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3차 연평해전’ 시나리오&대응전략

醉月 2015. 7. 27. 01:30

해군·해병 전력증강 가속화 수뇌부 의지가 승부 가른다

 3차 연평해전’ 시나리오&대응전략

 

양욱 |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

 

2차 연평해전은 ‘방심하면 당한다’는 평범한 군사적 진리를 새삼 일깨웠다.
당시 군 지휘부는 북한군의 도발 위협을 안이하게 판단했고, 작전·전술에서도 실패했다. 만약 3차 연평해전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남북 해군력 분석을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 시나리오 및 한국군의 대비 태세를 점검한다.

 

<사진>  5월 10일 노동신문에 보도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광경.

 

올들어 북한의 도발이 심상치 않다. 설 연휴에는 대함미사일 시험발사와 섬 타격·점령훈련을 과시하더니 5월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능력까지 자랑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최남단 무인도 갈도에 전진기지까지 구축한다. 2차례 연평해전을 유발한 6월 꽃게 성어기를 맞아 북한 해군의 NLL 위협을 점검해보자.

 

전통적으로 공산국가치고 강한 해군력을 자랑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이는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의 특징에 기인한다. 소련은 대륙국가의 특성상 지상군 전력에 중점을 뒀기에 해군은 자국의 근해만을 지키는 연안해군에 머물렀다. 따라서 소련은 수상함보다는 잠수함 건조에 힘을 쏟아 2차대전 당시에는 세계 최대의 잠수함대를 보유했다. 종전 이후 6·25전쟁 시기까지만 해도 소련 해군의 대양작전 능력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이런 특성은 그대로 북한에 이어졌다.

 

북한 해군의 역사

북한 해군의 모체는 1945년 10월 동·서해의 해안지대에 창설한 수상보안대다. 이는 곧 해안경비대로 개칭됐고, 창설 후 줄곧 군이 아니라 내무성 관할로 있다가 1949년에야 민족보위성(現 인민무력부)으로 이관돼 북한 해군이 됐다. 6·25를 준비하는 북한의 해군력은 육군이나 공군과는 달리 강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들여온 경비정이나 발동선에 의존하던 북한 해군은 1949년 12월 소련의 군사원조로 대·소형 전투함정을 갖췄다. 이어 경비함 30여 척, 지원함 80여 척으로 증강했다. 경비함은 주로 소형 함정으로 G-5 어뢰정이 주력이었다.

 

6·25전쟁 때 북한은 이런 약한 해군력 탓에 제해권을 잃었다. 중국에서 물자를 받기 위해 서해와 서해안의 육로를 활용했는데, 이것까지 유엔군에 견제당하게 됐다. 이미 우세한 해군력으로 제해권을 장악한 유엔군은 북한의 병참선을 차단하기 위해 서해안 전략도서들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1951년 교동도에서 시작해 연평도, 백령도 등 서해5도를 확보했다. 이후 우리 군은 평안남도와 황해도를 가로지르는 대동강 하구의 광량만에 위치한 석도와 초도까지 점령했다. 북한의 서해 최대 항구인 진남포에서는 30여km, 평양까지는 70여km밖에 안 되는 거리였다.

 

종전 후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은 비무장지대(DMZ)와 연결하는 가상의 해상선인 NLL을 만들고, 유엔군의 활동 영역을 NLL 이하로 제한했다. 그 결과 석도나 초도 같은 요충지를 북한에 넘겨주고, 동해의 여도나 양도 등 전략도서까지 포기하게 됐다. NLL 이북에서 군사작전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니 북한에 은혜를 베푼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북한은 이에 반대하지 않았을뿐더러 내심 반겼을 것이다.

 

6·25 이후에도 북한의 해군력은 연안전력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동해함대엔 소형함·고속정·잠수함을 중심으로 한 공세적 전력을, 서해함대엔 공방급 공기부양정을 위주로 하는 상륙전력을 배치했지만, 한미연합해군에 비하면 턱없이 허약하다. 게다가 북한 해군에는 절대적인 약점이 있다. 육지에 막혀 동해함대와 서해함대의 상호 증원이 불가능하다. 동·서해 함대가 완전히 단절된 것이다.

 

물론 강점도 있다. 북한은 1960년대 위스키급 잠수함과 공작원 침투용 잠수함을 도입했다. 우리 해군보다 30년이나 빨리 잠수함 전력을 확보했다. 비대칭전력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약점을 극복하려 한 것이다. 또한 약한 수상함 전력을 대신해 옹진반도나 장산곶 일대를 요새화하고 해안포와 지대함미사일을 배치해 전력을 보완했다. 공군의 약한 항공력을 대공미사일과 대공포의 반(反)항공군으로 보완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70년대 초에는 수상함 전력의 강화를 시도됐다. 자국산 1500t급 나진급 호위함을 동해와 서해함대에 각각 1척씩 배치했다. 하지만 북한군의 주력은 여전히 배수량 1000t 미만의 경비정과 고속정이었다.

 

북한은 배의 크기에는 연연치 않았다. 장비보다는 정신력과 전술을 강조하는 ‘우리식 해군무력’ 건설에 주력했다. 굳이 대양에서 싸우지 않아도 그만이고, 근해 작전능력을 극대화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고속돌진전술과 화력집중전술에 집중해 실전능력을 키웠다.

이런 전투 의지를 보여준 사례가 1999년 이후 계속된 NLL 해상충돌이다. 1999년 6월 15일 1차 연평해전에서 북한은 먼저 공격했으나, 자동화 장비를 갖춘 우리 해군의 반격으로 참패를 당했다. 선제공격을 한 SO-1급 초계정 등산곶 684정은 반파, 신흥급 어뢰정 1척은 침몰했으며, 무려 13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北 소형 함정도 화력 막강

1차 연평해전은 북한으로선 뼈아픈 패배였다. 김정일과 북한의 위신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복수가 필요했다. 3년이 지난 2002년 6월 29일, 684정이 다시 와서 선제공격을 했다. 684정은 장갑을 강화하고 85mm 전차포를 장착해 화력을 높이면서 보복을 준비해왔다. 결국 우리 해군의 고속정 참수리 357이 침몰하고 윤영하 대위(소령 추서)를 비롯한 6명이 전사했다. 이렇듯 북한은 전략적 고려보다는 ‘당하면 반드시 갚아준다’는 보복의 정서를 군사전략의 중심으로 삼는다. 즉 김일성이 언급했던 고슴도치 방어론이 해군전략에도 적용된 것이다.

 

북한 해군 병력은 6만여 명으로 알려졌다. 함정은 740여 척의 수상함정과 70여 척의 잠수함으로 구성된다. 동서로 각각 1개 함대사령부를 뒀으며, 13개 전대와 해상저격여단 2개로 구성돼 40여 개의 기지에 산개해 있다. 특히 수상함 전력은 160여 척을 보유한 우리 군의 4~5배에 가까운 숫자다. 그러나 해군력의 경우 척수보다는 t수로 계산한다. 북한 해군의 경우 총t수가 6만t에 불과하지만, 우리 해군은 20만t에 육박한다. 함정의 규모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열세를 만회하려 북한은 소형 함정에 막강한 화력을 탑재한다. 화력만 좋으면 비록 소형 함정일지라도 미 해군의 항모강습단도 격침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소형 함정에 무장을 과적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차호급 로켓정이다. 82t에 불과한 이 작은 함정은 40연장 122mm 방사포 1문을 달았으나, 거친 바다에서 상하좌우로 흔들릴 때 포의 흔들림을 막아주는 스태빌라이저(stabilizer·안정장치) 같은 장비를 장착하지 못해 정밀한 공격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위협적인 것은 소련의 오사(Osa)급을 모방한 소주급 미사일고속정이다. 소주급은 사거리 100km의 함대함 미사일을 4발 장착해 대형 구축함도 격침시킬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이 운용하는 미사일고속정은 서흥급(82t)과 소주급(265t)을 합쳐 20여 척에 불과하며, 여기에 장착된 실크웜 또는 KN-01 미사일도 이지스함을 보유한 함대라면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

 

북한이 보유한 소형 수상함의 실제 주력은 100척 가까이 보유한 신흥급/구성급 어뢰정(42t)이나 50척이 넘는 청진급 초계정(82t)이다. 신흥급의 무장은 14.5mm 기관총이 전부이지만, 청진급은 T-34 전차포탑을 떼어다 85mm 전차포를 운용할 수 있도록 개조했다. 그나마 큰 초계정은 420t의 대청급이나 540t의 사리원급(T급)으로 모두 100mm 함포를 장착해 강한 펀치력을 갖췄다. 또한 2차 연평해전 당시 앞장선 SO-1급(215t)도 원래는 구잠함(잠수함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은 함정)으로 25mm 기관포뿐이었으나 85mm 포를 장착하는 등 화력을 보강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위협이 바로 신형 고속정과 대함미사일이다. 북한은 2월 7일 노동신문을 통해 ‘신형반함선로케트’의 시험발사 성공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이날 등장한 대함미사일은 북한이 기존에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스틱스/실크웜 미사일보다 훨씬 진보한 최신형이다.

이 미사일은 러시아의 Kh-35 ‘우란’ 대함미사일의 북한판으로 보인다. Kh-35는 아음속(亞音速) 대함 순항미사일로 1983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개발해 2003년에야 러시아 해군에 실전 배치됐다. 최대사거리는 130km 정도로 수면에서 약 15m 높이로 낮게 비행하다가 목표에 접근하면 더욱 고도를 낮춰 목표함선의 옆구리를 공격하거나 아니면 수직으로 상승했다가 공격하는 등 다양한 기습이 가능하다.

 

더욱 주의할 것은 이들이 동시에 공개한 ‘해삼급’ 신형 고속정이다. 과거 북한 함정에서 찾아볼 수 없는 스텔스 구조로, 쌍동선 구조의 SES(수면효과선박)로 물위를 미끄러지듯이 주행해 최고 50노트(시속 92km)로 달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해군에서 가장 빠르다는 윤영하급 미사일고속함의 최고속도가 40노트이니 엄청난 속도가 아닐 수 없다. 해삼급은 30mm 발칸포에 대함미사일 4발을 장착했다. 같은 선박에 대함미사일 대신 함포를 장착한 농어급도 건조 중이다. 이외에도 12m급과 30m급 VSV(파도관통형 선박) 고속정도 여러 척 만들고 있다.

 

5월 중순 미국의 북한연구단체 ‘38노스’는 북한이 신형 호위함을 건조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형 호위함은 대잠헬기를 운용할 수 있는 갑판을 갖췄으며, 76m의 길이에 배수량은 2000t급으로 추정된다. 사실 호위함으로 보기엔 매우 작고, 무장도 함포 대신 RBU-1200 대잠로켓발사기와 30mm 근접방공기관포를 장착하는 등 빈약해 보인다. 그러나 북한은 이런 함정을 동해와 서해에서 각각 1척씩 건조해 실전 배치를 눈앞에 뒀다. 북한에도 드디어 신세대 함정이 배치되기 시작한 것이다.

3월 24일 천안함 사건 5주기를 앞두고 해상기동훈련을 하는 해군 제2함대 함정들. 선두에 선 한상국함은 제2연평해전 당시 전사한 한상국 중사의 이름을 딴 유도탄고속함(PKG)이다.

 

 

비대칭전력 잠수함이 핵심 위협

수상함 전력보다 더 위력적인 것이 잠수함 전력이다. 북한은 70여 척의 잠수함정을 가졌는데, 이는 우리 해군의 2~3배에 달하는 수치다. 미국의 한 인터넷 매체는 북한이 모두 78척의 잠수함 및 잠수정을 보유, 72척을 가진 미국에 앞서 보유 척수 기준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척수가 아니라 성능이다. 1996년 상어급 잠수정이 좌초하고, 1998년에는 유고급 잠수정이 우리 어부가 쳐둔 그물에 걸리면서 우리 군은 북한 잠수함을 노획할 수 있었다. 당시의 사고로 북한 잠수함을 경시하는 견해도 있었지만,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을 겪으면서 잠수함의 위협을 절감하게 됐다.

 

북한의 잠수함정은 크게 500t 이하의 잠수정과 그 이상의 잠수함으로 나뉜다. 먼저 R(로미오)급과 W(위스키)급이 있다. 1960년대 W급 4척을 도입했고, 1970년대부터는 중국으로부터 R급 22척을 면허생산방식으로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김정은이 직접 탑승한 잠수함도 R급으로, 다양한 훈련을 하는 광경이 공개돼왔다. 그러나 도입한 지 30년이 다 돼가기 때문에 교체가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잠수함의 핵심 전력은 상어급과 연어급이다. 상어급은 길이 35m에 325t으로 15명의 승조원을 탑승시킬 수 있는 연안잠수정. 공격, 침투, 정찰 등 다양한 임무에 투입된다. 약 40척이 있으며, 최근에는 길이가 40m로 늘어난 개량형도 나왔다.

연어급은 길이 29m에 130t인 아주 작은 잠수정이지만, 상어급과 마찬가지로 21인치 어뢰발사관 2문을 보유해 수상함을 격침시킬 수 있다. 실제로 2010년 3월 26일 연어급은 단 한 발의 어뢰로 우리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을 격침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최근 공개된 신형 신포급 미사일잠수함(SSB)과 여기서 발사되는 ‘북극성-1’호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의 위협이다. 5월 9일 노동신문은 잠수함발사 전략로켓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크게 보도했다. 6월 4일에는 조선중앙TV를 통해 시험발사 영상까지 공개했다. 원래 SLBM이란 핵탄두 탑재를 전제로 하는 무기체계다. 핵전력의 3요소 가운데 하나인 SLBM을 보유하면 북한은 전략적으로 매우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게 된다.

북한의 공격 위험은 상존한다. 우리 해군과 해병대는 늘 교전을 예상하고 조금이라도 짧은 시간 내에 대응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다. 일각의 비난이 있긴 했지만 연평도 피격 당시 우리 해병대는 매우 신속한 전개를 통해 만반의 반격 준비를 갖춰놓았다. 오히려 문제는 지휘부였다. 군의 수뇌부가 정치적인 고려나 확전 걱정을 하지 않고 얼마나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북한이 공격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다양하기 때문에 각각에 대비한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2002년 7월 1일 고 윤영하 소령 등 제2연평해전 전사자 4명의 합동영결식이 열렸다. 병원으로 후송된 박동혁 병장은 3개월 후 숨졌다.

함대함 공격

1·2차 연평해전과 대청해전(2009년)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북한 해군의 대표적인 전술은 함대함 공격이다. 대청해전에서 패한 이후 북한이 이러한 무모한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지난해 10월 7일 북한 경비정이 과감하게 NLL을 넘어와 우리 해군 미사일고속함(PKG)을 향해 함포사격을 한 바 있다. 2차 연평해전 당시 우리 고속정(PKM) 편대가 선회기동을 할 때 옆구리를 친 것처럼 북한은 기습에 능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신형 대함미사일과 엄청난 속력의 SES와 VSV도 갖춰 치고 빠지기 식의 공격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에 우리 해군은 구형 참수리 PKM을 점차 도태시키면서 우수한 성능의 윤영하급 PKG로 적의 기습공격에 대비한다. 또한 기존의 구형 울산급 호위함과 포항급 초계함을 대체하는 인천급 FFG(호위함)도 5번함까지 건조 중이다. 이 함정은 127mm 함포와 국산대함미사일 해성을 장착하고 헬기까지 탑재하는 막강한 전력을 갖췄다.

 

잠수함 공격

2010년 천안함 폭침을 겪은 우리 해군으로서는 늘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잠수함 공격이다. 서해 NLL 지역처럼 조류가 센 지역에서는 소나만으로 잠수함을 탐지하기가 쉽지 않다. 연어급처럼 매우 작은 잠수정도 서해에서는 자유자재로 기동하면서 수상함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기동 중인 함정을 어뢰로 명중시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천안함은 적정 속도를 유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피격을 당해 피해가 컸다.

최근 북한이 실험 준비 중인 SLBM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협이다. 물론 SLBM의 개발이 완료된 것은 아니고, 해당 잠수함의 건조 및 발사실험이 동해의 신포조선소에서 이뤄지지만, 완성된 북한의 ‘전략잠수함’이 동해를 빠져나와 남해를 거쳐 서해에서 SLBM을 발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해군도 14척에 달하는 잠수함 전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올해 2월 1일 잠수함사령부를 창설했다. 또한 해군은 잠수함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을 보강하고 있으나 여전히 한계가 많다. 현재 대잠초계기는 16대뿐이고, 차기 대잠헬기사업은 검찰 조사 등으로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는다.

 

해안포 및 지대함 미사일 공격

2002년 6월 29일 일어난 제2연평해전을

 소재로 만든 영화 ‘연평해전’ 포스터.

군함이 부족한 북한은 해안포나 대함미사일을 배치해 우리 해군을 견제한다. 백령도를 마주 보는 장산곶부터 옹진반도, 해주, 사곶, 등산곶에 이르기까지 해안포 100여 문을 배치했는데, 특히 장산곶과 강령군 일대에 집중돼 있다. 해안포의 주축은 사거리 21km의 M-55 100mm 평사포와 사거리 27km의 M-46 130mm 평사포다. 사거리 100km 내외의 스틱스/실크웜 대함미사일도 배치됐다. 1967년 1월 19일 우리 해군의 경비함인 당포함(PCEC-56)이 북한의 해안포에 맞아 침몰하면서 39명이 전사한 일도 있다. 최근 해안포 사격훈련이 부쩍 잦아졌는데, 5월 중순에는 이례적인 야간사격훈련도 실시했다.

 

게다가 북한은 최근 NLL 최남단의 무인도 갈도에 벙커를 구축해 해안포나 방사포를 운용하려는 속셈을 내비쳤다.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우리 해군함정을 위협하는 셈이다.

 

직사화기의 위협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맞지 않기 위해 회피기동하거나 적 해안포의 사각지대에서 움직여야 한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 5월 22일 우리 해군 함정 바로 옆에 해안포를 발사한 바 있다. 또한 우리 해군 함정을 향해 대함미사일을 조준하면서 레이더파를 쏘아대는 일은 부지기수다. 우리 군은 사거리 25km의 스파이크 NLOS 미사일을 배치해 적 해안포 진지를 견제한다.

 

 

서해 5도에 대한 포격 또는 점령

우리는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이라는 유례없는 공격을 받았다. 최근 북한은 섬 타격 및 점령훈련이라는 이름으로 훈련을 반복한다. 특히 올해 2월의 훈련에는 김정은이 직접 참관했다. 이들 훈련에서 반복되는 절차를 보면 우선은 제압사격이다. 방사포와 장사정포로 섬을 포격하고 잠수함으로 항만 시설을 어뢰로 공격하는 등 주요 군사거점을 타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An-2 수송기와 공방급 공기부양정을 통해 각각 강하부대와 상륙부대를 투입해 점령하는 것이 예상 시나리오다.

 

사전에 특작부대가 침투해 주요 시설을 파악하고 파괴활동을 하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연평도나 백령도 중 한 곳을 점령하고 우리에게 협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병력이 적은 소청도나 우도를 기습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전력은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소속 해병대다. 연평도나 백령도의 경우 주요 시설이 요새화하고 해병 정예 병력이 지키는 까닭에 쉽게 점령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밀타격을 당하면 위험할 수밖에 없다.

 

NLL 이외 지역에서의 도발

보통 해상도발이라고 하면 서해, 그것도 NLL 지역을 떠올린다. 북한이 199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NLL에서 긴장을 높여온 탓이다. 그러나 동해나 남해에서 도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물론 과거 강릉 무장공비침투(1996년), 속초 잠수정 침투(1998년), 여수 반잠수정 격침(1998년) 등을 통해 약점을 노출한 북한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하지만 신형 대함미사일과 SES, VSV, 그리고 SLBM을 발사할 수 있는 신포급 SSB 등 새롭게 등장한 위협은 동해에서도 유효하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해군의 동해 1함대에도 서해만큼 관심과 투자가 이루어지는지 의문이다. 북한은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동해 등 다른 지역에서도 우리 군의 의지를 실험하려 할 것이다.

 

3차 연평해전이 일어난다면…

국방이 제대로 되려면, 적의 위협 양상에 대한 유연한 사고와 대처가 핵심이다. 위협이 바뀌면 그에 대한 대응책도 바뀌어야 하고, 패러다임도 빨리 전환해야 한다. NLL 사수를 외치는 것도 말로만 끝나서는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도발을 사후에 격퇴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억제하기 위해서는 3가지 요건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의사전달, 능력, 그리고 신뢰성이다.

 

우리는 수차례 NLL 사수의지를 북한에 표명했다. 당연히 우리의 영해일 뿐더러, 평화수역과 같은 비현실적 발상으로 접근할 경우 서해5도의 안전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해군과 해병대의 전력은 꾸준히 증강됐다. 그래서 두 번째 요소인 능력 면에서는 확고한 준비가 돼 있다. 문제는 신뢰성이다. 신뢰성이 먹히기 위해서는 의사표현에 따라 능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군 수뇌부의 의지다. 우리 영해로 넘어와 우리 군함을 폭침한 적 잠수함을 격침하거나 즉각적인 보복공격을 했다면, 연평도 포격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북한보다 좋은 장비를 갖추고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는 힘은 힘이 아니다. 우리가 그런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적이 생각한다면, 우리는 늘 두들겨 맞는 처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군 수뇌부의 의지만으로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는 국가의 지도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군을 신뢰하고 소신껏 작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제3, 제4의 도발을 막고 NLL을 지켜낼 수 있다. 결국 정치권이 얼마만큼 확고한 안보의식을 갖느냐가 관건이다. 방산비리나 참모총장 리더십 문제로 우리 군이 비판을 받지만, 고칠 일은 고치고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아 전투 태세를 확립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DJ 모순된 지침 바로잡고 2함대사령관 지휘권 보장

<비화 공개> 1차 연평해전 승리 숨은 주역 조성태 前 국방장관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 “중요한 건 대통령과 장관이지, 병사가 아니다”
● 상위 부대장이 전화 못 걸게 차단
● “군의 목표는 오로지 승리” 목표 분명히 한 ‘조 하사’

 

1차 연평해전에서 우리가 압승한 것은 조성태 국방부 장관이 김대중 대통령의 지침을 명확히 정리한 데 힘입은 바 크다.

 

SLBM(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사출 실험을 한 북한은 대남 위협 강도를 높였다. 지난해에는 미사일 무더기 발사를 거듭했다. 그런 가운데 제2연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연평해전’이 개봉됐다. 6명이 전사하고 참수리 고속정 357이 침몰된 제2차 연평해전(2002년 6월 29일)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2010년 연평도 포격전에서 우리 군은 예하 부대는 즉각 대응하는데, 결정권을 쥔 상위 기관은 결심하지 못한다는 허점을 드러냈다. 많은 부대를 동원해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별’들은 소심하게 눈치만 보고, 일선의 중위 이하 장병만 살기 위해 ‘악에 받쳐’ 싸우는 식이다.

영화 ‘연평해전’이 아쉬운 까닭

제2연평해전도 이런 허점 때문에 당한 경우다. 지도부의 무소신은 이 해전이 있기 전은 물론이고 끝난 다음에도 거듭됐다. 6명의 전사자가 발생하고 고속정이 격침됐으면 분해서라도 주먹을 불끈 쥐어야 하는데, 먼 산 쳐다보듯 했다. 가장 황당한 일은 군 통수권자인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전사자 장례식이 열리는 날 한일월드컵 결승전을 보러 일본으로 출국해버린 것이었다.

군 지휘부도 비겁했다. 대통령이 잘못 판단해 부적절하게 행동하면 국방부 장관이라도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김동신 당시 국방부 장관과 이남신 당시 합참의장은 국내에 있었지만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장정길 해군 참모총장만 장례식에 참석했다.

 

영화 ‘연평해전’은 바로 이 점을 고발했어야 한다. 이런 국가 지도부와 군 지휘부로는 자주국방을 하기 어렵다는 메시지를 세상을 향해 던졌어야 한다.

김동신 장관의 선임 조성태 국방장관 시절 발발한 1차 연평해전에서 우리 해군은 완승했다. 1, 2차 연평해전은 3년 간격으로 벌어졌다. 불과 3년 사이에 승전 군대가 패전 군대로 바뀐 것이다(해군 2함대의 고속정부대가 두 해전을 치렀다). 영화는 그 이유를 추적했어야 한다.

 

군사훈련이 약해졌기 때문인가. 아니다. 장병 훈련은 큰 차이 없이 강력했다. 차이점은 군 통수권에 있었다. 쉽게 말하면 김대중 대통령-조성태 국방부 장관 관계가 김대중 대통령-김동신 국방부 장관 관계와 달랐던 것이다.

1차 연평해전에서 큰 공을 세운 325정장 안지영 대위와 박정성 2함대사령관의 공(功)은 많이 알려졌다. 당시 합참의장이던 김진호 씨도 지난해 발간한 책 ‘군인 김진호’를 통해 그가 아는 1차 연평해전의 진실을 공개했다.

 

그러나 1차 연평해전 당시 국방부 수장이던 조 전 장관의 역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지금 그는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 증언을 들을 수가 없다. 그 때문에 지근거리에서 그와 대화하고 지침을 받았던 이를 통해 그가 했던 역할을 복원해보기로 한다.

1차 연평해전 후 조 전 장관이 누구보다 믿고 속을 털어놓은 이는 육군 준장으로 1차 연평해전 직후 국방부 대변인을 맡은 윤일영 예비역 육군 소장이다. 조성태, 김희상, 남재준, 윤일영, 주은식 씨는 육군에서 손꼽히는 전사(戰史)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출판이나 강의를 통해 각자가 이해한 전사를 풀어왔기에 서로를 잘 알고 있다. 조 장관은 1차 연평해전 후 윤씨를 ‘측근’인 국방부 대변인에 임명했다. 박정성 당시 2함대사령관은 사건 당사자로서 조 장관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1998년 3월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처음부터 북한에 유화적이었다. 우리가 유화적으로 나가면 북한은 ‘습관적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력화를 시도한다. 전마선과 함정을 보내 NLL 월선(越線)을 시도하는 것이다. 1999년 집권 2년차에 들자 DJ 정부는 임동원 원장이 이끄는 국가정보원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실현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자 북한은 NLL 월선 빈도를 높였다. 남북정상회담을 빌미로 김대중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권 목표와 국방 목표 충돌

국가 지도부가 원하는 것과 안보 상황이 모순되니 ‘정권의 목표’와 ‘국방의 목표’가 충돌한 셈이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죽어나는 것’은 중간에 낀 실무자들이다. 높은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을 모른 척하는데, 그러다 실무자들이 염려하는 큰 위기가 일어난다. 진정한 리더라면 그럴 때 나서서 실무자들의 애로를 해소해주어야 한다. 상황이 복잡한 만큼 구체적인 지침을 내려,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분리해주어야 한다.

정권의 목표와 국방의 목표가 충돌하면 국방부 장관이 조율해야 하는데, 실제로 그러한 노력을 하는 장관은 보기 어렵다. 그러나 1999년 6월의 조성태 장관은 달랐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면담 자리에서 ‘나는 국방을 전문으로 책임진 사람으로서 의무를 다할 테니, 대통령께서는 내가 그 의무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지침을 달라’는 뜻을 전한 것이다.

 

그날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를 정확히 증언해줄 사람은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타계했고, 조 전 장관은 대화를 못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윤일영 씨는 “1차 연평해전 이후 조 장관으로부터 ‘당신만 알고 있어라’는 전제로 들은 것이 있다”며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조 장관이 김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지침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NLL에서 충돌이 일어났을 때 절대로 져서는 안 된다, 둘째는 우리 군이 먼저 발포해서는 안 된다, 셋째는 충돌이 벌어져도 더 큰 사태가 일어나는 확전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는 명료한 지침 같지만, 우리 같은 실무자들이 보면 모순된 지침이다.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보고 먼저 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군은 부대 곳곳에 ‘먼저 보고 먼저 쏘자’는 구호를 붙여놓지 않았는가. 이기라고 하면서 먼저 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말로는 가능해도,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확전 방지는 우리도 동의하는 것이다. 군이 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위기를 관리해 종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가 확대되는 것은 상황을 지배하지 못한 때문이고, 상황을 지배하지 못한 군은 제대로 된 군이 아니다. 사태가 벌어지면 빠르게 제압해 종결짓고 다시 적이 반발해 새로운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은 군이 반드시 실현해야 할 목표다.

조 장관은 ‘셋째는 문제가 없고, 첫째와 둘째 지침이 모순되니, 결국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지침은 대통령이 주시는 것이고, 그 지침을 실행하는 데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대통령을 대신해 통수권을 행사하는 국방부 장관이 할 일이다. 군의 본질이 무엇인가. 세상에 패배를 목표로 삼은 군은 없다. 군의 목표는 항상 승리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첫째로 잡아준 지침을 제1 지침으로 인식해야 한다’라고 했다.

조 장관은 ‘절대 목표는 승리이고, 부차적인 목표는 선제사격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다’라고 정리했다. 조 장관은 그러한 지침을 해군 2함대 등 작전부대 지휘관에게 명확히 전달했다.”

현장 지휘관에게 모든 것을 맡겨 승리를 이끌어낸 1999년 6월 15일의 1차 연평해전.

 

“함대사령관 전화 차단하라”

위기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불안을 느껴, 대응을 담당하는 기관이 잘하는지 일일이 간섭하려고 한다. 상급자의 간섭이 많아지면 사공이 많은 배가 산으로 가듯이 그 기관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때 우리 군은 여러 사령부가 중복된 지시와 명령을 내려 혼란을 빚었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 때도 여러 부처가 개입해 혼란이 극에 달했다. 조 장관은 그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차단했다. 다시 윤일영 씨의 증언이다,

 

“말로만 ‘예’ 하고 실제론 잘 지키지 않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다. 위기가 벌어지면 사람은 본능에 따라 행동하니 작전을 할 때는 먼저 본능이 작용하지 못하는 체계를 만들어놓아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가운데 북한이 도발을 일으켰으니 합동참모본부(합참)와 해군본부(해본), 해군작전사령부(해작사) 등 모든 상위 부대가 2함대 일에 개입할 수 있다. 조 장관은 이를 의식해 상위 부대에서 2함대사령관을 찾는 전화는 참모장이나 작전참모가 대신 받게 했다. 그리고 통화 내용을 사령관에게 알려주지 못하게 했다. 함대사령관은 오로지 장관의 전화만 받게 했다. 1차 연평해전에서 해작사와 해본, 합참 이야기가 아예 없는 까닭이다. 장관과 2함대사령관이 논의해 모든 것을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박정성 당시 2함대사령관은 윤씨의 말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때 조 장관은 어떤 상위 부대장이 전화를 걸어와도 내게 연결하지 못하게 했다. 작전을 하려면 집중해야 한다. 상급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면 집중할 수 없다. 그런데 조 장관이 사전에 차단해준 것이다. 현장 지휘관 처지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청와대 전화다. 나는 장관 지시에 따라 그러한 전화도 받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른다.

 

대신 조 장관과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매일 밤 11시쯤 1시간여 동안 통화했다. 조 장관은 해군 출신이 아니어서 NLL 상황과 해군 작전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자기 주장만 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다 내 말이 옳다 싶으면 ‘귀관에게 전적으로 맡기겠다’고 하며 주장을 접었다. 사실 조 장관은 나보다 더 강경했다. 그분 지시대로 하면 확전이 될 수 있기에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했는데 일면식도 없는 조 장관은 바로 수용했다. 그때 조 장관 같은 분과 작전할 수 있었던 것이 내게는 행운이었다.”

 

박 사령관은 자신의 지휘체계도 단순화했다. 해군 전투부대는 함대-전단-전대-편대-고속정 단위로 구성된다. 현장에는 수 척의 고속정을 지휘하는 편대장이 있고, 현장이 아닌 곳에 지휘관으로 함대사령관-전단장-전대장이 있는 것이다. 지휘체계로 보면 이들은 모두 편대장을 지휘할 수 있다. 그러나 박 사령관은 조 장관이 그런 것처럼, 편대장은 그의 통제와 지시만 받게 했다.

 

 

‘조 하사’의 소신

그러나 함대사령관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사격 명령이다. 현장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몸을 사려 늦게 사격 명령을 내리면 자신의 부하들이 희생된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지시는 ‘현장 지휘관’인 편대장에게 맡겨야 한다. 박 사령관은 편대장과 계속 대화해 편대장이 자신 있게 결심할 수 있게 해줬다. 조 장관이 함대사령관하고만 소통했듯이 그도 현장지휘관과의 소통을 독점한 것이다. 그 결과는 압승이었다.

 

상명하복 체계에 익숙한 탓인지 군인들은 상부 지시에 민감하다. 청와대가 잘못된 지시를 내려도 따라가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패배하면 그 아픔을 삭이느라 고통을 받는다. 이러한 문제를 없애는 것이 정무직인 국방부 장관의 몫이다. 청와대 뜻이라고 해서 불합리한 지침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군은 아무리 좋은 장비를 구입해도 북한군에 당할 수밖에 없다.

 

조성태 전 장관은 평시에는 작은 것까지 하나하나 확인해 ‘조 하사’로 불렸다. 대장 출신이지만 ‘쫀쫀하다’는 비난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인 시기엔 지휘체계를 단순화하고 현장 지휘관에게 전권을 주는 ‘대범’ 시스템을 가동했다. 그런 까닭에 정치적 노선이 다른 김대중 대통령과도 큰 마찰을 빚지 않고 소신을 관철했다. 그러나 후임자들은 소신을 펼치지도 못했고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우리 군이 완전히 얼어붙었던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때 합참의장을 했다. 그때 우리 국방부에는 군과 대통령을 연결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군은 위기가 벌어지면 병사들에 대한 훈련을 강화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지휘부를 제대로 가동시키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한 장관은 조성태의 길을 걷는가, 아니면 그 후임자의 길을 걷는가.

 

北 마양도 기지 앞에 ‘물귀신’을 침투시켜라

원자력잠수함과 NLL 정치학

 

이정훈 | 편집위원 hoon@donga.com

● 원잠과 기동함대의 조합, 美 해군 요새작전의 비밀
● 고농축 우라늄만 아니면 IAEA 사찰 피할 수 있어
● 좌절된 ‘盧 정부 원잠 프로젝트’ 부활시켜야
● 공격원잠 보유한 인도, 그 뒤를 따르는 브라질

진해기지에 들어온 미 해군의 LA급 공격잠수함. 미 해군은 이 잠수함으로 가상 적의 전략원잠을 꼼짝 못하게 하는 물귀신 작전을 펼친다.

북한이 ‘북극성’으로 명명한 SL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 후 그 대응책으로 우리 군도 원자력잠수함(原潛)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북한이 SLBM을 개발하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원잠을 갖겠다는 것이니,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원잠은 어떤 무기인가.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연안에서 480여km쯤 떨어진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를 점령함으로써 전쟁이 일어났다.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로 1만여 명의 군대를 보내 승리 굳히기에 들어갔다. 영국 대처 총리는 탈환 명령을 하달했다. 영국군은 해리어 전투기 42대와 각종 헬기 150여 대를 탑재한 경항모 2척(허미즈, 인빈시블), 상선을 개조한 임시 항모 1척, 구축함 8척, 호위함 15척, 원자력잠수함 5척, 디젤잠수함 1척을 보냈다.

포클랜드전에서 보여준 위력

이들은 총력을 기울여 대서양을 남북으로 가르는 1만3000여km 항해에 들어갔다. 그리고 5월 2일 놀라운 소식을 전해왔다. 아르헨티나의 순양함인 제너럴 벨그라노함을 격침한 것이다. 공격자는 영국 원잠이라고만 알려졌다. 그 바람에 아르헨티나는 경항모인 마요함을 출동시키지 못했다. 마요함을 지켜줄 ‘호위무사’가 사라졌기 때문.

덕분에 포클랜드 일대 상공은 해리어기의 독무대가 됐다.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한 영국군은 5월 26일 본격적으로 상륙해, 29일 아르헨티나군을 항복시켰다.

 

전쟁이 끝나자 대처 총리는 영국 잠수함을 전부 핵추진함으로 바꾸게 했다. 이유는 5척의 원잠은 출항 2주 만에 제일 먼저 현장에 들어가 벨그라노함을 격침하고 아르헨티나 해군 기지를 봉쇄했지만, 디젤잠수함은 전쟁이 끝나가던 5주차에야 도착했기 때문이다.

디젤잠수함이 전속(20노트)으로 잠항하면 배터리는 약 2시간 만에 방전된다. 따라서 물 밖으로 흡기구를 내밀고 공기를 흡입해 디젤엔진을 돌리고, 그 힘으로 배터리를 충전해야 한다. 엔진을 돌리면 ‘당연히’ 가스가 발생하는데 이는 배기구로 빼내야 한다.

 

흡기-압축-폭발-배기는 엔진의 구동 원리인데, 구동 때 큰 소리가 난다. 소리가 나면 적에 탐지될 위험이 높아져서 디젤잠수함은 엔진을 돌릴 때가 가장 위험하다. 더욱이 흡기와 배기를 위해 수면 가까이 올라와 있어 초계기 등에 달린 ‘눈(眼 · 소노부이 등을 가리킴)’에도 쉽게 탐지된다.

영국 디젤잠수함은 빨리 가기 위해 먼바다로 나온 다음에는 탐지될 위험을 감수하고 디젤엔젤을 돌리는 부상 항해를 했다. 그런데도 원잠을 따라가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수상함이 30노트로 달리려면 디젤엔진과 함께 가스터빈도 돌려야 한다. 가스터빈을 돌리면 소음이 커지고 연료가 많이 소모되기에, 일반 작전을 할 때는 돌리지 않는다. 다급한 경우에만 가스터빈을 사용한다.

디젤잠수함에는 가스터빈이 없다. 따라서 물 밖으로 나와 전속으로 달려도 10노트에 불과해 수상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원잠은 가스터빈이 없어도 ‘죽는 날’까지 30노트 속도로 잠항할 수 있다.

원잠은 디젤엔진 대신 원자로를 돌려 배터리를 충전한다. 원자로는 공기를 쓰지 않고 구동되니 큰 소리를 내는 흡기-압축-폭발-배기 과정이 없다.

그런데도 힘이 남아돌아 배터리를 충전하고 남은 에너지로 잠수함 밖에 있는 바닷물(H₂O)을 전기분해해, 수소(2H₂)와 산소(O₂)를 만들어낸다. 승조원 호흡을 위해 원잠이 부상항해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원잠이 ‘물귀신’이 된 비밀은 원자로에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미국은 핵 확산을 막기 위해 발전(發電)용 원자로에는 3~5%로 농축한 핵연료를 쓰게 한다. 연구용 원자로에 대해서는 높게 허용하나, 요즘은 20%까지만 농축을 허용한다. 이를 ‘저농축 핵연료’로 통칭하는데, 저농축 핵연료는 오래 쓰지 못한다. 발전용인 한국형 경수로는 3년마다 핵연료를 교체해야 한다.

원잠과 원잠기지에는 그러한 일을 해줄 원자력 전문가와 장비를 둘 곳이 없다. 또 원잠은 신속히 작전에 투입돼야 하니, 핵연료를 교체하지 않아도 되는 원자로를 싣는다.

 

 

소리 전쟁

즉 핵무기 제작이 가능한 90%대 농축 핵연료를 장전하는 원자로를 탑재하는 것이다. 핵연료의 수명은 30년 이상으로, 원잠의 작전수명(대개 30년)보다 길다. 그러하니 원잠은 핵연료를 교체하지 않고 퇴역할 때까지 전속으로 무한 잠항할 수 있다. 영국 원잠이 수상함보다 먼저 도착한 비밀은 바로 이것이었다.

 

원잠은 ‘전략(戰略)원잠’과 ‘공격(攻擊)원잠’으로 나뉜다. 전략원잠은 지상을 공격하는 핵무기 SLBM을 싣고 다닌다. 공격원잠은 재래식 탄두를 단 순항미사일(SLCM)을 탑재하는 경우가 많다. SLBM은 매우 크고 수직으로 발사해야 하기에, 지름이 20m 정도가 되어야 한다. 부수되는 장비도 많아 전략원잠은 1만t이 넘는 대형이다. 공격원잠은 7000~9000여t 규모다.

공격원잠을 전략원잠 잡는 귀신이라 하는데 그 이유가 매우 흥미롭다. 물속에서는 잠수함의 덩치가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커도 어뢰를 맞으면 압력함체(잠수함의 외피)가 깨져 ‘수장(水葬)’되기 때문이다.

 

물속에서 상대에게 먼저 들킬 수 있는 것은 덩치 큰 고래이지 그보다 작은 고등어가 아니다. 그런데 고래도 고등어가 쏜 어뢰를 맞으면 압력함체가 깨져 가라앉아버리니, 전략원잠은 공격원잠을 피해 다녀야 한다.

 

전략원잠과 공격원잠을 모두 가진 나라는 5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뿐이다. 이들은 냉전 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원잠을 갖고 치열한 신경전을 펼친다. 이 신경전의 중심에 미국 해군이 있다. 미 해군은 나머지 4개국의 모든 원잠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수의 공역원잠을 보유했다. 미 해군은 공격원잠 활용의 달인인데 그 대표가 바로 LA(로스앤젤레스)급이다(표 참조).

 

국제법상 영해는 12해리까지다. 평시 미 해군은 LA급을, 가상 적(敵)인 러시아나 중국의 전략원잠 기지에서 12해리 떨어진 해저로 침투시키는 작전을 반복한다. LA급 승조원들은 바닷물을 전기분해해 얻은 산소를 호흡하며 ‘귀(耳 · 소나를 의미한다)’만 세우는데, 이를 작전 용어로 ‘매복’이라고 한다. 매복을 할 때는 ‘수동(passive)소나’를 가동한다.

 

소나(sonar)에는 두 종류가 있다. 수동소나는 동물의 귀처럼 주변의 소리를 듣기만 한다. 빛도 소리도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동굴을 날아다니는 박쥐는 초음파를 쏴 메아리를 듣고, 동굴의 구조를 파악해 자유 비행을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물속의 잠수함도 음파를 쏴 돌아오는 메아리 분석을 통해 움직이는 물체를 찾을 수 있다. 이 일을 하는 장비를 ‘능동(active) 소나’라고 한다. 능동소나는 깜깜한 밤 손전등을 켜 사방을 살펴보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한다.

음파를 쏘면, 상대는 수동소나로 그 음파를 듣고 주변에 적 잠수함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능동소나를 가동하는 것은 상대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소리 나지 않게 움직이거나 멀리 있다면, 수동소나로는 알 수가 없으니, ‘전조등’을 켜 찾는 것이다. 그때 내 위치가 노출되는 것은 ‘다음 문제’ 다. 이렇게 소리 문제로 신경전을 펼치는 것이 잠수함전(戰)의 시작이다.

맨 위부터 러시아 원잠 유리 돌고루기함(보레아급), 중국 원잠 TYPE 093함(상급), 미국 원잠 버지니아함(버지니아급).

 

 

 

바다의 요새작전

상대는 그들 기지 앞에 적 잠수함이 매복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전략원잠을 내보낸다. 이 전략원잠은 잠항하니, 스크루 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매복한 LA급은 수동소나를 통해 이 소리가 들리면 자체 스크루를 돌려 추적에 들어간다.

적 전략원잠은 LA급이 추적해올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따돌리려는 행동을 한다. 깊은 바다로 나오면 갑자기 전속력을 내는 것이다. 그러면 LA급도 전속력을 내 ‘100m 달리기’ 시합이 벌어지는데, 그때 양측 원잠의 능력 차이가 드러난다. 적 전략원잠이 우수하면 LA급이 뒤처지고, 그 반대면 계속 추적을 당하게 된다.

 

도주하는 적 전략원잠을 놓치지 않았다면, 미 해군은 LA급을 추가로 투입한다. 미 공군 우주사령부에도 알려 SLBM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징후를 전문으로 포착하는 조기경보위성 DSP와 SBIRS로 하여금 SLBM이 솟구치는지 감시하게 한다.

만약 SLBM이 발사되면, 이지스함이 포함된 기동함대를 투입해 바다의 요새(要塞 · bastion operation) 작전’을 펼친다. 이지스함에는 SLBM을 요격하는 SM-3 미사일이 탑재돼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이 작전이 ‘공해(公海)’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이다. 전쟁을 선포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 해군이 가상적의 영해(領海)에서 그 나라의 전략원잠을 격침시켰다면, 이는 미국이 ‘침략’한 것이 된다. 그러나 공해에서는 어떠한 나라도 주권을 주장할 수 없으므로 법적으로는 침략이 아니다. 미국은 이를 잘 알기에, 2 · 3 · 5 · 6 · 7의 다섯 개 기동함대를 전 세계 공해에 전개시킨다. 이런 기동함대를 가진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기동함대에 속한 항모와 이지스함에는 잠수함 전문 추적 장비인 소노부이(sonobuoy)를 대량으로 투하할 수 있는 초계기와 초계헬기가 실린다. 따라서 기동함대가 참여하면 적 전략원잠 추적은 훨씬 쉬워진다. 적 전략원잠 위치가 파악되면, 미국의 수상함과 공격원잠들은 ‘어뢰나 폭뢰를 쏘겠다’는 의미로 일제히 능동소나를 발사한다.

 

능동소나에서 발사된 음파는 파동(波動)이라 이를 맞으면, 전략원잠은 거대한 망치로 얻어맞은 듯 “쩡, 쩡~”울리게 된다. 이 소리는 전략원잠 승조원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안겨준다. 적 전략원잠은 죽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결국 방향을 돌려 귀환한다.

그때 미 해군이 골탕을 먹이려고 능동소나를 더 많이 발사하면, 적 전략원잠의 승조원들은 ‘소리 고문’을 견딜 수 없어 전략원잠을 부상해 그 정체를 드러내고 만다. LA급으로 맨투맨, 기동함대로 올코트 프레싱 작전을 펼쳐 가상 적의 전략원잠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미 해군의 요새작전이다.

 

미국의 정보력은 대단하다. 미군은 오랜 정보활동으로 가상 적국이 어디에 전략원잠을 배치했는지 파악해놓았다. 러시아 해군은 북해와 발틱 · 흑해 · 태평양의 4개 함대를 운영하는데, 전략원잠은 북해와 태평양함대에만 배치했다.

흑해는 미 해군이 ‘안마당’처럼 사용하는 지중해와 통한다. 따라서 흑해에 전략원잠을 배치하면 꼼짝 못하고 추적을 받고 유사시 제일 먼저 공격을 받는다. 발틱해는 전략원잠이 움직이기에는 너무 얕고 좁은 바다다. 그리고 주변에 지중해 이상으로 많은 친미국가가 있어 전략원잠을 배치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탁 터진’ 북극해와 태평양을 접한 북해함대와 태평양함대에만 배치했다. 구체적으로 밝히면 왼쪽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끼고 북극을 향한 바렌츠(barents)해 기지와 대한민국과 가까운 블라디보스토크 기지에 전략원잠을 배치했다. 미 해군은 태평양잠수함사(司) 소속 LA급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전략원잠을, 대서양잠수함사의 LA급으로는 바렌츠해 기지의 전략원잠을 따라붙게 한다. 그런데도 그들이 먼바다로 나오면 6함대와 7함대에 요새작전을 지시한다.

 

중국의 고민

앞의 표에서 보듯 미 해군이 보유한 전략원잠은 러시아나 중국 것보다 많지 않다. 그런데 월등히 많은 공격원잠으로 가상 적국의 전략원잠과 공격원잠을 거의 다 봉쇄할 수 있기에, 미국의 전략원잠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미 해군은 “가상 적국의 SLBM 발사로 일어날 핵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과거 소련은 미군의 해상 봉쇄를 벗어나기 위해, 군비를 늘리다 경제가 붕괴돼 러시아와 CIS 국가 등으로 쪼개졌다.

중국은 미국이나 러시아가 보유한 것보다 작은 진(秦)급 전략원잠을 4척 갖고 있다. 중국 해군은 이들을 랴오둥반도 끝인 다롄(大連)기지와 하이난(海南)도의 싼야(三亞)기지에 배치해놓았다. 당연히 미 해군은 LA급을 두 기지 앞에 상시 매복시킨다. 그리고 진급 원잠이 나오면 7함대를 동원해 요새작전을 펼친다.

 

LA급의 매복은 보이지 않으니 중국 처지에서는 그나마 괜찮다. 그러나 7함대가 요새작전을 연습하기 위해 서해나 남중국해로 들어오는 것은 ‘눈에 띄기’ 때문에 매우 힘들어한다. 중국 해군력이 미국에 형편없이 밀린다는 사실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을 이겨보겠다고 해군력을 갑자기 증강하다간 자칫 위구르와 티베트 등을 독립시키며 소련처럼 3류 국가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중국은 미 7함대의 중국 접근만은 막고자 한다. 그래서 펼치는 것이 바로 A2/AD 전략이다. A2/AD는 ‘반(反)접근/지역 거부’를 뜻하는 Anti Access/Area Denial의 축약어다. A2/AD를 현실화하려는 것이 바로 ‘도련(島鍊 · island chain) 전략’이다. 목표는 일본에서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섬을 사슬처럼 엮어 미 7함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동 · 서 · 남해와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중국의 ‘내해(內海)’로 만들겠다는 의도도 내포한다. 내해를 주장하려면 인근 섬부터 영유해야 한다. 중국이 이어도(한국), 센카쿠(일본), 남사군도(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대만), 스카보러 섬(필리핀)을 놓고 주변국과 영유권 분쟁을 하는 이유다.

 

진(秦)급 전략원잠은 LA급과 크기가 비슷하다. 미국과 러시아 해군은 그 정도 규모의 잠수함에는 SLBM을 실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중국은 우겨넣었으니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의 잠수함은 소음을 줄이기 위해 압력함체를 2중으로 만들고, 그 사이에 흡음재를 넣는다. 그래서 덩치가 커지는데 진급은 이러한 설치를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NLL 언제든 철폐 가능

이러한 ‘원잠 정치학’을 이해하면, 천안함 사건 이후 한국군이 취할 해군 전략의 방향이 명확해진다. 한국군은 여러 맹점을 안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북방한계선 (NLL · Northern Limit Line)에 대한 잘못된 이해다.

 

6 · 25전쟁 때 한국군과 미군은 해군력에서 북한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 때문에 신의주 앞바다 섬까지 장악하고 군사 활동을 했다. 그런 가운데 정전협정이 체결되자 미군은 서해 여러 섬에 들어간 한국군을 철수하게 했다. 이에 한국군이 반발하자,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은 한국군의 북진(北進) 금지선으로 NLL을 그었다.

 

그런데 이것이 언제부터인가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선으로 변질됐다. NLL은 북한이 주장하듯 정전협정의 합의물이 아니다. 유엔군사령관이 임의로 그은 것이니 우리와 유엔을 대표한 미국이 합의하면 언제든지 철폐할 수 있다. NLL이 없어지면 남북한은 각자 영토 끝으로부터12해리까지만 주권을 행사한다. 나머지 바다는 힘 있는 쪽이 활용하는 공해가 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 해군은 남포 앞 마양도에 있는 북한의 잠수함기지 12해리 앞까지, 장보고나 손원일급 잠수함을 침투시킬 수 있다.

 

남 · 북한은 원잠이 없으니 디젤잠수함으로 잠수함전을 벌이게 된다. 북한 잠수함이 12해리 밖 공해로 나오면 이를 추적하다, 우리 영해로 접근하면 서해함대(2함대)나 기동전단(7전단)을 불러 한국판 요새작전을 펼치면 된다. 우리 영해로 진입한다면 이는 명백한 침략이니, 그때는 어뢰나 폭뢰를 쏴 격침하면 된다.

 

한국 잠수함이 북한 잠수함기지 앞 공해에 매복했다가 북한 잠수함을 추적하면 북한은 당황할 것이다. 한국의 손원일급 잠수함은 AIP(Air Independent Propulsion · 공기불요체계) 장치를 달고 있어, 북한의 연어급 · 상어급 잠수함정보다 훨씬 오래 잠항한다. 그리고 현무-3 순항미사일(SLCM)을 싣고 있어 물속에서 평양의 주석궁과 영변의 핵시설을 공격할 수도 있다.

 

한국은 비핵화선언을 했기에 핵무기인 SLBM을 탑재하는 전략원잠은 만들 수 없지만, 공격원잠을 만드는 데는 문제가 없다. 단 90%로 농축한 핵연료의 제조가 선결과제다. 한국이 공격원잠을 만들겠다며 우라늄을 90%로 농축하면,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는 그 우라늄을 핵무기 제조에 전용할 수 있다고 의심할 것이니, 이를 피해나가야 한다.

2월 2일 경남 창원시 진해군항에서 열린 해군 잠수함사령부 창설식.

“20% 농축 핵연료 쓰자”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르면 한국은 우라늄을 20%까지 농축할 수 있다. 여기에서 잠수함 전문가들은 “90%가 아니라, 20%로 농축한 핵연료를 장전하는 공격원잠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실전 배치된 잠수함은 5, 6년 사용한 후 닳은 것은 꺼내고 새 부품을 넣는 정비를 한다. 잠수함은 여러 개의 토막으로 제작한 다음 그것들을 붙이는 식으로 건조한다. 따라서 정비할 때는 그 반대로, 토막대로 잘라 모든 부품을 교체한 다음 다시 붙이는 용접으로 마무리한다.

지금까지 원잠을 토막 내서 정비할 때도 원자로만은 손대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20%로 농축한 핵연료를 사용해야 하니, 정비할 때 원자로도 열어 핵연료를 교체하게 한다.

 

브라질에서 추진하는 원잠이 이런 방식이다. 브라질은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2030년 완공을 목표로, 20%로 농축한 핵연료를 장전하는 공격원잠을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물론 국제원자력기구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다. 무기급인 90% 우라늄을 싣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3000t급 디젤잠수함인 ‘장보고-3’를 설계하고 있다. 그리고 잠수함에 넣기에는 크지만 중소형 스마트 원자로를 설계했다. 따라서 스마트 원자로를 더 줄이고 장보고-3를 5000~6000t으로 키운다면, 2030년쯤 브라질처럼 20% 농축 핵연료를 사용하는 공격원잠을 건조할 수 있다.

 

 

허망하게 사라진 ‘바라쿠다의 꿈’

한국은 한때 원잠 보유를 추진한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펼친 ‘362사업’이 그것이다. 프랑스는 현재 농축도 20% 핵연료를 장전하는 2640t짜리 원잠인 루비(Rubis)급 잠수함을 운용한다. 그것을 토대로 5000t급 공격원잠인 바라쿠다(Barracuda)를 설계하고 있다. 한국은 프랑스와 접촉해 바라쿠다 설계도를 가져와 비슷한 크기의 공격원잠을 만들기로 했다.

 

해군이 2003년 6월 2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해 승인을 받았기에, 이 사업은 ‘362’로 불렀다. 362사업단장엔 잠수함 함장을 지낸 문근식 대령이 임명됐다. 그리고 원자력연구원에서 스마트 원자로사업단장을 한 김시환 박사팀이 공격원잠에 탑재할 원자로를 설계하기로 했다.

노 대통령이 이 사업을 승인한 데는 그해 1월 11일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위기를 조성한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자위(自衛) 차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북한만 사찰할 줄 알았던 국제원자력기구는 그에 앞서 한국부터 사찰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원자력계에서 예상치 못한 소동이 일어났다.

 

원자력연구원은 2000년, 이전부터 갖고 있던 우라늄 원석 0.2g을 놓고 10%까지 농축하는 실험을 비밀리에 한 적이 있다. 이후로는 하지 않았는데, IAEA가 갑자기 사찰한다고 하자 그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먼저 자백한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외교부가 주도했다.

한국은 외교부 등 4개 부처 장관을 내세워 비밀 농축을 자백하고 앞으로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군사용 핵물질을 제조하는 것은 스스로 막겠다’며 그 일을 전문으로 하는 원자력기술통제원(KINAC)을 만들었다. 362사업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그리고 올해 북한이 SLBM을 발사(사출)하는 사건을 일으키자 바라쿠다 사업을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2년간 한을 품으며 기다려온 문근식 해군 예비역 대령은 가슴을 치며 이런 지적을 했다.

 

“우리는 알아서 기는 나라다. 그때 국제원자력기구는 362사업에 대해서는 사찰하려 하지 않았고 전혀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이는 농축이 아니라 잠수함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후 정부는 원잠 건조를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우리가 올해 2월 잠수함사령부를 만들었다. 잠수함사령부만 만들면 뭐하는가. 그에 걸맞은 전력을 갖추고, 전략을 세워야지. 잠수함사만 있으면 북한 잠수함정을 완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는 우리 안보를 지킬 수 없다. 미국을 설득해 우리 잠수함에 대해서는 NLL을 적용하지 않게 하고, 막 시작한 장보고-3 설계를 농축도 20%의 핵연료를 장전하는 공격원잠 설계로 변경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보수 정권은 노무현 정권보다 안보를 등한시한 정권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놈 바짓가랑이나 잡고 늘어진다’고 했던 대통령이 미국이 무서워 공격원잠 설계를 포기한 사실을 잊지 말자. 보수 정권이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안보는 불안해진다.”

인도는 어떻게 원잠 보유에 성공했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아닌 나라는 원잠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은 허구로 판명된 지 오래다. 이유는 상임이사국이 아닌 인도가 공격원잠을 건조해 실전배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라질이 뒤를 잇고 있다.
인도는 1인당 국민소득은 낮아도 안보에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인 행동이 1974년 핵실험을 해 핵무장을 한 것이다. 그 때문에 미국의 강한 감시를 받자 소련으로 기울었다. 그때 인도가 원한 것은 미국의 봉쇄를 뚫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격원잠을 보유해 인도를 압박하는 미국 함대를 밀어내는 것이었다.
소련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니 핵 확산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원칙에서 두 나라가 합의한 것이 공격원잠 임대였다. 인도는 1988년 소련에서 공격원잠 1척을 빌려와 ‘차크라’로 명명해 1991년까지 사용하고 돌려줬다. 그리고 습득한 기술을 기반으로 90%대로 농축한 핵연료를 장전하는 7000여t짜리 공격원잠 ‘아리한트(Arihant)’를 건조해 2012년 실전배치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제외하고는 최초로 원잠 보유국이 된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는 인도를 제재하지 않았다.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는 PSLV에 이어 GSLV라는 우주발사체를 개발해 2013년 화성탐사선 ‘망갈리안(Mangalyaan)’을 발사했다. 따라서 ICBM과 SLBM 개발도 시간문제이다. 그때 아리한트를 건조하고 운영한 경험을 살린다면 인도는 SLBM을 탑재하는 전략원잠도 설계 건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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