상 그것인데 반하여, 義는 그것이 전달하는 내포로서의 소식 곧 所ø의 의리이다. 뿐만 아니라 법호에 있어 위와 같은 대비는 양인의 法諱에 있어서도 나타나 있다. 불교의 일반적 터미놀로지에 따르면 法은 존재자체 또는 진리성을, 義는 존재(dharma)의 현재 또는 작용으로서의 의리(arthā)를 각각 표상한다. 그리고 藏은 잠세태를 가리킴에 대하여 相은 본질현상으로서의 현실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法과 藏, 義와 相의 결합은 필연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닐 수 없고 이러한 의미에서 法藏과 義相은 보통명사로서도 대비의 개념일 수밖에 없다. 바꾸어 말하자면 法과 文이 테오리아(theoria)에 속하는 것이라면, 義는 프락시스(praxis)라고 할 것이므로 智儼의 腸號는 法藏에 있어서의 정태적 철학을, 義相에게 있어서의 동태적인 실천신앙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필자는 義相과 法藏의 法藏 자체가 智儼師에 의하여 작명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바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을 지나친 굴착이라고 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든 간에 義相系 華嚴의 위와 같은 특성은 다 같은 智儼문하의 분류라고 하더라도 거기에 賢首宗과 구별되는 고유의 場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요, 그러기에 부석종이 그저 支那華嚴의 일부에 그치지 않고 海東華嚴으로서의 독자성을 표방할 수 있는 소이인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海東이라는 말은 신라인들의 의식에 있어서 극동의 한구석에 있는 한반도라는 지리적 외연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들이 가진 사상적 독자성에 의하여 국제성을 표방할 때 사용한 관사였던 것이다. 義相을 海東華嚴의 初祖라고 부를 때의 海東華嚴이라는 용어가 단순한 지역적 한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이론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義相系의 華嚴이야말로 海東華嚴의 主流였던 것으로서 고려 肅宗 6년에 義相에게는 圓敎國師의 시호가 더하여진다. 이와 동시에 元曉를 和諍國師로 시호하였다는 고려사의 기록은 華嚴圓敎의 宗師가 다른 사람이 아닌 義相이었음을 正史의 권위를 가지고 선언한 것이 된다.

 

義相이 義相으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은 法藏과의 대비에 있어서이다. 義相은 文持에 대한 관계에서 義持일 뿐만 아니라 어디까지나 法에 대하여 義요, 藏에 대하여 相이다. 그들의 師 智儼은 양자를 이와 같은 대비의 구조에서 파악하고 있었고 또한 그것은 性起에 있어서 본질과 현현히 별개가 아니었던 智儼의 華嚴에 대한 안목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여기에 결코 우연이랄 수 없는 華嚴사상사의 비밀이 있는 것이고, 그래서 義相이 義相인 소이를 智儼에게 물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상 약술한 바와 같이 海東華嚴의 근원이 浮石宗 義相에 있었고, 그의 대표적인 저술이 다름아닌 "法界圖記" 이다. "法界圖記" 는"  법성게" 라는 이름으로 한국불교의 오랜 역사 속에 끊임없이 유전되고 있음을 본다. 첫째는, 불교의 의식이 집행될 때 "법성게" 는 다라니처럼 독송되어 오고 있다. 종교에 있어서 의식이 생명이라면 義相의 "법성게" 는 그 몫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法界圖記" 는 균여가 "法界圖記圓通鈔"  上․下 두 권으로 저술을 남겨 현대에 이르고, 신라에서 고려에 이르는 동안 "法界圖記" 를 연구한 "法界圖總髓錄"  4卷이 전해오고 조선의 雪岺의 "華嚴一乘法界圖註幷序"  1卷이 있고, 조선후기에 蓮漂의 "法界圖科註" 라는 작은 논문이 있다는 것으로 보아서 義相의 사상이 간단없이 연구되어 오고 있음을 본다. 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화려하리만치 海東華嚴의 흐름은 면면히 오늘에 이어지고 있음을 본다.


4. 海東華嚴의 흐름-海印三昧


義相華嚴이 緣起的인 측면을 초월해서 性起的이라는 것을 언급했다. 즉 緣起가 논리적이요 철학적이라면, 性起란 宗旨的이요 실천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균여의 "法界圖圓通鈔"  2卷과 "法界圖總髓錄"  4卷의 하나하나를 적출할 수 없기에 밟고 넘어가야 할 요점을 하나 골라서 海印三昧의 문제만을 간추려 보려고 한다. 이 문제는 "法界圖圓通鈔" , "法界圖總髓錄" 이 智儼과 義相의 사상 중에 가장 중요시한 내용임에 틀림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균여는 海印三昧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음을 본다. 그러기에 海印三昧는 華嚴三昧라고도 일컫는다. 海印三昧란 보통 三昧와는 그 뜻을 달리한다. 즉 바다 그 자체가 三昧에 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자체가 三昧에 든다는 말이다. 더 깊이 파고 들면, 세계의 三昧란 세계가 정적에 든다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세계자체가 자기를 開顯해 가는 것을 뜻한다. 세계자체의 자기개현이 다름아닌 海印三昧의 기본적인 성격이 아닐 수 없다.

 

이 三昧에 대해서 智儼의 설에 五重海印이 있다. "총수록" 에도 오중해인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균여의 설처럼 명쾌하지 않다. 균여에 의해서 오중해인의 의미가 밝게 擧揚되어 있다. 상호관계가 순서 정연하게 논술되어 있다. 균여의 견해가 어디까지 智儼에게 이어지느냐, 혹은 균여의 독자성이 어느 정도까지 인정되느냐 하는 문제는 금후의 연구를 기다려야 하겠으나, 하여튼 균여자신의 구상으로 오중해인을 다루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음직하다.

 

필자는 상기한 균여의 논증을 음미하는 과정에서 깊은 흥취를 이기지 못했었다. 상세한 논문은 다른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義(의미 그 자체․본체․果分)와 敎(그 의미에서 나오는 것․현실․因分)가 구별되어 있다. 第一重은 無像 즉 무엇에고 걸림이 없는 것이 義이고, 바다에 그 像을 현현하는 것이 敎이다. 第二重은 像을 현현하는 것이 義이고, 부처가 밖으로 향하는 것이 敎이다. 第三重은 부처가 밖으로 향하는 것이 義이고, 보현보살의 入定觀이 敎이다. 第四重은 보현보살의 入定觀이 義이고, 出定하여 在心함이 敎이다. 第五重은 出定해서 在心함이 義이고, 언어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 敎이다.


이와 같이 均如의 견해는 명쾌하고 정연한 이론이 통한다.

우리는 "華嚴經"  盧舍那品」을 보면 비로자나불이 출현하는 프로세스를 智儼과 균여의 오중해인을 줄여서 三重海印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제1중은 비로자나불의 자증의 세계이고, 무엇도 두지않고, 무엇도 출현하지 않는 상태, 제2중은 비로자나불의 미간에서 광명이 방광되어 그것이 겹겹이 光輪으로 대광륜이 되어 그 광명에 의해서 연화장세계가 출현한다. 소위 그 회좌에 참가한 자들의 시각적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제3중은 비로자나불을 대신해서 보현보살이 입정했다가 출정하여 설법하는 언어에 의한"  華嚴經" 이다. 그것은 설법하는 회좌에 참가자에 국한되지 않고 먼 시간의 간격을 넘어 우리들에 이르도록 이"  華嚴經" 에 의해서 佛의 세계에 참여를 자각할 수가 있게 한다.

 

이와 같이 無像에서 有像으로 有像에서 언어에 정착해 가는 과정은 언어철학의 심층의 근거를 제시할 뿐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華嚴的인 세계관의 根本構想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五重海印의 정착이야말로 海東華嚴의 性起的인 면이 躍如하게 거양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5. 海東華嚴의 흐름-性起의 구현


海東華嚴의 源과 流, 즉 권원과 흐름을 추정함에 있어서 그 性起의 구현은 선문구산의 선사들의 경지나 지눌의 경우도 중요하지마는 조선초기 雪岺(매월당)이 망각의 세계 속 어디에서인가 "法界圖" 와 "法界圖總髓錄" 을 찾아냄과 동시에 義相에게 相字의 本諱를 돌려준 것은 義相華嚴의 복권을 위한 최초의 조명이었고,

그는 華嚴性起의 사상을 그의 "華嚴法界圖註幷序" 와 "華嚴釋題"  등 저술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존재세계가 본래성에 있어서 무규정적이라 함은 죽음과 같은 정지를 의마하지 않는다. 본래성은 바로 현현이요 현현이 다름아닌 본래성으로서 스스로 현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華嚴에서 性起自然 ‘저절로 그러한 것’이라고 한다. 雪岺이 義相의 "법성게"  삼십구의 본의가 요컨대는 법성이요, 법성은 바로 隨緣이라고 함은 이것을 가리킨 말이다.

 

원래 華嚴의 五周․六相․十玄門․四法界는 佛境界를 중생의 지평(Horizont)에서 향외적으로 본 것에 지나지 않고 그와 같은 지평들을 유출(Hervortreten)하는 포괄자(Umgreifende)로서의 法界(법성) 그것의 현현 자체가 아니다. 法界자체를 바꾸어 말하면 향내적인 佛境界에서만 性起의 세계는 참다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지눌이 지적했듯이 義相의 "法界圖"  자체가 이미 海印定(海印三昧) 속에 현현한 자내증의 세계를 표상한 것으로 義相이 "法性偈" 에서 법성이란 원융하여 개념과 형상을 떠나 주객의 대립이 끊어진 세계라고 한 것 또한 자성이 본래 湛寂하여 개념과 형상을 떠난 자리를 親證함으로써 事事無碍의 근원을 나타낸 것이지 그로부터 유출되는 사사무애를 표상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雪岺은 "法性偈" 는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無名無相絶一切 證智所知非餘境’의 처음 4구로써 이미 할 말을 다 마친 것이요, 그 다음 ‘眞性甚深極微妙’의 제5구부터는 有情의 지평에서 證人을 문제삼는 緣起分이며 敎分이라고 본 것이다.

 

性起의 차원에 있어서는 이미 부처도 아니고 보살도 아니며 二乘도 아니고 범부도 아니며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니며, 법성도 아니고 비법성도 아니며 緣起도 아니고 수행을 통한 증분도 아니다. 법성이라고 하든 法界라고 하든 어차피 그것은 존재적(ontisch)이 아닌 존재론적(ontolgish)인 명칭이거니와 조금이라도 그것에 내포를 부여하여 실체화(kōrperung)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性起의 세계가 아닌 緣起의 차원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따라서 法界는 이른바 唯佛與佛의 경계일 뿐으로서 緣起의 지평, 다시 말하여 논리적 구조와 시간적 계기의 측면에서 그 현현이 포착될 수 없는 것이다. 雪岺에게 있어서 理라는 개념과 언어를 거부하는 것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本智 또한 修證과 무관한 것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차별적 현상이면서도 통일적 원리이며, 본질이면서 형상이며, 俗이면서 眞이며, 因이면서도 一이다. 마치 帝網의 구슬들이 重重으로 현현함과 같고 香水海가 處處에 含容함과 같거니와 신통이 그렇게 시킨 것이 아니라 본래 그저 그러할 뿐이다.

이와 같이 단적으로 그저 그러할 뿐인 ‘法性如是’의 장을 벗어나는 순간, 天台의 六卽이든 "總髓錄" 의 在床入夢의 비유이든 圓頓敎에서 본 개념상의 부처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 같이 緣起的 차원의 佛境界가 解佛的 입장이라면, 法性如是의 佛境界는 이를 性起적 의미에서 見佛 또는 견성의 입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見佛 또는 견성의 장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雪岺은 서슴없이 일체중생의 身心本體라고 말한다.


法界라는 것은 다름 아닌 일체중생의 신심본체이다. 본래부터 신령스럽게 밝아 막힌 데가 없으며 광대하여 텅 비고 고요한 것, 이것이 유일한 眞境이다. 相貌가 없되 大千世界를 펼쳐 놓고 邊際가 없되 만유를 함용한다. 心目의 사이에 뚜렷하지만 相을 취할 수 없고 色塵의 안에서 빛을 발하되 理를 헤아릴 수 없다. 진리를 꿰둟는 慧眼과 망념을 여윈 明智가 아니고서는 능히 自心의 이와 같은 靈通을 보지 못한다.


法界의 장이 위와 같이 중생의 신심본체인 이상 見佛의 장은 다름 아닌 自己一着으로서의 一念이다.

곧장 비로자나와 보현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무변의 開士와 대지의 중생으로 하여금 끝머리를 찾을래야 찾을 수 없고 투신할래야 들어갈 수 없고 힘을 써봐야 이르를 수 없고 발을 붙일래야 붙일 수 없는 곳, 일정한 體가 없는 데다가 또한 일정한 名조차 없이 어느 때는 法菩提場이라 부르고 어느 때는 妙藏城이라 부르고 어느 때는 六相義라 부르고 어느 때는 十玄門이라 부르고, 어느 때는 一心三觀이라 부르고 어느 때는 直指單傳이라 부르고 어느 때는 故家田地라 부르고 어느 때는 向上牢關이라 부르고 혹은 金剛圈이라고 하며, 혹은 鐵酸餡이라고 하며 혹은 賠號子라 하며 혹은 本來人이라 하며, 이에 棒을 삼고 喝로 바뀌는 것에 이르기까지 놓아 보내고 거두어 들이는 천차만별의 것이 바닥까지 뒤집어 엎어서 시작된 곳을 勘破하면 원래가 다만 일개의 자기인 것이다.

 

이 자기가 하늘에 있어서는 하늘과 같고 땅에 있어서는 땅과 같고 사람에 있어서도 사람과 같고 물에 있어서는 물과 같은 것이니 자기의 분상에 있어 혹은 本具를 설하고 혹은 本空을 설하며 혹은 悟와 迷를 설하고 혹은 修와 證을 설하여 이러니 저러니 부질없는 문구를 끌어다 댄 것이다.

 

결국 雪岺에 있어서 존재세계는 인간의 문제에 귀착되는 것이며 존재세계를 분해한 망상의 一念은 동시에 性起의 장으로서 構成의 一念이었던 것이다. 일찍이 지눌이 말하기를 자심을 반조하여 그 연원을 얻으면 現今의 一念인 性淨妙心을 髓染의 本質이라 하여도 옳고 性淨妙心이라 하여도 옳고 無障碍法界라 하여도 옳고 不動之佛이라 하여도 옳으며 노사나불이라 하여도 옳다고 한 것도 이것을 가리킨 것이다.

 

一念이 가진 今玆(hic et nunc)의 구조에 바로 法界가 현현하는 장으로서 비밀이 있는 것이고 그러기에 땅으로 인하여 넘어진 자 땅으로 인하여 일어선다고 한 것이다. 一念이 그와 같은 것이므로 雪岺은 또한 一念에 대응하는 화장세계 티끌 하나하나에서 法界를 본다는 말을 인용하기로 한다.


보지 못하였는가. 華嚴世界의 티끌들 하나하나에서 法界를 본다고 하였음을, 여러분은 대체 보고 있는 것인가? 지금 이 자리 산승의 염주 위에 십종현문이 열려있고 염주의 眞法界가 드러나 있음을!


이것이 雪岺에게 있어서는 當處全彰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난 華嚴의 소식이었다. 이어서 雪岺은


세존의 七處에, 나는 여기의 단지 一處일 뿐이요 세존의 九會에, 나는 단지 一會일 뿐이요, 세존의 經을 설한 것이 팔십 권임에 나는 단지 一句일 뿐이다.


雪岺은 다시 「如來出現品」을 인용한다.


보지 못하였는가? 대경권이 하나의 티끌 속에 있으니 한 사람의 지인이 작은 티끌을 부수어 그 대경권을 꺼낸다고 하였음을 만약 이러한 대경을 볼 수 있다면 저 팔십권 華嚴은 온통 부질없는 故紙가 되고 말 것이다.


고 한 것이다. 法界 또는 법성의 장이 바로 중생의 신심본체요 자기일착이라고 하는 확언은 性起 즉 佛境界에서 오는 것이고 緣起차원의 궁리에 의하여 도출되는 것이 아니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性起門에 있어서 見佛이나 견성은 결코 佛境界를 대상화하거나 대상화된 부처의 관념을 말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見佛은 향외적인 緣起分을 따라가는 것이라 그러한 緣起가 침묵하는 곳에 열려진 빛의 장이며 그곳에서 형상없는 자심의 여의주를 끄집어 내는 것이므로, 선지식 또한 자가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義相이 본제로 돌아가기를 시도하는 행자를 위하여 ‘無緣의 善巧’라고 한 것이 이것을 가리킨 것이다.

義相에서 비롯된 海東華嚴의 전통과 특색을 논한다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닐 수 없다. 支那의 華嚴이 杜順과 智儼을 거쳐 義相에게 이어졌을 때 그것은 海印三昧의 실천에 의하여 法界의 비로가 그대로 현현하는 진면목의 性起였고, 그래서 실천적 종교요 華嚴三十頌이었다.

 

義相의 교학은 따라서 그 후 賢首法藏과 淸涼澄觀에 의하여 이론화되고 굴착된 바와 같이 의리를 전전시켜 法界와 佛境界를 도출한 추상적 세계가 아니었다. 賢首와 澄觀의 경우 性起라는 용어를 쓰더라도 이미 그것은 하나의 체계화된 철학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義相의 경우 性起는 종교체험이었으므로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구체적인 세계였으며 세계의 佛이 현현하기 위하여는 그만큼 종교적 실천이 요청되는 세계였다.

 

義相은 海東華嚴의 초조로서 그 후 교학적 연구가 성하기도 하였지만 그것도 海印三昧를 전제로 한 실천적 성격이 농후한 특색을 갖고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義相의 法界觀이 가진 性起사상은 필연적으로 禪에 수용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치원의"  四山碑"  등 초기 선사에 나타난 부석사와 구산선문과의 직접 또는 간접적인 관련은 결코 우연한 사실로 볼 수 없는 것이요, 고려대 지눌이 義相을 신수하면서 義相에 있어 미흡하였던 선과의 합일점을 李通玄의 實踐華嚴에서 구한 것 또한 海東華嚴의 원류가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雪岺은 海東華嚴의 흐름을 고스란히 저수된 하나의 심연을 이룩했다 할 것이다. 海東華嚴의 흐름에 관하여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에 그치지만 雪岺을 통하여 그 일반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와 같은 유산이 선가에서 散聖으로 치는 지눌과 雪岺에 의하여 오히려 전해진다는 점에서 불교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海東華嚴과 海印三昧에 대한 논평

해주(동국대 교수)

 

「海東華嚴과 海印三昧」에서 論者는 신라 의상에서 비롯되어 고려 균여. 조선 설잠 등으로 이어지는 해동화엄의 근원과 흐름, 그 전통과 특색은 海印三昧의 실천에 의하여 법계의 毗盧가 그대로 현현하는 진면목의 性起였고 그래서 실천적 종교임을 명쾌히 갈파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한 논문의 요지는 다시 세부적으로 다음과 같이 파악된다고 하겠다.


① 華嚴은 존재세계의 실상인 華嚴法界에 관한 소식이니, 華嚴經이 존재세계에 관하여 천명하는 것은 시간 공간규정의 초월을 말함으로써 本來性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함이다.

 

② 海東華嚴은 緣起가 아니라 바로 이같은 性起의 입장으로서, 중국화엄이나 일본화엄과 같지 아니하다.

 

③ 해동화엄의 뿌리인 의상의 경우 화엄은 연기적 차원의 사유를 초월한 性起로서 진리를 嚴淨融會의 실천신앙을 통하여 체험하는 실천철학이었다.

 

④ 義相이 의상으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은 法藏과의 대비에 의해서이다. 文持와 義持라는 법호는 法과 藏, 義와 相의 결합으로 연결되고 이러한 智儼의 腸號는 법장에 있어서의 정태적 철학과 의상에게 있어서의 동태적인 실천신앙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⑤ 해동화엄의 근원인 浮石宗 의상의 대표적인 저술인"  法性偈" 는 한국불교의 오랜 역사속에 끊임없이 유전되고 있음을 보는데, 이러한 해동화엄의 흐름은 海印三昧와 性起의 구현이다.

 

⑥ 의상의 법성게가 다름아닌 해인삼매의 노래임은 均如에 의해 중시되고 있다. 해인삼매는 보통 삼매와는 그 뜻을 달리하니, 세계 자체의 자기개현이 해인삼매의 기본적인 성격이다. 균여에 의해 五重海印의 의미가 밝게 擧揚됨으로써 해동화엄의 성기적인 면이 躍如하게 되었다.

⑦ 해동화엄의 근원과 흐름인 그 성기의 구현은 雪岑에게서 찾아진다. 설잠은 의상의 법성계 삼십구의 본의가 법성인 것으로 파악했다.

즉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지눌도 지적했듯이 의상의 법계도 자체가 이미 해인정 속에 현현한 자내증의 세계를 표상한 것으로, 법성이란 사사무애의 근원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설잠은 법성게가 처음 4구로써 이미 할 말을 다 마친 것이라 한다. 그 성기의 차원에 있어서는 이미 부처도 아니고 보살도 아니며, 이승도 아니고 범부도 아니다. 법성도 아니고 비법성도 아니다. 따라서 법계는 이른바 유불여불의 경계일 뿐이다. 차별적 현상이면서 통일적 원리이며 본질이면서 형상이며 속이면서 진이다. 본래 그저 그러할 뿐이다.

 

연기적 차원의 불경계가 解佛的 입장이라면, 法性如是의 佛境界는 이를 성기적 의미에서 見佛 또는 見性의 입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견불 견성의 장은 일체중생의 身心本體라고 설잠은 말한다. 그리고 진리를 꿰뚫는 혜안과 망념을 여읜 明智가 아니고서는 능히 自心의 이와 같은 靈通을 보지 못한다.

 

법계의 장이 이같이 중생신심의 본체인 이상 見佛의 장은 다름아닌 自己一着으로서의 一念이다. 곧 비로자나와 보현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무변의 개토와 대지의 중생으로 하여금 끝머리를 찾을래야 찾을 수 없고 원래가 다만 일개의 자기인 것이다. 이 자기가 하늘에 있어서는 하늘과 같고 땅에 있어서는 땅과 같고 사람에 있어서는 사람과 같은 것이니, 자기의 분상에 있어 혹 본구를 설하고 혹은 본공을 설하며 혹은 悟와 迷를 설하고 혹은 修와 證을 설하여, 이러니저러니 부질없는 문구를 끌어다 댄 것이다.

 

결국 설잠에 있어서 존재세계는 인간의 문제에 귀착되는 것이며 존재세계를 분해한 망상의 일념은 동시에 성기의 장으로서 구성의 일념이었던 것이다. 일찍이 지눌이 말하기를, 자심을 반조하여 그 연원을 얻으면 현금의 일념인 性淨妙心을 隨染의 本質이라 하여도 옳고 성정묘심․무장애법계․부동지불․노사나불이라 해도 옳다고 한 것도 이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래서 설잠은 또한 일념에 대응하는 화장세계 티끌 하나하나에서 법계를 본다는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설잠에게 있어서 當處全彰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난 화엄의 소식이었다. 그리고 「여래출현품」에서의 微塵經卷을 볼 수 있다면 80권 화엄은 온통 부질없는 故紙가 되고 말 것이라 하였다.

 

법계 또는 법성의 장이 바로 중생의 신심본체요, 自己一着이라고 하는 확언은 성기 즉 불경계에서 오는 것이고, 성기문에 있어서 견불이나 견성은 결코 불경계를 대상화하거나 대상화된 부처의 관념을 말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선지식 또한 자기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의상이 보제로 돌아가기를 시도하는 행자를 위하여 無緣의 善巧라고 한 것이 이것을 가리킨 것이다.

 

따라서 의상의 교학은 그후 법장과 澄觀에 의하여 이론화되고 굴착된 바와 같은 것이 아니다. 현수와 징관의 경우 性起라는 용어를 쓰더라도 그것은 이미 체계화된 철학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의상의 경우 성기는 종교체험이었다. 종교적 실천이 요청되는 세계였다. 의상은 해동화엄의 초조로서 그후 교학적 연구가 성하기도 하였지만 그것도 해인삼매를 전제로 한 실천적 성격이 농후한 특색을 갖고 있다.

 

의상의 법계관이 가진 사상은 필연적으로 禪에 수용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치원의 "四山碑"  등 초기 선사에 나타난 부석사와 구산선문과의 직접 또는 간접적인 관련은 결코 우연한 사실로 볼 수 없는 것이요, 고려 때 知訥이 의상을 신수하면서 의상에 있어 미흡하였던 선과의 합일점을 이통현의 실천화엄에서 구한 것 또한 해동화엄의 원류가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유산이 선가에서 散聖으로 치는 지눌과 설잠에 의하여 오히려 전해진다는 점에서 불교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이상과 같이 論者는 해동 의상계 화엄이 중국화엄과 다른 특색있는 화엄으로서 緣起가 아닌 性起의 구현이며, 그것이 海印三昧에 의한 것임을 간결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 논문이 주장하고 있는 바에 더 사족을 붙일 자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이에 굳이 아쉬운 점을 찾아본다면, 금번 학술회의 대주제와의 연계상의 문제이다. 학술회의 대주제가 ‘선종사에서 돈오돈수 사상의 위상과 의의’임을 감안할 때 "華嚴經" 에 보이는 돈오적 교설이라든지, 화엄과 돈오, 또는 화엄과 선, 해동화엄과 돈오사상, 선과 해인삼매 등의 제관게를 구체적으로 밝혀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論者도 ‘의상의 법계관이 가진 성기사상은 필연적으로 선에 수용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잠시 언급한 것처럼 화엄과 선이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치원의"  사산비"  등 초기 선사에 나타난 부석사와 구산선문과의 직접 또는 간접적인 관련은 결코 우연한 사실로 볼 수 없는 것이요, 고려 때 지눌이 의상을 신수하면서 의상에 있어 미흡하였던 선과의 합일점을 이통현의 화엄에서 구한 것 또한 해동화엄의 원류가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러기에 더욱 華嚴과 禪의 사상적 교류를 깊이 조명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구산문의 개조와 그 법손에는 선에 접하기 전에 먼저 화엄을 공부했던 사람이 많다. 예를 들면 가지산문의 道義와 體澄에게 입실한 逈微, 희양산문 道憲, 동리산문 惠徹, 道詵, 성주산문 無染, 麗嚴, 사굴산문의 開淸, 行寂, 사자산문의 道允, 折中 등은 다 화엄사찰과 관련이 있고 화엄을 공부하였다. 그 뒤 입당하여 새로운 선풍을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반면 중국에서 敎禪一致를 부르짖었던 화엄종조 청량 징관과 규봉 종밀은 오히려 원래는 선문에 속했던 선사였는데, 화엄에 입각하여 선을 일치시켜 華嚴禪을 낳고 있다. 종밀은 당시 선종의 여러 종지를 교종과 대교하여 교와 선을 회통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라하대의 선우위 선풍 역시 고려 조선으로 내려오면서 특히 지눌과 설잠에 의해 禪嚴一致의 형태로 발전하게 됨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화엄에서 선으로, 선에서 화엄으로, 禪과 華嚴의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상적 원천은 무엇이며 悟修의 문제는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를 화엄의 입장에서 가려봄직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 일환으로 의상계 해동화엄의 흐름인 海印三昧, 性起와 頓悟 또는 禪과의 관계성을 피력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이를 테면, 화엄에 돈오사상은 없는가. 만약 있다면 화엄돈오느 修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그 화엄의 돈오사상이 중국과 한국불교사에 어떻게 나타났는가. 특히 선문법통을 중시하던 조선시대에 화엄의 돈오사상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났는가.

 

論者는 연기적 차원의 불경계가 解佛的 입장이라면, 法性如是의 불경계는 이를 성기적 의미에서 견불 또는 견성의 입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 했는데, 여기서 견불 견성은 어떠한 깨달음에 해당하는 것인가.

 

또 이러한 견불 견성의 장은 일체중생의 신심본체라고 한 설잠의 말을 인용하여 해동화엄의 성기적 측면을 드러내고 있는데, 화엄이 조선조를 내려 오면서 선사인 설잠에 이르도록 혹 잃은 것은 없는가.

 

또 견불의 장이 다름아닌 自己一着으로서 일념인지라 일념에 법계를 본다는 설잠의 소식과 微塵經卷을 본다면 80권 화엄이 부질없는 故紙가 될 것이라는 설잠의 경계는 어떠한 깨달음의 소식인가.

 

또 이러한 설잠의 일개자기인 일념의 소식이 지눌의 자심을 반조하여 그 연원을 얻은 현금일념인 성정묘심과 같다고 했으며, 의상화엄의 성기구현이 이루어지는 설잠과 지눌을 散聖이라 한 것은 의상-지눌-설잠으로 이어지는 수행가풍이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세계는 중국 선종사에서의 悟修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또 성기문에 있어서 견불 견성은 불경계를 대상화하거나 대상화된 부처의 관념을 말한 것이 아니므로 선지식 또한 자기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의상이 본제로 돌아가기를 시도하는 행자를 위하여 무연선교를 시설한 것이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라 하였으며, 그리고 의상의 성기세계를 엄정융회의 실천신앙을 통하여 체험하는 실천철학이라 규정하였으니, 그렇다면 엄정융회가 무연선교의 최상방편이라 보아도 되는 것인가. 다른 수행시설은 없는가.

 

또 이러한 성기의 구현이 해인삼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하며, 세계자체의 자기개현이 해인삼매의 기본성격이라 하였는데 그 해인삼매에 드는 방편은 무엇이며, 그것을 선종에서의 오수와 어떠한 관계를 지울 수 있는 것인가.

 

이상의 제문제들을 통틀어 말해서 화엄의 悟와 修의 문제들이 禪과의 관계 속에서 궁금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끝으로 본 논문에서 지말적인 문제이긴 하나, 評者 본인의 기억이 혹 잘못된 것인지 몇 가지 확인해 보고자 한다.

 

그 하나는 논문에서 ‘의상의 대표적인 저술이 "法界圖記" 이며, 법계도기는 "法性偈" 라는 이름으로 유전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법성게라고도 불리는 의상의 저술은 法界圖記라기보다"  法界圖" 가 아닌가 한다. 법계도는 일승법계도 화엄일승법계도 등으로 불리며, 이는 法界圖印과 法性偈 그리고 法界圖記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법계도기는 법성게와 법계도인을 합친 槃詩에 대한 의상의 해석부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다음은 ‘의상 법성게의 주석으로서 조선후기에 蓮漂의 「法界圖科註」라는 작은 논문이 있다’고 했으나, 현존하는 것에 道峰沙門有聞의 「法性偈科註」가 있고 거기에 「蓮漂和尙論辨」이 부기되어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해인삼매는 화엄삼매라고도 일컫는다’라고 했는데, "화엄경" 에서 해인삼매는 총정이고, 화엄삼매는 별삼매로 달리 설해지고 있지 않은가 한다.

 

화엄경에서 해인삼매의 용례는 현수품(현수보살품), 십지품, 여래출현품(보왕여래성기품) 등에 보이고 있는데, 현수품에서 화엄삼매와 대비하여 구체적으로 설하고 있다. 八十華嚴 현수품에 보면, ‘혹 어떤 찰토에 부처없으면 거기에 시현하여 정각이루고……. 이같이 일체를 다 능히 나투니 海印三昧의 위신력이다.’ ‘불가사의한 찰토를 장엄해 깨끗이 하고 일체 모든 여래께 공양하며……. 이와 같이 일체에 다 자재하니 佛 華嚴三昧의 힘인 까닭이다’라고 해인삼매와 화엄삼매를 들고 있다.

 

현수법장의 망진환원관에서는 해인삼매와 화엄삼매를 자성청정원명체 상에 있는 해인삼라상주용과 법계원명자재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화엄삼매인 법계원 명자재용이란, 만행을 널리 닦되 이치에 맞추어 덕을 이루고 법계에 널리 두루하여 보리를 증득함이다. 반면 해인삼라상주용이란, 해인은 진여본각의 뜻이니 妄이 다하고 心이 맑아서 만상이 모두 비치는 것이 마치 바다가 맑고 깨끗하면 모든 현상이 다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처럼 體에 의하여 用이 일어남을 성기라 한다고 밝힌 법장설을 보조국사 지눌은 원돈성불론에서 인용하면서 이러한 성기관으로 의상의 법계도를 설명하고 있다. 즉, 의상 법성게의 증분 4구는 자성이 본래 담적하여 이름을 떠나고 모양이 끊어진 곳을 몸소 증득하여 사사무애법계의 근원을 삼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지눌이 파악한 의상법계도의 성기관은 그의 선사상에 그대로 수용되어 보조선의 특성인 교선일치설의 바탕이 되며 특히 頓悟의 내용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인삼매와 화엄삼매는 화엄경이나 화엄가에 의해서 달리 설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의문점을 제시해 보았으나 본 논문은 화엄에 있어서 연기와 성기의 미묘한 차이를 극명하게 파헤쳐주고 있어 그 점 후학들에게 많은 이익ㅇㄹ 줄 것으로 사료되는 바이다.

 

논평에 대한 답변

김지견

 

매월당이나 지눌스님같은 이를 선가에서는 산성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신라때부터 있던 풍속입니다. 즉 중국에 유학 갔다 온 사람들, 가서 인가를 받아온 사람들은 정종이고, 갔다오지 않은 사람들은 산성입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지증대사 비문을 썼는데, 거기에 보면 ‘저 멀리 유학갔던 자들이 올 때는 모두 엎드려서 기어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장자"  「추수」편의 ‘한단지보’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어떤 시골 청년이 서울 사람들은 걸음 걷는 동작이 굉장이 예쁘다는 말을 듣고 그만 그 걸음 걷는 동작을 배우려고 서울로 갑니다. 가서 한참 배우다 보니까 그 쪽에서 멋지게 걷는 사람 걸음은 자기가 걸을 수 없고 자기가 본래 걷는 방법마저 잊어버렸습니다. 고향에는 와야겠고 배는 고프고 자기가 걷는 방법은 잊어버려서 할 수 없이 기어서 오는 것입니다. 지증대사는 외국에 유학가신 분이 아닙니다. 그냥 우리나라에만 계셨던 대단히 큰 스님이신데, 유학 갔던 사람보다 훨씬 낫다는 말입니다. 보조스님이나 설잠 선생도 중국 유학을 안 가셨기 때문에 선가에서 산성, 산종이라 합니다. 이분들은 중국의 청량국사나 현수국사 같은 이들의 글을 비판해 놓았습니다. 보조스님은 간화결의론을 쓰고 원돈성불론을 썼지만 ‘진짜 참뜻을 어찌 말로 하고 글로 쓰겠는가, 참구하라’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돈오소식입니다. 제가 산성이라고 불리는 지눌스님과 설잠스님을 논문 뒤에 언급한 것은 그 분들이 충분한 일을 해놓고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뜻에서입니다.

 

논문에 실린, 설잠이 부처와 자신을 비교한 글 같은 것은 바로 돈오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설잠은 「여래출현품」에 나오는 ‘대장경이 하나의 티끌 속에 있으니, 한 사람의 지인이 작은 티끌을 부수어 대장경을 꺼낸다’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고, 보조국사도 이 구절에서 크게 깨친 바가 있습니다. 사실 사교입선이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입장에서 볼 수 있지만, 돈오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버러 두어도 사교입선이 되어 선과 화엄이 상의상즉합니다.

 

제가 중국의 어록을 보다가 ‘어찌 부처님의 말씀은 교고 부처님의 뜻은 선인가? 그럼 그 부처님의 뜻과 말씀이 다르단 말인가? 부처님의 말씀이 곧 선도 되고 그런 것이지, 교리는 부처님의 말씀이고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라면, 부처님은 입하고 뜻하고 다르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어록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선과 화엄은 상의상즉하고 있고, "원각경" 에서도 ‘환인줄 알면 그대로 내버려두어 방편이 없고, 환을 떠나면 그것이 부처인데 무슨 점차법이 있는가’라는 구절이 있는데, 바로 돈오소식입니다."  원각경" 은"  화엄경" 에 입각해서 요긴한 대목을 뽑아 간략하게 편찬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서 편찬된 위경이 오히려 민중의 불교다 해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참고했으면 합니다. 해주스님은 고운 마음으로 고운 말씀 많이 해주셨는데, 저는 그냥 이것으로 대답을 끝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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