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탈을 가득 채운 계단식 집 그리고 꿈과 낭만
● 최근 문화예술촌으로 탈바꿈한 뒤 관광지로 큰 인기
● ‘꿈꾸는 부산의 마추픽추’ 사업에서 산복도로 르네상스로
● 옥상 전망대 ‘하늘마루’에선 부산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 주민들이 만든 주민들을 위한 책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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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하구 감천동 옥녀봉과 천마산 사이 비탈을 따라 형형색색 페인트칠을 한 사격형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산등성이를 가득 채운 집 모양이 그리스 관광도시 산토리니를 닮았다고 해서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기도 한다.
지붕 낮은 집들은 마치 실력 있는 건축가가 오랜 세월 장난감 블록을 공들여 쌓아 만들어놓은 듯하다. 지붕 옥상에는 파란, 노란, 분홍색 원통형 물탱크가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레고 마을’로 부르는 사람도 많다.
산등성이를 타고 집들이 계단식으로 질서정연하게 들어서 마을을 이룬 정경을 보고 잉카 유적에 빗대...
감천마을 르네상스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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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 마을을 바꾸기 위한 변화의 바람은 2009년부터 시작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2009 마을미술프로젝트 추진위원회’ 및 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하는 ‘생활공간 공공미술 가꾸기’ 사업으로 추진된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 사업이 이제는 산복도로 르네상스로 확산되고 있다.
예술창작문화단체인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가 밑그림을 그린 뒤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추진했다. ‘원도심 보존과 재생’이 기본 개념이다.
설치작품 10개 가운데 4개는 주민들의 직접 참여로 제작됐다. 인근 감정초등학교 학생들이 채색한 도자기 벽화 ‘우리가 가꾸는 꽃길’과 우리누리공부방 학생들이 저마다 장래 소망을 그린 ‘내 마음을 풍선에 담아’는 사람이 희망임을 보여준다. 주민들이 가져다준 빈 병으로 만든 ‘무지개가 피어나는 마을’과 ‘달콤한 민들레의 속삭임’에는 주민의 소원과 꿈이 담겨 있다.
초록색 2층집 옥상 난간에 놓인 ‘사람 그리고 새’, 푸른빛 조명이 환상적인 ‘희망의 노래를 담은 풍선’, 바람이 불면 여러 마리 잠자리 날개가 돌아가는 ‘가을여행’, 곤충 형태의 노란색 날개가 움직이는 ‘굿모닝’, 버스정류장 벤치를 작품화한 ‘꿈꾸는 물고기’, 옹벽을 꽃동산으로 바꾼 ‘하늘 계단’은 낙후된 마을을 예술 정취가 물씬 풍기는 문화마을로 확 바꿨다.
이 마을 노인 60여 명도 화분 받침대, 창문 장식, 옥상 녹화, 빈집 가꾸기 사업에 참여하는 등 결과적으로 노인 일자리도 생겨났다. 주민과 예술작가들이 함께 문화마을 재정비에 참여해 마을이 새롭게 변화할 수 있었던 것. 지금도 마을 운영위원회가 매월 회의를 개최해 주민 의견을 듣고 프로젝트 내용을 수정, 보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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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감천문화마을에서 열린 유네스코 국제 청소년 워크 캠프에 참석한 외국 청소년들이 마을 벽화 그리기가 끝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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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야기가 책으로도
올해도 예술작품 전시, 예술가 창작 스튜디오 설립, 관광객 체험 프로그램 등 다양한 문화예술촌 전시, 체험 행사가 예정돼 있다. 지난해부터 2014년까지 연차적으로 공영 주차장 조성, 도로 개설, 임도 조성, 보안등 설치 등 거주 환경 개선작업도 병행한다.
잊히고 있는 마을 이야기를 담아내는 스토리텔링 작업과 주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마을 텃밭 가꾸기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또 사하구 내에 있는 생태관광지인 을숙도~낙동강 하구 아미산 전망대~다대포 꿈의 낙조 분수~감천2동 관광벨트를 조성하기로 했다.
부산시는 “감천2동 미술프로젝트는 문화공간 가꾸기 사업의 출발점”이라며 “이 사업을 통해 부산을 살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바꿔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어, 우리 동네 통장님이시네.”
책장을 넘기면 예술작품과 작가들이 나오고 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통장, 병원장이 활짝 웃고 있다. 감천문화마을 이야기가 책으로 엮였기 때문이다. 6·25전쟁 이후 수천 명이 피란 와 정착한 이 산동네는 다양한 집이 산자락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한 폭의 그림 같다.
감천문화마을운영협의회는 2010년 부산시 자립형공동체사업의 하나로 1425만 원을 들여 백영제 동명대 교수, 김다희 부산시인협회 편집국장, 이명희 동서대 교수 공동 집필로 ‘감천문화마을 이야기’를 펴냈다. 이 책은 관광지를 나열한 관광홍보책자가 아니다. 문화마을에 설치된 예술작품 작가들과 주민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문화마을 안내서이자 ‘주민들이 만든 주민들을 위한 책’이다.
감천동 이야기, 문화마을 만들기,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 마을을 가꾼 작가들, 문화마을 사람들, 감천문화마을 활성화를 위한 콘텐츠 개발 등 총 7장에 255쪽이다.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와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에서는 예술작품 제작 과정과 의미에 대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적었다. 문화마을이 이뤄지기까지 주민과 작가, 공무원들의 고민과 열정도 그렸다. 문화지도, 아트숍, 심벌마크 제작과 상품화 등 문화콘텐츠 개발 흔적도 상세하게 실렸다.
마을운영협의회는 우선 500권을 발간해 100권은 관광업체와 관공서 등에 보내고 400권은 감천문화마을 아트숍에서 판다. 감천문화마을 곳곳 풍경을 담은 엽서와 노트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주민들이 공동작업장과 아트숍에서 만든 손수건, 도자기, 액세서리 등도 전시 판매한다. 수익금은 인건비와 마을 공공사업에 재투자하고 있다.
어느 곳이든 사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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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동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기 위해 사진작가들도 이곳을 자주 찾는다. 사진작가들이 선호하는 포인트는 감천고개 정상 감정초등학교 주변이다. 오전에는 옥녀봉 아랫마을부터 볕이 들고 저녁에는 천마산 아랫마을로 해가 진다. 옥녀봉 아랫마을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발길도 잦다. 동네 골목길이 미로로 연결돼 있지만 모퉁이를 돌 때마다 수많은 조형작품과 벽화가 반긴다. 이색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에 어느 장소이든 사진 포인트라고 보면 된다. 마을 정중앙에 있는 태극도 본부에서는 흰색 한복을 입고 도를 닦는 도인들도 볼 수 있다.
마을 골목길 대부분 지역에서 감천 앞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다. 계단식으로 집을 앉힌 덕택이다. 달동네 비탈길 모두 ‘오션 뷰(ocean view)’인 셈이다. 동네를 걷고 즐기는 데 여유 있는 걸음으로 2~3시간이면 족하다. 전망 좋은 곳으로는 감정초등학교, 하늘마루, 나라사랑교회 등이 꼽힌다.
감천마을 주변으로도 볼거리가 많다. 걸어서 1시간 이내에 부산 유명 관광지가 몰려 있다. 전국 최대 헌책방 골목길인 보수동 헌책방 골목길을 볼 수 있다.
1926년 경남도지사 관사로 건축됐다가 6·25전쟁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 관저로 사용됐던 임시수도 기념관도 가깝다. 부산 임시수도 시절 정부청사 건물, 국보 2점과 보물 11점, 부산시 지정문화재 11점 등 800여 점을 보유한 동아대 박물관이 있는 동아대 부민캠퍼스도 걸어서 30분 내에 있다.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 광복 뒤 미국문화원, 1982년 방화사건이 발생했던 미문화원 건물은 현재 부산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당면국수, 부산오뎅, 씨앗호떡, 완당 등을 맛볼 수 있는 남포동 먹자골목과 부산 자갈치시장도 1시간 이내 거리다. 부산 명물 거리를 둘러보는 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또 다른 이름 태극도마을
태극도마을의 유래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하구청이 발간한 ‘사하지’에 따르면 태극도마을은 “태극을 받들며 도를 닦는 신흥종교인 태극도를 믿는 사람 4000여 명이 모여 집단촌을 이룬 마을”이다.
태극도 본부는 1955년 당시 허허벌판이던 이곳에 태극도 도인들이 집단 이주하면서 형성된 신앙촌이라고 소개했다. 피란 온 태극교도 가구가 몰려들면서 감천동을 9개 구역으로 나눈 뒤 판잣집을 지었다. 새마을운동 과정에서도 판잣집 골격은 그대로 두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었다. 사실상 60년 전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1990년대에는 인구가 2만5000~3만명가량 됐지만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나면서 현재 인구는 1만 명가량으로 크게 줄었다. 이 가운데 10%가 태극도 신도다.
감천동 태극도 본부 회관 3층 전시실에 태극도마을 역사를 담은 자료가 비치돼 있다.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 김지철 태극도 도무원장은 “태극도가 민족종교의 뿌리임을 적극 알리기 위해 지난해 9월 1일부터 도주 묘지인 능소를 개방한 데 이어 이번에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태극도 전시관도 개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극도 측은 “1980년대 후반까지 3만 명가량이 이사해 떠났고 태극도 신도도 이탈했지만 마을에 젊은 물결이 일면서 다시 태극마을로 이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의 산토리니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가면 경부고속도로→대구부산고속도로→백양터널요금소→태종대·수정터널 방면 고가도로→수정터널→좌천삼거리→부민사거리→지하철 토성동역→감천2동 문화마을로 올 수 있다. 감정초등학교 아래 넓은 공용주차장이 있다.
지하철 토성동역에서 내려 6번 출구로 가면 부산대병원 암센터 앞에서 2, 2-1, 1-1번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감정초등학교에서 내리면 된다. 지하철 1호선 괴정역에서 6번 출구로 나와 뉴코아아울렛 맞은편에서 1, 1-1번 마을버스로 환승하면 된다.
자세한 문의는 하늘마루 (070) 4219-5556. 문화마을 지도는 하늘마루와 마을안내소에 비치돼 있다. 스탬프를 모두 찍어 오면 하늘마루에서 무료 사진인화 서비스를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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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조정산(趙鼎山) 태극도주가 세운 민족종단 가운데 하나. 1963년 정부에서 재단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다. 본부도장은 부산 사하구 감천동에 있다. 중부에 3개 지부, 지방에 6개 지부를 두고 있다. 현재 태극도는 전국에 123개 교당과 신도 10만여 명을 두고 있다.
태극도 신앙대상은 양위상제(兩位上帝)로 강증산(姜甑山)과 조정산(趙鼎山)이다. 신조(信條)는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造化), 해원상생(解寃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이다. 4대 강령(綱領)은 안심(安心), 안신(安身), 경천(敬天), 수도(修道)이다. 3대 요체로 성(誠), 경(敬), 신(信)을 두고 있다. 경전으로 진경(眞經)을 사용한다.
수도 목적은 진리의 도통이다. 안심, 안신 2가지 율령으로 행실을 닦는 훈전으로 수도하고 있다.
태극도 본부는 “방황하는 현대 사람들에게 의식세계에 대한 해결책을 민족종교인 태극도가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극도는 “물질만능주의, 도덕적 관념 상실, 이념 및 세대, 지역 간 갈등, 효도와 노인공경 등 한국 전통가치 실종, 핵가족 사회에 따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등을 해결하고 상생으로 현대사회 문제를 풀어가는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태극도 본부도장이 통감(通鑑)과 진경(眞經) 내용에 따라 소개하는 태극도는 다음과 같다.
<경남 함안군 칠서면 출신인 조정산 태극도주는 경술국치 이후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망명하던 중 기차가 대전 부근에 이르렀을 때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게시를 받는다.
“내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노라. 그대는 삼계(三界)의 진주(眞主)니 이는 막중한 천기(天機)라. 그대가 나의 도통(道統)을 이어 치천하도수(治天下度數)로 무극대운(无極大運)의 대공사(大公事)를 성취하되 내 명교(明敎)를 받들어 태극(太極)의 진법(眞法)을 용(用)하면 무위이화(無爲而化)로 광구삼계(匡救三界)하리라. 그대의 호는 정산(鼎山)이니 나와 그대는 증정지간(甑鼎之間)이며 이도일체(以道一體)니라. 나는 구천(九天)의 천존상제(天尊上帝)로다.” 1917년 그는 다시 구천상제로부터 “속히 환국하라”는 계시를 받고 귀국해 전국 각지를 편력하였다. 그는 충남 태안 안면도와 전북 정읍군 감곡면 황새마을에서 포덕활동을 했다. 1921년 무극대도(無極大道)라는 도명으로 종단을 창립했다.
그는 정읍군 태인면 태흥리에 120여 칸의 큰 교당을 짓고 새로운 취지강령과 도규를 제정, 공포했다. 이때 모여든 신도의 수효는 10만여 명에 달했다. 당시 보천교를 세운 차경석(車京石)이 ‘차천자(車天子)’로 불리는 것에 비유해 일반 사회에서는 조정산 태극도주를 ‘조천자(趙天子)’라 불렀다.
그는 진업단(眞業團)이라는 사업단을 만들어, 안면도와 원산도에서 간척사업을 벌여 20여만 평의 농경지를 만들었다. 함북 무산과 북만주 목단강 근처에서는 벌채사업을 벌였다. 전북 전주군 이서면 사금광(砂金鑛)과 충북 음성 무극광산 등 금광사업에도 손을 대어 많은 이익을 올린 뒤 사회에 환원했다.
하지만 1936년 조선총독부가 증산교 계열 신종교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단행하였던 ‘유사종교해산령’에 따라 교당 건물이 철거되고 본부는 해체되다시피 하였다.
1948년 조정산은 본부를 부산시 보수동으로 옮기고 태극도라는 명칭으로 다시 포덕활동을 시작했다. 1955년 그는 신도들을 부산시 감천동으로 집단 이주시켜 도인촌을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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